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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가르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말이다. 저 말 대로면 인류는 문화라는 그릇에 담으려 했던 감성적, 정신적 면면들을 계승-발전시키지 못 한다는 말이 된다. 못 가르치는데 무슨 수로.


이를 반박하기 위해 굳이 역사까지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단어만 봐도 예술가(artist)는 장인(artisan)에서 온 것이 아니던가. 구두를 만들고 그릇을 만들고 쇠를 두드리던 이들로부터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는 '기술'은 버젓이 가르쳐져 왔던 것들이다. 


이런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오늘 리뷰할 못(Mot) 3집 앨범에 '재의 기술(Ashcraft)'이란 타이틀이 붙어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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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사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재의 기술'이란 타이틀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어떤 순간의 경험과 기억-그러니까 재가 된 것-에서 

무언가를 되살려내는 것이 창작 행위(음악 작업)이므로 이에 대한 은유로 붙여진 것이라 한다.


예술(art)이 아니라 기술(craft)이다. Mot 멤버들이 위에 서술한 예술사적 인식을 갖고 있지 못 하다면 나올 수 없는 작명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네이밍은 재밌게도 밴드의 역사를 오롯이 담아내고 있기도 하다.


이번 3집, '재의 기술'은 2007년 2집 앨범 이후 무려 9년 만에, 그것도 혼자 남은 리더가 4명을 새로 영입한 후 내는 앨범이다. 호평을 들었던 전작들과 색이 달라진다 해도 누구 하나 쉽게 불평할 수 없을 세월과 변화일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이번 3집은 전작들에서 부려졌던 '기술'들을 거의 재현해내고 있다. 타이틀곡 '헛되었어'는 1집 타이틀곡 'Cold Blood'의 연장선에 있는 듯 하면서도 보다 풍성하다. 수록곡 '당신의 절망을 바라는 나에게'는 1집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를 영리하게 변주한다. 이렇듯 전작들과의 연결성이 좋아서 중심점인 리더 이이언이 혼자 다 해먹었는가 싶을 정도지만 그런 것도 아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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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앨범의 트랙리스트 

미리 듣기 하실 수 있게 멜론 링크라도 걸어드린다.


본 기레기의 날카로운 분석력으로 보건데, 대한민국 대중 음악은 크게 세 부류의 음악이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듯하다. 


① 졸라 돈 독 오른 음악 

② 졸라 어깨 힘 들어간 음악 

③ 걍 다 귀찮으니 똘끼 발산하며 놀자는 음악 


①이 예술가라는 개념으로 발전하기 전, 장인의 기능적 면에 집중한 나머지 쓰레기든 뭐든 찍어내 파는 쪽이라면 ②는 지 태생을 망각한 채 사람들이 도저히 못 쓸 물건을 만들고는 왜 안 사냐고 징징 거리는 쪽이겠고 ③은 걍 또라이들 되겠다. 


그런데 Mot의 전작들, 즉 1집과 2집의 음악들은 위 세력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었다. 상업적인 냄새는 인디 음반인 만큼 자연스레 옅었을 거라 쳐도 깔리는 전자음에 '아 이거 난해한 음악이려나' 싶으면 이어서 낮고 편안한 곡을 들려주는 식의 기술을 구사했다. 하지만 그 편안함은 대부분 우울이라는 정서를 끈질기게 파고 있었기에 만드는 사람의 편안함에 연착한 결과물은 아니란 느낌이었다. (실제로 리더 이이언은 솔로앨범에 4년이라는 시간을 들이기도 했다고 한다.) 


리더 이이언의 솔로 앨범 타이틀곡 Bulletproof


'재의 기술'은 이런 계승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 비결(?)까지 담고 있다는 타이틀이란 것이다. (계산된 바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쉽게 말해 이번 앨범이 리더 이이언이 새 멤버들에게 "왕년에 말이야, Mot은 이런 밴드였어"라고 판타지 소설을 써주면 다 "우와"하고 각자 '으쌰으쌰 화이팅'하는 식이 아닌, 구체적인 작업 방법을 공유하는 식으로 만들어졌을 거라 상상해볼 수 있는 결과물로 나왔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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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 이이언(가운데)을 중심으로 새로 영입된 4명의 멤버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하윤(건반), 송인섭(베이스), 조남열(드럼), 유웅렬(기타)


당연히 이런 식으로 공유되는 정서는 보다 구체적이고 뚜렷해진다. 창작자의 재산은 어느 날 문득 치밀어오르는 신비한 어떤 것이 아니라 이렇게 구체적으로 연마된 감정인 것이다. 어깨 힘들어간 부류의 인식과 달리 '기술'에 대한 이해가 역설적으로 '예술(음악)'을 예술답게 한다. 


이런 역설(?)은 Mot의 가사들이 지향하는 바에서도 드러난다. Mot의 가사는 이런 식이다. 


그 자리에 앉아 낙서를 했지 

종이 위에 순서 없어 흘린 말들이...... 

네가 되는 것을 보았지 

(1집, '카페인')


가사의 완성도가 퇴행되다 못해 고려시대 '얄리얄리 얄라셩' 마냥 정체불명의 훅만 남발하던 게 몇 해 전 가요의 트렌드였음을 고려해보자. (몇 해 전이라 했지만 최근이라 해도 그리 달라지진 않았다는 느낌이다. 서정적이라는 여자친구 '시간을 달려서' 가사도 우린 아직 어리다느니, 만나지 못한다느니, 어른이 될 수 있다면, 내 마음 전할 거라느니 하다가도 끝에 가서는 변치 말기로 약속하자, 그 때도 지금처럼 웃어줘라, 중구난방 아니던가. 아니, 씨바, 지금 같길 바라면 시간은 왜 달리는 건데?) 


그리고 팬덤 내에서는 아직도 전위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요즘 서태지 곡들의 난해하기 짝이 없는 가사를 떠올려보자. 


자, Mot의 가사가 어느 지점에 있는지 보이시는가? 미사여구가 많지도 않고 무의미하지도 난해하지도 않다. 멤버가 대폭 바뀌고 세월이 흐른 3집에서도 Mot은 이런 화법을 유지해냈다. 


난 온종일 구름을 만들고 

조금씩 하늘이 흐려지는 것을 봤어 

난 온종일 잠 속을 헤엄쳐 다니며 

흩어진 꿈들을 모으네 

(3집, 'Trivia')



단언컨데 이런 가사 형태(전달력 있고 충분히 미적이나 함축성도 포기하지 않은)는 작사라는 작업이 '본래' 지향하던 바였을 것이다. 


1, 2집을 만들었을 당시 Mot 멤버들이 가졌던 모티브는 이미 '재'와 같은 상 작사와 음악색 등, Mot만의 특색을 만들어내던 '기술'을 잇는 일은 당 앨범의 가장 큰 존재 목적이었겠다. ①도 되기 싫고 ②도 되기 싫고 ③도 되기 싫다는 단순한 욕망 이전에 Mot이 해왔던 것이 바로, 음악 작업, 그 본질에 다가서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당 앨범, 들을수록 파볼수록 좋다. 딴지 크리티크 부활 이래 최초로 3등급의 벽을 깨고 무지개 외계인 마크를 박아드리기 충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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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딴지 크리티크는 문화 콘텐츠 전반을

우주적 관점으로 디벼본 후

외계 생명체의 감각 기관에 어찌 작용할 것인가,

연구해보는 코너로 최고 1등급부터 최저 5등급까지의 

리액숀 외계인이 대기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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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다른 별의 관점을 갖고 있다'

이런 분들 졸라 환영입니다.




퍼그맨

트위터 : @ddanzipugman

Profile
딴지그룹 마켓팀원. 편집부 일도 하고 왔다갔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