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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9. 30. 화요일

SamuelSeong






 

 








간만에 송고한 그라민은행 이야기가 우울함을 흩뿌렸던 것 같다. 필자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독자들께서 그렇게 읽으셨다니 사실 좀 유감이다. 낙관할 수도 없지만 비관할 필요도 없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쓴 건데 그렇게 읽혔다니... 사실 희망이라는게, 쉬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번 편에선 희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안그래도 인터넷 구리구리한 네팔에서, 아주 슬픈 결론이 날 것 같아 두려운 홍콩 이야기를 다루느니 다른 기사들을 송고하는게 나을 것 같아 먼저 보낸다. (그러면 홍콩 이야기는 다른 누가 하겠지...).

 


 

1. 해발 5000m에서의 자원전

 

 

본 기자, 작년에 초장거리 택배에 나섰던 적이 있다. 한겨울에 네팔에 들어왔었는데 일이 꽤 길어져 어느새 4월 중순이 되었다. 끓어오르기 시작하는 인도 대륙의 더위를 실감하고 있던 즈음에 뜬금없이 티벳 라싸에 갔다올 일이 생긴것이다. 42도를 가뿐히 넘긴 부처님 탄생성지 룸비니에서 카트만두로 달려가 짱박아 놨던 겨울옷들을 몽땅 챙겼다. 출입국 서류를 받아 새벽차를 타고 네팔 국경도시 코다리를 넘어서 티벳 가이드와 조우하니 이런 날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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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추울것이라고 생각하고 짐을 잔뜩 챙겨 올라가긴 했지만, 이틀만에 42도에서 영하 5도로 바뀌니 사알짝 정신이 혼미해졌다. 뭐 엉덩이는 편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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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팔에선 항상 이런 도로를 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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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티벳으로 가는 길에는 이런 도로가 펼쳐졌다

 

 


아스팔트 포장된 도로 너머로 보이는 저 산이 바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다. 물건을 받을 분들이 기다리고 계시는 곳이 라싸였던 관계로 고산증까지 감수하면서 정신없이 달렸기 때문에 라싸 도착할때까지 찍은 사진은 그리 많지 않다. 라싸에서도 기껏 찍은게 오성홍기 날리는 포탈라궁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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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싸의 포탈라궁

 

 

물건 배달을 마치고 나니 그제서야 평소에 관심을 두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워낙 급하게 배달을 갔고, 배달 경비만 기 백만원 들어가는 일이었던지라 라싸까지 달려갈 때는 정말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풍광을 보니 문득 이 지역의 풍습들이 기억나면서 가이드에게 질문을 퍼부어댔다.


내 경우에 해발 4천미터와 5천미터를 구분하게 해주는 것은 직빵으로 오는 고산증이었다. 해발 4800미터를 달릴때만 하더라도 멀쩡했는데 해발 5천미터만 넘어가면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다. 그리고 밖을 내다보면 덤불이 안보였다. 사실 이것이 해발 4천미터대와 5천미터대를 분명하게 나눠주는 지표 중 하나다. 해발 5천미터 이상에선 아무것도 안 자란다. 거기다 높은 고도에서는 박테리아가 그렇게 활발하게 활동하지 않는다.

 

 

환생한 스님들을 이 지역에선 림포체라 부른다. 고위급 림포체 외에는 모두 조장(시체를 들이나 산에 두어 독수리 등의 새가 먹도록 하는 장례법) 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도 이 지역이 워낙 나무가 귀하기 때문이다. 자원이 귀해서 야크의 뼈로 염주를 만들었던 지역에서 조장은 사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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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태양광조리기가 주로 환경교육용으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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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성시 에코센터

 

 

하지만 여기에서는 없어선 안되는 조리기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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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지금은 중국에 합병되어 있는 상태지만 티벳인들의 강인한 생활력은 바닷가에 붙어 살고 있는 우리가 감히 넘 볼 수 없는 수준이다.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고지대로 올라오고 있는 한족들에 맞서서 살기 위해 그들은 정말 절박하게 돈을 벌어서 아이들 교육비에 쓴다. 


본 기자가 가장 흔히 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티벳식 온실. 이 온실에서 방울 토마토 등 비싼 작물을 키워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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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지역에서 가장 많이 변하고 있는 것은 가축이다. 티벳의 전통적인 가축은 개와 야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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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드녹초호수 앞에서 꽃단장하고 호객중인 삐끼 야크

 

 


야크는 해발 5천미터의 추운 곳에서 사는 티벳인들에게 옷을 만들 수 있는 털을, 지방과 단백질이 담긴 젖을, 연료를 쓸 수 있는 똥을 제공해주던 가축이었다. 그런데 야크는 팔아먹을 수 있을 정도로 키우려면 5년 이상 걸린다. 예전에는 야크가 주요 농기구 역할까지 담당했지만 대부분의 산업에서 기계화가 진행된 21세기에는 농기계가 야크를 대체해버렸다. 

 

 

그래서 요즘 티벳인들이 주로 키우는 가축은 얘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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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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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와 양. 하지만 얘들은 고지대에서 자라는 식물의 뿌리까지 파먹는다. 그 결과 사막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사막화를 막기 위해 중국 정부가 투입하고 있는 자원은 사실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서 덤불 밖에 안 자라던 곳에, 사람 시신을 처리할 방법이 없어서 조장이 풍습이 된 지역에 아래 사진과 같은 길을 만들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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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밀려오는 한족들에 맞서서 살아남아야 하는 티벳인들이 키우는 양과 염소가 이런 나무를 냅둘리가 있겠는가. 그러다보니 묘목 하나 하나에 철망을 씌워서 나무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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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중국정부의 의지는 훨씬 막강하다. 이 지역은 원래 사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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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고지의 깨끗한 물?

 

 

사람이 마시고 나무 키우기에도 물이 부족한 지역에서 물을 뽑아서 판다... 스타크레프트의 자원전을 맵에 직접 들어가서 본 느낌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가 찼던 건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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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지대까지 인프라 구축에 여념이 없던 중국 정부에 사실 기가 좀 질렸다.

 

 

이런 스몰 아스카 코스프레는 장난으로 느껴지는 것이 고압전선은 무한정 늘릴 수 있는게 아니다. 많은 이들이 밀양의 고압전선이 UAE에의 원전 수출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는 이유도 원전에서 꽤 떨어진 지역에 전원공급을 하기 위해서는 그나마 먼 거리를 갈 수 있는 초고압선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기 결정 등의 시간관계들을 봐도 그런 추정을 할 수 있기도 하고. 여튼, 본 기자의 짧은 지식으로 고압선을 거기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어마 무식한 규모의 핵발전소를 짓거나 뭔가 다른 것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티벳인들은 중국정부가 히말라야에 거대한 풍력발전소를 지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히말라야 산맥은 지구의 나이로 놓고보면 아주 최근에 생긴 곳들 중 하나다. 그리고 지반이 약하다. 도로 만드는 것도 꽤나 난감했던 곳에 날개 크기만 백 미터가 넘어가는 초대형 풍력발전소를 지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어처구니없어 하는 본 기자에게 이들은 중국 정부가 네팔까지 철도연결을 하려고 한다는 것을 예로 들며 중국의 공구리질에는 한계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긴, 운하를 터널로 뚫겠다는 미친 놈을 대통령으로 가졌던 나라도 있는데 이미 고지대 공사가 가능한 인력을 가만 둘 나라가 있을리 없지.

 

 

이 자원전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사실 중국인들도 안다. 사막화를 막을 방법은 없다는 것을. 수도 북경을 포기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판국에 그들이 서장이라고 부르는 티벳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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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인간이라는 동물이 저기까지 갈 수 있는 날이 얼마 안 남았을 수도 있다. 왜냐구? 도요타 렌드크루저가 달리고 있는 저 곳의 얼음이 원래 저 정도 밖에 없을 것 같은가? 저거 녹아내리는데 우리도 꽤 큰 역할을 했다. 현재 이산화탄소 배출 기준으로 세계 7위인 나라가 한국이다. 사실 지구 입장에서야 모든 생명체의 멸종에 가까운 사고들을 이미 몇 번 경험해봤으니 새로울 것이 없겠지만 인간이라는 종이 얼마나 현 상태로 살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2. Waste Concern

 

 

방글라데시는 인구가 1억이 넘는다. 그런데 이 거대한 나라의 가이드북을 보면 네팔 트레킹 가이드 북과 대한민국 영문 가이드북(론리 플래닛의 경우)과 비슷한 두께밖에 안된다. 뭐, 가 보면 이해가 된다. 국적기는 세계 최악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 중 하나이며, 수도 다카에 가보면 인도에서도 쇠락해가는 도시라는 평을 듣는 꼴까따가 훨씬 더 번화한 곳으로 느껴질 정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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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다카 최대의 채소시장

 

 


인구 천만이라는 도시의 채소시장이 저렇다. 그러니 사회 기간 인프라 수준은 인도에서도 가장 가난한 곳들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렇다보니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도시 폐기물 즉, 쓰레기다. 상하수도 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곳에서 쓰레기 처리 마저 안 되면 식수를 비롯해 입으로 들어가는 거의 모든 것이 오염될 수 밖에 없다. 

 

 

1995년, 영국의 옥스포드에서 공부하고 있던 방글라데시 명문가의 청년 2명이 이 문제를 해결해보는 것에 자신들의 삶을 걸어보기로 했다. 옥스포드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하던 막수드 신하(Maqsood Sinha)와 이프테카르 에냐예툴라(Iftekhar Enayetullah)는 Waste Concern이라는 비영리기구를 설립하고 다카의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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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프테카르 에냐예툴라(Iftekhar Enayetullah), 난 직접 만났다.



이들이 주목했던 것은 다카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의 80%가 유기 폐기물이라는 것. 그리고 방글라데시는 더운 나라라는 것. 분리 배출된 유기 폐기물을 수거해 발효시키면 비료가 된다. 석유화학공업이 발달하지 않은 인도 대륙에서 비료는 무척 비싸다. 그런데 쓰레기 10톤으로 대략 2.5톤의 퇴비를 만들 수 있다면?

 

 

본 기자가 이들이 덴마크 회사와 공동으로 건설한 유기 폐기물 퇴비화 시설을 방문했던 것이 2009년 4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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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거한 유기 폐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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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폐기물을 발효공정을 통해 퇴비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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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성을 거치면 이렇게 고운 퇴비가 된다. 

 


이들이 개발한 공정은 사실 다양한 형태로 서남아시아 국가들에 보급되고 있다. 스리랑카 콜롬보 인근에서 시험가동중인 퇴비화시설만 하더라도 기본 공정의 형태는 똑같다. 이게 실험공정인 이유는 생활 폐기물 전체를 가져다가 퇴비화 공정을 거친 이후에 분리수거 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막수드 신하(Maqsood Sinha)와 이프테카르 에냐예툴라(Iftekhar Enayetullah)는 영국 유학까지 한 명문가 집안의 자제다. 집안의 모든 재원을 활용할 수 있는 이들이 폐기물 처리를 위해 비영리기구를 만들어서 사업을 시작한지 14년이 지나서야 대규모 시설을 지을 수 있었다. 그 전까진 어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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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비 기술자 숙련 코스를 운영하는데만도 8년 정도 걸렸다고 한다. 이들이 내놓는 퇴비의 질에 대해 의문을 가지자 농축해서 특급호텔 정원에 공급하는 것으로 돌파했다. 그간 겪었던 온갖 어려운 일들을 모조리 분석해서 후발주자들이 보다 쉽게 따라올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는 것만 봐도 이들의 진정성은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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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 약 300톤 가량의 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는 이 시설은 명문가 자제들이 14년이라는 세월과 집안의 자원을 투자해 만든 것이다. 대규모 시설을 지은지 6년의 세월이 더 흐른 지금은 그 때보다 더 많은 시설들이 지어졌고, 대규모 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는 공정기술 개발도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이들이 20년의 세월동안 수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불어넣기도 했지만 그 영감을 받은 이들 중 꽤나 많은 사람들이 좌절을 겪었다는 사실이다. 본 기자가 이 시설에 방문했던 즈음에 만났던 이들 중 하나는 카트만두의 폐기물 처리를 위한 비영리기구를 만들고 싶다는 프랑스 청년이었다. 6년이 지난 지금도 카트만두의 폐기물 처리 상황에 변화가 없는걸 감안하면 그도 좌절한 이들 중 하나일 것이다.

 

 


3. 비단 꽃길은 없다.

 

 

몇달 전, 중미 어디에선가 Free OS와 신재생에너지 기술을 이용한 3G 마을 이동통신사 설립에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를 카트만두의 한국인 게스트하우스에서 읽고 있었다. 그때 늙수그레한 영감님 한 분이 당신도 동남아에서 비슷한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라고 해서 우리는 좌중을 얼려버리는 업계용어들을 구사해가면서 몇 시간동안 꽤나 재미있는 수다를 떨었었다.

 

 

특정 기술의 기술적 한계, 그걸 기상 천외한 방법으로 돌파하는 현장 이야기는 당해 업종 종사자들에겐 무협지보다 재미있다. 특히 적정기술 적용의 많은 사례들은 초짜가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실제론 상당한 파괴력을 가진 무림 고수의 초식과도 비슷하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사실 좀 슬퍼졌다. 이 분, 정부 고위직으로 정년퇴임한 후에 뭔가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찾아다니던 분이었다. 하지만 한국 내에서 당신을 찾는 곳은 당신이 가진 과거의 인연을 이용해 브로커질을 시키려고 하는 곳이 대부분이었고, 당신이 가서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곳에선 당신을 뜬금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졸라 이상한 꼰대로 보는 곳들이 대다수였다. 결국 제3세계의 오지에 들어와서 이런 저런 일들을 진행하고 계셨던 것.

 

 

그지 같은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한국 관료사회. 이런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시스템이 붕괴하지 않으며, 선의로 충만한 이들이 망한 시스템의 수호자라는 사실을 여기서 다시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일베가 날뛰고,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보유하고 있는 금괴의 1/8에 해당하는 금괴를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이가 가지고 있다는 개그를 30%의 구성원이 진담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에서도 희망을 만드는 이들은 조용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벽돌 하나씩 올리고 있다. 그리고 이 길은 절대로 비단 꽃길도 아니며 이들을 알아줄 이 역시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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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 스님들은 오체투지로 히말라야를 넘는다. 그들 중 대략 30%가 히말라야를 넘다 죽었다고 한다. 그 길을 무사히 다녀오라고 걸어주는게 카타(흰색으로 된 천으로 주로 목에 두른다)다. 그렇게 구도의 길을 갔던 이들의 후예가 관광자원이 되어 감시 받고 있는 현실에서 절망이라는 말은 함부로 하는것이 아니다. 그만큼 희망이 값진 것이라고 여겨야 한다. 중요한것은 용기과 현명함 같은 것들이지, 희망이냐 절망이냐가 아니다. 세상은 그런거 생각 안하는 이들에 의해 어찌되었건간에 버팅기고 있는거니까.






국제부 SamuelSeong

트위터 : @ravenclaw69


편집 : 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