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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 관람가 / Color, Black & White / 85분



아빠 18년, 야인 18년, 정치인 18년, 18대 대통령, 18...

반인빙신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견마지로의 정신으로 대한민국을 이끄시던 중 양주 드시다 암살된 지 어언 38년째. 올 해 10월 26일이다. 이 날 '박근혜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일명 '박사모'를 다룬 다큐멘터리 <미스 프레지던트>가 개봉했다. 개봉일 뿐만 아니라 본진이라 할 수 있는 구미에서 시사회를 개최한 점, 게다가 감독의 전작이 <MB의 추억>과 <쿼바디스>. 벌써부터 이야기가 어떻겠다고 예상하는 반응이 많았다. 그러나 예상과 반대로 종편 TV나 대안언론이 박사모 간부들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만들지 않은 작품이다. 오히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탄핵을 진심으로 걱정했던 사람들을 보여주며 '소시민'적 정서를 이끌어내는, 그렇지만 프로파간다는 아닌 독특한 연출을 선보인다.

<미스 프레지던트>의 초기 아이디어는 지금과 완전히 달랐다. 감독은 2004년부터 박사모 멤버들을 만나왔지만 초기에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 더 관심이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과 차떼기 사건으로 천막당사 신세였던 정당을 재건하는 모습을 보며, 박근혜를 자연인과 정치인으로 분리해서 정신분석을 하는 다큐로 만들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을 정신분석 하겠다는 학자들이 없어서 전환을 좀 했다. '미스'라는 단어에 폭넓은 의미가 담기는 방향으로 말이다. 박근혜와 더불어 박정희 정권도 이야기하며 무엇보다 그들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일반 시민들을 담아내는 방식으로.

감독의 전작인 <MB의 추억>을 보면 주인공인 이명박이 아니라 뒤에 유세를 도우려고 서 있었던 유인촌의 얼굴표정 변화로도 이야기를 생각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었다. 이렇듯 감독은 다루고자 하는 대상 뒤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이야기를 끌어내는 능력이 있었다. 예견하지 않았겠지만 그동안 박근혜는 탄핵되어 전 대통령이 됐으니, 작품도 적절히 방향전환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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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손경화 감독의 다큐멘터리 <그 자식이 대통령 되던 날> 정도를 제외하면, 누군가의 가족이라는 인상을 주면서도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의 삶을 전적으로 들여다보는 작품은 찾기 힘들었다. 뻔해서일 수도 있다. 무언가를 그리워하다 못해 숭배를 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쉽게 파악되는 측면이 있으니 말이다. 해당 대상을 정말 좋아해서 이거나. 그 대상과 스스로가 살아온 인생을 동일시 해서 결사적으로 숭배하려 들거나. 하지만 막상 위의 생각을 하게 만든 사람들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듣는 것은 분명 다른 체험이다. <미스 프레지던트>는 박사모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말을 정말 진지하게 들어준다. 덕분에 개봉과 함께 어떻게든 자신들이 지향하는 방향과 논란으로 작품을 엮어보려고 온갖 수작을 부린 종편 언론조차 빼먹을 게 없다고 느꼈는지 금새 잠잠해졌을 정도다.

작품이 주인공으로 삼는 사람들은 청주에서 농부로 사는 조육형 씨, 울산에서 음식점을 경영하는 김종효 씨 부부다. 조육형 씨가 매일 새벽에 일어나 한복을 갖춰입고 박정희의 사진에 절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 김종효 씨 부부가 박정희, 육영수 부부 굿즈를 인증하고, 박근혜를 기억하며 울먹거리는 모습들을 통해 가슴 절절하게 사랑고백 하는 모습을 찍어놓았다. 그리고 이들이 서울과 구미를 오가며 박정희 부부,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 등에 참석하는 모습을 쫓으며 박사모를 비롯한 지지자들의 천태만상을 묵묵히 카메라에 담는다. 틈틈히 괜찮은 품질의 아카이브 자료들을 통해 정치인으로서 박정희 + 육영수 부부와 박근혜의 행적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일말의 유머도 섞이지 않은, 묵묵히 진지하게 경청하는 연출이 곧 박사모와 박정희 일가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지거나 하진 않는다. 오히려 측은한 감정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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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 밖에 없다. <미스 프레지던트> 속 세 인물을 비롯한 박사모 멤버들이 언급하는 박정희 일가의 장점들이 거의 몇십년째 동일한 레퍼토리에서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어려울 때 우릴 먹고 살게 해주셨다", "청렴하다", "반공주의자다", "조실부모해서 불쌍하다", "박정희의 딸이라 잘하겠지" 등등. 오히려 인터뷰를 통해 박정희 일가의 사진을 공개적으로 걸어놓았다고 욕을 먹었음을 고백하는 순간이 신선하다. 좋아하는 사실을 드러내어서 좋은 소리 못 듣는다는 사실을 충분히 안다는 얘기이니까. 이 모든 이야기를 경청하기에, 보는 동안 박사모가 아니라 점점 '박정희 신화'에 더 많은 생각이 향하게 된다. 들을수록 박정희 일가가 구축해 온 신화가 상당수 가공되어 있음을 복기시켜서다.


박정희 일가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신이 아니라 인간이 된 지 오래다. 정치인으로서 박근혜는 이미 민낯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작품도 이를 안다는 듯, 그녀가 청와대에서 영애 / 대통령으로서 생활하는 아카이브 영상에다 '즐거운 나의 집'을 사운드트랙으로 삽입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청와대는 결코 개인의 집이 될 수 없다.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사람이 가공된 신화로 치장하고 바지 대통령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박정희 역시 '실제 생애'에 관해서 수많은 증언들이 나왔으며, 과를 덮을 정도로 최대의 공으로 거론되던 경제 발전조차 연구를 통해 의의가 많이 희석된 상태다. 하지만 그들은 죄가 없으며 대통령의 자격이 충분했다고 여전히 여러 논리를 들어가며 응원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 논리는 점점 허약해지고 있는데 말이다. 허약해지는 논리를 계속 주장하며 허물어지는 사람을 보는만큼 슬픈 일도 없지만, 카메라는 묵묵히 돌아간다. 그래서 작품에는 슬픔과 더불어 스산한 정서마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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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프레지던트> 속 아카이브 영상을 보고 있으면 문명자 국제기자의 명저,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 워싱턴에서 벌어진 일들> 속 한 문장이 떠오른다.


'그때만 해도 근혜는 순진한 대학생이었다.'


‘그때만 해도 사람이 정상이었다' 라는 느낌을 주는 문장이다.


후반부에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두 장면이 있다. 하나는 구미에서 박정희 탄신 기념 행사가 진행될 때, 금속 노조가 행사장에서 시위하는 장면이다. 박정희를 위해서라면 애들과도 싸우는 박사모를 대표하는 순간 중 하나이기도 했다. 보통 이런 류의 영상은 박사모에 의해 시위자들이 수난을 당하는 형태로 보여지곤 했다. 작품은 이 영상에 사운드트랙으로 루치오 달라의 'Caruso'를 삽입한다. 이 구슬픈 명곡 덕분에 서러움이라는 것이 폭발한다. 영상에서 수난을 당하는 구미 금속 노조 뿐 아니라 그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가하는 박사모들까지 함께 측은해지는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근혜 -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으로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임기가 위협받았고, 구미시가 박정희 관련 행사에 예산을 지나치게 쏟아부어 시민들이 불편의 목소리가 내고 있던 시점이라 비참함은 배가 된다. 그래서 금속 노조를 향한 박사모의 행패는 여지껏 사랑하던 존재가 우상의 자리에서 끌어내려질 상황을 막아보고자 하는 마지막 발악처럼 보인다. 함부로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아이러니의 정점이라 할만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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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아직 개봉 중인 관계로 영상 자료가 따로 없다.


그래서 위 장면들은 본편과 가장 유사하게 촬영된 1인 언론 '길바닥 저널리스트'의 '박정희 탄생일 행사 참석자들에게 욕설과 폭행당한 1인피켓 시위자들' 영상에서 캡쳐했음을 알린다.


다른 하나는 대통령 박근혜가 탄핵되는 장면이다. 박사모 멤버들은 소식을 듣고 절망감에 울부짖으며 분노한다. 하지만 그들과는 반대로 박근혜는 탄핵 후 웃으며 집으로 돌아간다. 자신을 바라보는 지지자들에게 보여준 미소였다. 작품이 여기서 두 존재를 대비시킨다. 여기서 정치적 의도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다만 한 인간이 무척 무능해 보인다는 생각은 든다. 지지자들이 울고 있을 때, 어쩌면 그들이 최전선에서 사회를 이끌었던 시절을 상징하는 인물. 그 시절을 영원히 보존할 상징으로서 남길 바랐던 인물은 혼자서만 활짝 웃고 있다. 탄핵 당해 놓고! 카메라는 굉장히 '민주주의적'인 자세로 이 상황을 바라본다. 길거리에 나와 탄핵 반대, 계엄을 선포하라고 외치는 건 자유지만 그로 인한 결과도 감당해야 한다는 듯 말이다. 작품이 개입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박정희 일가의 무책임함과 무능함이 냉철하게 부각되는 순간이다.


<미스 프레지던트>는 박사모 멤버들이 이런 일을 겪었다고 해서 각자의 신념과 삶의 자세를 포기하리라는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는 듯하다. 현명한 판단이다. 진보가 있으면 보수가 있듯이 모든 사람이 하나의 판단으로 합칠순 없다. 작품이 할 수 있는 일은 누군가에겐 거대한 청산 적폐 세력 덩어리로 보일지라도 그조차 대안을 찾는 같은 사람임을 복기시키는 것 뿐이다. 다만 작품은 이 말은 확실하게 한다. 대통령이 여자(miss)였든, 잘못(mis)됐든, 신화(myth)였든, 그립게(miss) 만들었든 간에 이제는 박정희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이다.


절절함을 넘어선 광기같은 사랑을 통해 무소불위 권력의 종말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키는 것이다. 박사모의 배알을 뒤틀리게 하지 않으면서 그들이 사랑한, 한국 현대사에 큰 영향을 끼쳤던 시대를 관에다 넣고 뚜껑에 못을 박아버린다. 어떻게 판단하고 살아가든 이젠 박정희 시대의 귀환이 아니라 아예 다른 시대가 와야 한다고 말하듯이. <미스 프레지던트>는 그렇게 하늘 아래 사랑이란 소재로 표현 못 할 이야기는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사랑으로 끝장내는, 올 해의 가장 인상적인 다큐멘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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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1) 'Caruso'는 사실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부른 버전이 굉장히 유명하다. 힘이 넘치는 파바로티와는 달리, <미스 프레지던트>에서 삽입된 원곡자 루치오 달라의 버전은 날카롭고 갸날프며 다소 성마른 듯한 보컬이다. 물론 작품에는 더 잘 어울린다. (....)


2) 박정희 전 대통령이 먹던 술이 시바스 리갈일까, 로얄 살루트일까 항상 궁금했었는데 딴지일보 Anyone님 기사와 ★아이유★ 님 글을 읽고 보니, 그냥 둘 다 먹었는가 보다.


3) 올 해 11월 14일은 박정희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박근혜는 자기 아버지 탄생 100주년을 구치소에서 맞이하게 됐다.





홍준호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