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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사람들이 많이 쓰는 단어 중에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는 ‘팩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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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라는 단어처럼 현재 우리나라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단어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팩트라는 말을 진실과 동의어로 받아들인다.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팩트가 뭐냐’, ‘그게 팩트냐’면서 팩트라는 말을 수시로 사용한다.

팩트라는 말을 진실과 동의어로 사용하기 시작한 게 기자 집단인지 일베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두 집단 다 팩트라는 단어를 진실이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두 집단 다 팩트 운운하며 수많은 가짜 뉴스를 뿌려대고 있다는 또 다른 공통점도 있다.

당연하게도 팩트는 진실이 아니다. 진실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팩트는 진실을 가리는 수단으로 빈번하게 사용된다.



광주 5.18의 경우

5.18 민주화 운동이 북한의 공작에 의해 벌어지지 않은 거짓말이 깨지자 5.18을 어떻게든 깎아내리고 싶은 자들은 시민들에 의한 폭동이라는 게 팩트라고 떠들기 시작했다.

이걸 굳이 설명하는 것도 우습지만 우습다고 넘어간 그늘에서 독버섯들이 자라나기 때문에 우습다고 그냥 넘어가선 안 된다.

시민들이 무기고를 탈취한 것도 팩트이고, 시민들이 군, 경에 대항해 총기를 발사한 것도 팩트이며, 시민들에 의한 군, 경 사망도 팩트다.

하지만 시민들이 무기고에서 무기를 탈취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는 팩트, 군경이 전남도청 앞에서 시민들을 선제적으로 조준 사격했다는 팩트, 전두환이 서울역 회군 후에 광주를 진압할 것을 명령했다는 팩트를 이야기하지 않고는 저 팩트들은 사실의 나열에 불과할 뿐 진실이 아니다.


전남도청 사격.JPG



때려서 아플 때까지 때린다.

보수 언론과 극우 유튜버들이 윤미향에 대해 십자포화를 날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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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언론도 이 어이없는 공격에 동참해 정의를 구현하는 자신들의 모습에 도취하여 흐뭇해하고 있다. (이 공격이 왜 어이없냐. 위안부에 대해 가장 야멸찬 시선을 보이던 쪽이 공격의 주체가 되어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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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경향신문>

 

한겨레 윤미향.JPG

출처 - <한겨레>


처음에 후원금을 할머니들에게 쓰지 않았다는 팩트를 던지며 시작된 공격은 후원금이 할머니의 생활을 위한 것보다는 일본의 근로 정신대-종군 위안부와 관련된 진실을 세계에 알리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공격 포인트를 옮기기 시작한다.

다음의 본진은 옥토버훼스트라는 호프집에서 벌어진 후원회와 관련된 팩트다. 3300만 원이란 돈을 하룻밤에 호프집에서 사용했다는 팩트를 발견한 한 언론사가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보도하자 다른 언론사들에서 팩트들을 쏟아낸다.

실은 하나의 행사에서 3300만 원을 사용한 것이 아니다. 정의연은 1년 동안, 후원을 받기 위한 ‘후원의 밤’ 행사를 140여 차례 열었다. 그리고 공시자료에 사용처를 적는 란은 한 칸밖에 없었고, 사용처 중 가장 많은 돈을 사용한 대표적인 사용처를 적었다.

그 140여 차례의 ‘후원의 밤’에 사용된 돈의 총 액수가 3300만 원인 것이다. 이것이 밝혀지자 팩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입을 꾹 다문다.

팩트 애호가들은 다시 새로운 팩트에 그들의 총을 조준한다. 할머니들 쉼터를 윤미향 씨의 아버지가 무려 ‘돈’을 받고 관리했다는 팩트를 전면에 내세운다. 이전에 자기들이 제기했다가 부정당한 팩트들에 대해선 이미 까맣게 잊었다.

윤미향 씨 아버지를 채용한 것이 부정한 일인지,
그 부정한 일을 통해 채용된 아버지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는지,
아버지가 받은 봉급이 부당할 정도로 큰돈을 챙겼는지

 

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윤미향 씨 아버지가 관리인으로 채용되어 돈을 받았다’는 팩트를 찬란하게 들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 그 아버지가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며 건물을 관리했다든지,
받은 돈이 최소 시급을 약간 상회했다든지,
거기가 외진 곳이라 상주하며 관리할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웠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하면 어쨌든 아버지를 고용해서 돈을 준 건 ‘팩트’ 아니냐며 큰소리를 친다.

지금은 그 쉼터를 비싸게 샀네 싸게 팔았네 하며 부동산 관련 공격을 하고 있다. 언제부터 그들이 정의연 재정에 관심이 있었다고 부동산을 비싸게 사서 싸게 판 것을 걱정하고 있나.

어버이 연합이나 엄마부대가 전경련의 돈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어버이 연합이나 엄마부대 사무실에 가본 적은 있을까? 아니 인터넷으로 등기부 등본이라도 발급해봤을까? 취재하고 보도할 생각이나 해봤을까?

역사에서 완전히 묻혀있었던 위안부들을 역사의 무대 위에 올려 그들의 억울함을 일정 부분이나마 풀어주었다는 팩트, 그 기간이 무려 30년이라는 팩트, 어떻게든 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으며 정의연과 그 활동을 깎아내려야만 할 필요가 있는 일본의 우익 정치인들이나 극우친일매국 인사들이 있다는 팩트는 깡그리 무시한다.

정의연과 관련된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논쟁이 있다면 그동안 정의연이 의미 있는 활동을 했는지 아닌지다. 그 외의 문제는 부차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늘 그랬듯 중요한 문제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부차적인 문제를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처럼 만들어 팩트 타령을 해댄다.

나는 윤미향 씨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훌륭한 사람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솔직히 말하면 별로 관심도 없다. 하지만 지금 제일 열을 올리며 윤미향 씨에게 삿대질하는 사람들보다는 떳떳한 삶을 살았다는 팩트는 확실히 안다.

그들 편에 서는 것이 옳은 일일 가능성이 한없이 낮다는 팩트도 확신한다. 이용수 할머니께서 낸 입장문의 톤이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팩트는 외면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돈타령만 한다는 건 팩트 애호가들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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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 할머니의 5월 7일 기자회견 이후 관련 논란에 대한 입장문>
 

그들 옆에 서서 윤미향 씨 욕하느라 바쁜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지금 당신 옆에 누가 서 있는지 누가 당신과 같은 편인지 생각해봤는가.


팩트 애호가들의 특징

1. 맥락을 무시한다.

자신이 자랑스레 들고 있는 팩트가 어떤 전후 상황 속에서 벌어지게 된 것인지,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노회찬에게 돈을 준 사람이 노회찬과 어떤 관계였는지 노회찬이 받은 돈이 어떤 성격이었는지와 관계없이 노회찬이 돈을 받았다는 한 가지 사실만 들고 고장 난 녹음기처럼 팩트 타령을 반복한다.

2. 자신에게 불리한 팩트는 외면하거나 무시한다.

조국이 입시 부정을 저질렀다며 온갖 난리를 치며 집회를 하고 연설을 했던 서울대의 팩트 애호가이자 국민의당 비례 4번이었던 김근태 씨(하... 하필 이름이 김근태인지...)는 나경원의 입시 부정이나 김성태, 권성동의 입사 부정에 대해서 집회를 했단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팩트 애호가답게 출마 당시 볼빨간 사춘기의 음원 조작 ‘팩트’에 대해서 떠들다가 소송전으로 번질 것 같으니 사과하고 닥버한 전력이 있다. 이래놓고 맨날 선택적 정의니 조로남불이니 하며 떠들어 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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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일간스포츠>
 

3. 한 두 가지 팩트를 손에 쥐고 만능 카드처럼 늘 내민다.

제주 4.3 사건 얘기를 하면서 제주도에 공산당들이 활동한 건 사실 아니냐며 계속 그 카드만을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아 어쨌든 공산당 활동했잖아.’ ‘아 어쨌든 시민군들이 군대를 향해 발포한 건 팩트잖아’라고 이야기하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본인들이 ‘아 어쨌든’이라고 말한 곳에 다 들어있다는 팩트를 모른다.

한명숙의 경우도 법정에서 돈을 준 당사자가 증언을 뒤집었다는 팩트는 “무시하고 유죄니까 돈 받은 거 팩트임. 부정 노노염”이라고 반복해서 떠든다.



팩트 애호가들은 왜 해로운가

1. 목소리가 크다.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목소리를 크게 낸다.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고 그들의 당당함 때문에 실제 옳고 그름과 관계없이 팩트 애호가들이 옳다고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유튜브에 썸네일의 글씨만 봐도 그들이 얼마나 목소리가 큰지 알 수 있다. 썸네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신기술을 터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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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모른다는 걸 모르는 사실’이 있다는 걸 모른다. 쉽게 얘기해 졸라 단순하다. 지성과 지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얘기다.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벌어질 수도 있는 일에 대비하자고 하면 현재 벌어진 일만을 놓고 괜찮다거나 문제 있다고 주장한다. 광우병 촛불 집회 때문에 소고기 수입 조건이 바뀌었다는 팩트는 무시하고

‘광우병 대규모 감염사태 안 벌어진 게 팩트잖아. 에이그 멍청한 촛불좌좀들. 미국산 소고기 먹어도 아무 문제 없잖아’

라고 떠든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전쟁도 안 났는데 군대가 무슨 필요이며 불도 안 났는데 소방관은 무슨 쓸모가 있는가. 다 없애. 홍준표 의원께서 이런 논리로 진주 의료원을 없앴다. 비용-편익에 대해서 떠들지만 기회비용이나 매몰 비용, 위험 발생 시 생기는 비용은 무시한다.

원자력 발전도 비슷하다. 팩트 애호가들은 대개 원전이 경제적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후에 원전 관련 부지를 영구히 쓸 수 없게 돼서 발생할 무한대의 지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당장 발전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싸니 원자력 발전은 경제적이라는 주장을 편다.

3. 무책임하다.

우리도 북한에서 뭐만 하면 핵을 개발해야 한다든지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 중국인 입국을 당장 금지해야 한다며 늘 극단적인 주장을 편다. 핵을 개발할 경우 우리나라가 경제 제재를 당하게 되어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가 그날로 폭망할 거라는 생각이나 중국인 입국을 금지했다가 코로나 사태가 종결되고 나서 사드 때처럼 한한령이 생겨서 대중 무역이나 한류가 크게 어려워질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박근혜도 아무 생각 없이 개성공단을 하루아침에 닫았다. 공단 폐쇄로 인해 하루아침에 폐업으로 내몰린 중소기업들과 업체 사장과 노동자들의 처지 같은 건 고려하지 않았다. 또한 개성공단 폐쇄는 경제 부분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분에서 우리나라에 계속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팩트 애호가들은 이런 얘기는 하지 않은 채 자신들이 주로 보고 있는 점만 주장한다. 그 외의 부분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언급하지 않는다.

종합하자면 팩트라는 말을 애호하는 사람은 맞는 경우보다 틀리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게 팩트다.

마지막으로 한 사진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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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카메라 속 장면(팩트)은 조작된 장면이 아닌 실제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 장면(진실)과는 다르다.

“팩트는 진실과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