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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 스포츠카에 선글라스낀 그 남자, 듬직한 어깨너머로 주차권을 입에 물고 구리빛으로 그을러진 단단한 팔뚝은 조수석 머리를 강하게 부여잡고 한 손으로 주차구역에 네모반듯 한큐에 정확히 차를 후진으로 꽂아놓고 사뿐히 차에서 내리는 20대 청년....


그는 마포 갈비 발렛파킹 3년 차 김 씨 청년이다. 드라마 속 재벌 3세가 아닌 다음에야 스포츠카를 탈 수 있는 여유는 젊음의 열정과 섹시함이 사그러드는 인생의 후반기에나 생긴다. 하지만 나이가 많아진다는 건 몸을 사리게 되는 이유를 가지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쌓은 돈과 사회적 지위, 가족 등 잃을 게 많을수록 RPM은 낮아질 수밖에 없고, 타이어가 찢어질 듯 달려야 하는 야생마는 이내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 붕붕이'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스포츠카의 역설이다.


스포츠카든 돈이든 결혼이든 결국은 타이밍이다. 꽃같은 나이에 스포츠카를 타며 죽도록 젊음을 불태워야 하는 청년을 위해 금융상품(리스, 할부 등)이 마련돼 있고, 배워야 할 나이에 공부하기 위해 학자금 대출이 있다. 즉, 금융 본연의 역할은 지출 타이밍을 조절해주는 것이다. 돈을 차곡차고 모아 절제해서 사고 싶은 것을 사는 사람들 눈에는 빚을 내서 물건을 사는 것이 흡사 배짱이의 삶처럼 위험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필요할 때 쓰고 천천히 벌어서 갚도록 하는 것이 금융의 기능이고, 이러한 투자와 소비활동을 적절히 조절시켜주는 순기능은 수백 년간 번성해온 현대 자본주의의 근간이 되었다.


작게는 신용카드에서 크게는 부동산을 담보로 우리는 돈의 타이밍을 맞추는 금융의 도움을 받는다. 허나, 빚을 진다는 것은 '채주의 종'이 된다는 표현이 있을 만큼 무시무시한 것임에는 분명하다. 특히, 신용사회라고 불리우는 현대에 신용이란 것은 중세시대의 계급이나 신분의 현대적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만큼 사람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삶을 조정하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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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를 감금하여 근육이 괴사할 때까지 폭행하는 만행을 벌인 '인분교수'가 피해자를 도망가지 못하게 옭아맨 것은 굵은 쇠사슬이 아닌 1억3천만 원짜리 공증각서 (빚)였다.


 

필자는 한 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허니버터칩을 구하기 위해 편의점 알바들에게 향응을 제공하고 로비를 펼친 적이 있다(사실 그래 봐야 초코렛 하나였지만..). 품절이라고는 하지만 단골들을 위해 의례히 창고에 몇 봉지 쟁겨둔 과자를 꺼내 달라고 하기 위해 지성인의 존엄(?)을 팔아넘긴 것이다. 치열한 경쟁을 비집고 득템한 허니버터칩의 프랑스산 고메버터가 입안에서 달짝지근 녹아드는 그 맛은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당시 1500원짜리 허니버터칩은 어둠의 통로를 통해 한 봉지에 7000원 이상에 팔리기도 했다. 해외 밀수품도 아닌데, 음성적으로 유통이 되기도 했던 매우 독특한 과자였다. 만약 정식으로 유통되던 1500원짜리 허니버터칩을 내 옆에 있는 누군가는 단지 500원에 사 가거나, 나만 5000원에 사가라고 한다면 어떨까?


아마 좀전의 스포츠카를 붕붕이로 타고 다니는 백발 노인마저 아드레날린이 폭발하여 노발대발할 것이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는 것쯤은 알지만, 그래도 공산품은 누구에게나 같은 가격에 제공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동네 슈퍼와 이마트의 가격이 다를 순 있지만, 적어도 같은 가게에 들어온 고객에게 우리는 남녀노소 사회적 지위를 막론하고 가격을 차별하지는 않는다(나는 올레멤버쉽으로 GS25에서 늘 할인받는데.. 라는 분은 조금만 인내심을 가지고 필자의 얘기를 마저 들어주시라).


그런데, 생산자에서 소비자에게로 재화가 유통되면서 똑같은 상품에 대해 누가 사느냐에 따라서 가격을 차별하는 곳이 있는데, 바로 금융이다. 금융은 너무나 거대한 국가권력과 같은 무게감이 있어서 그 본연의 비지니스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는 일이 잘 없다. 주택담보 대출 금리는 현재 2.5~3.5% 수준인데 반해 카드론 대출금리는 20%가 넘어가고, 대부업체 금리는 한때 50%를 훌쩍 넘어가기도 했다. 돈이라고 하는 재화를 금융상품으로 유통시키면서 소비자에게 파는 가격이 10배씩 차이가 나더라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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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미생의 장그래 씨와 최 전무님이 2000만 원짜리 쏘나타를 빌려 탄다고 생각을 해보자. 요즘 신동엽 부장이 열심히 광고하고 있는 차량 렌탈가격은 월 45만 원 정도이다. 장그래(저 신용) 씨나 최 전무(고 신용)님 모두 가격은 같다. 그런데 이 2000만 원을 현물(쏘나타)가 아닌 현금으로 빌린다면 어떻게 될까? 최 전무는 강남 아파트를 담보로 잡히고 월 이자는 5만 원만 내면 되지만, 담보가 없는 장그래는 카드론으로 이자를 월 40만 원씩 내야 한다. 한국은행에서 똑같이 찍어낸 돈을 가지고 누구한테는 5만 원에 빌려주고 누구한테는 40만 원을 받고 빌려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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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금액을 빌리더라도, 다음 달로 넘어가는 통행료 (이자)는 사람마다 다르다. 보통은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은 통행료를 지불한다.



왜 사람을 차별하냐고 물어본다면 장그래 씨에게 돈 빌려줬다가는 돈 떼일 위험이 크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지당한 얘기다.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에서는 대출자가 디폴트(원리금 상환을 못 하는 경우) 났을 때, 원금을 떼이는 게 가장 큰 리스크다. 원금손실이 생겨 은행 대출이 부실화될 경우, 최악의 경우에는 은행이 망하게 되고 은행이 굴러갈 수 있도록 돈을 맡겼던 예금자들도 돈을 다 날리게 되기 때문이다(1인당 5000만 원까지는 보호됨). 은행의 신뢰는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너도나도 은행에서 돈을 빼가게 되고(뱅크런) 국가 경제가 휘청거릴 수도 있기 때문에 은행과 같은 금융기관에서는 자산 건전성을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원금손실에 대한 리스크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은행은 돈을 안 빌려주려고 한다. 자연히 돈이 필요 없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려는 곳은 많아지고, 돈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에게는 돈을 빌려주려는 곳이 적어지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자금의 수요와 공급을 적절하게 조절해야 하는 금융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수급 불균형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 "가격"이다. 즉, 이상적으로는 돈을 빌리려는 수요가 많으면 돈값이 비싸지고 수요가 적으면 돈값이 싸지기 때문에 돈에 대한 수요와 공급은 자연스럽게 조절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뱅킹 또는 금융의 현실이 수요와 공급에 의한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시장일까? 돈을 빌려주는 은행이 됐든 돈을 빌려 가는 사람이 됐든 어느 한쪽에서 일방적인 손해나 이익을 보고 있지는 않은지, 공정한 FAIR 게임인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의외의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지난 40년간 폭주해온 한국 경제가 2016년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기준금리 1.25%의 금융 현실에서는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경험을 못 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질 것이고, 우리는 앞으로 많은 것들을 원점에서부터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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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에 따르면, 이자는 8배 차이가 나고, 이 돈을 벌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시간은 최고 32배의 차이가 난다. 굳이 극단적인 차이를 나타내는 지불 시간까지 안 가더라도, 장그래 씨의 두 달 치 이자 금액은 최 전무의 1년 치 이자보다도 많다. 약속한 이자를 몇 달밖에 못 내고 엎어져버려... 사회에서는 신용이 불량하다고 낙인 찍힌 사람이 그 몇 달 동안 낸 이자가 실제로는 '신용이 매우 우수한' 사람으로 칭송받는 사람이 2년 동안 낸 이자보다 더 많다는 불편한 진실은 돈값(이자)에 대한 근본적인 실체를 궁금케 한다.


가령 목적지까지 가는 길에 5번의 통행료를 내야 하는 고속도로가 있다고 치자. A라는 사람은 1회 통행료가 200원이어서 총 1000원을 내고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는데, B라는 사람은 1회에 500원씩 내야 해서 목적지까지 가지도 못하고 중도탈락을 해버렸고 사회에서는 퇴출을 당한다. 실제 우리 사회는 애당초 짐이 무거웠든 가벼웠든 일단 약속이행을 못 해 디폴트(default)가 발생하면, 그동안 낸 이자가 많든 적든 일정 시간(약 3개월)이 지나면 신용불량으로 낙인 찍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없도록 퇴출시켜 버린다(참고로 우리나라 신용불량자 수는 한 때 경제활동인구 8명 중 한 명, 370만 명에 육박했었고 현재도 100만 명 정도가 된다).


신용은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지 돈을 많이 내는 것과는 무관하다는 의견이 우세하겠지만, 애당초 출발선이 다른 상황에서 약속을 잘 지킨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서는 한번 생각해봄 직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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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등함(equality)은 정의로움(justice)과 같지 않다.




어쨋든 그럼 금융시장에서는 애당초 왜 이렇게 돈값(이자)에 많은 차이가 나고 사람을 대놓고 차별하는 것일까?


돈값을 결정하는 몇 가지 요소를 한번 생각해보자.



1. 엎어질 확률 (디폴트 가능성)


이자는 결국 돈 떼일 위험이 얼마인지로 귀결된다. 즉, 거슬러 올라가면 돈을 빌려 간 사람이 디폴트에 빠질 가능성과, 그 경우 얼마의 손해를 보는지의 문제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NICE나 KCB와 같은 신용정보회사(CB)들이 눈 시뻘겋게 뜨고 돈 떼일 위험에 대해 사람별로 점수도 매기고 등급을 미리 매겨놓는다. 1~10단계까지 우리의 신용은 투뿔 한우 등급처럼 매겨져 있고,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고 있다. 사람이 돈이 궁해지고 위험해질 때 나타나는 일련의 행동들을 나름 빅데이터로 오랜 시간 연구해서 기가 막히게 알아맞힌다고 한다. 제때 제때 이자를 못 내 연체가 생기거나 카드론이나 현금서비스를 받거나 대출이 많으면 신용등급이 낮아지는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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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자료라서 지금의 상황과 전혀 맞지는 않지만.. 그림이 제일 이뻐서 퍼왔다.



2. 얼마나 돈을 날릴지 (디폴트시 손해액)


신용대출


금융기관에 와서 내 별명이 '김신용이요!'라고 큰 소리 땅땅 치며 돈 빌려 갈 땐 언제고 어느 순간부터 돈 없다고 '배 째라'고 나온다면 큰일이다. 채권자는 이때부터 소위 빚쟁이가 돼서 채무자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채권 추심이라 불리는 빚 독촉이다. 영화에서처럼 깡패들이 나와 채무자를 창피 주거나 위협하고 괴롭히지는 않고 합법적으로 압박한다. 요즘은 추심에 의한 사회적 피해가 공론화되면서 빚쟁이가 함부로 찾아가서 돈 내놔라 드러눕고 실력행사를 했다가는 큰코 다친다. 채무자가 증거를 남겨놨다가 신고한다고 오히려 채권자(추심업체)를 위협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받아야 할 돈이 많다면 법적인 조치를 밟아 은행 통장이나 월급을 압류하고, 최악의 경우 차압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받을수 있는 돈이 있다면 다행. 그렇지 않은 경우 돈을 일부 떼이고 받던지 제2, 제3의 기관에 할인된 가격에 채권을 넘겨야 한다. 데미지가 큰 편.


담보대출


하지만 돈을 빌려줄 때 담보를 잡으면 문제 해결은 훨씬 점잖고 수월해진다. 특히 집과 같은 부동산을 담보로 잡아 놓으면 문제가 발생했을 때 부동산을 경매 처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은행에서 담보를 잡고 건물에 침을 발라 놓을 때에는 빌려준 금액만큼이 아니라 그 금액의 120% 정도를 넉넉하게 채권을 확보해둔다. 경매 진행하는 동안 못 받는 이자까지 미리 고려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경우, 1금융권에서는 집값의 60%(현재는 한시적으로 70%)까지, 2금융권은 70%까지 돈을 빌려준다. 한국의 아파트 평균 낙찰가는 80~90%가 넘어가기 때문에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면 원금을 떼일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그래서 금융기관들은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줄 때 2~3%의 낮은 이자만 받고 빌려줄 수가 있다.



3. 금융기관들의 이자율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우리 금융시장은 1금융과 2금융으로 양분되어 있다. 디폴트가 아예 안 나는 우량고객(1금융)이나 안전한 담보대출을 맡던지 아니면 디폴트 각오를 하고 화끈한 이자를 받는 전략(2금융)을 쓰든지 말이다(참고로 금융기관은 1금융권(시중 은행)과 2금융권(저축은행, 새마을금고, 협동조합 등)으로 나뉘고 대부금융을 3금융 정도로 부르는 것 같다).


1금융권에서는 신용이 좋은 사람을 우대한다. 우량고객은 지점장님이 직접 나와 달달한 커피도 타주면서 이자도 싸게 주고 달력도 하나 더 챙겨주면서 우대해주지만, 신용도가 낮으면 돈을 빌릴 땐 이자를 조금씩 올린다. 이자 더 준다고 아무한테나 돈을 빌려주는 것도 아니다. 은행에서는 일정 등급(예를 들면 1~4등급)까지만 대출을 해주고 그 수준을 넘어서 버리면, 덜컹 아예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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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보니 여기에 있는 1금융권 은행들 말고는 다 2금융권이라 보면 된다고 한다.



이럴 땐 어쩔 수 없이 2금융권을 찾게 된다. 축적해둔 자본이 부족한 젊은 세대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1금융권 은행에서 빌려주는 한도가 아쉬울 때가 있는데 요즘은 DTI라는 것도 있어서 빌린 돈을 갚을 수 있는 소득을 증명하지 못하면 은행 이용은 어렵다. 어쨌든, 조금은 더 느슨한(?) 2금융권으로 발길을 돌리게 되면, 1금융권에만 익숙하던 고객은 곱절로 뛰어오르는 이자 때문에 순간 아찔함을 느낄 수 있다. '우리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 2.8%에 돈을 쓰던 사람이 '너희저축은행'으로 넘어가면 금리가 5~8%가 되는 식이다. 그것도 담보대출이면 양반이고, 신용대출이라면 이자는 4~5%에서 2금융권 신용대출은 최대 20% 중반까지 올라간다.


Because it’s 2017


사실 1금융과 2금융의 구분은 종래의 공급자 위주의 발상에서 나온 개념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기술과 금융의 발전으로 다양한 고객의 needs에 따라 고객 중심으로 금융 서비스도 변화될 수 밖에 없는 것이 시대의 흐름. 최근 들어서는 저금리의 1금융과 고금리의 2금융 사이에 1.5금융이라는 중금리 시장이 들어서고 있다. 기존 2단짜리 시장에 중금리가 추가되면서 이제는 3단, 4단짜리 시장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기존의 금리단층(이자가 뚝 차이남)에 문제를 제기하고 중금리 시장개척을 '돌격 앞으로~' 선봉에서 외쳤던 이들은 P2P (Peer to peer)대출 중개회사들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과연 중금리 시장이 가능할까에 대해 회의가 많았지만, 최근 P2P 대출이 폭풍 성장을 하면서 중금리 시장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K-뱅크와 카카오 뱅크 같은 인터넷뱅크가 나오게 되면서 이제는 1000만 명에 달하는 중신용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잇돌, 사이다 등의 중금리 상품들을 1금융권과 2금융권에서 먼저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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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중간에 들어간 광고가 아니라 예시 이미지입니다.)



그래서 금융의 미래는?


은행은 예전에는 7%에 돈을 빌려주고 예금주들에게 4.5%의 이자를 돌려주면서 중간에 2.5% 정도의 예대차마진을 수입원으로 삼아왔다. 시내 요지에 지점을 열고 빵빵한 에어컨을 돌리고 지점장님이 맥심모카골드를 꺼내오시려면 은행은 돈을 많이 벌어야 했다. 그런데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은행에서는 살을 깎는 노력으로 예대차 마진을 1% 초반까지 떨어뜨리고 있지만, 기준금리가 1.25%까지 떨어지다 보니 예금주가 갖고가는 것(이자 1%초반)보다 은행이 갖고 가는 게 더 많게 되어 버렸다. 예금주들은 자기 돈을 맡아서 불려주는 은행이 자신들보다 더 많은 이익을 받아간다는 데 대해 근본적인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게 된 셈. 이런 식으로 가다간 수백 년간 이어져 온 근대 은행업(뱅킹)이 10년 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지점에 가보면 예전보다 사람이 훨씬 안보인다던지 카드로 계산을 하기 시작하면서 현금 쓸 일이 확연히 줄었다든지의 차원이 아니라 지금의 초저금리가 지속된다면 은행 산업은 매우 빠른 속도로 변할지 모른다.


그러한 변화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중의 하나가 위에서 언급한 P2P대출이다. 기술기반의 플랫폼 회사가 여러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모아서 돈이 필요한 대출자에게 한방에 빌려주는 방식이다. 중간에 불필요한 비용항목이 적다 보니 은행보다 비용적인 경쟁력이 있고 그 혜택을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나 빌리는 사람에게 나눠줄 수 있다. 이렇게 1금융과 2금융의 사이에 1.5금융을 만들게 되면 예금주들은 1% 초반의 이자가 아닌 4~7%로 서너 배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고 돈을 빌리는 사람들은 2금융보다 훨씬 낮은 이자로 금융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마치 우리가 인터넷에서 최저가 물건을 사고 직구매로 거품을 줄여나가듯, 금융도 초저금리 시대에 맞는 적자생존식 돌파구를 찾고 있다.


다만, 금융의 본질은 사실상 규제 비지니스(regulation business)이기 때문에 정부의 의지와 계획에 따라 흘러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금융은 신뢰(credit)의 싸움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돈을 맡길 수 있는 시스템과 실질적인 투자성과로 사람들을 납득시키고 시장의 신뢰를 얼만큼 쌓느냐에 따라 장차 신금융의 입지가 정해질 것이다. 하지만 큰 시대적 흐름은 확연하다. 우리가 은행에 갈 일이 점점 줄어들게 되면서 필연적으로 중간자가 사라진 금융(non-intermediary), 비은행권 금융(non-banking), 비제도권 금융(non-institutionalized)의 부상은 전세계 어디서나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파도를 손바닥으로 가리지 못하듯, 이러한 세계적 금융의 흐름에서 한국만 동떨어져 규제 일변도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두더지 잡기 (튀어나오면 망치로 줘패서 집어넣는 게임) 식으로 언제까지 막거나 외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남성태

브런치 @zip


편집: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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