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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라면은 끓는 물에 최소한 3분을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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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얘기는 당연히 아니고.

대한민국 정치 지형에 대한 얘기다. 많은 사람이 우리나라의 정치 지형을 보수와 진보로 둘로 나눈다. 구 민정당 계열에서 면면히 내려오는 정당을 보수, 나머지를 진보로 퉁치는 경향이 있다. 이 분류는 맞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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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어떤 시점까지는 이 분류가 맞다고 해도 현재 이 분류는 유효한 걸까? 이 분류가 틀렸다고 하면 어떻게 분류해야 맞는 걸까?

 

 

잘못 사용되는 정치 언어


보통은 생각대로 혹은 생각만큼 말을 할 수 있지만, 때로 언어는 사고를 지배한다.

우리가 힘든 상황에서 ‘할 수 있다’는 주문을 되뇌는 것은 언어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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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얘기도 결론은 할 수 있다고 믿으라는 얘기 아닌가.
(부디 이 글 읽는 분들은 자기 계발서 ‘절대’ 읽지 마시라. 나는 자기계발서처럼 쓸데없는 책은 없다고 믿는다. 연애소설 읽는다고 연애 잘한다고 생각하나? 환상만 커져서 연애에 오히려 방해되지 않나. 자기 계발서 읽는다고 자기 계발 안 된다)

애국 보수란 말을 들으면 제일 처음 어떤 생각이 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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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혹은 성조기)나 노인, 선글라스 등의 단어가 떠오를 것이다. 애국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말하는 것이고 보수는 무언가를 보전하고 지키는 것이다.

하지만 딴지일보까지 와서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애국 보수라는 말을 듣고 나라를 사랑한다거나 무언가를 보전하고 지킨다는 긍정적인 느낌이 드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가스통에 불을 붙여 끌고 다니고 선글라스를 쓰고 편의점에서 행패를 부리는 노인들, 이스라엘 국기도 모자라 일장기를 흔드는 노인들을 떠올리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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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와 관계없이 그들이 자신을 애국 보수로 규정함으로써 그들이 얻는 이득은 굉장히 많다. ‘애국보수’가 잘못됐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애국 보수라고 자칭하는 자들을 비판하려는 것이 애국하려는 마음이나 행동을 비판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비판하려면 애국 보수라는 말에 굳이 세력이라는 말을 붙여서 ‘애국 보수 세력’이라고 부르며 비판해야 한다.

이마저도 굉장히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 말을 사용하는 순간 그들의 애국심을 인정하는 모양새가 돼버리기 때문이다.

애국 진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애국심은 보수나 진보 같은 이념 성향과 관계없이 한 나라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고 마땅히 가져야 하는 가치다. 하지만 애국 보수라는 말을 만들어 애국 진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없게 돼버렸다. 애국이란 단어를 독점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두 단어를 결합해 한 단어가 가진 긍정적/부정적인 의미를 다른 단어에 전이하는 동시에 단어를 독점하는 기법을 접합이라고 한다. 애국 보수나 좌익 빨갱이 같은 단어들이 대표적인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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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차명진 전 의원 페이스북 >

 

우리나라 보수 진영에서는 접합을 자주 사용한다. 애국 보수나 좌익 빨갱이 외에도 좌좀(좌익좀비)이나 개혁보수 같은 단어들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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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민경욱 의원 페이스북 >

 

정치적 용어로써 좀비는 60년대 미국에서 정부가 선전·선동에 넘어가 정부의 말을 진리로 받아들인 보수적인 성향의 유권자들을 비웃는 데서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보수, 우익 성향을 지닌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애국 보수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좀비란 말이 비판하던 대상에 가장 가까운 성향의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좌좀이란 말을 적극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진보 성향의 국민들이 좀비란 말을 듣는 일은 있어도 보수 성향의 사람들에게 좀비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

자신들을 규정할만한 단어를 상대방에게 선제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상대방의 공격을 차단하는 동시에 자신이 상대를 공격할 수 있는 무기로 삼은 것이다.

개혁보수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네모난 삼각형처럼 형용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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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개혁하지 않기 때문에 보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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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네이버 국어사전 >

 

점진적으로 문제를 고쳐 나가자는 것이 보수의 정신이다. 개혁하자고 말하는 순간 보수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개혁보수’나 ‘보수의 혁신’ 같은 말을 수시로 사용한다. 개혁이나 혁신이라는 말이 가진 긍정적인 뉘앙스를 끌어다 보수에 접합하려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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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조선닷컴 >

 

우리나라에서 보수를 자칭하는 자들은 대부분 애국이나 개혁, 혁신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 단어를 선점해버림으로써 큰 이득을 봤다.

 

일장기를 흔들면서 애국을 말하는 사람들이나 한일 무역 분쟁이 났을 때 일본 정부가 주장하던 대로 일본은 잘못이 없고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에 당장 사과해야만 문제가 해결된다던 자들이 (우리나라 사람인지 일본사람인지 잘 모르겠지만) 자신들을 여전히 애국 보수라 부르고 있다.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그들(자칭 ‘애국 보수’)의 논리대로라면 우리 경제-특히 반도체 분야-는 이미 폭망했어야 했는데 현실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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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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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조선일보 >

 

일본의 편에 서서 그딴 소리를 했던 애국 보수들은 입 싹 씻고 언제 그랬냐는 듯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고, 그런 개소리를 기사라는 형태로 포장해서 세상에 떠들어 댄 언론사는 모르는 척하고 있다.

일본에선 코로나 관련되어 한국은 왜 익명으로 일본을 도울 수 없는 거냐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를 폭망시키겠다고 수출금지를 했던 자들 입에서 나올 소리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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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사과해야 한다던 애국 보수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다시 돌아와서 몇 년 전, 김제동 씨는 보수와는 거리가 먼 우리나라 친일, 매국 세력들이 선점한 애국, 자유 등의 단어를 되찾아와야 한다며 주진우 기자와 함께 애국소년단이라는 프로그램을 런칭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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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추 하나가 잘못 꿰어지면 나머지가 줄줄이 잘못되는 법이다. 애국 보수 같은 단어가 왜곡된 것도 문제지만 잘못된 분류는 더 큰 문제다.

예를 들면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는 다른 층위의 단어다. 민주주의는 정치 체제의 문제이고 공산주의는 경제 체계의 문제지만 민주주의 특히 자유 민주주의라는 말을 공산주의의 반대말로 사용함으로써 실제로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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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네이버 국어사전 >

 

민주주의에 자유라는 말을 붙여 사용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대개 시장주의를 말한다. 정치체제가 아니라 경제체계를 말하면서 시장주의 대신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모든 기능을 시장에 맡기고 정부는 최소한의 간섭만 하는 형태로 기업과 시장에 무제한의 자유를 허용하자는 것이 그들이 얘기하는 자유민주주의다.

시장주의라는 말 대신 민주주의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 우연인지 의도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두 가지 가치를 내세움으로써 그들은 많은 것을 챙겼다.

코미디인 건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박정희의 독재 통치나 전두환의 권위주의 통치를 올바르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박정희나 전두환의 통치방식은 자유주의와도 민주주의와도 매우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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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네이버 국어사전 >

 

그들은 자유와 민주라는 말을 내세웠지만, 실제 내용은 자유나 민주 같은 말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기업이나 시장에는 무제한의 자유를 부여하는 시장 만능주의 경제체제를, 국민 개개인은 통제와 억압을 하는 방식으로 통치하는 권위주의 정치체제가 그들이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다.

말하는 사람은 흰색이라고 말하며 검은색을 내밀어 색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검은색을 흰색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자유나 민주와 전혀 관계가 없지만, 자유민주주의란 말을 사용해 사람들을 호도했다. 그들은 대한민국이나 민주주의에 끊임없이 자유라는 말을 붙여 사용해 이런 오해를 확대 재생산하려고 한다.

몇 년 전에 페이스북에서 유행했던 자유주의라는 페이지도 이런 시도 중 하나였다. 일베가 그들의 용어로 ‘산업화(자신들의 이론을 반대 성향을 지닌 사람들에게 설파할 때 사용하는 말로, 추천 수 조작과 같은 여론 조작 시에도 사용한다.)’하기 위해 만든 페이지이다.

자유라는 말이 가진 긍정적인 이미지를 차용해 실상을 가리고 속이려고 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자유민주주의라는 레토릭에 속아 그런 집단들을 지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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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자유주의 페이스북 >

 

‘의도된 오해’도 있지만, 의도치 않게 발생해 많은 사람이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오해도 있다. 대한민국의 정치지형이 양분되었다는 오해가 이런 오해 중 하나다.

 

 

초한지가 아니라 삼국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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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치지형은 양자구도가 아니다. 예전에는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2000년대 이후에는 양분되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예전에는 한쪽이 너무 막강했기 때문에 1강 1약처럼 보였지만 1약이 1중 정도로 부상하면서 1강 1중 1약의 구도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고, 2018년 지방선거를 계기로 1강과 1중의 세력이 비슷해지면서 1약의 존재는 좀 더 분명히 드러나게 됐다.

현재 1강, 1중, 1약은 각각 민주, 보수, 진보 진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초나라와 한나라 양자 대결이 아니라 위, 촉, 오 삼국의 대결이란 얘기다. (촉과 오를 1중 1약으로 나누는 것이 맞는 분류냐는 데 대해서는 정사가 아니라 연의에 의지하는 것으로 대강 해결하자)

민주 세력과 진보 세력은 오랫동안 같은 세력으로 인식됐다. 자유당 정권 이래 수구 보수진영은 40년 넘게 연속해서 집권했고 막강한 힘을 자랑했다. 민주진영과 진보진영은 지리멸렬할 수밖에 없었다.

외계인이 쳐들어오면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힘을 합쳐야 한다는 노회찬 의원의 말처럼 대한민국 전체를 지배하다시피 하는 수구 보수진영과 싸우기 위해 민주진영과 진보진영은 힘을 합칠 수밖에 없었다.

그 세월이 오랫동안 이어지다 보니 민주진영과 진보진영은 자신들을 한 진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97년 김대중 대통령의 집권 이후 민주 진영이 조금씩 힘을 키워가면서 하나의 진영으로 인식되던 민주와 진보 진영은 자신들의 입장이 다름을 알게 되었다.

권영길 민노당 대표의 민주당과 우리 사이에는 한강이 흐른다던 말은 민주와 진보 세력이 같은 편이 아님을 선언하는 신호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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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


다음 편에서는 ‘민주 진영과 진보 진영이 왜 한 진영이 아닌지’와 ‘한 진영이라는 오해 때문에 어떤 문제들이 생기는지(진중권 씨나 서민 씨 같은 사례 등)’ 등에 대해서 다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