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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민(유준상): 왜 사해재단과 손을 잡으신 건데요?

     부탁인데, 사모님 때문이라고 말씀하지 말아주세요.

 

구태원(문성근): 날 위해서였어. 그냥 내가 원했던 거라고. 

     잘못 들어섰구나, 처음부터 알았지만 그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이석민: 왜요..

 

구태원: 그쪽에 속해있으면 안전하거든. 사는 재미도 있고. 

 

 

SBS 드라마 <조작> 마지막회 中

 

 

 

 

 

정론직필, 그 어려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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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대한민국 대표 보수신문 대한일보 상무 구태원(문성근 분)은 최강의 탐사보도팀 '스플래쉬'팀장 출신의 전설적인 기자다. 강자에 대한 분노와 약자에 대한 연민을 품고 정의와 진실을 최고의 가치로 정진하는 언론인. 하지만 어느 순간 그는 권력을 비호하기 위해 어떤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 비정한 절대 악이 되어 모략과 암투로 여론을 조작한다.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정론직필(正論直筆). 정당하고 이치에 합당한 의견이나 주장을 무엇에도 영향을 받지 아니하고 사실을 그대로 적음. 또는 그렇게 적은 글. 많은 언론이 내건 사훈이자 가치. 이 얼마나 어려운 말인가. 기사를 쓰는 자도, 뉴스를 전달하는 자도 결국 사람이기에 정의와 진실을 보도함에 앞서 많은 유혹과 인간적인 번뇌에 직면한다. 달콤한 꿈에서 깨어 초라한 수의를 입은 구태원의 변명은 너무나 솔직하고 명료해서 인간적인 동조마저 불러일으킨다.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진다는 어느 드라마 대사처럼.

 
그래서 우리는 언론과 언론인들에게 높은 도덕성과 냉철함을 요구한다. 그들의 보는 시선, 그들이 전하는 말과 글은 촌부의 술자리 주정과는 다른 무게이기 때문이다.

 

 

 

그들도 한때는

 

 

두 젊은 기자가 있었다. 총 든 권력에 맞서 민주화의 물결이 일렁이던 때, 그들은 우리 주변의 병든 곳을 들춰내고 사회 정의를 사수하는 사회부 기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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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2월 3일 뉴스데스크 기자 김재철 리포트 <서울시경, 조직폭력배 제거 방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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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8월 5일 뉴스데스크 기자 김장겸 리포트 <주요 종합병원과 제약품회사, 납품비리>

 

 

 

젊은 그들이 품은 기자정신과 추구하던 공정사회는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평기자 시절 남긴 리포트들의 면면을 보면 그들도 한때는 불편부당의 정론직필의 가치가 자부심이었고, 자존감이었고, 존재의 이유였던 시절이 있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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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것은 그들의 삶 어느 시점에서 일어난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선택이 젊은 시절 빛나는 기록을 모두 바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한 인간이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삶을 살았음을 비난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야하는 것이 언론인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저잣거리 장삼이사의 삶과 달라야 한다. 그것이 펜을 잡은 자의, 카메라 앞에 마이크를 움켜쥔 자의 자격이다.

 

 

 

풀종다리의 노래

 

 

풀종다리라는 곤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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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목 귀뚜라미과의 이 작은 절지동물은 다른 귀뚜라미처럼 날개를 부비며 소리를 낸다. 작은 몸집으로 눈에 잘 띄진 않지만 녀석이 내는 소리는 유난히 청아하고 맑다. 풀종다리라는 이름도 그 노랫소리가 아름다워 풀에 사는 종다리(종달새)라고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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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손석희는 서른여덟이 되는 해에 책을 한 권 썼다. 그의 유일한 저서이기도 한 이 책의 제목에 낯선 풀벌레이름이 붙여졌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구십이 년 가을의 파업이 끝나고, 구치소에서 나와 회사로 돌아온 나는 며칠 후 무심코 노조 사무실의 내 책상 서랍에서 한 편의 원고를 발견하였다. <풀종다리의 노래>란 제목으로 쓰인 이 자그마한 얘기는, 읽으면 읽을수록 나를 부끄럽게 만들고 또 숙연하게도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원고를 소중한 선물로 간직하기로 했다.

 

손석희, <풀종다리의 노래> 242p 

 

 

 

 

'돌아온 동료들에게-'라는 부제로 써진 이 짧은 이야기는 부산 mbc 노동조합 동료이자 아동문학가인 배익천씨가 보낸 것이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풀숲왕국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풀무치 대왕은 풀종다리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시기하여 감옥에 가둔다. 풀종다리가 다른 풀벌레들의 사연과 애환을 노랫말에 담아 불렀던 것이 화근이었다. 풀숲에는 오직 풀무치 대왕의 꺽꺽대는 쇳소리와 그것을 흉내 내는 다른 쇳소리들만 가득했다. 풀종다리의 노래가 사라지자 풀숲은 금세 어둠으로 뒤덮였다. 두려움에 숨죽여있던 풀벌레들은 풀종다리가 그리워졌다. 어느 용기 있는 벌레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잡혀간 풀종다리를 위하여, 노래를 기다리는 다른 풀벌레들을 위하여. 어느 덧 온갖 풀벌레들의 모여 풀종다리의 노래를 크게 부르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손석희의 번뇌

 

 

 

https://youtu.be/DaitJrLZZKY

 

 

무지막지한 대왕 풀무치가 군림하던 시절이었다. 방송은 쇳소리를 열심히 흉내 내기 바빴다. 84년 입사한 손석희도 땡전뉴스 큐시트를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도 처음부터 용감했던 것은 아니었다.

 

 

1988년 8월, MBC 노조는 정부의 방송 관련법에 맞서 쟁위발생 신고를 하고 조합원 모두가 가슴에 ‘공정방송’ 리본을 달기로 결정한다. 사측은 두고 보지 않았다. 출연자들의 리본을 빼앗거나 리본을 패용한 조합원들을 방송에서 제외시켰다. 주말 뉴스데스크 진행을 앞둔 손석희도 선택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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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한 최대의 수치스럽고 기회주의적인 행동을 저지르고 말았다. 나는 그 리본을 양복 깃에 달지 않고 옷 안쪽 와이셔츠 주머니 위에 달았던 것이다. … 나는 뉴스를 시작하는 게 아니라 내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것은 참으로 괴로운 자기합리화의 싸움이었다. 화면 밖의 사람들은 모두가 내게 손가락질을 하는 것 같았고 나는 붉어지는 내 얼굴을 느낄수록 더한 당혹감에 빠졌다. 뉴스시간 내내 양복 깃에 가려 반쯤 보일락 말락했던 리본은 그대로 썩어빠진 내 양심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었다.

 

 

손석희 <풀종다리의 노래> 179.p 세상에서 가장 무거웠던 리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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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을 넘긴 나이에 아내와 아이가 있는 직장인. 그가 거기에서 번뇌를 멈췄다면 지금의 손석희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다음 방송에서 리본을 바로 달고 나왔다. 인간 손석희가 언론인 손석희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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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그는 띠를 매고 동료들과 거리로 나왔다. 6월 민주항쟁의 파도를 타고 방송사상 최초로 결성된 MBC노조는 역사적인 92년 파업에 돌입한다. 경찰은 공정방송 쟁취와 해고자 복직을 외치던 여의도 MBC 1층 로비를 범했다. 노조 대외협력간사였던 손석희는 주동자로 동료 몇몇과 함께 구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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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랑하게 뉴스를 전하던 젊은 아나운서가 푸른 수의를 입은 사진에 시민들은 MBC에서 일어난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에 힘입은 파업은 50일 만에 노조의 승리로 끝났다. 그는 영등포 구치소를 나왔다. 풀종다리들의 첫 번째 합창이었다.

 

 

풀종다리들의 눈물

 

 

아이러니하게도, 언론의 힘을 처음 증명한 이는 나치의 선전장관 괴벨스였다. 그가 대중을 지배하기 위해 처음 했던 일은 전 국민에게 라디오를 공급하는 것이었다.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 다음엔 의심하지만 되풀이 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 괴벨스가 남긴 악마적 교훈은 정의롭지 못한 권력자들에게 황금률이 되었다.

 

 

전두환 정권하에 자행된 TV 왜곡 보도는 저열함의 극치였다. 독재 권력의 입안의 혀였던 방송은 민주화를 열망하는 모든 이들의 경멸의 대상이었다. 결국 사건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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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6월, 명동성당 6.10 항쟁을 취재하던 MBC 취재차량은 성난 시민들에게 몰매를 맞는다. 차 안에 있던 신입 기자는 공포감과 수치심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MBC 보도국 최일구 기자였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때 6월 17일쯤 기억이 됩니다.
성당위로 올라가는데 “야! MBC다. 저 새끼들 다 죽여버려!” 내 르망차가 다 망가졌어요.
 

요번에 FTA, 작년에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되었을 당시에 우리 후배들이 손찌검 당하고 그랬단 이야길 들었을 때, 그때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알았어요.
우리 후배들이 어떻게 대우를 받고 있고, 그 분위기가 어땠을 지를 나는 알고 있어요.

 

 

최일구, 2012년 MBC,KBS,YTN 방송3사 공동파업 선포식

 

 

 

 

92년 파업이 승리했지만, 손석희가 스튜디오에 돌아왔지만, 이후 등장한 다양한 변종 풀무치들 앞에 풀종다리들은 여전히 약한 풀벌레였다. 부정한 권력은 괴벨스 교훈을 충실히 따랐다. 집요하고 잔인했다. 역사는 비극을 무심히 반복했다.

 

 

 

https://youtu.be/vk1bNGhXMSk

KBS 강나루기자의 눈물(2014.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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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만천하에 드러난 2017년 1월 1일, 청와대는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카메라도 녹음기도 금지한 간담회 같지 않은 간담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 7시간, 최순실 국정농단에 관련된 모든 것을 부인했다. 대통령 직무가 정지 된지 23일 만에,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변론을 이틀 앞둔 날에 대통령의 변은 '완전히 엮은 것' 한마디가 전부였다.

 

 

언론학자 강준만은 이 시기를 이렇게 평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엽기의 극을 달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와중에서 ‘전문가적 정체성’을 말하는 것 자체가 사치스럽다는 생각을 할 사람이 많았을 것 같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고급 관료에서부터 전문가 직업(기자, 교수, 의사 등)에 이르기 까지 ‘전문가의 타락’을 넘어 ‘전문가의 죽음’을 웅변해준 사건이었으니 말이다.

 

 

강준만, <손석희현상> 261p

 

 

 

 

 

그날 밤, 두 공영방송은 일방적인 해명을 전달하는 데 전파를 채웠다.

 

 

 

 

예고 없이 기자단과 간담회를 가진 박 대통령은 세월호 7시간 의혹에 대해 적극 해명에 나섰다.

 

2017년 1월 1일 MBC 뉴스데스크

 

 

박 대통령은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처음으로 조목조목 반박했다.

 

2017년 1월 1일 KBS 9시 뉴스

 

 

 

 

우리는 그때, 언론인의 사명이 소멸된 암흑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간신히 노래를 이어 부르던 풀종다리들은 회사 밖으로, 스케이트장으로, 주조정실로, 사회공헌실로, 홍보부서로 뉴스를 할 수 없는 곳으로 쫓겨났다. 부정한 권력의 끝자락에서도 화면에는 풀무치의 쇳소리가 떠날 줄 몰랐다. 

 

 

2017년 풀종다리의 노래

 

 

2017년 1월 4일 밤, MBC 기자 3명은 <MBC 막내기자의 반성문> 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린다.

 

 

 

https://youtu.be/3pJanlOMthc

 

 

 

왜 진작 나서서 이 사태를 막지 못하고 이제 와서 이러냐고 혼내셔도 좋습니다. 일선에서 취재한 우리 막내 기자를 탓하셔도 좋습니다. 다만, MBC가 다시 정상화 될 수 있도록 욕하고, 비난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주십시오.

 

 

 

 

해고 등 중징계를 감수한 젊은 풀종다리들의 용기였다. 2012년 파업 실패로 무력해졌던 MBC안에 새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MBC 기자협회 소속 기자 90여명이 10일 오후 <MBC 막내 기자들의 경위서, 선배들이 제출합니다>라는 제목으로 후배들을 지지했다. 이와 같은 구성원들의 지지와 동참은 16개 지역 MBC 계열사로 퍼져나갔다.

 

 

https://youtu.be/OM0BmottYws

 

 

 

독립된 나라에서 독립운동 하듯 산 사람들

 

 

지난 9월 9일 광화문, MBC KBS 총파업 선언 이후 첫 돌마고(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 불금파티 현장 취재 중 MBC 김민식 PD를 만났다. 저녁 행사를 앞두고 그는 조금 상기되어있었다. 그에게 2012년 이후 다시 한 번 파업에 임하는 소감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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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기에 오니 1월 광화문 촛불시위가 기억납니다. 무대에 MBC노동조합 민실위(민주방송실천위원회)간사가 박근혜정권의 언론장악실태에 대해 발언을 하러올라갔는데요. 간사가 ‘MBC 누구입니다’ 말하는 순간 사방에서 욕이 터져 나왔습니다. “엠병신! 엠비씨는 꺼져라” 하고요. 저는 그때 사람들 속에 있었습니다. 사실 민실위 간사는 노조 안에서도 공정언론을 위해 가장 앞장서서 싸우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런데 MBC 기자라는 이유하나 만으로 이렇게 욕을 먹는 것을 보고 ‘아 우리는 이제 진짜 끝났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시민들에게 그렇게 미움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지난 5년간 MBC는 망가질 대로 망가졌으니까요. 그런데 그 광화문에, 반년 만에 시민들과 함께하는 이런 집회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저 감개무량할 뿐입니다. 지금도 MBC를 미워하는 분들도 계시고, 5년간 뭐하다가 이제 나왔냐 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그래도, 다만 몇 분이라도 오셔서 파업을 시작하는 저희 조합원들에게 힘을 실어주신다면 그 자체로 큰 감동일 것 같습니다.

 

 

 

 

 

지난 월요일, MBC 김장겸 사장의 해임이 결정됐다. 13일 MBC 관리·감독 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는 야당추천 인사 일부가 불참한 가운데 제8차 임시 이사회를 열어 김 사장의 해임안을 가결했다. 공영방송 정상화를 목표로 총파업에 돌입했던 9월4일 이후로 71일 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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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에서도 풀무치 가신들의 저항은 집요했다. 자신들이 자행했던 공영방송 장악과 언론탄압이라는 단어를 얄팍한 보호막 삼아 뒤에 숨는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했다.  

 

 

 

하지만 순리대로, 다시 돌아왔다. 풀종다리 하나는 작은 풀벌레지만 그들의 노랫소리는 풀숲을 울려 깨우는 힘이 있었다. 

 

 

 

 

 

 

<7년: 그들이 없는 언론> 해직 언론인들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오늘 개봉했습니다. 누군가는 암과 싸우고 있었고, 누군가는 다른 생업을 찾아냈고, 결국 아직 돌아갈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이들은 또 다른 누군가의 말처럼 ‘독립된 나라에서 독립운동 하듯 살아가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 모든 언론이 최소한 나는 애완견은 아니라고 외치고 있는 지금, 진정한 의미에서 길들지 않은 사람들의 독립운동은 언제 끝날 것인가.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손석희, 2017년 1월 12일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

 

 

 

 

29년 전, 리본을 고쳐 달던 선배의 애정 어린 응원대로, 그들의 독립운동은 끝이 났다. 하지만 지난 역사가 경고하듯 이것이 끝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불편부당의 정론직필, 그 어려운 사명을 힘껏 지켜내지 못한다면 풀무치의 쇳소리는 언제든지 되살아날 것이다. 풀종다리들과 시민 모두가 이뤄낸 이번의 독립을 지켜 내야할 이유다.

 

 

 

 

 

근육병아리

 

편집 : 딴지일보 인지니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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