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08. 26. 화요일
독일특파원 타데우스
국제늬우스 지난 기사 |
이번 주에는...
겨우 며칠 잠잠하던 이스라엘 사태는 가자지구 폭격으로 또다시 인명의 희생을 초래 하였다. 이 이스라엘을 막을 자는 누구이며, 정말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전부 죽어야만 이들(이스라엘)이 만족할는지 욕만 나오는 상황이다. 서방의 여러 강대국들도 이스라엘의 뒤를 봐주고 있는 미국의 눈치를 보는 건지 이 사안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개입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당사국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풀고자 전 세계가 유엔이라는 조직을 만들었지만, 이상하게도 유엔은 필요할 땐 항상 안 보인다.
지난 14일은 이집트의 Rabaa 유혈사태 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작년 8월 14일 시위대를 강제 해산하는 과정에서 600명 이상이 사망한 사건을 기리기 위해 이집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여기저기에서 추모 시위가 이어졌다. '박정희 가자 전두환 온다'고, 이집트에선 정부를 군부가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이후 시위자들에 대한 군부의 폭압이 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감옥은 시위대로 넘쳐나고, 넘쳐나는 인원들은 바로 사형으로 직행하는 끔직한 상황. 법원에서는 단 몇 분 만에 수백 명의 사형 판결이 내려지고 있다고 한다.
세상에 참 많이 필요한 노란 리본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뷔르츠부르크라는 도시로 가는 고속도로인 아우토반 A3에서 도로 공사를 하던 인부가 땅속에 파묻혀 있던 폭탄을 발견했다. 경찰이 출동하고 즉시 반경 1km를 통제했다고 한다. 전문가의 의견은 이 폭탄은 2차대전 당시 연합군의 폭탄으로 아직 폭발 위험성이 너무 커서 해체가 불가능 해 그냥 폭파해 버리는 게 안전하다는 것이었다. 폭탄의 무게만 500kg에 달하는 이 거대한 폭탄이 터지는 순간 수 킬로 밖에서도 주민들이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2차 대전 때 사용된 폭탄이 아직도 기능한다니... 역시 이래서 다들 '미제미제' 하나보다. 독일에서는 아직도 가끔 2차 대전 때 불발된 연합군의 폭탄이 종종 발견되곤 한다. 몇 년 전 필자가 다니던 학교에서도 수업을 듣든 도중 건물 밖 공사현장에서 폭탄이 발견되어 수업 중지하고 멀리서 구경하던 알흠다운 추억이 있다. (물론 너무 멀어서 보이지 않았지만 .. ㅡ.ㅡ 무튼 당시엔 수업을 안 하는 자체가 좋았다. 데헷~ )
미제의 위험 위엄!!
그 외에도 미국의 퍼거슨 사태, 남수단 내전 등 많은 일이 있었지만...
이번 주에는 스파이 이야기다.
영화를 통해서 보는 스파이는 음... 좀 뽀다구가 난다. 각국의 비밀 정보국은 테러 단체에 맞서 지구인을 (자국민도 아니고 무려 지구인이다)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그 곳에서 일하는 비밀 요원들은 총도 잘 쏘고 무술도 잘하고 거기에 섹시하고, 여자도 잘 꼬시고, 머리도 좋고, 촉도 좋고, 컴터도 잘하고... 아무튼 내가 못 가진 것들을 다 가지고 있는 듯하다. 신발에선 무기가 튀어 나오고, 미사일이 나가는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그런 요원들이 가득한 영화판을 떠나 현실로 돌아오면 비밀요원들이 하는 일들은 그닥 낭만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아니 추하지만 않아도 다행이지 싶다. 댓글을 '투닥투닥', 추천과 반대를 '클릭클릭'.
내 상상 속 비밀 요원과...
한국의 흔한 국정원 정규직! 추천과 반대를 동시엣...
에드워드 스노든으로부터 터져버린 미국의 전방위적 스파이 활동이 화제가 된 지도 어언 1년이 훌쩍 지났다. 작년에 이미 한번 쓴 바 있지만 까먹었을 너님들을 위해 자세한 내용은 <링크>로 대신하자.
이 사건에서 필자같이 컴퓨터는 야동 뉴스 검색 이외의 용도로는 거의 쓰지 않는 사람들에겐 생소한 용어들이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 일단 프리즘 (PRISM)이니 뭐니 하는 단어들도 이해를 못 하겠지만, 그보다 인터넷이 얼마나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지도 실질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각국의 정보국은 프리즘(미국)이나 템포라(영국) 같은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우리가 인터넷에 쓰고 있는 글들을 각 기업의 도움을 받아 실시간으로 감시 및 저장해 놓을 수 있다. 이에 협조하는 기업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뿐만 아니라 모두가 안전에 대해서는 믿고 산다는 애플도 예외는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저장된 내용 중에 각국의 정보요원들은 엑스 키스코어 (X Keyscore)라는 검색 프로그램을 통해서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실제 2012년 이러한 정보수집을 바탕으로 한 여행자가 미국 방문 전에 트위터에 "오예~ 나 미국간다~~ 내가 가서 다 죽여주겠으~"라고 썼다가 테러리스트로 찍혀 입국이 거부된 사례도 있었다.
destroy(파괴하다)라는 단어를 썼다고 입국거부
슬랭에서 destroy는 '신이 나게 놀다’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트윗에 쓴 것이 감시당한다? 생각만 해도 무섭다.
딴지의 수많은 트잉여들 조심하시라.
대략 이런 시스템으로 우리는 감시당하고 있다. 너님의 야동 취향까지도 쟈들이 맘만 먹으면 다 알아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가끔 취미에 맞지 않더라도 여러 가지 장르를 두루 보시던가, 아님 마사오찡처럼 아예 취향을 분석할 수 없게 많이 보시던가.
무튼 미국이 전 세계를 졸라게 감시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고 다른 나라에서는 쉬쉬하며, 이 사건을 크게 다루지 않고 스리슬쩍 넘어갔지만, 독일은 달랐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 총리를...ㄷㄷㄷ' 옷도 꼴랑 세 벌 밖에 없다는 공대 나온 여자 메르켈 총리를 감시했다는 것에 분개한 국회의원들이 꾸준히 독일 내 미국 정보기관들의 뒤를 파고 다녔다고 한다.
미제 독수리의 위엄
독일 국회의 여러 노력으로 미국 정보기관이 우방국에 안보라는 명목하에 얼마나 깊이 침투해 있는지가 나름 빙산의 일각(?)만큼 드러나게 되었다. 미국의 정보기관이 독일에서 무수한 양의 정보를 수집해서 본국으로 전달했고, 이 과정에서 일반 시민들뿐 아니라 독일의 총리까지도 도청했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것도 독일 총리의 핸드폰을 타겟 삼아 직접 도청을 했다는 것. 이거 웬만하면 하기 힘든 일 아닌가 싶다. 일설에 의하면 베를린 총리실 대각선 방향으로 미 대사관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커다란 안테나가 일정 지역에서 나오는 모든 통화를 다 잡아낸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안테나는 총리 관저를 향해있고...
저 가운데 높은 건물이 총리실이고, 그 대각선 방향으로 어디쯤에 안테나가 똿~
이후 독일 내에서 NSA에 대한 수사는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졌고 그러던 와중에 미국의 정보기관이 독일 연방 정보부(이하 BND: Bundesnachrichtendienst)의 요원들을 포섭해서 이중 스파이 활동을 시킨 것이 드러나게 되었다. 독일 국회와 여론은 이에 대해 분노하며 독일의 정보를 외국으로 팔아넘긴 비밀요원들을 비난했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는 "충분한 사실적 근거를 확보하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결정할 것"이라며 초반에는 뭔가 밍숭맹숭한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거기에 더해 독일과 미국 두 나라가 정보기관의 역할에 대해 "대단히 다르게 접근하고 있다"며 NSA 도청파문이 작년에 불거진 이래 주장했던 것처럼 "동맹국 사이에는 무엇보다 확고한 믿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동맹국을 상대로 한 스파이 행위는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라고 비판하면서 "우리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기에 중요한 일에 중점을 둬야 한다"며 시리아 사태와 테러대책 등을 우선해 다뤄야 하고 동맹국 간 신뢰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낼만하다. 그런데 화를 안 낸다. 이 무슨 포커페이스인 게냐? 아니면 한반도 미대륙 신뢰 프로세스 가동이냣?
아무튼 제대로 화를 못 내던 안 내던 독일도 이중스파이가 계속해서 드러남에 따라 결국 태도를 바꿨다. (BND요원 뿐 아니라 국방부 요원도 미국에 정보를 넘겼다고 하니, 역시 돈이면 안되는 게 없는 세상이긴 하다.)
독일을 거의 닭수리로 만들... 읭?
급기야 독일에 있는 CIA 지부장을 추방하기에 이른다. 두둥~
원래부터 미국과 독일의 정보국은 친밀하다고 알려졌다. 2차대전 이후로 마치 일본과 같이 자위권만 놔두고 거의 해체 되다시피 했던 독일의 군 역시 현재까지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연방 방위군(Bundeswehr)이라는 이름을 쓰며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무튼 이 사건에 대한 반대여론이 높아지자 정부는 일체의 통상적인(스무스한) 외교적 조치를 생략한 채 베를린 주재 CIA 지부장에게 퇴거령을 내렸다. 거대한 미 제국의 CIA 지부장을 추방한다는 거 2차대전 이후 친밀한 관계를 이어오던 독일과 미국의 사이에선 감히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아니 사실 독일과 미국뿐 아니라 미국의 우방국에 놓인 그 어떠한 나라라도 감히 하기 힘든 행위이다. 한국의 경우로 생각해 보자. 미국이 "전작권 가져가~ 가져가~ " 해도 "좀만 더 해줘~ 좀만 더 해줘~" 하는 판국에 미국이 스파이 짓좀 했다고 감히 그레이트 슈퍼 울트라 메가 파워 미국의 CIA 지부장을 쫒아내다니!
그렇게 독일 내에서는 미국의 전방위적 스파이 행위에 대한 비난 여론이 점점 늘어났고 메르켈 총리도 이와 관련해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그래 아무리 친미 친미 하더라도 할 말은 하고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던 거다. 쓰담 쓰담~
메르켈은 못 말려
메르켈 본인이 직접 맥주를 챙기십니다.
남에게 폐 끼치는 일은 안 하겠다는 저 심성.
이럴 때는 메르켈도 정말 말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
지난 16일 슈피겔지의 기사에 따르면 BND(연방 정보부: made in Germany 국정원)가 약 1년 전부터 독일의 나토 동맹국인 터키를 감시해 왔다는 것이다. 보도가 된 지 며칠이 지나자 이제는 메르켈 총리 이전 이미 슈뢰더 총리 시절부터 터키는 독일 정보당국의 주요 감시 대상국가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도 보도되었다.
터키와 독일의 미묘한 관계를 볼 때 독일이 터키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독일에 사는 터키인은 대략 300만 명이다. 독일 인구 8,000만 중에 대략 10%가량이 외국인이고 그중 정말 많은 수가 터키인이다. 오죽하면 터키 선거 때 후보가 독일에 와서 유세하고 간다.
지리적으로도 터키는 독일에 중요하다. 아니 비단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 있어 터키는 지리적으로 길목에 놓여 있다고 보면 된다. 독일에게 있어 터키는 중동 지역을 비롯해 북부 아프리카 지역에 관한 외교적 문제가 있을 때, 그 중간 위치에서 나름대로 경제력도 있고 문화적으로도 중간 지점에 있어 외교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국가 중 하나이다. 거기에 더해 터키의 민주주의 역시 아직은 완전한 모습을 갖추지 못하였고 종교적으로도 유럽과 그리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있는 터라 중요하지만, 마음대로는 안되는 그런 국가라 할 수 있다. 이 정도면 독일이 터키에 관해서 관심을 가질만한 이유는 충분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 터키를 대상으로 독일은 위성을 이용해 특정 주파수를 사용하는 전화를 도/감청하였고 이는 BND의 필터링을 거쳐 상부에 보고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미국 정치인들이 터키 방문 중 개인적으로 전화한 내용을 입수하게 되었다.
*도청 & 감청: 도청은 불법, 감청은 수사기관의 허가를 받은 합법적인 행위이지만,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몰래 행하는 행위는 도청인지? 감청인지? 모르겠다. 따라서 필자는 뉘앙스가 안 좋은 도청이란 단어를 주로 사용하겠다.
BND의 설명에 따르자면 2009년 작성된 임무 규정(Auftragsprofil)에 따라 터키는 감시 대상국에 포함되었다고 한다. 이 임무규정은 4년에 한 번씩 갱신되는데 총리실, 국방부, 외교부, 경제부가 협의를 거쳐 어느 국가를 감시할지를 결정한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발 NSA 사태의 여파로 2009년 작성된 이 임무규정은 갱신되지 못하였고, 2011년 부분 수정된 규정을 현재까지 4년이 넘게 사용되고 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바로 이 감시망에 올해 존 케리 미국 현 국무장관이 터키에서 전화한 내용이 포착되었고 그들은 이를 감지하고 바로 폐기했다고 발표했다. 발표로는 BND의 규정상 동맹국 인사의 전화 내용이 얻어걸릴 경우 이를 바로 폐기하도록 규정되어 있다고 독일 정부는 호기롭게 발표했다.
하지만 슈피겔지가 여기에 딴지를 걸고 넘어졌다. 작년까지 국무장관을 지내던 힐러리 클린턴의 전화 도청 기록이 (내용과 전화 상대가 모두 기록된 상태로) BND 상부에 보고가 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터키를 방문 중이던 힐러리 클린턴은 전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과 시리아 문제에 관해 통화하고 있었는데, 이 모든 내용이 도청되어 BND 상부로 전달된 것이다.
머여! 내 통화를 엿들은 거시여!!!
이에 독일은 땀을 삐질 흘리며 힐러리 클린턴이 사용한 전화의 주파수가 테러리스트들이 주로 사용하는 주파수 대역과 같아서 우연히 자신들에게 걸려든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뭐 주파수 얘기도 사실 그닥 신뢰가 가지 않지만, 그보다 더 웃긴 것은 '친구 사이에는 엿듣지 않는 것'이라며 불같이 화를 내던 메르켈 총리의 독일이 정작 자신들이 엿들은 내용은 삭제하지 않고 상부로 보고했다는 점이다.
정부의 발표로는 독일국회의 국회의원 중 1/8이 국가 정보기관을 감시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들은 7월에 이미 현재 언론을 통해 수면으로 떠오른 이 사안을 보고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이 사안을 공개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게다가 현 국회는 이제 9개월 남짓 되었으므로 그들이 속속들이 그간의 사정을 정확히 알지 못했을 가능성도 언론을 통해 점쳐지고 있다. 현재 구글에는 BND의 감시 덕분에 중동의 핵 미사일을 견재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떠돌고있다.
내막
7월에 국회의원들에게 보고된 내용으로는 마르쿠스 R.이라는 BND 소속 비밀요원이 독일 정부로부터 이중 스파이 혐의로 내사를 받게 되었다. (미국이 그동안 얼마나 독일 정보 요원들을 포섭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CIA 지부장이 쫓겨나도 사람들은 차고 넘치는 듯하다.) 경찰은 그의 집을 압수수색 했고 (그는 제임스 본드와 같은 화려한 무술로 경찰 나부랭이들을 때려 눕히고 도망치진 못했으며) 그의 집에서는 USB 하나가 발견된다. 그 안에는 약 218개의 문서로 이루어진 서류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 안에는 터키에서 있었던 미국 고위층의 도청 관련 내용과 터키가 독일의 감시국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는 내용 등 독일 정보부의 활동에 대한 문서들이 쏟아져 나왔다. 조사 당국은 이 문서들이 이미 미국으로 넘어갔다고 발표했으나 독일 언론을 통해 이 사건이 수면으로 떠오르기 전까지 독일도 미국도 모두 조용했다. 역시 오바마 횽은 여유가 넘친다.
그 안에 어떠한 내용이 더 들어있었는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미 이러한 사실이 밝혀진 만큼 그가 넘긴 자료의 내용과 그간의 BND의 활동 역시 더 공개될 여지가 있다고 보면 되겠다.
아무튼 이런 스파이는 아니었던 듯.
독일 언론들도 갖가지 추측과 사설을 실으며 현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일단 독일 정부의 혹은 메르켈 총리의 공식적인 입장은 한 마디로 '입을 다물고 쌩까시는 중' 즉 노코멘트 하고 계신다.
그렇게 미국의 스파이 행위를 비난하던 독일이 정작 자신들 역시 해외에서 스파이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국 언론에 의해 폭로된 것이다. 이렇게 민망할 땐 쪽팔려서 정말 손녀딸을 안고 팔짝팔짝 뛰고 싶은 심정이다. 이 전형적인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인 상황에서 독일 정치인들도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일단 일부 의원들은 이에 대하여 옹호론을 선보이고 있다. 모든 국가는 첩보 활동을 하고 있으며 현재 터키처럼 지리적 중요도와 유럽 출신 테러리스트들의 환승역이 되고 있는 나라가 감시대상에 포함된 것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언론을 통해 나오는 이슬람 테러리스트 중 실제 상당수가 유럽에서 낳고 자라난 2세들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은 중동 현지에서 지하드 성전 세력들과 결탁하고 유럽 내에서 테러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터키를 통해 들어오는 수많은 마약이나 밀수품 혹은 불법 체류자들을 밀항시켜주는 루트를 감시하기 위해 독일 내부의 정보요원들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이번 BND 사건은 미국 NSA 사건과 구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NSA는 독일 총리와 일반인들의 인터넷 사용기록까지 무작위로 수집하여 슈퍼 초 울트라 메가 빅 데이터를 만들고 그것을 자신들의 이익에 맞춰 사용했지만, 독일 BND의 경우에는 위성을 통해 특정 주파수대의 신호만을 잡아서 분석하는 정도밖에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야당의 반응은 조금 다르다. 지난 주말 국회 정보 위원회 소속인 크리스티안 슈트뢰벨레 의원(녹색당)과 안드레 한(좌파당)의원은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사안에 대한 불쾌함을 드러냈다. 그들은 BND가 미국의 정치인들을 타국에서 감시하고 나토 동맹국인 터키를 상대로 도청한 것을 얘기하며 메르켈 총리가 지난 10월에 했던 이야기인 "친구들 사이의 스파이 행위는 일어날 수 없다"는 말을 언급했다. 미국의 CIA 지부장까지 정치적 부담을 안고서라도 국민의 여론이 안 좋아지자 추방을 강행했던 메르켈 총리가 정작 나토 연합국인 미국과 터키에 대해서 이러한 감시작전을 펼쳤다는 것을 도덕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독일의 야당 SPD의 롤프 뮷체니히 의원은 이번 사건에 대해 "스파이 행위의 규모와 목적에 상관없이 양국 정부의 불신은 커질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미제도 알아주지만 기술하면 독일 몰라?
이에 대해 정부 대변인은 월요일 기자들 앞에서 CIA 지부장 쫓아낸 사건과 이 사안을 연결해 나오는 질문에 대해서 당시의 요점은 독일에서 일어난 NSA의 통신 도청에 한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번 사안은 국회 정보위원회 의원들에게 이미 7월부터 부분적으로 알려진 사항이라고 대답했다. 즉 미국과 독일은 친구라서 그런 짓 하면 안 되고 독일과 터키는 그냥 동맹국일 뿐이니 해도 된다는 것이다. 이게 말이여 당나귀여?
언론은 이번 사태를 두고 외교적 이중 실패라고 분석하고 있다. 독일은 현재 우크라이나 사태와 이라크 북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ISIS 사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끝날 줄 모르는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오바마와 푸틴을 그나마 중재할 수 있는 지리적 경제적 위치에 있는 독일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특히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가 어제 우크라이나로 직접 날아가기도 했고 말이다.) 뿐만 아니라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자치구역에도 1차로 생필품과 무기가 아닌 군용물자 등을 보냈으며 2차로 각종 무기를 지원해주느냐 마느냐를 두고 토론을 한창 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뜬금없이 터키와 미국, 즉 이번 사태에 관해서 긴밀히 협력해야 할 두 나라를 배신 배반하는 행위가 뽀록 났으니 외교적으로 부끄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을 언론들은 지적했다.
반응
하지만 정작 미국의 반응은 의외로 조용하다. 사실 미국 정부는 이미 베를린에서 CIA 지부장이 쫓겨나던 그 시기, 아니 그 훨씬 이전 부터 자신들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얘기해왔다. 오바마 역시 공개적으로 "자국 정보국이 당연히 다른 나라에 대해서 첩보행위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사과할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는 어느 나라나 당연히 한다고 얘기했다. 에드워드 스노든에 의해 밝혀진 바대로 워싱턴은 엄청나게 많은 양의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해서 누가 친구이고 누가 적인지 판별한다는 것 역시 인정했다. 거기에 덧붙여 미국인들 역시 항상 얘기해 왔다. "너희도 그런 거 하잖아!"라고... 즉 "왜 늬들만 깨끗한 척 해!"라고 얘기해 왔는데, 마침 시기적절하게 독일의 BND 뻘짓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이고 미국의 입장에선 나이수 타이밍 되시겠다.
그리고 이번 사건이 터지자 마치 미국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별다른 공식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어서 와 ~ 뽀록난 건 처음이지?
물론 이번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국과 독일이 비슷한 짓을 한 것은 맞지만, 그 질과 양은 확실히 다르다. 게다가 미국이 했던 방식처럼 다른 나라 요원들까지 대거 섭외하여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나라는 아마도 전 세계에 미국 하나뿐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미국이 맘만 먹는다면 그리고 이 일로 독일을 비난하고자 한다면 독일은 엄청난 정치적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 미국이 정치적으로 이 사안을 언론을 통해 확대하고 미국 내 여론이 독일을 비난한다면 독일정부가 과연 이를 감당하고 해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왜 우리 자주 보던 장면 있지 않은가... 힘센 새눌당이 큰 잘못을 저질러도 야당의 작은 잘못으로 퉁치는 그런 식의 그림 말이다.
미제국이 이러한 반응에 대해서 독일정부는 상당히 우려하고 있다. 그 때문에 독일은 힐러리 클린턴이나 존 케리의 전화는 그저 우연히 같은 주파수여서 얻어걸린 내용이라는 것을 상당히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독일이 미국에 관해서 열심히 해명하고 있는 동안 정작 터키에 대해서는 특별한 사과가 없다. 터키 참 안습이다.
터키의 첫 반응은 일단 ‘불쾌하다’ 였다.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고 나름 별장에 내려가 휴가를 즐기던 에르도안은 사건에 대한 뉴스가 언론에 나온 직후 앙카라로 돌아왔다고 전해진다. 터키의 국회의원도 언론에 나와 메르켈 총리의 발언을 인용하며 "친구끼리는 엿듣지 않는다고 했으면서, 친구와 파트너는 다른가 보죠? 아무래도 터키는 독일에 파트너 이상은 안 되는 것 같군요."라며 메르켈 총리를 비꼬았다. 이 사건은 현재 터키 정부의 의도에 따라 충분히 정치적인 사태로 문제가 이어지고, 터키와 독일 양국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
이미 데일리 바사(Daily Basah)같은 터키 언론에서는 이 사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2009 년 4월 에르도안에 의해 터키 정보부 MIT의 수장과 외무부 장관이 임명되었다. 그들은 에르도안의 명에 따라 감옥에 수감되어있는 터키 내의 소수민족인 쿠르드 족의 과격단체 쿠르드 반군 PKK (쿠르드 반군이지만 신문에서는 이를 불법조직이라 소개하고 있다)의 수장들과 접촉에 들어갔다. 이를 오슬로 프로세스라고 부르며 이는 터키정부가 그간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쿠르드족과의 갈등 (이라 쓰고 핍박이라 읽는다)을 끝내려는 시도로 신문은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터키 내의 정치가 안정되길 바라지 않는 독일이 이때를 기점으로 터키를 예의 주시하고 터키를 감시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독일이 터키 내의 정치가 막장으로 흘러 '터키라는 국가가 망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현재 터키의 정세가 갈수록 막장으로 치달은 것은 부패와 비리 그리고 국민에 대한 폭압의 결과이지 독일의 공작이라 생각하기는 힘들다. 그 외에도 독일에서 이렇듯 스스로 불리할 수 있는 치부를 언론을 통해 드러낸 것에 대해서도 터키에게 '우리가 다 지켜보고 있으니 조심해~' 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주기 위한 제스쳐라는 것이 이 신문의 설명이다.
뭐 거의 논조는 조선 일베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보이지만 터키 역시 언론의 자유가 바닥을 치고 대형 언론들은 전부 권력의 강아지인 상황에서 그리 명쾌한 기사를 바라는 것도 무리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터키는 이 사건에 대단히 화를 내며 이라크 북부 ISIS 사태와 관련하여 지원물자를 보내려던 독일 군용 비행기의 터키 착륙을 금지하기도 했었고 독일 대사를 불러들여 항의하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
터키 입장에서는 이분의 발언이 생각날 듯 하지만...
저런 발언은 더러우니 개드립도 자제를...
하지만 독일의 언론과 정치인들은 대부분 터키에 대한 감시는 어느 정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정보특위 간사인 크리스티안 플리젝 사민당 의원은 터키가 BND의 정보 수집 지역에 포함되는 것은 이해한다고 얘기했다. 그는 또한 나토 동맹국인 터키와 독일의 관계는 독일, 미국, 프랑스의 우정과는 차이가 있다고 발표했다. 게다가 국회의 조사에서도 터키라는 동맹국에 대한 스파이 행위는 저 뒷전으로 밀려나 있고 소위 미국발 <얻어걸린 통화>들에 대한 전방위적인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독일의 태도는 무엇보다 터키에게 엄청 매정하게 들릴 수 있다. 특히 이제 막 대통령이 된 에르도안에게 말이다. 그는 유럽연합에도 가입하고 싶어 하고 유럽과 중동을 연결하는 길목에서 많은 경제적 이익도 노리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총리이던 시절부터 독일 정치인들에게 안 좋은 정치인으로 낙인이 찍혀 있는 상태였다. 그런 자신의 위치를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씁쓸하게...
아오... 씁쓸하다.
하지만 이제 그가 이 사건을 계기로 당당히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될지는 미지수다. 실제 SPD의 외교 부분을 담당하는 뮷체니히는 그를 가리켜 "매우 개인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이라고 비난을 한 적도 있다. 그가 앞으로 독일과의 관계에서 "깨갱"으로 대응할지 "으르렁"으로 대응할지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터키의 반응에 대하에 대해서도 독일 정부는 역시나 특별한 반응을 내놓고 있지는 않다.
스파이 활동이라는 것이 과거 007의 제임스 본드나 한국의 간첩 북파 공작원처럼 고도의 훈련된 요원의 능력으로 사람을 만나고 정보를 얻고 임무를 수행하는 이런 낭만적인 시대가 아니라 컴터 앞에 앉아서 투닥투닥하며 댓글 쓰는 감시하고 위성을 통해 정보를 캐내는 방식으로 바뀐 21세기에, 우방국에 대한 감시행위는 충분히 비난을 받을만한 일이다. 설령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자국의 안보를 위해 한다고 변명을 하더라도 모든 국제 관계에서 돈과 기술력이 있는 강대국은 스파이 행위를 통해 계속해서 더 큰 우위를 선점하는 소위 기울어진 운동장의 형상이 되고 마는 것이다.
물론 도덕적인 면을 떠나서 법률적으로도 스파이 행위는 정당성이 없다. 이러니 그렇게 미국을 비난하던 독일은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득 - 실 - 실
결론적으로 이번 독일의 스파이 뽀록 사건을 통해 미국은 나름 자신들의 스파이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얻게 되었다. 우려되는 것은 각국의 정보전에 대한 스파이 행위뿐 아니라 스노든이 주장하던 '일반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분류하고 모든 이들의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하여 개인을 감시하는 행위' 마저도 한꺼번에 퉁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이 그동안 해왔던 NSA를 통한 불법적인 일에 대해 그 누구도 사과나 재발방지를 들은 기억은 없지 않은가. 게다가 그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움직임 역시도 본 적은 거의 없다. 그들은 지금까지와 같이 앞으로도 계속 할 수 있는 명분을 이 기회를 통해 조금 더 쌓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반면 독일은 별것도 아닌 정보를 (그들의 말에 따르면 아주 우연히) 얻었겠지만, 미국과의 관계 그리고 터키와의 관계에서 한발씩 물러설 수밖에 없는 처지로 돌변했다. 터키는 그냥 '아 다들 우리를 그냥 호구로 보는구나' 라는 확인을 했다.
독일은... 행동이 되게 달라요.
자, 이 이야기가 한국에서 일어났다고 가정을 해보자. 한국이 미국의 입장일 리는 절대로 없으니까… 그건 건너뛰기로 하고 만약 우리가 독일의 입장에서 어떤 스파이 행위를 했을 때 그것을 자국 언론이 (뭐 대부분은 진보 매체겠지만.) 까발리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 언론은 진보와 보수를 떠나 <국익>에 위배되는 행위를 했다며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또한 법정에서 역시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부서졌을지 모른다. 우리는 국정원뿐 아니라 국방부 청와대 등의 정부기관이 하는 일에 대해 기밀이라는 이유로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살고 있다. 그들의 행위가 옳고 그름을 떠나 대선에서 댓글 달다가 걸렸을 때 조차 <국가안보>라는 거창한 미명아래 거의 제대로 된 조사도 되지 않고, 그 조사의 결과조차 일반인의 귀에 거의 들어오지 않는 한국에서 저러한 사건을 언론이 쉽게 보도하긴 힘들 것 같다. 뭐 대통령의 업무 중 7시간의 행적도 파악이 안되는데...
집에 가고 싶어요...
미국의 뉴욕타임스와 영국의 가디언 그리고 위 사건을 보도한 독일의 슈피겔은 NSA 사건이 터졌을 당시 스노든으로부터 넘겨받은 자료를 공유하고 그 누가 이 사안을 발표하지 못하게 막는다 할지라도 서로 힘을 합쳐 미국에서 안되면 영국에서, 영국에서 안되면 독일에서 언론에 공개하기로 협약을 맺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 이후 영국 역시 자국의 인터넷 감시 프로그램인 템포라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다. 미국, 영국 독일은 각국의 치부이자 정보기관이 해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해서 스스로 드러냈고 그렇게 언론의 감시는 계속되고 있다. 서로 떨어져 있어 보이는 독일(BND 도청), 영국(Tempora), 미국(NSA)의 사건 역시 모든 출발점은 에드워드 스노든이라는 한 남자의 용기 있는 폭로로 시작되었으나, 그는 현재 집에도 못 돌아가고 러시아에서 얼마 전 연장해준 망명 비자로 그렇게 저렇게 국가의 반역자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세상은 매정하지만 이렇게 돌아가고 있다.
그나저나 이런 스파이는 어디 없냐?
타데우스
트위터 : @tadeusinde
편집 : 너클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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