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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7. 09. 화요일

정치부장 물뚝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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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정의롭지 못하다.


세상이 정의롭지 못하다고 지적하는 사람들 역시 백 퍼센트 순수하게 정의롭지는 못하다. 이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기본적인 모습이며,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이유로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정의롭게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정성을 폄훼하거나 무력화 시켜서는 안되는 법이다.


물론 이러한 현실은, 세상이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세상이 좀 더 정의롭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좋은 무기가 된다. 자신의 불의를 지적하는 사람들에게서 티끌 만한 불의를 찾아낸 뒤, "봐라, 이 자도 역시 불의하다. 누가 누구를 단죄한단 말인가?" 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두를 수 있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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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민주당 박계동 의원은 노태우의 천문학적인 비자금 문제를 폭로했다. 약 5천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했으며 그 중 1,700억 정도가 시중 수십 개의 은행 계좌에 분산 예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폭로한 것이다.


노태우는 이 사실을 스스로 인정했다. 문제는 그 돈이 어디로 갔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과연 정권이 부당하게 조성한 비자금을 어디에 썼는가? 십중팔구는 1992년의 대선에서 그 돈이 활용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었다. 그리고 1992년 대선의 당선자는 김영삼이었다. 낙선자는 김대중.


대중의 관심사는 과연 노태우가 김영삼에게 얼마의 돈을 주었는가, 김영삼은 그 돈을 받아 어디에 썼는가 하는 부분이었지만, 정부 여당과 언론의 시선은 전혀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 돈 중에 상당 부분이 김대중에게로 갔다는 의혹이 연일 제기되었다. 오백억이 갔네, 천억이 갔네 하는 의혹이 연일 제기되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김대중에게 천억이 갔다고 해도 그 곱절 이상의 돈이 김영삼에게 갔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뺄셈조차 하지 않았다. 김대중이 노태우의 돈을 받았다는 가정만으로도 하늘을 찌를만한 배신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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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김대중은 자신이 노태우에게 돈을 받았음을 시인하게 된다. 무려 20억원. 노태우 또한 연일 이어지는 질문공세에도 김대중에게는 20억 밖에 안 줬다고 암암리에 시인을 한다. 이것만으로도 여론은 김대중 개새끼로 집중되고 말았다. 무려 5천억 중에 겨우 20억, 아무런 조건 없이 강제로 떠맡긴 20억으로 김대중은 파렴치한 정치꾼 대접을 받고 말았다. 물론 몇년 뒤 김대중은 대통령에 당선되긴 하지만, 당시 김대중에게 쏟아졌던 비난 공세는 상상을 초월했다.


근거 없는 돈 20억을 현직 대통령에게서 받은 일은 당연히 심각한 문제이다. 처벌 받아야 하는 범죄이며, 준 자나 받은 자나 실정법을 위반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대선 한 판에 수천억, 많게는 조 단위의 돈이 오가고, 그 대부분이 불법 정치자금이었던 당시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노태우가 김대중에게 지급한 20억은 그저 체면치레용 푼돈이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이 모든 똥물을 뒤집어 썼다. 단지 자기 입으로 고백했기 때문이었을까. 김대중에게 쏟아진 부당한 비난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는 사이에 밝혀져야 했던 노태우와 김영삼의 부당한 커넥션은 어느새 대중에게서 잊혀지고 말았다. 수천억이 오갔을 것이 틀림없는 정황도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생각해 보시라. 한 점 티끌도 없이 순수했어야 하는 야당 지도자 김대중이 했던 실수가 더 큰일이었을까? 아니면 전직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에게 수천억의 정치자금을 불법적으로 지급한 사실과 그 사실이 소리 소문 없이 묻혀져 버린 일이 더 큰 일이었을까?


우리 사회의 입장에서 어느 쪽을 밝히고 누구를 비난했어야 하는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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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민주당에서 대선 경선이 시작되었을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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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분의 얘길 꺼내서 좀 그렇긴 하지만, 당시 경선에 참여했던 故 김근태 고문은 2000년 민주당 당 최고위원 선출 대회에서 당시 민주당의 최고 실세였던 권노갑 최고위원에게 2,000만원 정도의 자금을 지원받았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돌아가신 김근태 고문이라면 믿어줘야 한다. 김근태 고문의 뜻은 심지어 민주당 내부의 선거에서조차 정치자금이 오가고 있으며, 이러한 잘못된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그 혜택을 본 자신 같은 사람들이 먼저 나서서 사건을 밝히고, 반성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뜻에서 한 행동이라는 점을 말이다.


하지만, 이 고백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파문을 일으키고 만다. 당 외부, 언론과 한나라당은 연일 민주당을 손가락질하며 '부정한 돈 정치로 얼룩진 민주당의 구태성'을 폭로하고 비난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당 내부에서 김근태는 '다 같이 돈 받아 먹고 혼자 깨끗하려고 튀는 행동을 한 사람'으로 찍혀 비난을 받아야 했다. 이래저래 민주당의 지지도는 폭락하고, 한나라당은 신나서 떠들고, 검찰은 수사를 하네 마네 하면서 분위기를 잡고, 조중동은 연일 1면 탑 기사로 이 사건을 각색 보도했다.


과연 김근태는 잘한 것인가 잘못 한 것인가? 이천만 원이 되었건 삼백오십 원이 되었건 부당한 돈을 받은 일은 잘못한 일이다. 그러나 그걸 고백하고, 이를 계기로 정치 문화를 업그레이드 하자고 호소한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대중은 김근태 만 죽일놈을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은 뭘까? 튀면 죽는다? 뭔가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악습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잘못을 먼저 고백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그러나 그렇게 잘못을 지적하거나 고백하면 죽일 놈이 된다. 정치인의 경우 심하면 정치 생명이 끝장나 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과거의 악습을 타파할 수 있는 방법은 뭐란 말인가? 거대한 잘못과 작은 잘못이 있을 때, 작은 잘못에 흥분해서 떠들다가 거대한 잘못을 묵인하고 넘어가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누가 잘못한 것인가? 거대한 잘못을 저지른 놈? 작은 잘못을 고백하고 시인한 놈? 작은 잘못에만 흥분해서 뭐가 중요한 건지 앞 뒤도 못 가리고 설치는 장삼이사? 집에서 쉬고 있던 배제대학교 학생?


쉬운 일이 아니다.


4

<미디어 워치>라는 인터넷 언론이 있고, 스켑티컬 레프트라는 작은 게시판 커뮤니티 사이트가 있었다. <미디어 워치>의 대표는 변희재이고, 스켑티컬 레프트는 말러리안이라는 필명을 쓰는 사람이 이끌고 있었다.


이 둘이 손을 잡고 '연구진실성 검증센터 : Center for Scientific Integrity, CSI)' 라는 것을 만들었다. 무려 CSI... 우리 사회에 불어닥친 미드의 유행을 실감케 해 주는 약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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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자신들이 친노종북으로 규정한 인사들이 과거에 작성했던 논문을 뒤져 표절 여부를 추적하는 것이 주 임무이다. 스스로 그렇게 규정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타겟에 오른 인물들이 김미화, 백지연, 손석희 등의 연예인, 조국, 진중권 등의 학자,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등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의 논문 작성 수준은 매우 열악하기 그지없다. 열악할 뿐더러 후진적이다. 학부 논문이야 뭐 학기 중에 쓰는 리포트 수준에서 별로 나을 것이 없고(그래서 다수의 이과 계열에서는 아예 실험 보고서로 학사논문을 대치하기도 한다), 대학원의 석사 학위 논문이라고 해 봐야 인용할 가치도 없는 보고서 수준의 것들이 대부분이다.


각 학교별 연구윤리위원회도 대부분 유명무실한 상태이며, 교수들의 연구 실적을 심사하는 기관들도 대부분 내부자 논리로 움직이면서 그들 만의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 실정이다.


하물며, 표절 문제에 있어서는 더 이상 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나라가 국제적인 지적 소유권 문제를 받아들여 시스템을 정비하기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서구적인 학문을 연구하는 시스템 자체가 아직 채 정비 되기도 전인 사회라는 얘기이다.


그 와중에도 국제적인 수준의 연구를 수행하고 훌륭한 논문들을 써서 세계에 선보이는 몇몇 선구적인 학자들은 그야말로 초인적인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사회에서 유명세를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십년, 혹은 그 이상의 과거에 썼던 논문들을 살펴보고, 그 논문에 2013년 현재의 기준을 들이대면 무사통과할 수 있는 논문은 거의 없다. 1% 미만일 것으로 단언할 수 있다.


변희재 대표의 CSI는 우리 사회의 이런 헛점에 착안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마음에 안드는 놈을 공격하는 데 있어 그의 과거 논문을 뒤져보면 거의 백프로 헛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이 약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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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은 이해하기도 힘든 인용과 재인용의 규칙, 참고문헌의 적용 규칙, 문장을 따 올 때에 몇 단어 이상의 문자열이 동일하면 안 된다는 규칙, 제대로 된 논문 작성시 필수적으로 필요한 이런 복잡한 규칙들 중에 하나라도 지키지 않으면 논문은 통과될 수 없다. 물론 현재 시점의 규칙들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 대학 사회에서는 논문 작성법 조차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다. 외국 유명 대학들이 한 학기 정도의 커리큘럼을 투입해서 논문 작성법을 가르치고 있는 현실과 대비한다면 우리는 아직도 연구 후진국가라는 뜻이다.


그러니, 변희재 대표에게 찍힌 소위 '친노종북' 계통의 유명인사들은 이제 자신들의 논문에 대해 변희재 대표가 관심 갖지 말아주기만을 기대할 수 밖에 없다. 물론, 해당 논문을 심사한 학교의 연구윤리위원회에서 표절이 아니라는 판정을 내려주면 된다. 그러나 그런 판정 역시 불가능하다. 해당 학교는 자신들의 과거 문제점을 숨기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결국 대부분의 판결은 '현재의 기준에 비추어 이 논문은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과거의 현실을 감안할 때 용납 가능한 수준이다' 라는 식의 판결 밖에 내릴 수가 없다.


그러면 CSI는 입을 모아서 논문이 표절이라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철회하지 않겠다는 '정치적인 타협에 의한 결정'을 내렸다고 비난할 것이 자명하다. 안 봐도 비디오 라는 얘기는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진 문장이다.


CSI가 참 좋은 소재를 잡긴 했다. 그 창의성은 인정해 줄 만 하다. 그리고 그런 노력들이 가져오게 될 긍정적인 효과도 분명히 있다. 우리 사회의 후진적인 연구관행, 논문 작성 관행들에 경종을 울려 제대로 된 논문 작성 문화 정착을 앞당기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을 지적하고 있는 글들도 벌써 꽤 눈에 띄고 있다.


그러나 그 CSI의 활동이 사회적으로 주게 될 영향은 매우 부정적이다. 애초에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시작된 것이 첫 번째 문제이다. 논문 검증의 대상 자체를 자신들과 다른 정치적 스탠스를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 유명인들로 특정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소위 저렴하고도 선정적으로 붙여진 '저격'이라는 용어로 잘 표현될 수 있다. 맘에 안드는 놈을 쏴서 떨어뜨리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이런 문제는 사실 매우 부정적인 일임에도 불구하고 비난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여태껏 사회 주류층의 이런 '구린 구석'을 까발려서 정치적으로 비난하는 행위가 주로 야당측, 혹은 진보계열이 택해왔던 전략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이런 행위가 일종의 '자경단' 역할이라는 점이다. 변희재 대표의 CSI는 사회적으로 아무런 권한이 없다. 물론 사회의 어두운 구석은 누구나 까발리고 고발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거기에 정치적 의도가 결합되고 나아가 현존하는 정치세력의 숨은 조력이 끼어들게 된다면, 이런 행위는 음험한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자경단이 뜨면 정상적인 논의는 무력화 된다.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저격'이 가능해진 상황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힘든 사람들의 자유로운 의견 개진은 불가능해진다. 이런 자경단 놀이에 맛을 들이게 되면 이는 조만간 백색 테러로 발전하게 되고, 이런 악순환의 끝은 파시즘으로 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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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이런 행동은 언제나 미러 이미지를 낳게 된다. CSI의 논문 자경단 놀이가 아직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해서 그렇지, 어느 순간 사회적인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하면, 반대편 그룹이 형성될 것이다. 아마도 그 반대편 CSI에서는 여당 정치인들과 고위 공무원들의 논문을 파헤치기 시작할 것이 분명하다.


새누리당 중진급 의원들 거의 대부분이 돈 주고 사온 학위 정도는 한두 개씩 기본 아이템으로 장착하고 있다. 국장급 이상의 고위 공무원들 역시 적절한 시기가 되면 해외로 연수가서 유명 대학 박사 학위 한두 개 정도는 다 따고 온다. 그들의 논문을 뒤져보면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까? 문대성의 문구점 수준 논문 이상으로 엉터리 논문이 쏟아져 나오게 될 것이다.


그 여파로 고위 공무원들이 대거 물러나고, 새누리당 의원들이 무력화 되면 뭐 나쁜 일만은 아니겠지만 그런 식으로 서로 폭로전이 오가게 되면 결국 양쪽 모두 이 사건들을 다 덮게 되고, 사회는 다시 후진하게 되기 마련이다. 즉, 무의미한 싸움으로 마무리 될 것이라는 말이다.


결국 변희재 대표가 주도하는 CSI 활동은 별다른 효과도 없이 학술 문화의 개선도 이루지 못하고 그저 관련자들의 유명세를 위한 마케팅 도구로 활용되는 것으로 마무리 될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그 마케팅 마저도 실패하게 될 공산이 크다. 몇몇 대상자들이 작심하고 건 소송의 여파로 신용불량자로 전락해서 거리에 나앉게 될 가능성이 더 높기도 하니까 말이다.


참고로 변대표의 언행을 살펴보면, 논문 표절 관련 소송의 핵심이 표절 여부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소송 걸겠다고 공언을 한 진중권 교수의 경우에도 소송의 핵심은 명예훼손과 모욕이지 논문의 표절여부가 아니라는 점 말이다.


상식적으로 보자면, 진교수의 논문이 표절이 확실하다 하더라도 변희재 대표가 그간 진교수에게 퍼부은 독설과 악담으로 인해 거액의 배상금을 물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부디 착각하지 마시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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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CSI에서 지적한 표절 논문의 저자들 중, 전 경찰대 교수 표창원씨가 몇몇 부분에서 규정에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며 자인하고 나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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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표교수가 보여준 행동은 매우 고결한 수준이다. 자신이 자신의 논문에 문제가 없음을 지나치게 과신하고 오만했었다는 반성이 우선되고 있다. 변대표의 행위가 정치적 입장에 의해 왜곡 되었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 점에 대해서 반성을 했다. 이는 칭찬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스스로 논문 작성 시 지켜야할 인용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점을 발견했다고 인정했다. 결국 표교수가 인정한 것 역시 인용규칙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또한 자신의 논문에서 발견된 문제점들을 모두 모아서 학교측에 수정 요청을 할 것이며, 자신이 가르쳤던 학생들에게까지 이 논문의 문제점을 알리겠다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 행동이 가져오게 될 정치적인 유발효과에 대해서는 별다른 고려가 없는 걸로 보인다. 단적으로 말해서, 이런 표교수의 양심적인 고백은 김대중과 김근태의 고백과 유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논문 작성법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은 CSI가 제기하는 문제점을 읽어봐도 이게 표절인지 아닌지 구분할 방법이 없다. 기본적으로는 CSI의 구성원들 역시 이 논문이 표절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전문성은 갖추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기계적으로 동일한 문장을 찾아내고, 인용 규칙 준수 여부를 확인한다 해서 논문의 표절 여부가 포괄적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해당 학문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논의를 해서, 당시의 학문적 시대상황을 고려하고, 논문 작성의 환경을 검토한 후에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이 옳다는 얘기이다. 애매한 표절 문제를 가리는 최종적인 수순은 그렇게 되는 것 뿐이다.


심지어 표교수 본인조차 자신의 논문이 몇몇 규칙을 어겼음은 인정할 수 있지만, 그것이 표절이라는 판정을 내릴 권한은 없을 수도 있다. 그것은 원칙적으로 학교의 권한이다.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 내 논문에 문제가 있다는(비록 소소한 규칙위반이지만) 인정을 하고 나서게 되면 대중에게는 '표창원의 논문은 표절'이라는 각인이 생기게 된다.


동시에 그 표절을 가려낸 CSI의 공신력은 상승하게 되고, CSI가 표절로 지적한 그외의 다른 사람들의 논문에 대해서도 '아마 저들의 논문도 표절일거야'라는 심증을 강화해 주는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특히나 자신의 논문이 표절이 아님을 반론하고, 서울대 연구윤리위원회의 판단을 기다리겠다고 주장하고 있는 진중권 교수 역시 표창원 교수에 대비되면서, 자신의 논문이 표절논문임이 밝혀졌음에도 개기고 있는 파렴치한 학자로 대중에게 각인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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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김근태가 양심적인 고백을 하자, 당시 민주당의 모든 정치인들이 몽땅 돈질 정치에 물든 썩어빠진 야당 정치인으로 간주되고,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게 되는 효과와 유사한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하더라도 표교수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물어서도 안 된다. 당시 민주당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하더라도 김근태를 비난할 수 없는 것과 동일한 메카니즘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건 진행의 메카니즘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는 점만은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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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혼란스럽고 복잡한 얘기이기는 하다. 결론적으로 도대체 누가 나쁜놈이냐고 내게 묻는다 해도 나 또한 답이 없다.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현상들이며, 심지어 변희재 대표 같은 특이한 사고와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 소속된 일원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라고 권할 뿐이다.


또한, 이런 복잡한 메커니즘도 이해하지 못하고 우~ 몰려 다니면서 변희재 나쁜 놈~ 을 외치다가 어느날 갑자기 변땅크 영웅~ 을 외치는 대중들의 무지를 탓할 생각도 없다. 그거 무지도 아닐 뿐더러 어쩔 수 없는 사회적 구조에 의한 행동일 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 사회에서 각자의 역할이 있을 뿐이며, 그 모든 사람들이 사회적 현상의 시작과 끝을 세세하게 이해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일단 그들에게는 그럴 시간도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특히 이상적인 상황이 아닌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언제나 이렇게 불의와 정의를 잇는 직선 상의 어딘가 중간쯤에 존재하는 애매하고 아날로그적인 일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 논문 표절을 둘러싼 사건 역시 이게 과연 정의로운 일인지 불의한 일인지도 구분하기도 힘들 뿐더러, 한 때의 해프닝으로 끝날지, 아니면 어떤 사회적인 의미를 갖는 현상으로 발전할 지 그것도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다른 곳에 있다. 어떤 일을 접했을 때, 순간적으로 내 편, 네 편을 갈라 정치적 논리로 대응하지 말고, 이 현상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어떤 면에 의해 발생한 일인가를 생각해 보고, 딱 일그람만 더 신중하게 판단하고, 어느 정도 판단이 선 연후에 칭송과 비난의 스탠스를 결정하라는,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딱 일그람만 더 신중해 지자는 것이다.


우리가 뭘 그렇게 잘할 도리는 없다. 단지, 그렇게 조금만 더 신중하게 판단하고 행동에 나서게 될 때, 우리가 뭔가를 심각하게 망쳐놓는 것은 피할 수 있지 않겠냐는 얘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진리는 얼음짱처럼 차갑거나 팔팔 끓는물 처럼 뜨거운 곳에 있지 않다. 이렇게 뜨뜻미지근한 속에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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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조 <설일> 中






뱀발 : 난 논문 쓴게 없어서 행복하다.






물뚝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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