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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출동 SOS 24> 프로그램이 없어진 이유는 시청률 때문이 아니었다. 시청률은 과히 나쁘지 않았고 시청자들의 반응도 바닥권은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광고였다. 프라임타임 대에 방송되고 시청률도 괜찮게 나오는데 광고주들이 그 프로그램에 광고 붙이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이유는 명료했다.


“프로그램 보고 기분이 좋아져야 광고에 나오는 물건 살 생각을 하지. 이건 뭐 세상에 이런 괴물들이 있나 TV 꺼 버린 내용들이니.”


‘폭력 추방’을 모토로 가정폭력, 학원폭력, 아동 학대, 노인 학대, 장애인 학대 등 세상의 밑바닥을 쓸고 다녔던 프로그램을 햇수로 6년간 맡으면서 술자리에서 응 응 하며 듣다 못해 짜증을 낸 얘기도 비슷한 것이었다. “난 니 프로 안봐. 보면 가슴이 턱 막혀서.”


101호나 202호나 사는 거 비슷하고 대개 알콩달콩 가끔 아웅다웅 한 가족들 살아가는 스토리는 거기서 거기인 거 같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톨스토이의 말처럼 세상에는 엔간히 갑갑한 사연들이 지천으로 존재하고, “내 얘기를 소설로 쓰면 책이 몇 권”인 인생들도 허다하게 널려 있다. 그 중에서도 최악이다 싶은 사연들을 주로 일삼아 찾아다닌 셈이었으니 떠올려 보면 그 6년을 어떻게 버텼나 싶다. 보는 사람 가슴이 막히면 만드는 사람 가슴은 오죽했겠냐고 임마! 친구에게 반박하지 못했던 게 가끔은 억울해지고 말이다.


그런데 오늘 나는 난 니 프로 안봐! 하고 오만하게 말하던 내 친구를 가슴 깊이 이해하게 됐다. 아 네가 이런 심경이었구나, 뜨거운 군고구마가 좌심방 우심실을 틀어막고 있었겠구나 크게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그건 고상만이 쓴 <수사반장>이라는 책을 읽고서다. 나는 저자를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내 주변에 고상만을 아는 사람은 널렸다. 누구예요? 물으면 다양한 대답이 나오는데 그 색과 결을 가르마 타 보면 대충 이런 답이 형성된다. “의욕 과잉이 흠이지만 상당히 근성 있는 인권 운동가.”


책 <수사반장>은 그가 오랫 동안 진행되어 온 팟캐스트 <수사반장>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래서 글이라기보다는 방송 멘트적인 느낌이 짙다. 목차를 훑어 보니 또 태반이 이리 저리 접해 봤던 사건이었다. 뭐 부담없이 읽겠구나 책을 펴들고 목욕탕에 들어가 앉았는데 (나는 목욕탕에서 책 보기를 즐긴다. 집중도 최고다) 그예 나는 책 속으로 침몰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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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을 읽어내다 보니 별안간 세상 전체가 건식 사우나로 화한 기분이랄까. 들이마시는 숨이 흡족하지 않고 내쉬는 숨도 뭔가에 걸렸다. 몇 번씩이나 책을 집어던지고 아우 갑갑해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수사반장>은 그런 후퇴를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앉은 자리에서 책 한 권을 읽어내고서야 나는 때를 밀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여러 번 한숨을 쉬게 되고 그게 쌓이다 보면 헛웃음이 나오고 그것들이 반복되다 보면 열 여덟 딸기같은 새빨간 욕설이 가래처럼 솟아오르고 급기야 뭐 이런 나라가 다 있어 이 나라와 사회의 멱살을 잡게 된다. 과장하지 말라고?


책에 실린 하나 하나가 멀쩡한 사람 킹콩 만들어 가슴을 치게 만드는 사연이긴 하나 딱 하나만 들어 보자. 이이동이라는 1966년생 청년이 있었다. 대학 휴학하고 군대에 갔는데 이등병 딱지 떼기도 전, 입대 후 4개월만에 자살했다는 소식이 집으로 날아든다. 놀라 달려간 아버지에게 군 부대 관계자는 시신도 보여주지 않는다. “봐서 뭐하겠냐”면서. 그리고는 이미 5년 전에 자식들의 축복을 받으며 재혼했던 아버지의 사연으로 인한 가정불화 때문에 자살했다고 우긴다. 군대 가기 전에 몇 년을 한 지붕 밑에 가족으로 살며 행복하게 지낸 청년이 군대 가서 별안간 새어머니를 맞은 아버지 밉다고 제 몸에 소총을 긁어 버렸다는 것이다.


현장 사진은 더 웃겼다. 자살한 뒤 팽개쳐져야 할 소총이 아주 정갈하게 바닥에 놓여 있었던 것은 기본, 소총의 조정간이 글쎄 ‘안전’에 놓여 있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이 군기 바짝 든 이등병이 자신의 몸에 총을 쏜 후 얌전히 내려놓고 ‘조정간 안전’까지 행하고 죽었다는 것이다. 자살한 곳은 부대로부터 500미터 떨어진 산속. 그런데 이이동은 안경 없으면 운신이 어려울만큼 시력이 나빴다. 그런데 시신에는 안경이 없었다. 피가 거꾸로 솟아 억울함을 호소하는 아버지에게 군 간부는 명예훼손 소송을 건다. 그리고 아들의 사인을 밝히겠다며 이곳저곳 머리 들이밀지 않은 곳이 없던 아버지는 끝내 목숨을 끊는다.


이이동 이병의 누나는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이라는 말을 들은 순간 “군대를 가야 하는구나” 하며 겁이 더럭 났다고 했다. 그런데 아들이 아파서 병원에 가 보니 선천성 심장 기형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보통 부모 같으면 하늘이 무너질 그 상황에 이이동 이병의 누나는 슬픔 한 켠으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고 한다. “군대에 안 가도 되는구나.” 도대체 이런 풍경을 세상 어느 나라에서 또 볼 수 있단 말인가. 다시 들을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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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이런 건조하고 김 펄펄 나는 고구마 수십 개가 겹겹이 담겨 있다. 냉수 한 그릇 퍼먹을 짬을 주지 않는다. “성추행하는 아버지를 죽였다.”는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무기수는 자신의 무죄도 무죄려니와 아버지는 성추행 따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며 그 명예를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다. 방위병 출신으로 포상 받으려고 모아둔 북한의 삐라 때문에 끌려갔다가 한참 후 시골 동굴 안에서 “스스로 몸을 묶고 자기 키보다 높은 동굴 천장에 꾸역꾸역 올라가 올무에 목을 디밀고 자살”한 시체로 발견된 이의 아버지는 지금도 종종 스스로를 묶는다. “어떻게 이렇게 자기를 묶은 채 자살할 수 있단 말인가요.”


학교폭력을 당한 학생의 가족이 울분을 터뜨린 끝에 분신자살했는데 정작 피해 학생은 불길을 피해 살아남는다. 그런데 그에게는 “너 때문에 가족이 죽었는데 너만 살았냐.”는 비난이 쏟아졌고 결국 그는 이제는 자신의 학교도 아닌 학교 교실에 찾아갔다가 쫓겨난 뒤 농약을 삼키고 쓰러진다. 가슴이 콱콱 막히지 않는가? 갈빗대에 깁스한 것 같이 갑갑하지 않는가?


이쯤 되면 고상만의 멘탈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그나마 제대로 된 월급 받으면서 사회의 그늘을 찾아다닌다고 껍적거리면서 아 세상 참 더럽다 한탄했던 내가 부끄러워질 지경이다. 어떻게 이런 사건들을 찾고 물고 늘어지고 뒤집어 엎고 그 후 이렇게 기록으로까지 남길 여력이 남아난단 말인가. 멘탈 갑이란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가보다. 하지만 꼭 그렇게 멘탈이 튼튼한 사람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이 책 곳곳에서 드러난다. 감옥에서 만난 열 다섯 살 소년수를 붙잡고 영치금을 쥐여 주며 함께 무너져 내리며 우는 장면에서는 웬만한 일 만나도 꿈쩍 않을 것 같은 ‘수사반장’ 답지 않은 면모를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난 네 프로 안본다.”고 고개를 젓던 친구가 다시금 떠오른다. 아마 그 친구는 “난 이런 책 안본다.”고 역시 도리질을 칠 것이다. 허기사 안그래도 험하고 박한 세상 책으로까지 또 TV로까지 끔찍하고 머리 아픈 일을 돌아보고픈 맘이 들지 않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제는 말할 수 있겠다. “네가 보든 안보든 네가 상상할 수 없는 세상은 존재하며, 결국 네가 눈을 감는 사이에 그 세상은 넓어지고 결국 네 발치까지 파고들 거다. 뛰어들 수 없다면 보기라도 해라. 느끼기라도 해라. 보고 느끼기도 싫다면 너는 결국 네가 상상할 수 없는 세상에 미필적 고의의 공범이 되는 셈이다.”라고.


이 책은 몹시 불편하다. 그래서 읽을 가치가 있다. 한 번 스스로를 테스트해 보시라. 이 책을 얼마나 읽다가 한숨 쉬고 머리를 싸매게 되는지. 자신의 인내력과 감응 능력, 그리고 공감 지수를 시험해 보시라. 그 시험 문제로 이만한 책은 없을 것이다.






산하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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