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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뒷북인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이것은 현지 취재를 위한 큰 그림이었음을 밝혀둡니다.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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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 한다 안 한다, 냉탕과 온탕을 오고 가다 가까스로 성사된 북미정상회담. 전 세계가 텔레비전으로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을 지켜보는 그 시각. 남-북-미 평화모드에 대해 환영하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유일하게 다른 입장을 보인 국가가 있었으니, 바로 일본이다.

 

이미 누레 히요코님의 기사(링크)로 일본 메이저 언론들의 반응은 살펴보았으니, 이번엔 일본 황색언론들의 반응을, 굳이 일본 현지에 가서 취재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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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민들도 ‘기레기 집단’이라고 칭하는 일본의 양대 석간지 <일간 겐다이(日刊ゲンダイ)>와 <석간 후지(夕刊フジ)> 되시겠다. 이 두 신문은 자극적인 제목과 내용으로 구독자를 낚는 것으로 유명하며 오보 따위는 신경 안 쓰는 이 시대 참 황색언론이다. (‘날씨 빼고 전부 오보’라는 명예로운 별명을 보유한 <도쿄스포츠>도 유명하지만 아쉽게도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내용은 뒷전인 것 같아서 패스)

 

어느 기차역의 플랫폼에서 북미회담 다다음날인 6월 15일 신문을 구할 수 있었다. 가격은 둘 다 140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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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일간 겐다이>부터 보도록 하자. 가장 상단에 쓰여있는 문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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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정은 ‘밀약’ 핵 20발 9월 재회담인가?”

 

내용을 한번 보자. (가서 내용을 간략하게 줄였기 때문에 원문과 조금 다를 수 있다)

 

11월에는 미국의 중간선거가 있다. 트럼프는 북한에 CVID에 대한 자세를 보여달라 요구할 것이다.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핵탄두는 약 60발로, 일설에선 그 중 20발을 국외로 반출시키는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다. 9월이나 10월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에 가서 트럼프와 함께 보도진들 앞에서 핵탄두 20발을 폐기했다고 한다면 트럼프에게 있어선 최고의 선거운동이다.

 

이번엔 1면 메인 기사를 한번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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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약이) 무산된다면 미국 북한 동시에 끝이다.”

 

내용은 이렇다.

 

“기한, 구체 방안을 언급하지 않았다(아사히 신문)”

“공동성명에 구체적 대책 없다(마이니치 신문)”

“구체적 방안이 없다(요미우리)”

“시기와 검증은 뒤로 미뤘다(닛케이 신문)”

“북, 검증 없는 반도 비핵화(산케이 신문)”

“구체적 방안 제시 없이 미 ‘체제 보장’(도쿄 신문)”

 

북미합의를 의심하는 언론들이 좀 이상하다. ‘회담 성과가 적다’는 보도를 하는 것은 일본 언론도 화제에서 변방으로 밀렸기 때문일 것이다. (중략)

 

협상이 결렬되어 전쟁으로 연결되어도 좋다는 것인가. 이번 협상이 백지화되면 다음 옵션은 전쟁밖에 없다. 그것도 핵전쟁. 그렇게 된다면 북한 미국 동시에 끝장이다. 일본도 큰 피해가 생긴다. 어째서 평화협정을 기뻐하지 않는 것인가? 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나고 자국민을 지키는 것은 정치인의 의무다. (중략)

 

기존 일본 정권은 미국의 네오콘에게서만 정보를 얻어왔기 때문에 시대의 물결에서 밀려났다. 아베정권 퇴진 시위가 미디어에 거론되고 변화를 요구하는 바람이 불어 정권을 바꾸지 않으면 앞으로도 일본이 나설 자리는 없다.

 

아무말대잔치를 기대했건만, ‘핵전쟁’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쓰는 것 빼고는 의외로 바른 말을 하고 있다. 기사에 외교관 출신의 평론가이자 평화헌법 수호단체에 관련된 ‘아마키 나오토’씨의 주장이 많이 들어가 있다.

 

<일간 겐다이>은 전날 기사에서도 “아베 정권은 협상결렬을 바라고 있다. 뭐하는 것인가. 아베가 언론을 이용해 북미회담에 대한 일본국민들의 기대감을 떨어지게 하고 있다. 아베는 지금 역주행중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게 무슨 황색언론인가 싶어 알아봤더니, <일간 겐다이>는 라이벌 석간지인 <석간 후지>와 정반대의 성향, 그러니까 반우익이라고 한다(오자와 이치로 자유당 대표의 기관지라고 폄훼 당하기도 한다). 싸움 걸러 갔다가 밥 얻어먹고 나온 기분이다.

 

그렇다면 <일간 겐다이>와 반대의 성향을 지닌 <석간 후지>에는 순도 높은 비방이 실려 있지 않을까? 평창올림픽을 깎아내리고 남북회담이 성사되는 중에 ‘미국이 곧 북한을 폭격할 것’이란 내용의 기사를 메인에 실어 한국에서도 인지도를 얻었던 그 <석간 후지>니 말이다. 거기다 <산케이 신문> 계열사. 분명 아무말을 할 것이라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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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위가 석간 후지. 트럼프 결단 평창 종료 후 핵시설 공중폭격인가?라고 적혀있다.

 

주목도가 제일 높은 부분이자 가장 위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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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평양 결전인가?”

 

라고 써놓았다. 북한과 일본이 무엇으로 싸운다는 말인지 궁금해져서 내용을 보니, ‘8월이나 9월에 북일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였다. ‘결전’이란 단어를 정말 ‘전쟁’으로 쓰는 건 자신들이 봐도 아니다 싶었던 것 같다.

 

메인 기사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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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장 밖 한국 낭패”

 

여기서 ‘모기장 밖’이라는 단어는, 일본 언론이 남-북-미 사이에서 일본이 패싱당한 것을 “일본만 모기장 밖으로 쫒겨났다.”고 비유한 데서 나온 말이다. (이에 아베 총리가 “우리도 모기장 안이다.”라고 말하자 어느 네티즌이 “너는 모기다.”라고 받아쳤다)

 

다시 말해 이제 한국이 패싱당하고 있다는 어필인 것이다. 아래엔 약간 민망한 표정의 문재인 대통령 사진을 넣고는 이런 문구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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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당해버렸다” 한국 미디어들도 엄청 당황

 

대체 어떤 한국 미디어가 이번 북미회담 결과를 보고 당황했단 말인가? 한 번 자세히 읽어 보자.

 

역사적인 북-미 정상 회담의 그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이끄는 한국의 위상이 급락하고 있다. (중략) 한국에서는 (문 대통령이) "북미 간 중재자"로서 정상회담에 맞춰 싱가포르에 갈 것이라 기대했지만 무산됐다.

 

북미회담 자리에 남측이 가지 않은 게 뭐가 문제이며 어째서 그것으로 남쪽의 위상이 깎인단 말인가. 지금 이 판에 끼고 싶어서 미국에게 매달리고 있는 건 아베 정권이 아닌가?

 

이어서 이런 내용이 나온다.

 

신뢰관계를 강화 유지하고 있는 미일과 비교해서 한미 사이에는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다. 한미 관계의 미묘함이 나타난 것은 12일 정상회담 당일이었다. 트럼프는 북미정상회담이 끝난 12일 저녁 기자회견에서 “열심히 임하고 있는 한국의 문 대통령에게 감사하고 싶다. 곧 그와 이야기할 생각이다”라며 감사를 표했다. 그런데 그 후에 아베 총리에 대해 “나의 친구” “좋은 남자”이라고 평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훌륭한 지도자”라고 격찬했다. 분명히 문 대통령과 취급이 다르다.

 

...언급할 필요가 없는 단락 같다. 다음 내용은 이렇다.

 

트럼프가 기자회견에서 돌연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단을 시사한 것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한국 국방부가 “현시점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발언의 정확한 의미와 의도 파악이 필요하다”라고 당황하는 코멘트를 내며, “합동훈련 중단에 대해서는 미국 측과 지금까지 아무 논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국은 “북미 간 중재”를 자임했지만 북미는 “불필요한 자리”라고 판단, 소외된 것처럼 보인다.

 

트럼프가 깜빡이 켜지 않고 들어오는 게 한두 번도 아닌데 말이다.

 

한국 언론의 보도를 전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한국 언론의 보도에도 그 충격이 드러난다. 조선일보(일본어판)는 13일 “한국이 완전히 당해버린 비핵화 리얼리티 쇼”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중앙일보(일본어판)도 같은 날 “70년의 적대관계를 극복한 날, 한국은 ‘트럼프 쇼크’”라는 기사에서, 트럼프의 한미 훈련에 관한 발언에 대해 “한국의 안보 지형에 큰 충격이 불가피하다.”라고 지적했다.

 

다음의 내용도 어디서 많이 보던 논조다.

 

한국 정세에 대해 해박한 저널리스트 무로타니 카츠미씨는 “한마디로 미국은 한국을 ‘신용할 수 없는 북한의 메신저 보이’라고 보고 있지 않은가. 문 정권은 노골적으로 좌익사관을 국내에 퍼트리고 반미좌익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안보 관심 대상에서도 벗어났다.”라고 말했다. (중략)

 

남북 관계도 반드시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북미 실무 사전 협의가 시작된 후 북한은 남북 장관급 회담(5월 16일)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거나 핵 실험장 폐기에 한국 기자단 취재 허가를 직전까지 보류했다. 2차 남북 정상 회담을 보도한 13일 조선 중앙 통신 기사에도 한국에 대한 감사의 말은 없었다. ‘북한 주도의 남북 통일’도 거론되는 가운데 문 정권은 고비에 직면했다.

 

북미회담 다음 날 문재인 정권의 지지율이 80%였다는 건 모르거나 알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어떻게든 남북 사이가 안 좋다고 하고 싶은데 점점 평화모드가 되니까 이젠 문재인 정권이 북한에게 끌려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석간 후지>의 다른 기사에서도 어떻게든 평가절하하고 싶은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세계가 주목한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은 웅장한 ‘정치 쇼’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두 사람이 회담 후 서명한 공동성명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북한이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문구를 담았을 뿐. 세계가 숨을 죽이고 지켜보던 비핵화의 구체적 방안에 대해서는 ‘답변 없음’으로 끝났다.

 

평화모드에 대한 전망이 나오는 시기에도 꾸준히 한반도가 전쟁에 직면했다는 소리를 해왔는데 결국 이런 상황이 되어 버리니 쉽게 태도를 바꾸기도 뭐할 거다. 한반도에 완전한 평화가 찾아왔을 때 이들이 얼마나 속상해할지 생각만 해도 안타깝다.

 

번외로 일본 넷우익의 반응을 알아보았다. 일본 웹사이트를 뒤지다가 이런 블로그 글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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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韓国の反応: 韓国人「北朝鮮の非核化は水の泡となり、韓米同盟が壊れそうな不吉な予感がする」

(한국의 반응: 한국인 “북한의 비핵화는 물 건너가고 한미동맹이 붕괴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어떤 한국인이 저런 말을 했을까 싶었더니, 조갑제가 북미회담 당일에 올린 “비핵화는 물 건너가고 한미동맹을 건드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의 일본어 번역이었던 것이다. 번역된 글의 댓글 수만 350개가 넘었으니 조갑제 기자는 일본에 가서 또 하나의 한류열풍을 모색하시는 게 어떨지 권유드린다.

 

그 350개의 댓글 중 하나를 소개하고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파의 비명”

 

일본인의 입장에선 우익이나 좌익이나, 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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