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0. 08. 수요일
돼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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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조
건물이 무너졌고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차갑고 딱딱한 돌 사이에, 정신을 갉아먹는 어둠 속에 갇혔다. 그리고 이런 국가적인 재난이 벌어지면 국가는 당연히 구조에 나서야 하는 법이다. 삼풍이 무너지고 구조가 시작되었으나 현장은 말 그대로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수 많은 곳에서 구조의 손길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 당시 구조를 위해 온 단체만 하더라도 소방서와 경찰서는 기본이요, 특전사에 지역주민들과 민간봉사자, 그리고 어디든지 빠지지 않는 해병전우회에다가 심지어 주한미군까지 왔다.
현장을 실질적으로 지휘하는 소방본부와 서울시, 중앙재해대책본부 등에서는 내가 이 일을 지휘하겠다면서 서로 싸우니 필요한 장비를 가져와도 굴릴 수 없고, 애써서 장비를 빌려와도 ‘허가’가 없어서 그 장비를 돌려보내는 등 대가리 굵직한 이들이 모이니 어떻게 하면 빨리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란 생각보다는 누가 왕초노릇을 하느냐 라는 싸움이 벌어졌다.
이 와중에 몇몇 영웅적인 투쟁으로 30여명을 구해낸 민간인도 있었지만, 살려달라는 아비규환 속에서 실질적인 구조활동은 고작해야 파이프나 두드리면서 생존자들이 어디쯤에 있는지 짐작하는 정도였다.
당시 상황을 자세히 복기하자면, 구조의 가장 기초적인 장비인 헬멧과 손전등조차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고, 한 미군의 말에 의하면 붕괴된 구조물의 틈을 벌리는 에어백이라는 가장 기초적인 구조장비조차 없었을뿐더러, 산소절단기라던지 콘크리트 분쇄기는 민간업체의 지원을 받아야만 했었다. 이런 혼란스런 판국에 생존자가 발견된다 하더라도 질서정연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생존자에게 필수적으로 필요한 물과 구급약품조차 제대로 구비되지 못해 그것들을 찾아 우왕좌왕하는 판국이었으니 더 말을 해 무엇을 하랴.
게다가 사고 당일 현장에서는 화마가 치솟아 이를 진압하려했으나 옥외소화전이 고장나는 바람에 진압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었다. 결국 화재를 진압하는데에 성공은 하나 갑자기 쏟아져내리는 물은 갇힌 생존자들에게 치명적인 위협이 되기도 했는데, 몇몇 생존자는 이 물에 익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물은 다른 생존자들에게 수분을 공급하고 열기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여 그들을 생존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하였다.
결국 보다 못한 청와대가 개입하여 소방본부를 중심으로 하여 지휘체계를 일원화하여 구조작업의 효율을 높여보려고 했으나, 앞서서 말한 민간봉사자들은 이러한 방침의 본부와 여러 마찰을 겪었고, 이에 상당히 뿔이 난 소방본부가 이들을 싹 다 치워버리고 전문인력만으로 구조작업을 진행한다. 이는 앞서서 말한 이유도 있었으나 자원봉사를 빌미로 불법적인 이득을 취하는, 굳이 말하자면 도굴꾼 같은 이들을 막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 심지어 발굴을 미끼로 유가족에게 금품을 요구하는 정신나간 놈들 또한 있었으니 이는 당연한 조치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이거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라고 생각되는건 나뿐인가?
이러한 진통을 겪으면서 구조작업은 서서히 속도를 타기 시작했고 사고 52시간이 지난 후에 24명의 생존자들을 구해내는 등 제대로 된 구조가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워낙 조각난 시신들이 많아 대강 조각이 맞으면 사람 1명으로 취급하는 등 거센 비난을 받을 행동들이 이어졌었다.
후일 많은 참사를 겪으면서 국가적인 대재난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생각되어 중앙 119구조대가 설립되었다.
2. 기자
당시 구조현장을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데에는 기자들 또한 일조했었는데, 이쯤되면 이건 전통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대표적인 예로 MBC는 좋은 그림을 잡겠다고, 구조하는 소방대원을 방해하며 ‘취재를 위해서는 자리를 비켜줄 수 없다.’는 말을 날리면서 꿋꿋하게 방송을 계속한다. 방송사들은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게 위해서 헬기를 띄우고 구조현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헬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바람 때문에 붕괴의 위협을 더 높이는 일까지 저지른다. 그렇다고 다른 종이 신문 기자들은 달랐느냐면 그것도 아닌게, 사선을 넘나드는 생존자의 인터뷰를 듣겠다면서 잡아 세우고, 구조작업에 여념이 없는 소방대원을 방해하는 등 아마도 지옥에서 악마가 이것을 봤다면 진지하게 주소지 이전을 고민하게 할만한 행태가 어김없이 벌어졌다.
소방본부가 자원봉사자의 출입을 막는데에 기자들 또한 한 몫을 했는데 생생한 현장을 찍기 위해서 자원봉사자들의 조끼를 빌려입고 현장으로 들어가 작업을 방해하는 행동을 서슴치 않고 저질렀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런 기자들이 어찌나 많았던지 자원봉사 조끼가 돈받고 팔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다.
3. 도굴꾼
참사가 벌어진 현장이 백화점인지라 도굴꾼들 또한 성행했는데, 살려달라는 지옥 속에서도 제 욕심을 먼저 챙기는 이들의 모습에 많은 이들은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아래는 그 대표적인 사진이다.
이 여인 외에도 바지 안에 몇 벌의 바지를 껴입고 도주하다가 잡힌 청년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4. 삼풍그룹일가와 재판
이 지옥같은 참사에 화룡점정을 찍은 이들은 참사의 책임자들이었다. 이준 회장은 본디 중정출신 인사로 인맥을 통해서 삼풍그룹을 결성한 인물이다. 공격적인 인수확장의 대명사로서 단박에 재계 30위까지 뛰어오르는 기염을 토해낸 여러모로 비범한 인물이었는데, 진짜 비범한 것은 이 작자의 정신상태다. 아래는 그의 인터뷰 영상이다.
삼풍 참사의 재판은 1996년 8월에 확정되는데, 당초에는 책임자들에게 미필적 고의를 바탕으로 무기징역을 때려야한다는 말이 높았으나, 이 미필적 고의를 증언해줄 증인이 참사로 사망하는 바람에, 이들은 업무상 과실치사죄로 처리되었다. 이는 행위자가 중한 죄를 벌이고 있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검찰이 밝혀내야만 중한 죄가 적용되는데 그것을 밝혀내지 못한다는 법적 원칙의 결과였다.
참고로 미필적 고의는 무기징역 내지는 5년 이상의 형량을, 과실치사는 5년이하 내지는 2천만원의 벌금을 내야한다. 이 둘의 차이는 어쩔 수 없었지만 설마 죽기야 하겠냐는 것이다. 제대로 인식하는 것과 안일하게 생각하는 차이라고 볼 수 있겠다.
(예를 들어 보험금을 타기 위해 집에 불을 질렀을 경우에 옆집까지 불이 번져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고 저지르면 미필적 고의, 만약 불이 번지면 연기 때문에 바로 깨어나기 때문에 절대로 죽지 않을거라 생각하고 저지르면 과실치사가 된다. 문제는 둘의 입증이 어렵다는 것_편집자 주)
왼쪽부터 이영길 시설이사, 이한상 사장, 이학수 구조기술사, 이준 회장
결국 이준 회장은 7년 6개월의 형량을, 이한상 사장 또한 7년 정도를 받았는데 이는 사법계에서 최대한으로 때릴 수 있는 최고 형량이었다. 원래는 5년이 한계였지만 뇌물혐의의 가중처벌로 간신히 7년을 집어넣은 것이다.
후일 이준회장은 2003년에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으나 노환으로 당년도에 사망했다. 부디 지옥에 이 자를 위해 마련된 자리가 있었기를 간절히 빈다.
이한상 사장 또한 출소했는데 아무래도 유전적으로 하자가 있는 집안이었는지 나와서 한다는 이야기가 자신이 겪은 시련은 영적전쟁의 일부분으로 하나님이 내게 내리신 시련이라는 귀신 시나락까먹는 소리였다.
이들이 받은 형은 실질적으로 솜방망이 처분이나 다름 없었지만, 이들에게 내려진 벌금만큼은 막대했는데, 삼풍이라는 거대기업을 다 거덜내고도 부족할 정도였다. 이 부족분은 서울시에서 충당했다.
결국 삼풍기업은 순식간에 폭삭 망해버렸고, 삼풍에서 일하던 이들과 그 하청업체 사람들은 순식간에 실업자가 되어 길거리로 내몰리는 등 많은 사람을 죽이고도 또 많은 사람을 못 살게 만들었다.
5. 여파
끔찍한 참사에 많은 국민들이 불안에 떨자 국가에서는 대대적인 안전검사를 실시했으나 절망적이기 짝이 없는 성적표를 받아든다. 한국 건물의 단 2%가 안전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사건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부실시공이 단순한 재물사고가 아닌 자기 목숨이 걸린 일이라는 생각이 뇌리에 박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부실시공이 비리와 연계되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부정부패에 대한 막대한 관심으로 비리척결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건축계에서는 무량판 구조는 절대 지어서는 안 되는 금기가 되었다. 그러나 한 편에서는 무량판 구조였기에 5년이나 버틴거라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현재까지 무량판 공법은 시공 되고 있지 않는 실정이다.
무량판 구조
mushroom construction
건축물의 뼈대를 구성하는 방식 중 하나로 보(beam) 없이 기둥과 슬래브(slab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바닥)로 구성된다. (그림 1의 B 플랫 슬래브 참조) 간단히 말해 기둥들이 각 층의 무게를 지탱하는 방식이다. 철제 대들보를 설치하지 않아도 되지만 설계시 정확하게 무게 배분을 해야 하며, 기둥 주위의 슬래브는 하중을 많이 받기 때문에 보강을 해야한다. (아래 그림 2 참조) 그러나 삼풍백화점은 건물 구조 변경, 시공 후 일부 기둥 제거, 설계시 32인치였던 기둥을 23인치로 만드는 등 여러가지 요인들로 인해 무게 배분에 문제가 있었으며 결정적으로 옥상이 견뎌낼 수 있는 하중의 4배가 넘는 냉각탑의 무리한 이동으로 결국 붕괴되었다. (작성_편집자)
그림 1
그림 2
6. 여담
세월호가 우리나라 정치계의 바닥을 보여줬었다면, 오래전 일이지만 삼풍은 우리나라의 바닥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들의 특종을 위해서, 욕망을 위해서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하는 풍조가 있다는 것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어떠한가? 그러한 것을 고치기는 커녕 오히려 남의 상처를 보지 못하는 괴물이 되어버린 실정이다. 그리고 그러한 괴물은 오랫동안 수면 근방에 있었지만 이제는 거리로 나오고 있다.
심연을 들여다보는 자는 심연 또한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는 말을 니체는 남겼다. 우리는 대체 그 긴 세월동안 무엇을 보고 있었단 말인가? 한때 이성을 부르짖으면서 본능을 몰아내고 자신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없다. 인문학이라 부르는, 자신을 찾는 구도의 행위는 배고픔을 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배척받는다. 이는 하루하루 먹을 것을 찾아 허덕이는 비루한 짐승이나 다름없는 행동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것을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허나 사람이 발전함에 있어서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퇴화로 가는 길일지니, 변화는 없고 단지 고여 썩어가는 물에 불과하게 된 것이리라. 부디 우리가 들여다보는 심연이 판도라의 상자이길 빈다. 적어도 인간이라는 종은 많이 먹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먹느냐를 고민할 줄 아는 생물이기에 희망 또한 남아 있으리라 생각한다.
지금 우리는 옛날이야기 속의 주인공과 같은 것이다. 절망적인 순간에 어떻게 나아질 수 있겠냐는 의문이 들면서 포기하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지나가는 순간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결국 끝에는 빛이 있고 그 어느 때 보단 빛보다도 환하게 빛나는 빛이 비칠 것임을 우리는 배웠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에게는 몇 번이고 돌아갈 기회가 있었지만 그들은 돌아서지 않는다. 왤까? 그 이유는 그들에게는 이상이 있었기 때문에 돌아서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의지해야 할 이상이 무엇이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 대답은, 적어도 세상은 아직 선함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싸울 가치가 있는 믿음이다.
ps. 마지막 여담의 일부분은 반지의 제왕의 샘와이즈 감지의 대사를 변형시켰다.
삼풍백화점 자리에 들어선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서초 아크로비스타
돼끼
편집 : 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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