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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 통의 제보 메일이 도착했다. 친박집회가 열리는 지역에서만 출현하는 기묘한 구매자들이 있다는 것.

 

이미 '애국심 넘치는 일부 매체'에서 촛불집회와 대등하게, 혹은 더 대규모로 다뤄주는 친박집회에 대해 또 주목하는 것이 망설여졌지만, 오직 집회일에만 목격했다는 그네노믹스에 관한 궁금증을 억누를 수는 없었다. 더불어,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탄핵심판 선고를 하루 앞둔 오늘까지. 기-승-전을 지나 결만 남겨둔 이 시점에, 승과 전쯤을 함께했던 친박집회에 대해 한번쯤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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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링크>



그동안 친박집회에서 대부분 피켓과 태극기를 든 사람들만을 주목하고 있었다. 우리는 집회가 열리는 장소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그들은 집회 영향권에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내일이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친박집회. 친박집회 시즌1을 마무리하는 심정으로 제보자 A를 만났다. 이어질 인터뷰의 'A'씨는 12월에서 1월 사이, 친박집회가 있었던 지역에서 의류잡화점을 운영하는 분이면 '인'은 본인이다. 

 




A 제가 도움될 게 있나 모르겠네요. 사실은 인터뷰 하신다고 하지만 너무 무서워서… 가게를 특정하면 무슨 일 생길까봐 겁나는 거죠.

 

‘무슨 일 생길까 겁난다'로 대화를 시작한 A씨. 그에게 집회가 있던 2개월 전에 대해 물었다.

 

A 일단은 집회를 하는 날, 노인분들. 그날 노인분들이 막 많이 들어오셔. 그럼 ‘아 오늘 집회가 있나.’ 하고 생각하게 되고요. 집회하는 날 행진도 하는데. 그럼 어르신들이 싹 들어오세요. 물건을 그냥 보시면 되는데 다 만지고, 착용해봐서 상품 망가지고, 정신이 없잖아요. 한번 확 들어왔다 나가면 저희 문 잠궈요.

 

 평소에 가게에 오는 손님 나이대가 높은 편이에요?

 

A 저희는 인터넷으로 팔아요. 물건은 인터넷으로 많이 나가는데 젊은 분들이 꼭 착용해보고 사고 싶다는 말이 있어서 여기를 쇼룸으로 만들어둔거죠. 아시겠지만 저희 고가 모델은 강남 가면 젊은 사람들이 한 2,3년부터 많이 하고 다녀요. 그러니까 평소엔 젊은 사람이 많이 오죠. 입소문이 나서 젊은 사람이 오는데 어르신들은 잘 안 오시고…

 

 판매 중인 물건 가격대가 어떻게 되나요?

 

A 싼 거는 1~2만 원대, 비싼 건 30만 원대, 정말 비싼 건 80만 원대. 다양해요. 저희가 국내 최초로 수입했던 고가모델이 80만 원대에요.

 

 그분들은 어떤 걸 사가세요?

 

A 일반적으로 한번 오시면 1~2만 원대 상품을 사 가세요.

 

 그런데 그분들이 탄핵반대 집회 나가는 사람들인지는 어떻게 아세요? 특징이랄지, 집회 참가 증거같은 게 있어요?

 

A 그 피켓 들고 오세요. 탄핵 뭐.. 계엄령.. 태극기 옆에 꽂고 신문지랑 같이 들고 오시지.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집회한다고 하면 잠가버린다니까. 집회하면 이쪽으로 행진을 해요. 근데 아기들도 많이 데리고 와요. 할매 할배가. 할매 할배가 돌보는 애기인거 같아. 애들은 애들끼리 모여서 막 가요. 근데 부모가 알고 있을까? 부모가 알면 가만히 있을까? 자기 어머니 아버지가 애를 데리고 이런 데 나온다는 걸. 부모들은 다들 직장에 있겠죠.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그네노믹스와 수상한 손님


 듣기로는 사간 물건을 반품했다고 들었는데 어떤 일이 있었던 거예요?

 

A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오셔갖고 한참 보다가 하나 사세요. 그때 할아버지 그거 택 떼고 착용하시면 반품이 안돼요(라고 했어요). 근데 떼고 가셔 가지고 한 3시간 정도 있다가 이거 작다구. 그래 가지고 아 할아버지 써보셨을 때 작았으면 사질 마셔야죠라고 얘기를 했는데도… 그거 안돼요. 아시잖아요. 그래가지고 환불해드리고. 그때 한참 싸웠어요. 그때 작았으면 택을 왜 떼셨냐고. 그럼 하시는 말씀이 쓰다보니까 아프더라 처음엔 괜찮았는데. 그러니까 노인분들 오시면 답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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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보하실 때 손님 중에 노숙자도 있었다고 하셨는데, 이분은 오셨을 때 어땠어요?

 

A 집회 날 왔는데, 옷은 말끔하게 입었어요. 근데 신발은 운동화를 더러운 걸 신었더라고요. 그리고 선글라스 끼고 비닐을 들었어요.

 

 아 가방이 없고?

 

A 가방은 없어요. 비닐을 들었어. 근데 비닐 안에 뭐가 막 잡다하게 들었어요. 그리고 담배를 피우는데 담배를 피시면서 그 자리에서 끄고 들어오시더라고. 우리 상품 중에 비싼 건 30만 원 넘거든요. 그걸 막 써보시다가 10만 원 짜리를 구매하셨어요, 현금으로. 그러고 나서 택을 (떼겠다고). 착용하고 가시겠대요. 그래서 택을 떼시면 반품이 안됩니다 그랬어요. 그랬는데 택을 떼고 가셨다가, 3-4시간 있다가 커피를 쏟아가지고, 상품에다가. 이거 쏟았으니 반품을 해달라고 한거예요. 근데 저는 그때 마침 없고 우리 직원이 있었는데, 아 제가 사장이 아니어서 못 바꿔드린다고 하니까. 막 사장 새끼 어디 갔냐고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고.

 

판매할 때는 내가 있었고 반품해달라고 할 때는 내가 없었어요. 내가 없으니 생난리를 치다 간거죠. 우리 직원은 어떻게 해드릴 수가 없다고 했고. 그러니 그 다음날 아침에 또 찾아오셨더라고. 반품해달라고. 근데 그때는 노숙자처럼 옷을 입고 오셨어.

 

 아 그 전날 오셨던 그분 옷이 바뀌었어요?

 

A 네 그분이. 집회 날은 멀쩡하게 입고, 신발만 (더러웠는데). 그때는 비닐 들었기 때문에 내가 저 사람이 노숙자인지 아닌지 구분을 못하잖아요. 근데 그다음 날 왔는데 누가 봐도 노숙자인 게 티가 나. 그리고 밤에 집에 안 들어갔구나. 그게 신기한 거죠. 아 저 사람이 저렇게 멀쩡한 옷을 입었다가 그 다음 날은 노숙자 특유의 긴 점퍼를 입고 오는구나. 손목에 때 묻은 그런 거. 그래서 내가 첫날은 그 사람이 노숙자인지 아닌지 고민을 했지만, 두 번째 날은 아 백 프로 노숙자구나 생각을 하게 된거죠.

 

 근데 그 노숙자라고 추정하신 분이 상품 여러 개를 여러 개 사셨다는 분이죠?

 

A 그날 이제 10만 원짜리 모자 사고, 또 싼 거 1,2만 원짜리 몇개랑 해서 13,14만 원 정도 사갔어요. 현금구매로.

 

 여러 개를 다 환불했나요?

 

A 아뇨 비싼 거 하나만.

 

 그분 환불 받았나요? 

 

A 그건 안해준 거죠. 제 생간엔 그런 거 같아요. 반품을 하려고 했는데 그냥은 안된다고 내가 했으니 커피를 쏟은 거지. 여기 판매하다 보면 이상한 사람 참 많아요. 노숙자 말고 동네마다 한분씩 있는 그런 정신이 좀 불안정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도 동원이 되는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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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A 동네에서 이상하게 돌아다니는 사람... 그 지역 보면 구역장 같은 사람들 하나씩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그날만 되면 와서 돈을 쓰려고 하세요. 여기서. 현금을 들고 다니셔.

 

 옷도 좀 달라져 있나요?

 

A 네 옷도 달라져 있어요. 그 아까 노숙자처럼. 그날은 진짜 멀쩡해요. 다음날은 내가 알아보지만 옷 자체가 아예 달라요 그날은. 그래서 아 이게 동원이 되는 거구나 한거에요. 아 이런 사람들도 돈을 버니 어떻게든 창조경제인가 보다 생각했어요.

 

 그럼 많이 오시고, 어쨌든 물건은 많이 사셨나 보네요?

 

A 네네. 그날 노인분들 많이 오세요.

 

 그중에서 환불을 해 달라거나 하는 건..

 

A 거기서 한 두세건 되는 거죠. 그 이후로는 아예 문을 잠근 거고.

 

 그럼 대부분 사면 쓰시긴 하는 거네요.

 

A 네 쓰긴 써요 쓰긴 쓰세요. 그런데 이렇게 와서 규모가 크고 금액이 되고 내가 장사할 맛이 나면 나도 신경 안쓰겠어. 근데 막 와가지고 놀다가 이제 만 원 이만 원짜리 사가셨다가 작다고 반품하고 그러니까 짜증이 나는 거죠. 문 열어보고. 뭐 별거 다 물어요. 그 피켓 들고 와가지고. 내가 모자를 좋아하는데 모자 어디서 고치냐. 이거 고쳐달라...

 

 말동무 찾는 느낌이네요.

 

A 네네 말동무. 그런게 많으니까 못 들어오게 잠그는거죠. 안팔아도 돼요. 여기는 쇼룸이니까. 인터넷이 주요 판매책이니까 사실 한분 들어와서 3-40분씩 잡아먹으면 우린 하루가 짜증나요.

 

 보통 와서 한 시간 정도 계세요?

 

A 네. 놀다 가시는 거예요. 말 그대로 놀다가. 그럼 응대를 안해드릴 수도 없고. 전 원래 사든 안 사든 모든 사람한테 친절한 스타일이라. 근데 친절하니까 더 좋아하시지. 더 오래 계시지.

 

요즘 사업하는 사람들은 사드나 탄핵 때문에 불경기가 제일 심해요. 사업 10년 가까이 하고 있는데 사상 최고예요. 사상 최고. 거의 뭐. 메르스, 세월호 때보다 더 안 좋아요. 말 그대로 사장 직전이에요. 우리 같은 자영업자들은. 이런 상태인데 (영업 방해하고) 그러니까 나는 더 짜증이 나는 거죠. 나는 (집회) 한다고 하면 바로 문 잠가버려요. 아예 못 들어오게.

 

 제보 메일엔 주변 상가들 얘기도 좀 써주셨는데, 근처 상가에도 많이들 가셨대요?

 

A 집회 날, 집회 다음날 우리 집엔 그런 일이 있어서 물어봤지 주변에. 미용실도 가고 은행분들도 친하잖아요. 사업하다 보니까. 은행 직원분들이 아우 요새 죽겠다고. 어르신들 많이 와가지고.

 

그냥 와서 앉아 계신 거예요?

 

A 네 앉아 있는 거예요. 앉아있다가 뭐, 괜히 업무 물어보고. 또 많이 오니까 돈 찾고 이러니까. 근데 그분들이 다 현금 구매를 하셨던 거지. 카드를 안 하고. 원래 다 카드를 하는데. 그래서 신기하다 이상하다 생각을 하다가 아 이게 (돈을 받고 동원되는) 그건거 같다고 제보를 하게 된거죠.

 

미용실에도 들어오신다 하더라구요. 머리를 하기도 하구. 그리고 커피숍 사장님이 커피숍에도 온다고 하던데, 집회하는 날 되면 나중에 한번 보세요. 거기에 진 치고 있어요. 우리 가게에 왔던 노숙자 거기도 왔다고 하더라구. 사장님이 놀라서 하루 문 닫았어요.

 


A씨가 알려준 같은 지역 카페는 집회 장소에서 가장 가깝고 공간이 넓은 곳이었다. 그런데, 해당 카페 대표는 그런 일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온 일도, 문을 닫은 일도 전혀 없었다는 그는 ‘그런 일은 없었다'는 것 이외에 다른 답변은 하지 않았다. 카페 손님들의 다수가 60대 이상으로, 종편 뺨치는 대화를 이어가는 것으로 볼 때, 영업방해가 있어도 솔직한 답변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다.


A씨는 태극기에 성조기, 게다가 이스라엘 국기까지 등장한 친박집회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한편으로 고작 7~800명 모인 집회 때마다 스피커와 바리케이드 등 각종 집회 장비가 동원되는 것을 보고 신기했다고 한다. 이 와중에 누군가는 돈을 많이 벌고 있을 박근혜식 창조경제를 몸소 체험한 A 씨는 취재 말미에 처음과 같은 말을 했다.

 

A 저희 직원들 월급 주고 해야 하니… 티 안 나게, 최대한 티 안 나게 좀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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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왜인지는 나도 잘 알겠다


 

그들이 떠난 자리

 

유난히 버스가 많은 날, 고가의 장비가 매번 등장하는 날. 이날만 되면 현금이 많은 어르신들. 하루 사이에 옷이 달라지는 노숙자와 지체장애인. 부자연스러운 요소들이 이 집회를 구성하고 있는데, 오히려 집회의 피해자들은 조심스럽다.

 

3월 10일 오전 11시. 시간은 정해졌다.

 

이별의 대상이 한 국가의 대통령이든, 혹은 대다수가 추구하는 정의든, 헌법재판소의 판결 결과에 따라 그날 그 시간에 둘 중 하나와는 이별하게 될 것이다.

 

부디 정의와는 이별하지 않게 되길 바란다. 제보를 하면서 무슨 일이 생기지 않게, 티 안 나게 써달라고 몇 번이고 당부하게 되는, '그 아버지'의 시대처럼 공포감을 느껴야 하는 부당한 2017년과는 이별하게 되길 바란다.

 

마침내 이별하게 된다면, 본인만큼은, 떠난 자리, 아름답게 떠나셨으면 좋겠다. 박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실패한 것 같지만,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다운 법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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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링크>

 


변기에 조예가 깊은 분이니 이 문구를 볼 수 있는 곳도, 의미도 아시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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