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건강검진이 끝나고, 감방으로 갈 시간인 듯 했다. 흘러내리는 바지를 힘겹게 붙들고 작은 복도를 걸어가니 벽 끝 쪽에 철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교도관이 벨을 누르자, 띠익~~~ 하면서 '철컹'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또 하나의 문을 지나고 하나의 문을 더 지나고 왼쪽으로 돌아서는 순간, 복도와 감방 사이에 있는 큰 아크릴판 창문. 안에서 긁었는지 밖에서 긁었는지 안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건 엄청 많은 인원이 있었다. 영화에서 보던 감방이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서 있는 앞의 벨을 누르자, 털컹 소리와 함께 알 수 없는 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삐라~~~~~ 삐라~~~~~~~""
몇 명 인지도 모를 많은 인원들이 날 향해서 소리치고 있었다. 잘 시간이 다 된 시간이어서 그랬는지, 일렬로 정렬되어 있는 침대에 앉아서 미친듯이 날뛰고 있었다.
Northwest detention Center
"아... 이제 어떻게 하냐... 어떡해..."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눈대중으로 봐도 100명은 족히 넘어 보였다. 난 그 소리에 어쩔줄 몰라서 박스를 들고 흘러내리는 바지를 움켜쥐고 뒤로 물러서려고 했지만 굳게 닫힌 문이 내 등을 떠밀고 있었다. 교도관은 내 옷이 담긴 박스를 빼앗아 들고,
“240. 네 자리는 저기야. 가서 옷 정리하고 샤워 할 시간을 주도록 하겠어.”
내 이름은 그때부터 240이었다. 내 죄수번호였다. Ok란 말 밖에는 할 수도 없었고 몸 상태도 말이 아니었다.
감옥은 이층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왼쪽에는 6명씩 둘러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식탁들이 있었으며, 전자렌지, 커튼으로 쳐져 있는 화장실, 몇 대의 전화기가 벽에 걸려 있었다. 일, 이 층을 가득 메우고 있는 죄수들. 아시아인은 나 밖에 없는 듯 했다. 난 교도관자리에서 가장 잘 보이는 자리를 배정 받았고, 이 층 침대 중 일 층을 사용하게 되었다.
정신이 없었다. 박스 뚜껑을 열고 옷을 전부 꺼내는 순간,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옷 정리를 끝내고 샤워를 해도 된다는 말에 수건을 챙기고 일어나는 순간, 정신이 희미해지며 눈을 감기 전에 떨어진 안경만이 내 시야에 보였다.
“잘 잤어요?”
어렴풋이 한국말이 들려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감방이 아니었고, 병실이었다.
“240. 어제 기절해서 여기에 누워 있었어요. 몸이 많이 약해져 있어서, 수액 놔 드렸으니까 이제 좀 좋아질 겁니다.”
언제부터 흘리고 있었는지 베개는 온통 눈물로 젖어있었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한국말을 사용해주어서 감사하다는 의미였다. 오랜만에 듣는 한국말이었기 때문에.
“이제 감방으로 돌아가셔야 하니까 정신 차리시구요. 맘 졸이지 마시고 편히 있는게 도움될 겁니다.”
그렇게 말을 하며 팔에서 바늘을 빼주고 있었다. 난 눈을 껌벅이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큰 포스터. 성폭력 예방 포스터였다. 하필 그런게 내 눈에 보이다니, 두려움은 점점 더 커져 갔고 감방으로 돌아가기가 싫었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내 발길은 감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니 교도관이 물었다.
“아유 오케이? 어제 너 쓰러져서 응급실로 데리고 갔어. 어디 몸 안 좋다고 생각하면 말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침대로 돌아가면서 난 주변을 훓어 보았다. 침대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식탁에 빙 둘러 앉은 인도인들이 보였다. 여러명이서 뭉쳐서 내가 가는 길을 막고,
“아 유 차이니즈???“
라고 물었다.
"아니... 코리안..."
이라고 말을 하자, 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바지 안에 손을 집어넣고 뭔가를 만지고 있는 듯이. 소름이 끼쳤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난 황급히 뒤로 돌아서서 내 자리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 모습을 본 인도인들이 낄낄대면서 웃었다. 그 뒤를 돌아서니 멕시칸들이 다시 웃어댔고, 그 옆을 돌아서니 흑인 친구들, 그 옆은 게이처럼 보이는 애들이 손목을 반 꺾은 채 낄낄대며 웃었다.
난 침대에 걸터 앉았고, 시간은 저녁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사실 난 밥을 먹지 못했다. 모든게 너무 무서웠고, 알수 없는 자기나라 말로 내 주변을 서성거리며 돌아다니는 죄수들 때문에 맘 편히 앉아 있지도 못했다. 성폭력 예방 포스터 때문이었다. 또한 미국감옥 얘기는 어디서 주워들은 적이 있어서인지 더 무섭고 불편했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각자의 시간을 갖는 듯 했다. 그때까지도 죄수들은 계속 내 주변을 서성거렸고, 날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난 말대신에 그들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날 건드리기만 해봐, 죽여버릴 거야 라는 생각 뿐이었다.
한참이 지나고 난후에 교도관이 취침시간을 알리며 불을 껐다.
'아... 이제 자는구나...'라는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이게 웬일인가. 잠을 자기는 커녕, 자기들끼리 침대 위 아래에서 웃고 떠들고 뭔가를 만들고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고 자꾸 내 침대 쪽에 와서 날 한 번 쳐다보고 가고...
난 박스안에 있는 옷을 전부 다 꺼내어 내 방어막을 만들기 시작했다. 성폭행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양말을 씨름 샅바처럼 다리 가랑이 사이에 묶어서 기저귀처럼 만들었고, 그 위에 내가 가지고 있는 속옷, 그 위에 속옷, 바지 또 바지, 내복, 마지막으로 츄리닝 바지. 혹시라도 당하면 벗기다가 지치게끔 하려는 생각이었다.
역발산이 산을 들어 올린다고 한들 눈꺼풀은 들지 못했다는 말이 있다. 나 역시 어느 샌가 잠이 들었다. 사실 진짜 잘 잤다. 군대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것처럼 7시에 기상 알람이 울렸다. 난 소리를 듣자마자 용수철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내 몸의 상태를 체크했다. 너무 많이 껴 입었는지 몸이 뚱뚱해 보였다.
'아... 별 일 없었구나...'
철문이 덜컹 열리면서 밥차가 들어왔다. 아이디를 들고 일렬로 서서 식판에 배식을 받고 식탁에 앉으니, 내 옆으로 터번을 쓴 친구들이 쪼르르 달려와서 앉기 시작했다. 난 신경쓰지 않고 밥을 먹기 시작했는데, 그때 누군가가 날 부르면서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너무 깜짝 놀라 눈을 살짝 돌려서 쳐다봤는데, 검은 손이 내 어깨 위에 얹어져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눈동자만 하얀 흑인 친구가 날 보고 환하게 웃으며,
“헤이 코리안~ 나 니 위에서 지내고 있는 밀리앙이라고 해~”
내 식판을 들더니 자기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들고갔다. 난 내 밥을 쫓아서 밀리앙 뒤를 쫓아갔다.
“코레아~ 니가 쓰러져서 내가 널 업고 응급실로 뛰어갔어. 어때 괜찮아?”
참 따뜻하게 말을 해 주었다. 키도크고 머리카락은 아줌마 파마보다 더 곱슬거렸으며, 꽤 잘생긴 친구였다.
“이거라도 더 먹을래?”
하며 자신의 식판에 있는 음식을 나에게 덜어주면서 먹으라고 눈짓을 준다. 먹지 않고 가만히 있자, 뒤에서 핫 소스를 꺼내더니 뿌려주며,
“안 먹으면 후회 할 걸? 배고프면 얼른 먹어”
라고 말을 했다. 난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물론 첫날은 아니었지만, 감방에서의 첫날이 시작 되었다.
아침 7시 기상, 간단한 자기 구역 청소. 구역에는 6명에서 8명. 좀 넓은 곳은 10명 정도 하루하루 돌아가면서 청소를 했다. 청소를 하는 시간엔 천장에 걸려 있는 세 대의 TV에서 뮤직비디오가 흘러나왔다. 싸이도 자주 등장을 했다. 그 이후 한 시간에 한 번 하는 인원점검을 빼고는 다 자유시간이었다. 감방 내에는 탁구대, 농구코트, 부르마블, 포커... 테이블에서 할 수 있는 놀이는 뭐든지 있었다. 운동기구도 있었으니까.
200명이 조금 안 되는 인원이 한 곳에 살다보니 하루종일 시끄러웠다. 잠을 잘 못잤던 터라서 잠 좀 자려고 누우면, 누군가가 침대에 누워 있는 날 가만히 쳐다보고 가기도 했다. 안 그래도 무서워 죽겠는데 자꾸 저렇게 관심을 가지니 미칠 노릇이었다.
“아 씨~ 니네 내 침대 쪽으로 한 번만 더 오면 다 죽일거야~”
하면서 난 소리를 버럭 질렀다.
위에서 밀리앙이 고개를 쭈욱 내밀더니,
“괜찮아~ 니가 신기해서 그래, 동양인은 6개월 만에 나도 처음 봤거든~”
하면서 말을 건넨다…
“………”
좀 미안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고 또 둘러보아도 나랑 비슷하게 생긴 사람은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교도관은 새로 들어온 날 주시하고 있었다. 눈을 마주치자 다른 곳을 쳐다봤다.
“밀리앙... 지금 시간에 샤워 해도 될까?”
밀리앙은 오른쪽을 쳐다보면서 따라 오라는 손짓을 하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이쪽 부스를 써. 여긴 버튼을 한 번만 눌러도 물이 오래 나오니까. 샤워 끝날 때까지 앞에 서 있을게.”
밀리앙은 친절했지만... 그땐 나에게 친근감을 표시하는게 그렇게 반갑지는 않았다. 신경이 날카로웠기 때문에. 얼굴도 많이 상했다. 쓰러지고 난 다음, 제대로 먹질 못해서인지 원래 마른 체격인데 더 앙상해 보였다.
침대에 다시 누워서 멍하니 침대 위만 쳐다보았다.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때 신호를 어기고 달렸더라면... 난 지금 LA에서 동생들과 함께 축배를 들고 있겠지? 우회전을 안 하고 직진으로 갔으면... 아파트 단지가 있는 쪽으로 갔더라면... 잡히지 않았겠지?
이런생각들이 다 무슨 소용일까, 결국에는 이렇게 갇혀 있는데. 다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고개를 돌려 티비를 쳐다보니. 뉴스가 나오는것 같기는 했는데 어떻게 듣는지 몰랐다. 감옥에 있는 사람들을 보니 귀에 이어폰을 하나씩 다 꼽고 있는 듯 했다. 라디오... 난 밀리앙에게,
“라디오는 어디서 사는 거야? 어떻게 사는 건지 알 수 있을까?”
“아~ 너 라디오가 없구나~ 교도관한테 가서 말해봐”
난 교도관에게 가서,
“라디오 하나 얻을수 있을까?”
라고 말을하니,
“어 지금 부서진 거 하나 밖에 없는데... 이거 먼저 받고 내가 저녁에 새로 하나 가져다 줄게.”
라디오는 투명 플라스틱이여서, 안이 보이는 라디오였다. 난 교도관에게,
“그럼 드라이버 하나만 빌릴 수 있을까?”
이 한 마디가 내가 감방을 편하게 지낼 수 있었던 키가 될 줄은 몰랐다.
한국 국민학교를 나온 사람들은 대충 알 것이다. 학교에 있는 강당에서 매년 열리는 고무동력기대회, 또는 라디오 만들기 경진대회... 나도 그런 대회는 엄마의 치맛바람에 휘날리어 항상 자리하곤 했다. RC카대회까지 나갔었으니까.
난 드라이버를 손에 들고 침대로 돌아왔다. 밀리앙은 "그거 고치기 어려울 거야" 하면서 자기 것을 빌려줄까? 하는 눈치를 보였다. 어차피 할 것도 없는데 이거나 분해 하면서 시간이나 때우지... 하는 생각이었다.
드라이버를 돌리려고 하니, 육각 비슷해서 드라이버가 맞지 않았다. 난 고무줄을 드라이버에 끼우고 돌리기 시작했고, 어렵지 않게 라디오 분해에 성공을 했다. 라디오는 배터리 연결부분 납땜이 떨어져 있었다. 구리선이 칭칭 감겨 있는 부분도 헐렁하게 풀어져 있고 거기 또한 납땜이 떨어져 있었다. 참 쉬운 일이었다.
난 인두좀 달라고 하려고 침대에서 일어나는 순간, 열 명의 눈동자를 보았다. 녀석들이 내 앞에 서서 '얘 뭐하는 거야~' 라는 눈빛을 보내고들 있었다. 난 그사이를 삐집고 휴대용 인두를 받아와서 한 10분? 만지작 만지작 하고 라디오를 다시 조립 하고 있었다. 나도 할 일 없고, 다른 죄수들도 할 일이 없었다. 다 쳐다보고 있었다.
"240~ 그게 될 거 같아? 그냥 내꺼 쓸래?"
하면서 누군가가 말을 하는 순간, 난 이어폰을 꼽고 티비를 쳐다보며 귀에 들리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고쳤다. 라디오를... 다들 깜짝 놀라는 눈빛을 보냈고, 그 일화로 인해서 관심대상이 되었다.
“우와~ 진짜 대박이다~ 이걸 고쳤어?? 어떻게 고쳤어???”
라며 밀리앙이 얘길했고 다른 죄수들도 물어보기 시작했다. 사실 멕시칸들도 손기술이 좋다. 하지만 그 안에서 그걸 고치겠다고 생각한적은 없나 보다. 달라고 하면 새로 주니까. 하지만 한국에서 휴대폰도 고쳐본 적 있는 나에겐 완전 쉬운 일일 수밖에.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을 천천히 봤더니 생각보다 다들 착하게 생겼다. 내 앞에 서서 날 관심있게 지켜본 사람들은 전부 다 어려보였다. 물론 수염이 난 사람도 있지만 많지는 않았고... 그때 난 생각을 고쳐 먹기로 했다. 언제까지 있을지는 모르지만, 당장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이왕에 있는 거 좋게 있자. 내가 화를 낸다고, 짜증을 낸다고, 내일 당장 나가는 것도 아니고...
맘을 고쳐 먹고 난 운동화를 신고 천천히 수용소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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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이버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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