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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니...?"


그녀는 박사과정 2년차를 바라보는 대학원생. 그녀를 먼발치에서 힐끗힐끗 훔쳐본 것도 벌써 10년을 바라보고 있어. 그녀의 일상이 과제, 알바, 시험으로 채워지더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젠 프로젝트, 조교, 논문, 실험 등으로 가득해지면서 얼굴 보기도 쉽지 않아졌지. 혹시 나한테만 바쁜 건가...? 어느날 나의 아련아련한 카톡에 그녀는,


"조교 하느라 졸라 바빠. x발, 최소한 시험문제는 지들이 내줬음 좋겠다아아!"


라지 뭐야.


내 너덜너덜한 가방끈으로는 적잖이 충공깽한 사실이었어. 아니, 학부생들 수업도 조교가 하고, 시험문제도 조교가 내고, 채점도 조교가 한다니, 이게 어디 정상적인 일이라 할 수 있겠어? 교수님은 뭐하세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대학원생이 마주하는 수많은 부조리 중에서 이 부분은 극히 일부이며, 내 친구는 '그나마 사정이 조금 나은' 축에 속한다는 것, 대학원을 거친 독자 제위라면 다 잘 아실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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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해. 12일, 서울지방노동청은 조교 458명에게 퇴직금이나 연차수당 등을 주지 않은 혐의로 한태식(보광스님) 동국대 총장을 검찰에 송치했어. 지난해 12월 동국대 대학원 학생회가 노동청에 고발한 것에 대한 후속 조치야. 이 사안의 핵심은, 조교 업무를 보는 대학원생을 '노동자'로 볼 것인가, '대학원생'으로 볼 것인가에 있어. 그러니까, 기존의 학교측 인식은 조교는 동시에 대학원생이니까 조교 업무 역시 학생의 '수업 과정'에 속한다는 것이지. 응, 열정페이야.


물론 조교도 업무에 따라 나뉘어. 수업을 돕는 수업 조교, 학과의 사무를 처리하는 행정 조교, 이공계 실험수업에서 뒤치다꺼리를 하는 실험 조교, 미적분학이나 수학 등의 학과에서 쓰는 연습 조교가 있지. 동국대 대학원 학생회는 근무실태 조사를 해서 다양한 사례를 모집했는데, 들여다보면 참 개판이야.


학생회가 조교 처우 개선을 위해 내건 요구안을 보면, 그동안 30% 넘게 오른 등록금에 비해 9년째 동결 중인 조교 장학금, 교수뿐 아니라 정규직 교직원에게도 치이는 샌드위치 신세, 교수와 일부 교직원이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임용권, 압도적인 업무량 등의 문제를 엿볼 수 있어. 극단적인 사례를 들어볼까. 주 60시간 초과 근무하며 월 80만 원 수령, 교수의 사적 업무 수행, 수계 법회 강제 참석(에이 씨바) 등이 있어. 뭐, 대학원생, 혹은 그 비슷한 위치의 사람들이 온갖 가혹한 현실에 놓여있다는 것은 부산대 병원 폭행사건, 인분 교수 사건 등 얼마 전까지도 떠들썩 했던 뉴스들로 인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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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동국대학원신문)



조교는 대학원생의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길이라, 가시밭길 임을 알면서도 걸어갈 수밖에 없어. 학교는 조교 업무에 대해 대가를 '임금'이 아닌, '장학금'으로 지급해 왔지. 이른바 '근로장학금'이야. 근로계약의 보호를 받지 않는 장학금이기 때문에 학생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거의 보장받을 수가 없지. 상황이 이런데도 학교와 장학재단, 그리고 교육부까지 병크를 일삼으니 학생회가 가장 먼저 노동자의 권리를 얻기 위해 고발한 것은 당연한 순서일 거야.


한편, 학교 측은 학생회와 상의도 없이 조교 제도 개편안을 내놨는데, 요약하자면 학생을 노동자로 인정해주는 대신 인원을 줄이고, 업무량은 그대로 줄인 인원에게 던지며, '행정 인턴'을 뽑아 또 다른 호구 집단을 부리겠다는 내용이야. 게다가 동국대는 고발에 참여한 일부 학생들을 회유하며 '고발 반대 확인서'를 받기도 했어. "니들 노동자로 인정해주면 장학금 회수될 거야"란 채찍과, "다음 조교 임용 때 특혜 줄게"란 당근을 동시에 내밀면서 말야.


그렇다면 대학은 왜 기를 쓰고 임금 대신 장학금을 줄까? 대학들은 전체 등록금의 10%를 장학금으로 지급해야 하는 교육부 규칙 제3조 2항의 규정이 있어. 10%의 일부를 근로 장학금으로 때워버리면 일도 시키면서 장학금 규정도 지키고 수익은 늘리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응, '인건비 따먹기'야. 게다가 장학금으로 지급하면 세전 상의 혜택도 받을 수 있고, 학생들의 노동자 지위를 인정할 경우 최저임금, 야간 주휴 수당, 연차휴무 등 당연히 지급해야 할 비용이 늘어나니 기를 쓰고 막으려는 거야.


물론 조교들의 상황은 '케바케'야. 어떤 교수를 만나냐에 따라 대학원생은 꽃길을 걸을 수도, 지옥행 급행열차를 탈 수도 있어. 그렇기 때문에 현재 조교들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정립할 수 있는 통계가 필요한데, 이 조차 전무한 실정이야. 지난 6월 21일, 민주당 노웅래 의원은 대학이 조교의 수, 임금, 업무 범위, 근로시간, 근로계약서 작성 여부 등에 관한 사항을 공개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 상정조차 되지 못했어. 그러니까, 갈 길이 졸라게 멀다는 거지. 지도 교수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대학원생들에게 일정한 법적 테두리를 만들어 주는 것 또한 절실히 필요해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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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잘 안들려요 교수놈아



나는 학부생과 대학원생이 받는 부조리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엄격하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해. 요즘은 하도 취직이 안 되니 대학원 진학률이 높긴 하지만, 대학원을 거쳐서 사회로 진출한 사람들이 미래에 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위, 예컨대 교수, 정치인, 학자 등의 위치에 오르게 될 확률이 높아. 이런 코스를 거쳐온 교수들은, 학원 생활에 힘들어하는 원생에게 "나 때는 너보다 더 힘들었어."라는 말을 한다고 해. 맞는 말이야. 그때는 정말 힘들었겠지. 어느 교수님들은 자기가 겪은 체험을 제자들에게도 전해주지 않기 위해 자신의 권한 내에서 최대한의 배려를 하는 분들도 있을 거야. 하지만 혹독한 과정을 거쳐오며 부조리한 환경이 이미 일상이 된 교수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지.


대학등록금, 대학원생 처우 등의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피해 당사자들이 수 년만 지나면 사회로 진출해 신분의 변동이 있기 때문이기도 해. 용기 있는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해도, 몇 년 지나고 시끄러운 놈들 나가면 도루묵이 되고 있지. 사립학교법을 비롯한 법적 구조 역시 외부의 감시 감독이 닿기 힘들게 하고, 대학마다 만연한 카르텔과 핵심 관료들까지 그 카르텔에 떡하니 이름을 올리고 있지. 정유라 사태가 이미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잖아. 그런 의미에서 학생회장이 바뀌었음에도 전임 학생회가 문제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자세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 청춘을 몰빵한 대학원생의 커리어는 전적으로 교수에 달렸고, 교수들의 커리어는 대학에 달렸다는 점에서 용기 내기가 쉽지 않았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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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민일보)



끝으로 이 문제를 여쭤본 모 교수님의 말을 소개하며 맺을까 해. 우리가 이들의 문제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지 깨닫게 한 말이야.



"제가 대학원생 때, '내 아들이 대학원 갈 때쯤이면 이런 문제들이 해결 되겠지'하며 그냥 버틸 생각만 했어요. 혹은 '내가 교수가 되면 이런 문제들을 꼭 해결해야지' 생각했죠. 이제 내년이면 아들이 고3인데, 학부생이나 대학원생 문제는 점점 심화하는 것만 같고, 제가 할 수 있는 일도 한계가 있더군요."



조교의 노동자 지위 보장은 대학원생의 권리를 되찾는 시작점에 지나지 않아.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또 그런 꿈을 꾸는 청춘들, 나의 친구를 비롯한 전국의 모든 대학원생이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아 사실상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길 바라며, 우리 모두의 응원과 조력이 시급히 필요한 시점이야.






빵꾼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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