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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 차단을 이유로 베트남 다낭에서 격리된 우리 국민 20명이 사실상 감금된 채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지난 2월 24일, 베트남에서 한국 관광객을 격리조치한 것을 보도한 YTN 뉴스의 첫 멘트다. 대구에서 출발해 다낭에 도착한 한국인 관광객 및 교민 20명이 공항에서 현지 병원으로 즉시 격리되었다. YTN의 특종은 경주하는 말처럼, 다른 언론들을 통해 일제히 그리고 맹렬히 퍼져나갔다. [그날 그 비행기에 탑승했던 베트남 승객 한 명이 발열 증상을 보여 탑승객 전원이 격리 조치된 것]이라는 진짜 뉴스는 그로부터 한참 후에 ‘발견’ 할 수 있었다.

 

못한 것인가 안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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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중 가장 큰 반발을 일으킨 내용은 격리된 한국 국민의 인터뷰였다. ‘아침에 빵 쪼가리 몇 개 주네요.’라는 식사와 처우에 대한 불만이 여과 없이 방송되었다. 문제의 ‘빵 쪼가리’는 베트남식 샌드위치인 반미(Bánh mì)였다. 베트남의 대표적인 음식이며, 론리플래닛이 세계 길거리 음식 베스트 10로 선정한 그 음식이다. 인터뷰하신 분, 반미를 모를 수 있다. 가뜩이나 여행 일정에 차질이 생겨 기분이 좋지 않은 것, 당연하다. 하지만 기자는 몰랐으면 안 됐다. 알았으면 더 문제다.

 

베트남인들의 분노는 단지 자신들의 전통음식을 '부실하고 저급한 식사'로 비하한 것 때문만이 아니다. 항공기 도착 전날, 격상된 감염병 관리 조치에 다낭 현지도 사전 준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베트남 당국은 최대한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 영사관과 협의하여 한식 도시락을 준비하고, 호텔로 거처를 옮기는 것을 알아보는 등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기자라면, 시선이 여기까지 닿았어야 했고, 그래야 뉴스로서 가치도 있는 것이다.

 

뉴스가 놓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여행객들이 공항에서 이동한 곳은 ‘폐’ 병원이었다. 문 닫은 병원이 아니라, 이번 바이러스가 괴롭힌다고 알려진 '폐'라는 장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이다. ‘자물쇠로 잠겨진 열악한 폐병원’이라는 보도가 한국 독자들에게 폐쇄된 폐(閉) 병원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후에 현지 교민 증언으로 그곳은 베트남 상급 종합병원의 폐 전문 병동이었음이 밝혀졌다.

 

 

첫 번째, 폐전문병원 격리는 현재 다낭에서 코로나19를 검사할 수 있는 키트가 유일하게 폐렴 전문병원에만 있으며 해당 병원은 현재도 운영되고 있는 병원입니다. 뉴스에서는 마치 폐쇄된 병동에 대한민국 국민이 격리되어 시설이 낙후되고 불결하다고 표현되었으니 엄연히 현재도 운영되고 있는 병원이며 병실 내 청소가 다소 미흡하였다 해도 저희 한인회가 방문해서 조사한 결과는 그래도 베트남 내 병원 시설 중에 상급에 해당됩니다.

 

두 번째, 대한민국 국민이 입국되어 폐렴 전문 병원에 감금과 관련하여 정확한 내용은 감금이 아니고 격리입니다. 자물쇠로 잠겨진 부분은 병동 입구 이지 각 병실이 아님은 분명히 합니다.

 

베트남중부한인회 <YTN 보도 관련> 입장문  

 

 

이처럼 오해의 여지가 있는 동음이의어를 한문 병기나 한 마디 보충 설명 없이, 많은 기사들이 ‘시설이 열악한 폐병원’으로 옮겨 날랐다. 기본적인 사실 확인조차 거치지 않은, 게으른 받아쓰기인 것이다. 만약 의도적인 누락이었다면, 더 절망적이다.

 

문제는 그렇게 퍼져나간 일그러진 특종들은 한국 사람만 읽고 넘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에 관심이 많다고 알려진 베트남. 한국인 여행객을 ‘감금’하고 ‘빵 쪼가리’를 제공했다는 말초적인 기사 내용을 독해하고 그것을 전할 수 있는 사람들, 그 어느 곳 보다 많다. 뉴스가 보도된 이후로,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에 갖는 서운함과 분노는 크고 빠르게 번지고 있다.

 

우리가 몰랐던 그들의 이야기

 

날조된 싸움에 불이 붙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는 그들의 분노가 갑작스러워 보였다. 박항서 감독의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하노이 길거리에서 공짜 맥주 얻어먹은 썰 부터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 뉴스까지, 그게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최근의 베트남이었다. 그렇게 친근한 사이였던 그들이, 한국에 감염병이 번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인심이 흉흉해져 등 돌려 버린 것 같은, 일종의 배신감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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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VN익스프레스>

 

베트남인의 한국에 대한 정서는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복잡하다. 현재 베트남에는 베트남전을 경험한 노인세대와 한국 아이돌에 열광하는 청년세대가 공존하고 있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다 입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지난 2019년 7월, 두 살배기 아기 앞에서 한국인 남편이 베트남 이주여성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영상이 공개되었다. 많은 이들이 경악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집계 결과, 2007년부터 2017까지 언론에 보도된 베트남 결혼여성 학대 사례는 살인사건만 13건에 달한다. 베트남인들은 자국 여성이 한국에서 살해당하는 뉴스를 해마다 접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서구권에서 일어나는 동양인 인종차별에 분노하듯, 베트남인들의 응어리는 오랫동안 축적되어 있었다. 그들에게 한국인의 이미지는, 한국 드라마의 스윗한 주인공과 아내를 학대하는 남편의 모습이 함께 겹쳐 보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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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이주여성 폭행사건

출처 - <facebook>

 

65,490명의 베트남 결혼이주자와 귀화자가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여성가족부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 연구, 2018), 우리는 그들의 사정에 너무도 무지했다. 이를테면 성폭력, 살인, 강도, 강간 등 흉악 범죄 이력이 있는 자가 외국인 배우자 초청을 제한하는 법령은, 놀랍게도 개정된 지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2020. 2. 21 개정 입국관리법 시행규칙).

 

한국-베트남 경제교류 확대 역시 복합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한국 기업이 베트남 국내 일자리를 창출하고, 그들의 국민 총생산(GDP)에 일조하기 때문에 베트남인들이 한국에 고마운 마음을 가질 것이라는 것은 일차원적인 기대다. 베트남에 투자자본이 앞다퉈 밀고 들어간 것은 분명 호혜적 관계에 기반한 이익 창출의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중국 공장이 폐쇄되자, 한발 앞서 베트남으로 공장을 이전한 한국 기업의 선택을 신의 한 수로 평하는 보도가 얼마나 많았는가.

 

베트남 입장에서 보자면, 삼성전자의 자국 내 경제 기여도는 매우 크지만, 단일 외국기업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은 그들에게 큰 고민이다. 자국 경제와 시장이 특정 외국 기업에게 지나치게 기대는 상황은 어느 국가라도 바람직하게 보지 않을 것이다. 최근 한일 무역갈등으로 반도체 소재 국산화와 기술 자립이 우리의 중요 어젠다로 부상한 것처럼 말이다. 상황이 안 좋을때, 감정은 더 쉽게 상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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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글로벌이코노믹>

 

위기에 드러나는 민낯에 대하여

 

밝히자면, 내 룸메이트는 베트남인이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 깊은 만큼, 그의 한국어는 꽤 능숙하다. 그가 캡처해 둔 유튜브 한국어 댓글들을 보여줬다. 해묵은 반공 사상, 동남아 국가에 대한 멸시, 양국 관계에 대한 무지, 한류를 문화적 우위라고 생각하는 오만까지. 다양한 맥락이 어우러져 온갖 원색적인 표현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 내포된 혐오를 어디까지 설명해 줘야 할지 난감했다. 때론 솔직했고 때론 얼버무렸다. 위기에서 움튼, 우리의 부끄러운 단면이다.

 

그도 나에게 부끄러움을 고백했다. 내가 읽지 못하는 베트남어 댓글에도 차마 전하지 못할 말들이 많다고. 최근 베트남에서 페이스북 등 SNS 사용이 급격하게 늘면서, 아직 댓글 문화가 성숙하게 자리 잡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나도 그도,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각자의 미안함과 민망함이 뒤섞여 쉽게 말을 잇지 못했으리라. 멀리 유럽에 있는 나의 심란함이 이럴진대, 베트남에 거주 중인 우리 교민들의 일상은 어떠할지. 무책임한 뉴스는 이렇게 멀리 구석구석 병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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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국뽕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코로나 사태는 대한민국의 위상을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한국은, 적어도 한국의 문화는 그 어느 때보다 주목을 받고 있다. 영국에서의 일 년 남짓, 길지 않은 유학 생활 중에서도 충분히 그 ‘한류’라는 것을 확실히 체감할 수 있을 만큼. 한국어 뉴스는 이제 더 이상 내수용이 아니다. 부탁 건데 기사, 잘 좀 쓰셨으면 좋겠다.

 

베트남인들도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라쓰'를 우리와 동시에 보고 있다. 우리가 작성하는 댓글도 실시간으로 그들에게 전달된다는 말이다. 왜 우리도 미국의 속내를 CNN보다 트럼프 형님이 날린 트윗으로 먼저 캐치하지 않나.

 

정체 모를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뒤덮고 있다. 그 누구도 일찍이 경험해본 적 없는 낯선 두려움이다. 모두가 그렇다. 지구에 생존 중인 사람이라면. 대한민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이 위기를 정면으로 맞서왔다. 그 결과, 이 지긋지긋한 바이러스에 대해 우리가 축적한 정보를 전 세계에 공유하고 있는 중이다. 이점, 객지에 나와 있어 그런지 BBC를 보며 매일 아침 공복에 국뽕 한 사발씩 한다. 누군가의 됨됨이는 어려울 때 그 진가가 드러난다고 하지 않나. 이제 넉넉한 연대와 국가의 품격을 국제사회에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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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떠난 영국에서 공부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