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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먹자.”


이 말을 듣지 못한 지가 꽤 된다.


가족들이 같이 살면 아침 먹자는 이야기가 한번쯤 나올 때도 있으련만, 적어도 그 이야기를 내가 들을 일은 없다. 몇 달 전부터 아침밥은 거른다는 이야기를 하고서 보통의 식사시간보다 늦거나 빠른 시간에 혼자서 대충 챙겨먹기 때문이다. 


아침에 가족끼리 밥을 먹는 것 자체가 괴롭고 식사를 같이 하면서 가족들과 눈이 마주치는 것이 힘에 부친다. 백수 생활이 오래되면 눈칫밥을 먹는다고 하던데 요즘은 눈칫밥을 넘어서 숨만 쉬어도 바늘을 삼키는 기분이 들곤 한다. 


하루하루가 원래 이렇지는 않았다. 2013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나의 취준생-사실상 백수-생활,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그 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지금의 풍경을 상상하진 못했다. 내가 교과과정을 모두 이수했을 때가 2012년 1학기였다. 그때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 그랬듯 혹시라도 취직이 안될까 싶어 안전하게 졸업보다 수료를 선택했다.

 

취준생 생활 첫 해에는 학교 친구들처럼 대기업을 중심으로 지원했다. 두 번째 해부터는 중소기업도, 그리고 정말 작아서 아무도 모를 회사까지 죄다 썼다. 대기업은 대기업의 이유로, 중소기업은 중소기업의 이유로 불합격 통보를 주었다. 수료 상태로 2년을 보냈는데 아쉽게도 취직은 되지 않았고, 계속 수료 상태로 머무르는 것도 부담이 되어 뒤늦게 졸업했다. 그때가 2014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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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 생활은 이제 5년 차가 되어 간다. 5년 차라니. 이쯤 되면 하나라도 합격해서 이 생활에서 해방될만 하련만 이제는 서류합격조차 힘들어지기만 한다. 서류가 붙어야 면접 준비를 하고, 면접을 봐야 최종합격을 노려볼 수 있겠지만 요즘은 관성으로 서류를 제출할 뿐, 정말 될 거라는 희망을 갖지는 않는다. 그 때문인지, 아니면 너무 많이 떨어져서 그런지 예전처럼 불합격에 큰 감흥이 없다.

 

괴롭다가 담담해져버린 마음 상태처럼 몸도 많이 변했다. 첫 취업준비할 때와 지금의 건강상태만 비교해보면 아예 다른 사람인 수준이다. 취직이 안되어 힘들다는 말이 이제는 너무 흔한 말이니, 오랜 취준생 생활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적어보려고 한다.


 

1. 상반신 - 스트레스


취준생 생활에서 가장 힘든 건 아무래도 스트레스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취직이 안 된다는 스트레스도 있지만, 사실 취업을 준비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쓸데없이 다양하다. 누군가의 취업, 누군가의 결혼, 누군가의 유학, 혹은 누군가의 안부 등등.


나와 나이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내 동생은 취업시장에 뛰어들고 1년도 지나지 않아 취업에 성공했다. 내가 서울에서 버티다 본가로 내려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있었던 일이다. 그때부터는 집안 공기가 묘하게 변했다. 자식 중 하나가 취업하면 퇴직하겠다던 아버지는 취직한 게 장남인 내가 아니라서 퇴직을 미뤘다. 동생의 취업은 축하할 일이고, 축하했지만, 출근 자체가 축복인 세상에서 계속해서 출근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프게만 느껴졌다. 얼마간은 아침에 출근하는 아버지와 동생을 향해 인사도 했지만, 요즘에는 방에서 틀어박혀 없는 듯 지낸다. 그렇지만 여전히 혼자 원서를 쓰고 있는 ‘취직못한 형’으로서 스트레스를 쌓아가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얼마 전엔 이런 일도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연락이 닿지 않던 친구를 면접장에서 만났다. 서로 악수를 하면서 반가워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면접이 끝난 다음 연락처를 교환했지만, 서로 예감했을 것이다. 이 연락처로 연락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둘 다 떨어지거나 둘 다 합격한 것이 아니면 연락할 수가 없게 된다. 누군가 붙고 떨어지는 것을 이야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서로가 불편해지기에 오랜만에 만난 십년지기 반가운 친구에게 연락을 할까 말까 고민해야하는 상황은 서글펐다.


일상적인 스트레스는 전화벨이 울릴 때다. 취업한 친구들의 전화를 받아야하는가 말아야하는가 늘 고민한다. 받았을 때의 대화 내용도, 친구들이 모인 메신저의 글도 스트레스다.

 


2. 상반신 - 기관지와 위장


집에서 에어컨을 틀면 나는 방문을 닫고 에어컨 바람을 피하게 된다. 원래는 에어컨 바람을 맞아도 별다른 이상이 없었는데 백수생활 동안 학원이나 도서관에서 종일 에어컨 바람을 맞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에어컨 바람만 맞으면 기침과 콧물이 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3 분 정도는 괜찮으나 10여 분이 지나면 예외 없이 기침과 콧물이 난다.


기침이나 콧물은 2~3일 정도는 계속 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더운 날씨에도 마스크를 쓰거나 에어컨 바람이 오지 않는 곳에서 공부를 해야 한다. 이비인후과에 가서 진료를 받으면 매번 안쪽이 심하게 부어있다고 하는데, 아마 에어컨바람을 오래 맞으면서 기관지가 심하게 약해진 까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너덜너덜해진 건 위장도 마찬가지다. 졸업 후 백수생활이 길어지면서 통장을 자주 확인해보는 버릇이 있었다. 취업 준비를 하며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해도 버는 것은 거의 없고 쓰는 것만 많아지기 때문에 식사에 드는 돈을 줄였다. 옷이나 주거비용(월세)은 이미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먹는 돈을 줄이는 게 먼저였다. 거기다 취준생 기간이 길어지니 스스로 눈치가 보여 좋은 것 보다는 싸고 오래가는 식료품 위주로 소비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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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보다 라면이나 자극적인 음식을 먹는 날이 많아졌다. 따뜻한 물을 마시거나 우유를 마셔도 위 언저리가 아파서 잠을 못 드는 날도 늘어갔다. 병원에선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이라는 처방을 했고, 그걸 알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약으로 버텨보았다.


서울에서 버티다 본가로 내려와 집밥을 먹은지 꽤 지났는데, 아직도 가끔 위가 아파서 병원에 가면 처방이 같다. 전엔 음식을 잘못 먹어서 이런 것이라면 지금은 집에서 눈치를 보며 지내기 때문인 것같다. 어떻게든 취업 이외에는 이 염증과 헤어질 방법이 없다.


 

3. 하반신 - 변비와 항문


책상에 오래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변비는 너무 흔한 질병이다. 취준생 생활이 길어지면서 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책상에서 보내다 보니 변비가 생겼다. 초기에는 그저 매일 가던 화장실을 2~3일에, 그러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늘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변비가 걱정거리가 된 건 연쇄적으로 불합격한 후 식욕을 완전히 잃었을 때부터였다. 입맛이 거의 없어 하루에 한 끼만 겨우 먹었고 물도 많이 마시질 못했다. 화장실 가기가 고통스럽다는 게 무슨 말인지 그때야 알았다. 그래도 그때는 약을 먹으면서 가까스로 문제를 해결했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신호가 와서 화장실에 가면 항문 주위에서 따끔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닐거라 생각했지만, 책상에 오래 앉으면 항문이 부어서 따가운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점점 통증이 커지는 것 같아 서서 책을 읽거나 좀 걸어보았지만 거의 효과가 없었고, 엎드려서 책을 며칠 읽었을 때야 좀 나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통증과 씨름하다가 어느 순간 이상할 정도로 갑자기 멀쩡해졌다. 며칠 더 조심하다가 드디어 다 나았다는 확신이 생겨 원래대로 책상에 앉아 두어 달쯤 보냈다. 그리고 어느날 다시 화장실에 갔을 때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무심코 밑을 바라보았다.


좌변기 속 맑은 물에 붉은 피가 떨어지면서 퍼지고 있었다. 적지 않은 양의 핏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처음 봤을 때는 꽤나 충격이었다. 병원을 갈까 고민했지만 출혈을 제외하고 별다른 통증은 없어서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출혈이 멎었다 심해지길 반복했지만 집에 내려와서는 몇 달 동안 피를 보지 않게 되었다. 나은 줄 알았다.


그런데 집에 내려와 스트레스가 심해지자 다시 출혈이 시작되었다. 뭐가 문제고 어떻게 해결하면 되는지는 병원에 가면 금방 해결될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하기도 힘들고 자칫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할까봐 걱정도 된다. 가장 무서운 건 수술을 하게 되면 원래대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병원에 가지 않는 것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취업 가능한 나이선에서 완전히 배제되지 않으려면 이제 정말 남은 시간이 없다는 게 더 무섭게 다가온다. 그래서 아직도 가끔 보이는 혈흔을 보면서 한숨을 쉰다. 언제쯤 이 출혈이 끝날지, 정말 취업만 하면 이 문제들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 취업을 하기 위해서 정작 제일 중요한 것을 미루거나 팔아먹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면서도 오늘도 눈앞의 이상신호를 애써 못 본 체하며 책상에 앉는다.

 


4. 하반신2 - 발기부전


건강한 남성이라면 아침마다 텐트를 본다... 나만 빼고.

 

내가 마지막으로 텐트를 본 게 언제였더라.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취준생 3년 차에 접어들면서는 확실히 본 기억이 없다. 원래는, 그러니까 대학교 졸업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다. 취준생 기간이 길어지면서 아침에 텐트를 보는 것이 힘들어졌다.

 

처음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애초 연애와는 거리가 먼 삶이었고 성욕도 강하지 않은, 나름 주변에서 알아주는 무욕의 아이콘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해 넘게 텐트를 못 보니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고래 잡은 이후엔 다시 갈 일 없을 줄 알았던 비뇨기과에 앉아, 살면서 예상도 못한 발기부전 치료제를 처방받았다. 큰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아무 효과가 없었다. 보통 이런 약을 복용하고 적절한 자극을 받으면 발기가 되거나 유지되는 약일텐데, 되지 않았다. 두어 번 시험해봤지만 그대로라 포기했다. 그 이상 미련 가지거나 신경 쓸 여유가 없는 것도 한몫 했지만, 이미 백수생활이 길어질 대로 길어진 상태라 결혼은 포기했고, 혼자 먹고 살 수 있는 직장을 구하기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 문제 있는 부분이 없으니, 앞으로도 그런 문제가 없을 거라면 오히려 지금 상태가 더 나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텐트 구경을 하지 않고 있다.

 


5. 전신 - 잠


요즘은 11시 쯤 자는데 아침 7시에 일어나기도 버겁다. 새벽에 몇 번이나 깨는지 모르겠고, 그 덕에 깊게 잠들 수가 없다. 아침에 일어나 앉으면 매번 피곤해서 책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떨구고 졸기 시작한다. 이게 나아진 수준이다. 심할 때는 밤새도록 잠들지 못해 눈을 감고 밤을 새우기 일쑤였고, 가끔은 이상한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아 신경이 날카로워져 아예 사나흘치 잠을 몰아서 자기도 했다.

 

서울에서 혼자 버티던 취준생 초기에는 괜찮았다. 이때 보통 12시에서 1시 사이에 잠들고 6시 전후에 일어나 운동을 다녀오고 취업스터디에 갔다. 그렇게 지내도 피곤하지 않았고 오히려 푹 잘 수 있었다. 심지어 운동으로 체중조절도 했었다.

 

본격적으로 잠을 자기 힘들어지던 시기는 취준생 2년 차 하반기부터였다. 서류 통과와 면접 합격 확률이 조금씩 낮아지기 시작했던 때였다. 늘어나는 탈락과 불면의 시간은 비례해서 길어졌다. 처음에는 단순히 내가 너무 피곤해서 빨리 잠들지 못하나보다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잠드는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더니 누워서 눈을 감고 밤을 새우는 날이 생겼고,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스터디 중에 집중을 못해 멍하니 있거나 학원에서 수업 중에 조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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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회복을 해보려고, 아니 그게 가능한 줄 알고 잠들기 전 따뜻한 우유를 마시거나, 미온수로 샤워를 한다거나, 자기 전 술을 많이 마시고 잠드는 방법도 택해보았지만 그마저도 두어번 효과가 있었을 뿐,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다. 결국 병원에서 몇 차례 상담 끝에 멜라토닌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멜라토닌이 내 불면을 다 해결해주었고 나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헤헷 이라 쓸 수 있으면 좋겠다만,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다. 약한 두통에 시달리기도 했고 정신이 멍한 상태로 하루종일 있는 날도 있었다. 그나마 어느 정도 잠은 잘 수 있으니 그런대로 만족했지만, 서울에서 본가로 내려온 이후부터는 멜라토닌 복용하기도 힘들어졌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병원을 새로 가야한다는 점이었는데, 새로 병원을 찾아가 그 이야기들을 구구절절 다시 한다는 것 자체가 심한 스트레스였다. 그 생각을 하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두 번째는 스스로 눈치가 보여서였다. 멜라토닌을 복용하면 아침에 좀 늦게 일어나는 경우가 많은데, 나이 많은 백수가 늦게 일어나는 것을 곱게 볼 집은 거의 없을 것이다. 눈칫밥과 욕을 자연스레 세트로 먹게 되기 때문에 포기하게 되었다. 멜라토닌을 포기한 것에는 이 이유가 가장 크게 작용한 것 같다.

 

고민 끝에 찾아낸 해결책은 잠을 자거나 못 자거나 상관없이 7시까지는 무조건 일어난 다음에 카페인 정제를 몇 알씩 복용하는 것이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빈속이 뒤집히는 느낌이 들고 약간의 복통이 느껴지지만 먹고 난 다음에는 확실히 졸리지는 않기 때문에 이 방법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카페인으로 생활을 억지로 유지하는 게 좋진 않다. 지독한 두통, 시도 때도 없이 빠르게 뛰는 심장, 하루 종일 쏟아지는 땀을 좋아할 리도 없다. 몸이 망가지는 것을 느끼고 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를 보는 가족들의 시선에 하루, 한 시간을 견디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기 때문에 부지런하게 보이기 위해서라도 버티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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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취준생 생활에서 가장 힘든 건 서류합격/불합격이 아니라 최종탈락이었다. 마지막까지 다 쥐어짜내서 준비하고 발표했으니 ‘떨어졌다’는 그 한 문장이 쉬이 납득가지 않아서 몇 시간이고 가만히 화면만 보고 있었던 적도 많다. 어딘가 하소연할 곳도 마땅치 않고, 이유를 알려줄 리 없는 통보 하나가 극도의 스트레스였다. 군대 다시 가는 꿈은 꾸지 않지만 요즘도 최종불합격 통보를 받는 꿈은 꾼다.

 

올해가 어떻게 마무리 될지는 모른다. 합격할 수도 있고 여전히 백수인 상태로 마감할 수도 있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지만 나에겐 선택지가 없다. 죽기 전까지 계속 백수로 남을 수는 없으니 몸이 망가져도 취업을 포기할 수 없을 뿐이다.

 

아, 취준생 생활이 길어지며 생긴 변화 중에 하나가 더 있다면, 거울을 자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머리숱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거울을 보고 매번 눈썹에서 이마 끝까지의 거리를 잰다. 그래도 여긴 괜찮다고 안심하는 것도 슬프지만, 어쨌거나 머리 한가운데의 숱이 줄고 머리칼이 점점 가늘어지고 있다.





박티칸교황


편집 : 딴지일보 인지니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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