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수드는 죽기 며칠 전까지도 9.11 테러를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자신의 적을 지원하는 국가임에도, 미국을 걱정해주기까지 했다. (미국의 지원을 자기 쪽으로 돌리고 싶은 의도일 수도 있겠으나) 또한 그가 점유하고 있던 북부 지역에서는, 탈레반 지역에서는 일상처럼 있는 인권 탄압이나 문화재 파괴 등의 사례가 전혀 없었다.
이것이 원리주의자와, 원리주의에서 극단주의로 빠진 자들의 차이다. 원리주의에서 극단주의로 빠지는 함정은, 과거의 초심을 되돌리려다 과거의 악습만 되돌리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이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껍데기와 알맹이를 분리해내고, 그 알맹이인 '최초 정신'은 무엇이었는지를 탐구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적으로 게으르면 불가능하고, 게으르지 않아도 멍청하면 불가능한 프로세스다. 마수드는 이 프로세스를 극복해낸 좋은 예다.
여성 인권부터 예로 들어보자. 쿠란과 하디스에서 여성을 거론하는 구절들을 비교하다 보면, 여성을 탄압하는 구절은 일시적이거나 매우 제한적인 경우에만 통하는 내용이다. 역으로 여성에게 강간 등의 부당한 폭력을 전면 금지하는 조항이 더 많다. 그렇다면 이슬람의 초기 정신은 서서히 여성 인권을 상승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결론을 이해하지 못하는 IS나 탈레반은 여성이 학교 교육만 받아도 강간 살인으로 처벌한다. 북부 동맹 치하에서는 반대로 "조국을 재건하려면 여성도 배워야 하는 거 아냐?"(마수드) 여성의 교육을 적극 권장했다. 또한 헤크마티야르나 탈레반이 카불 시민들을 인질로 하여 협박할 때는 "무고한 생명을 해칠 수 없어" 후퇴했다. 게다가 타 종파와 종교를 증오하는 극단주의자들과 달리 마수드는 "이런 경우에 시아파는 뭐라고 해석해? 기독교는? 유대교는?" 다른 종파와 종교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래도 마수드의 기본 사상은 이슬람 원리주의자라서, 그가 지지하는 법률은 쿠란의 원리에서 출발하곤 했다. 그런데 그 종착이 민주주의 체제와의 결합이라는 것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시아파 원리주의인 이란의 민주주의가 일부분 취약한 상태인 것에 비해 보면 더욱 그렇다.
이슬람은 신정일치 체제에서 출발한 종교이고, 때문에 정교분리 원칙이 존재하지 않는 체계였다. 이슬람은 완벽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지침이 이미 쿠란에 다 있다고 믿고, 최초로 이에 가장 근접했던 체제가 초기 이슬람 제국이라고 본다. 그런데 그 시기는 군주제와 여성차별의 시대인 중세다. 때문에 원리주의자는 필연적으로 극단주의의 함정에 빠지곤 했다. 이란의 호메이니는 이 함정에 한 발만 빠진 것이고 이 정도도 매우 흥미로운 케이스인데, 마수드는 함정을 피한 것에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간 것이다. 당연히 마수드와 그 동지들의 신학적 배경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마수드와 헤크마티야르, 함정에 빠지지 않은 자와 함정에 빠진 자.
그는 어떻게 함정에 빠지지 않았으며,
함정을 피한 후에 도달한 사상은 구체적으로 어떤 구조였을까?
문제는 내가 아랍어도 프랑스어도 못하는 한국인이라서 퐁피이가 쓴 마수드 전기를 읽어볼 수가 없다. 또한 현대인이었고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이 아직도 좋지 않은지라 마수드를 연구하는 사람도 많지 않은 상황이다. 때문에 내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당분간 얻기 힘들 것 같다. 다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아흐마드 샤 마수드는 수니파 원리주의를 바로잡기 위해 반드시 연구해야 하는 사람이다. 마수드를 분석하여 그보다 더 앞으로 가는 게 수니파 이슬람이 가야 할 올바른 길일 것이다.
2. 시아파의 한 단체, 헤즈볼라
반면 시아파에서 소개할 한 단체는 원리주의 단체가 아니라 그 반대인 세속주의가 강한 단체다. 단체 내에 원리주의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직의 경향은 현실 상황을 고려하는 세속주의를 더 중시하고, 그래서 같은 종파이지만 원리주의 국가인 이란에게서는 싫은 소리를 가끔 듣기도 한다.
또한 이 단체의 특이한 점은, 테러 무장단체로 출발했다는 점이다. 그 이름은 헤즈볼라다. (에볼라와 관계 없다. '신의 정당'이라는 의미의 히즈브 알라의 발음이 축약된 이름이다.)
헤즈볼라의 깃발.
시아파 무장단체 중에서는 가장 유명하다. 시아파에 제대로 된 무장단체가 별로 없기 때문도 있고, 헤즈볼라의 주적이 미국 강경파와 이스라엘인 이유도 크다. 그래서 헤즈볼라의 시작은 대충 82~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레바논은 이스라엘 독립 전쟁의 여파로 인해 국가 꼴이 엉망이었다. 이스라엘 vs 시리아의 한 판 승부의 전장이 되어버린 터라 무기는 많고 치안/행정은 엉망인 상태였기 때문이다. 내전도 일어나고, 팔레스타인 난민들도 상당수 레바논으로 넘어가면서 영 흉흉한 정세가 이어지자 이스라엘은 걱정하기 시작했다. '저러면 무장단체가 출현할 거고 걔들은 우릴 적대할 텐데...?' 결국 82년에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침공해 남부를 점령해버린다. 그러나 이는 병크였다. 오히려 반이스라엘 무장단체들의 성장을 가속화했고,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군을 등에 업은 기독교 민병대인 팔랑헤가 팔레스타인 난민과 레바논 민간인을 학살했다. 샤브라 샤틸라 학살이라고 하는 사건이다. 이 학살 때문에 가깝게는 이스라엘 국민들도 "ㅅㅂ 지금 뭐하는 거냐"고 반발했고, 멀게는 오사마 빈 라덴이 9.11 테러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바시르와 왈츠를]은 바로 이 샤브라 샤틸라 학살을 다룬 이스라엘 애니메이션이다.
제목의 '바시르'는 당시 팔랑헤 소속으로 레바논 대통령이 되었으나
암살로 사망한 바시르 제마엘의 이름이다.
학살을 실행한 팔랑헤 당이 대통령의 암살범을 찾는다는 명분으로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레바논 남부에서는 18년 간의 기나긴 무장 투쟁이 이어졌다. 특히 이 시기의 헤즈볼라는, 평화유지군 명목으로 주둔해있던 미군과 프랑스군 막사에 자살 테러 공격을 감행해 300여 명에 달하는 피해를 안겨, 강경파인 레이건 정부마저 고개를 젓고 철군하게 만드는 기염을 토했다.
극도의 약체였던 레바논 정부군은 이스라엘이 침공한 남부는 손댈 수가 없었다. 해가 지날 수록 국제 여론이 악화되고 국내 여론도 계속 질타하자, 이스라엘은 결국 2000년에 레바논 남부에서 철수한다. 이스라엘이 그냥 빠진 건 아니었다. 그 동안 이스라엘의 지원을 충분히 받은, 팔랑헤를 비롯한 기독교인들은 이슬람에 대한 탄압을 이어갔고 이게 이스라엘이 남겨둔 빅엿이었으나...
헤즈볼라는 이에 대해 '용서'로 응수했다. "솔까말 팔랑헤 기독교도 애들이 꼴통짓을 한 진짜 이유는 이스라엘 때문이잖아? 그럼 우리가 적대해야 하는 건 같은 땅에 사는 기독교인들이 아니라 쟤들한테 바람 넣은 이스라엘이고."
그리고 이 말이 기독교도들에게도 먹혀들어갔다. 공존을 택한 헤즈볼라의 행보에서 짐작할 수 있을 거다. 이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마수드처럼 지역 사회 재건을 우선하는 선택을 한 거다. 때문에 헤즈볼라는 계속 성장할 수 있었다. 적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근거지의 이웃들에게는 잘해주는 행보가 계속되자 헤즈볼라는 레바논 남부의 실점유 정부 수준으로까지 성장해갔다. 일개 무장단체가 말이다.
우린 이스라엘에게 냉정한 무장단체. 그러나 내 국민들에겐 따뜻하겠지.
당연히 이스라엘은 이게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자꾸 자기들을 공격하는 테러 단체인데, 자기들이 남겨둔 빅엿마저 잘 소화하고 있으니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2006년에 일이 터진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가 포로로 잡아간 자국 병사 2명을 구출한다는 명분으로 헤즈볼라가 도사리고 있는 레바논 남부를 침공했다. (무시당한 레바논 정부 지못미)
그리고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에게 영혼까지 탈탈 털린다. 아랍권 최강국인 이스라엘을 상대로 헤즈볼라는 그간 쌓아왔던 군사적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스라엘 육군은 보병 전투에서 지형을 활용하는 헤즈볼라에게 연전연패했다. 공군에 의한 공중 지원이야 헤즈볼라가 갖지 못한 것이니 어쩔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어이없게도 헤즈볼라의 대공포가 이스라엘 전투기를 격추하는 상황까지 나왔다. 해군? 헤즈볼라의 지대함미사일이 이스라엘 초계함을 박살내버리는 장면이 나왔다. 이미 지역 주민의 지지를 확실하게 얻어낸 헤즈볼라는 외부에서 지원 받은 무기를 너무도 잘 활용하면서 전쟁을 주도적으로 끌어갔다. 심지어 텔 아비브(모르면 알아둬라. 이스라엘 제2도시다.)에 로켓탄 공격까지 할 정도로 여유로웠단 말이다. 이게 어딜 봐서 국가와 무장 단체의 전쟁이란 말인가.
당연히 이스라엘군은 빡쳤다. 너무 빡친 나머지 백린탄에 화학무기까지 사용해버렸다. 하지만 이런 대량살상무기는 민간인 피해를 크게 유발하는 법, 결국 이스라엘 국내 여론도 어이를 상실했다. "헐, 니네들 지금 뭐한 거냐? 무장 단체따위한테 밀리는 주제에 너무 막간다?"
물론 군이 하도 백린탄을 자주 쓰다 보니까 요즘 이스라엘 여론은 그러려니 하는 수준이다.
백린탄 피해 결과 사진은 끔찍해서 올리지 않는다.
막나간 이스라엘군은 중립적 스탠스의 알 자지라 중계팀도 공격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아졌다. 알 자지라도 빡쳤고, 여기에 더하여 헤즈볼라는 프로파간다 능력도 국가급이었다. 대체 어떻게 하면 무장 단체가 군사 전술과 선전에서 국가급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결과 이스라엘은 처절한 패전을 겪었고, 이 책임을 진 국방장관과 참모총장이 동반 사퇴하기에 이른다.
프로파간다 능력은 헤즈볼라의 특기 중 하나다. 이미 일반적인 프로파간다의 수준을 넘어서, 한국의 종편보다 나은 방송국 하나를 자체적으로 꾸려낼 정도다. 헤즈볼라 방송에는 자체 제작한 뉴스,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도 있고, 심지어는 FPS 게임도 제작해 배포할 정도다. ('스페셜 포스'라는 제목인데, 현재는 2편까지 발매되었다. 아랍어 기반이라 우리가 해보기엔 무리가 있다. 한국에서 개발한 동명의 FPS와는 다른 게임이다.)
정규전 전술, 게릴라 전술, 문화 사업, 행정 집행에 모두 유능한 단체가 출현한 것이다. 게다가 성향이 비교적 온건하다. 당연히 레바논 정부가 관심을 보이지 않을 리가 없다. 헤즈볼라도 국가 체제 자체를 전복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리하여 헤즈볼라는 레바논의 정식 정당으로 인정 받게 되고, 이스라엘에 대한 승리 덕에 잠시지만 정부 여당도 경험한다.
미국의 시각에 의존하는 국내 언론은 잘 모르는 측면이지만, 테러 단체이면서도 헤즈볼라는 상당히 개념있는 편이다. 이들은 증오의 발현으로서의 테러 공격보다는, '테러 공격은 게릴라 전술의 하나일 뿐이다'라는 테러의 기본에 집중한다. 때문에 테러 공격의 목표는 무조건 군인 혹은 정부 소속 민간인이다. 그래서 9.11 테러 때는 희생자를 애도하고 알 카에다를 극렬히 비난했다.
"펜타곤 공격은 군사 공격이라 쳐도 쌍둥이 빌딩엔 왜 갖다박아?
거기 있던 민간인들이 미국 정부 소속이냐?
20년 전 우리 동네에서 있었던 학살 때문에 이걸 기획했다고?
...아놔 이런 미친 색히들!"
헤즈볼라는 자기들 작전에 일반 민간인이 휘말려들면 어김없이 사과 성명을 낸다. 물론 그 사과의 뉘앙스가 "민간인이 죽어서 죄송함다! 다음엔 민간인 피해 없도록 테러 좀 잘 해보겠슴다!"여서 약간 당혹스럽지만 말이다.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자살 테러 대원은 물론이고 전사자가 발생하면 그 유가족에게는 상당한 복지 보상을 지불하고 유공자 가족으로 예우한다. 그 형태가 선진국에는 하는 것과 거의 유사한 수준이다. 그리고 무장 단체답지 않게, 자살 테러는 꽤 자제하는 편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테러 조직'이라는 출신 성분은 헤즈볼라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계이기도 하다. 이 성격 때문에 헤즈볼라 군사 부문은 레바논 정규군에 편입되지 못한 상태로 아직도 이스라엘과 투닥투닥하는 중이다. 이 때문에 2013년에는 EU에 의해 테러단체로 공식 지정 당했다. 당연히 레바논 정부는 이에 대해 비난으로 응수했다. 그래도 헤즈볼라의 작전 때문에 민간인이 죽는다는 부정적인 면은 외면할 수 없다.
레바논 정부 입장에서는, 영향력도 군사력도 약한 자기들을 대신해서 레바논 남부의 행정/복지/안보/재건 사업을 책임지는 게 헤즈볼라다. 군사력이 있는데도 쿠데타는 생각하지 않으면서 기존 정치 체제에 편입해 들어왔으니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는 세력이다. 원리주의 세력도 아니라서 극단주의로 빠질 염려도 거의 없다. 오히려 헤즈볼라에서 쫓겨난 강경파들이 난장을 피우면 헤즈볼라가 직접 진압하기도 한다. 이러는 동안 초약체였던 레바논 정부군은 조금씩 힘을 키워 실제적인 치안/안보 유지에 투입될 정도로 성장해가고 있다. 이 얼마나 편한가.
세속주의에 가까운 단체인 헤즈볼라의 신학적 배경은, 아직 제대로 분석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들의 사상을 어느 정도 유추해볼 수 있는 척도는 역시나 여성 인권이다.
같은 시아파인 이란과 정반대로 여권 신장에 상당히 우호적이다. 때문에 헤즈볼라의 장교급 간부 중에는 여성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헤즈볼라 여군들이 부르카를 쓰는 것은 개인의 선택일 뿐이며, 헤즈볼라 소속의 여성 정치인도 있는 판이다. 이 때문에 IS는 헤즈볼라를 극렬히 증오한다. IS의 사상 체계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한 인간이며 따라서 여성에게 죽는 것은 천국에 갈 수 없는 죽음이다. 그래서 미국이 주도한 폭격 작전에 아랍 에미리트가 여성 파일럿을 파견한 것은 IS에 대한 빅엿이며, 헤즈볼라의 여군 또한 그런 빅엿의 일종이다. 이런데다가 종파까지 달라 현재 헤즈볼라 군인들은 IS에 사로잡히는 즉시 참수 당하고 있다.
미스 레바논 출신의 연예인 하이파 웨흐베. 종교는 시아파다.
남부 출신이고 그녀의 오빠가 24세의 나이로 이스라엘군과 싸우다 전사하여
당연히 헤즈볼라에 우호적이다. 가수이며 배우이며 모델이다.
헤즈볼라와 레바논의 이슬람 분위기를 잘 알 수 있는 표본이다.
(헤즈볼라 당수가 아저씨 외모라서 이 짤을 골랐다.)
IS를 낳은 배경 중 하나인 시리아 내전 당시, 헤즈볼라가 독재자 아사드의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했다고 1편에서 설명했다. 1편의 설명을 기억하고 있다면, 이 때문에 헤즈볼라의 지지율이 급락했다는 것도 기억할 것이다. 헤즈볼라의 지지 기반은 레바논 남부, 특히 남부의 시아파와 기독교인이다. 같은 구성의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했지만, 아사드가 화학 무기를 쓸 정도로 막장인 탓에 지지율을 까먹고 정치적 위기에 처했지만... 상대가 IS로 진화하더니 최악의 꼴통짓을 보여준 덕에 기사회생했다. (그리고 어쩌면 만인의 공적인 IS 덕에 이스라엘과 화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본격 IS 요정설...일 리가 없잖아!;;)
물론 마수드와 달리 헤즈볼라에서는 한계점을 찾기가 비교적 쉽다. 테러 단체로 출발했기에 갖는 한계점을 앞에서 설명했다. 하지만 원리주의자인 마수드가 원리주의도 제대로 갈 수 있다는 반례가 된다면, 헤즈볼라는 세속주의가 이슬람 본연의 정신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한 반례가 된다. 세속주의자가 많은 헤즈볼라의 정책은 오히려 이상적인 원리주의자인 마수드의 정책과 유사하며, 따라서 이 두 가지 길이 겹치는 부분에서 이슬람이 도달해야 할 지점을 도출할 수 있게 된다.
마수드와 헤즈볼라의 교집합. 이슬람은 이 지점을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은, IS가 보여주는 모습과 완벽하게 정반대다. 누가 이슬람의 최초 정신을 실현하고 있는지 답이 딱 나오는 것이다.
3. 마지막 한계
물론 마수드와 헤즈볼라처럼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테크트리를 선택해서 발전한다 해도, 끝내는 이슬람교 자체에 존재하는 한계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아직 이슬람이 도달하지 못한 지점이지만 분명히 보이는 한계점이다.
이슬람이 신정일치로 시작했다는 것이 이슬람의 한계다. 이런 특성의 종교다 보니 여기에 정교분리의 원리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신학적인 작업이 필요하다. 이 작업을 해낼 정도로 유능한 신학자 혹은 학파가 등장해야만 극단주의에 대한 궁극적인 백신이 개발된다.
신정일치, 정교일치의 체제는 과거에나 좀 통했을 뿐,
현대에는 사실상 실패한 정치 모델이다.
IS가 칼리파를 내세우기까지의 프로세스를 다시 점검해보자. 원리주의에 의해 과거로 돌아갔다. 과거의 정치체제는 신정일치의 이슬람 제국이다. 이들은 신학적으로는 바보인 '위선자'이기에 당시 이슬람의 정수는 가져오지 못하고 껍데기만 가져온다. 이 껍데기에는 여성 차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신정일치 체제도 있다. 전자를 까는 이슬람 신학자도 후자에는 목소리가 낮아진다. 쿠란에 적힌 사회 체제가 인간 사회 궁극의 목표라고 믿는 신앙 체계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무함마드 시절의 체제를 그대로 가져오고 싶어하는데, 이러면 당연히 현대의 트렌드와 충돌한다. 이란은 이 충돌을 어떻게든 봉합하려는 중인 것이고, 그래서 절차적으로는 꽤 훌륭한 민주주의를 실현했음에도 여성 인권은 그 모양인 부조화가 생기는 것이다.
다른 부분은 현대적 재해석을 한 학파가 많지만, 신정일치 부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낸 이슬람 신학은 많지 않다. 마수드의 예를 보면 있긴 한 것 같은데 이슬람 외부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이 한계점을 극복하는 이슬람 신학자야 말로 시아파에서 그리워하는 마흐디에 걸맞는 인물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현재까지 등장한 두 종파의 결과물들을 보면 아직은 멀어 보인다.
유대교는 메시아가 정치적 독립과 부국강병을 이뤄줄 거라 기대했지만,
정작 메시아라고 하는 예수는 종교 혁명을 들고 온 메시아였다.
마흐디가 실제 도래한다면, 정복자가 아닌 종교 개혁자일 것이다.
시아파는 기독교의 교황 혹은 과거의 칼리파가 했던 역할을 할 계층이 있다. 최고위 이맘인 아야톨라들이고 이 때문에 시아파의 극단주의가 많이 크지 않았다고 유추해볼 수는 있다. 그런데 아야톨라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여 탄생한 예가 여성 인권이 시망인 이란이라서 불안해진다. 진보적인 아야톨라가 탄생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싶다. 반면 다른 테크를 탄 헤즈볼라에 영향을 줬을 아야톨라는 어떤 사람들인지 아직 노출되지 않았거나 연구되지 않았다.(내가 아랍어를 못하는 탓이다.) 원리주의 테크에서는 이란이, 세속주의 테크에서는 헤즈볼라가 나왔으니 두 경우의 아야톨라들을 신학적으로 비교해야 할 텐데, 한쪽은 아직 확실치 않다.
수니파는 정론의 권위가 경전들에 가있는 대신, 지역색에 의한 차별화가 강하다. 같은 교리 해석을 한다 해도, 세속주의가 강한 지역에서는 꽤 자유로운 이슬람이 되고 원리주의가 강한 지역에서는 엄한 이슬람이 되는 식이다. IS의 경우엔 매우 엄한 극단주의가 생긴 지역이다 보니 담배까지 금지하는 식이다. 지역색이 강하다 보니 새로운 신학적 해석이라는 것도 지역색에 기댈 때가 많다. 당연히 이슬람의 정수에까지 가닿아야 하는 거국적인 신학 프로젝트는 등장하기 힘들다. 시아파에서는 간간이 등장하는 신(新)학파가, 수니파에서는 2백여 년째 등장하지 않았다.
신학적인 해석에 따라 정치적인 형태가 결정되는 이런 구도에서 신정일치에 얽매인 이슬람의 현 상태를 읽어낼 수 있다. 이슬람의 주류 정치는 아직도 종교에 강하게 종속되어 있다. 기독교도 어느 정도 정치를 종속시키는 경향은 있지만, 최소한 이 정도로 꽉 물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이런 종속 상태 때문에 원리주의자들은 오늘도 함정에 빠져 중세 시대의 체제를 현대에 소환하는 병크를 저지르고 있다.
때문에 IS만 종교적 공룡인 것은 아닐 수도 있다. IS는 어떻게든, 반드시, 이슬람 내에서 나올 수밖에 없던 집단이다. 이슬람교가 현대의 발전에 맞추어 진화하는 것을 게을리했기 때문이다. 이슬람이 과거의 유산을 재해석하여 현대적으로 다시 내놓지 않는 한은, 원리주의의 함정은 계속해서 극단주의자를 생산해낼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이슬람의 이미지가 낙후된 이미지인 채로는, 그 극단주의자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게 된다.
때문에 원리주의 테크에서 기적적으로 등장한 마수드나, 세속주의 테크에서 태어난 헤즈볼라의 예를 탐구하는 것은 이슬람이 취해야 할 첫 번째 걸음일 뿐이다. 이슬람이 이슬람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감행해야 할 진화 과정은 아직도 많이 남았다. 이게 될 때까지 IS와 같은, 탈레반과 같은, 헤즈볼라에서 쫓겨나는 놈들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 꼴통들은 계속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꼭 이슬람만 그런 것은 아니다. 시리즈 내내 모두가 떠올리는 어떤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 시리즈의 주제와 관련이 많음. 진짜 많음.
예전 딴지에 기독교 칼럼을 연재했던 미쉬파트 님은, '한국 기독교는 신학 기반이 취약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더 정확히는, 한국 기독교는 미국의 신학을 똥오줌 안 가리고 받아들였고 이 때문에 미국 기독교 신학의 문제점을 그대로 계승한 후 더 키워버렸다고 지적했다. 내가 얼마 전에 만났던 목사님은 '한국 기독교는 미신으로 퇴화하고 있다'고 하더라. 모두 맞는 말이다. 그리고 난 이런 평가에 하나를 더 하고 싶다. '한국 기독교는 공룡이 되어가고 있다.' 비대하다는 의미로도 그렇고, 적응을 거부한다는 의미로도 그렇다. 무식해도 너무 무식하고 멍청해도 너무 멍청하다. 한국 기독교는 어쩌다 이리 되었는가.
현재 기독교 신학의 첨단 트렌드는 유럽과 남미다. 유럽의 자유주의 신학과 남미의 해방주의 신학은 구교와 신교를 막론하고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전 교황과 현직 교황, 두 분 모두 신학적으로는 보수적이라고 평가된다지만 이 기준은 유럽과 남미의 기준으로 그런 것이다. 미국의 신학 조류인 복음주의는, 이미 극단주의 함정에 상당 부분 빠진 상태의 원리주의 신학이다. 자유주의에서 봐도, 해방주의에서 봐도, 온건 복음주의에서 봐도, 이상한 헛소리인 주장과 해석을 내놓는 수준으로 변질된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리고 한국 기독교도 미국 기독교와 똑같은 테크 트리를 밟았다. 현실감각과 균형감각이 훨씬 나은 종파는 소수로 전락하고, 독재 정권에 협력했던 종파들은 번창하다가, 슬슬 기득권을 잃을 것 같자 사정없이 극단주의화 되면서 그 무식을 뽐내고 있다. 워낙 불공정한 경쟁에서 이득을 보다 보니 신학적인 발전은 쌈싸먹은 지 오래 되었다. 대신 성적소수자와 같은 소수에 대한 증오는 하늘을 찌른다.
이슬람 극단주의의 과거와 너무나 닮아 있다.
이슬람이 극복하지 못한 후진성이 극단주의를, 극단주의가 IS를 탄생시킨 수순을 생각한다면, 과연 '개독'이 되어버린 미국/한국의 기독교가 어떻게 될지 두려워진다. 이슬람 꼴통들이 뭉쳐 IS가 되었고, 비주류이던 일베는 광화문에서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는 정도가 되었다. 양식 있는 기독교인들이 소수가 되어 저들을 제지하지 못하는 우리의 현재는, 마수드나 헤즈볼라 정도만 배출하고 그 이상을 하지 못한 채 IS의 극단주의를 잉태했던 이슬람의 과거와 뭐가 다를까?
그래서 다시 이 짤을 소환한다.
게으름이 부적응을 낳고 부적응이 멍청함을 낳고
멍청함이 꼴통을 낳고 꼴통이 사람들을 죽이더라.
저들에게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진리가 남아있을 확률은 0에 수렴한다.
타산지석은 중요하다. IS는 물론 먼 나라 다른 종교의 이야기이고, 그들의 미래도 그렇게 밝지 않다. IS가 설사 시리아와 이라크를 접수한다 해도, 그 다음 상대는 아랍 지역 최강국인 이스라엘, 그 이스라엘을 물먹였던 헤즈볼라, 시아파 큰형님인 이란 등이다. 그 다음은 사우디, 아랍 에미리트 같은 오일머니로 번 돈을 군사력에 제대로 투자한 강국들이며, 그 다음은 미국-러시아-중국-EU 등의 진짜 세계구급 강자들이다. IS는 조만간 퇴장하여 사라질 것이지만... 절대 마지막이 아닐 거다. 이슬람이 미뤄둔 진화를 재개하지 않는 한 IS는 분명히 또 나온다.
그리고 IS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간을 팔아치워 버리고 정신줄을 놓으면 모든 걸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실제 사례를 생생히 전달해주었다. 덕분에 이슬람 극단주의는 둘로 나뉘었다. 최소한의 개념은 있는 소수는 IS를 비난한다. 반면 최소 개념조차 없는 대다수 IS 스타일의 꼴통들은, IS에 합류하거나 IS를 따라서 우리도 칼리파 국가라고 설레발을 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은 전자 노선을 탔고, 세력을 넓히고 있는 알 카에다는 후자 노선을 따르려는 모양이다. 그리고... IS의 사례에 감명 받는 극단주의자가 꼭 이슬람에만 있으란 법은 없다.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우리의 미래 모습일 가능성이 너무 높다. 먼 훗날 또 한 번의 IS가 재현되는 곳이 우리 주변이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이쯤에서 끝을 맺어야 하지만, 끝내기가 힘이 든다. 어쩌면 당신이, 저들의 증오와 상처에 대한 대응책이랍시고 똑같은 증오를 떠올릴 수도 있어서 그렇다. 우리도 그들의 이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이 글을 읽은 당신들의 생각 속에, 혹은 이 글의 댓글란에, "하여튼 개독들은 여차저차 해버려야..."라는 내용이 "개독과 이슬람 꼴통을 변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는 고민보다 많을 것을 예상한다.
그리고 우울하게 술을 먹으러 가겠지. 지금까지 읽어주어 고맙다. 니덜도 술 한 잔씩 드시라.
슈르나
편집 :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