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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해설의 시대다. 과거, 야구의 허구연, 축구의 신문선처럼, 돔구장 드립과 디딤발 드립이 무한히 반복되는 해설자의 레퍼토리를 취사선택할 자유도 없이 들어야만 했다. 수십 년이 지난 현재, 해설자는 치열한 시청률 경쟁에 중요 요인이 되고 있으며, 이름이 널리 알려진 해설자는 추꾸 팬덤에서 기믹의 대상(예 - ‘기적의 수학자’ 박문성, ‘신아영과 졸개들‘ 장지현, 한준희 등)이 되기도 한다.

 

2018 월드컵은 그 어느 때보다 해설자들의 경쟁이 치열했으며, 현재 국대와는 너무나 달랐던 과거의 영광을 간직한 세 명, 이영표, 안정환, 박지성의 삼국지가 펼쳐지고 있다.

 

선수가 주인공이 되어야 할 월드컵이지만, 안타깝게도 해설자들에게 긍정적인 시선이 더 쏠리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만큼, 어떤 채널을 선택할지는 무척 중요해졌다. 높은 확률로 발암 경기가 될 것으로 보이는 멕시코와 독일전, 과연 최고의 해설자는 누구일까. 스웨덴전을 돌려보며 장면마다 그들은 어떤 스타일로 추꾸 이야기를 풀어나갔는지 면밀히 디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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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기성용 수비 상황

 

 이영표 - 중앙수비 두 명과 기성용 선수 세 명이 한 짝으로 좋은 간격을 유지하며 수비하고 있습니다.

 

 안정환 - 좋아요. 저렇게 주변 선수들이 대비를 하고 있어야 해요. 박주호 선수가 헤딩을 따내지 못했지만, 기성용 선수가 대비하고 있어서 볼을 차지할 수 있었죠.

 

 박지성 - 전반 초반 기성용 선수가 주장으로서 역할을 잘 해주고 있어요. 모든 1:1 상황에서 이겨주고 있거든요? 이런 부분이 주변선수들에게 자신감으로 퍼져나갈 수 있어요.

 

국대에서 수비라인을 지휘해 왔던 이영표는 역시 수비라인의 움직임과 존 디펜스를 살펴보는 반면, 수비가 최우선 임무는 아니었던 안정환은 개인의 임무, 즉 자신과 동료의 위치를 확인하며 커버에 대한 준비를 짚었다. 역대 최고의 주장이었던 박지성은 경기장 내에서 리더의 역할에 대해 주목했다. 하나의 장면을 두고도 각자의 현역 시절 포지션에 따라 이렇게 시각이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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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 구자철 공 뺏김 이후 상황

 

이영표 - 아...(탄식) 상대가 계속해서 공 소유를 하며 몰아칠 때엔, 우리가 소유했을 때 템포를 죽이며 흐름을 바꿀 필요가 있거든요. 상대의 템포를 따라갈 필요가 없어요.

 

안정환 - (화남) 역습할 때는 드리블로 못 갑니다. 패스를 이용한 역습을 해야 합니다.

 

박지성 - (잠시 침묵 후) 상대에게 흐름이 조금씩 넘어가고 있어요. 우리 선수들이 수비 간격을 좁히면서 공간을 내주지 않아야 합니다.

 

경기를 보던 사람들이 동시에 뒷목을 잡았던 공 뺏기는 구자철. 선수의 삽질을 두고도 세 명의 표현이 각각 다르다. 이영표는 깊은 탄식을 내쉬며 역습의 템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구자철 개인에 대한 비판 대신 팀 전체의 템포 조절에 시선을 돌린 것이다. 반면 빡침이 어조에 묻어나온 안정환은 이름만 이야기하지 않았지 단호한 비판을 던졌다. 탄식, 빡침, 침묵. 이 세 명의 스타일은 아마 현역 시절 경기장 안에서도 그대로 표현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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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7 장현수 패스미스 -> 박주호 부상

 

이영표 - 아... 반대쪽에서 우리 동료에게 넘어온 볼을 무리하게 헤딩으로 막아 세우려다가 뒷 근육에 무리가 생겼습니다.

 

안정환 - 아... 아쉽네요. 어, 지금 아웃도 아웃이지만 박주호가...! 아~ 이러면 안 되는데요. 

 

박지성 - (잠시 침묵 후) 경기 초반에 예상치 않은 부상으로 교체카드를 하나 써야 하는 상황이 생겼어요. 햄스트링 부상인데 정말 불운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또 한 번 뒷목을 잡게 한 장현수의 패스 미스와 박주호의 부상장면. 이 장면에서 캐스터들은 장현수의 패스미스에 주목했지만, 세 명의 해설자들은 크게 언급하지 않고 넘어갔다. 분명한 실수였지만 행위에 비해 지나친 비판을 삼가려는 태도가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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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0 장현수 롱 패스 미스

 

이영표 - 오늘 장현수 선수의 롱 패스가 상당히 정확하지 않습니다. 박주호 선수에게 가는 패스도 그렇구요. 롱 패스를 하는 데 어려움이 있으면 짧은 패스를 이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안정환 - 반대 열었죠. 아아, 기나요. 롱 패스 시도는 좋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공간이 아니라 선수에게 붙여줘야 하는 타이밍이었어요.

 

박지성 - 황희찬 선수가 적극적으로 공간을 침투해 들어갔다면 충분한 공간이 있었거든요. 장현수 선수는 좀 더 침착하게 정확한 패스를 해야 합니다.

 

두 사람과 달리 박지성은 황희찬의 침투가 늦었음을 지적했다. 실제로 장면에서 황희찬은 위치도 낮았고 스타트도 느렸는데, 그가 좀 더 빨랐으면 충분히 장현수의 패스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오프더볼 1인자 박지성의 공간 이해는 장현수의 패스 미스가 받아주는 선수의 늦은 출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짚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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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40 공 탈취 후 역습 실패

 

이영표 - 우리 선수들이 공을 뺏었을 때 역습으로 나갈 기동력이 많이 떨어져 있네요.

 

안정환 - 지금인데요. 아~ 전방의 공간으로 튀어 나가는 선수가 없어요. 역습할 때는 뒷공간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공간 침투 해야 합니다.

 

박지성 - 역습으로 나가줘야 하는데요. 지금 볼을 끊었을 때 역습으로 나가주는 움직임이 없어요. 

 

공을 탈취했으나 제대로 역습을 진행하지 못한 장면에서 세 명의 해설자는 한 목소리를 낸다. 누가 봐도 역습 상황이었는데, 줄 곳이 마땅치 않아 결국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다. ‘뒷공간을 생각하지 말고 일단 뛰라’는 안정환의 멘트는 공격수는 어떤 마음으로 수비에 임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해설이었다.

 

 

 

[하프타임]

 

이영표 - 우리는 양쪽 윙백이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하면서 수비 시에 4-5-1이거든요. 황희찬, 손흥민 선수가 너무 내려와 있기 때문에 앞으로 나가는 시간이 걸리고 있어요. 오늘 경기에서 스웨덴을 무너뜨리려면 양쪽 사이드에 빠른 발을 가진 선수들이 가서 그곳에서 뭔가를 만들어 내는 거거든요. 그렇다면 70분, 75분쯤에 김신욱 선수를 빼고 선수교체로 빠른 축구로 전환하는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안정환 - 전반 초반엔 경기 흐름이 좋았어요. 김신욱에게 때려놓고 우리가 세컨 볼을 찾아 먹으면서 경기가 잘 풀렸는데, 전반 후반엔 아쉬웠어요. 이재성 구자철 선수가 조금 더 패스를 연결해주고 공간에 침투를 해줘야 합니다. 후반전엔 손흥민 황희찬 선수가 공간으로 침투하고, 밑에서도 선수가 아니라 공간으로 때려놓고 공격을 해야 할 것 같아요.

 

박지성 - 전반전 동안 조금 불안했던 수비라인이었어요. 안정감을 조금 더 가져가야 할 필요가 있고. 역습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슈팅까지 이어지는 공격을 보여줘야 합니다. 전반에 손흥민 선수가 깊숙이 파고들어 가는 상황에서 문전으로 치고 들어가는 선수의 템포가 늦었거든요. 손흥민 선수가 올라가는 속도만큼 우리 선수들이 잘 따라가 줘야 합니다.

 

하프타임 이후 전반전을 분석한 세 명에게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은 모두 ‘공간’과 ‘침투’였다. 다만 디테일에서 조금 차이를 보였다. 안정환과 박지성이 중원 라인의 공격 침투가 늦은 것을 지적하며 개선을 요구한 반면, 이영표는 이들의 침투가 늦은 이유, 즉 4-5-1로 내려앉은 포메이션이기에 공격 전환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어 이를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도 제시했다. '일단 잠구고 후반전 몰빵' 전략은 트릭이라기엔 흔한 추꾸팬도 다 익히 알 만한 것이었으나, 일반 시청자를 위해 큰 그림을 제시하는 이영표의 스타일이 빛을 발한 장면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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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 6:30 구자철 헤딩 찬스

 

이영표 - 열렸어요. 올라왔어요. 헤딩! 순간적으로 간결하게 투 터치로 공격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안정환 - 아 좋아요. 중앙에 들어가야죠. 헤딩! 낮고 빠른 크로스, 이게 답입니다. 우리가 미드필더에서 삼자 패스를 이어가며 공격을 풀어야 합니다.

 

박지성 - 저런 움직임이 구자철 선수의 장점이거든요. 크로스가 올라올 때 문전 쪽으로 침투해서 슈팅하는 모습인데요.

 

경기 내내 잠수탔던 구자철이 유일하게 빛났던 장면이다. 앞서 안정환은 스웨덴의 높이에 대항하여 낮고 빠른 크로스를 강조했는데, 특유의 시원시원한 말투로 다시 한번 스웨덴 파훼법을 설명했다. 박지성은 선수에 대한 이해, 즉 선수가 선호하는 플레이, 잘하는 플레이를 가장 많이 짚어준 해설이었다. 어느 팀에 있든 다른 선수들의 장점을 파악하고 이타적인 플레이를 펼쳤던 그의 ‘선수 보는 눈’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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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 황희찬 압박 후 찬스

 

이영표 - 네. 바로 이런 것들이 있거든요. 황희찬 선수가 몸싸움을 피하면서 지능적으로 볼을 따냈고요. 결국 양쪽 사이드에 공을 넣고 손흥민, 황희찬 선수가 그곳에서 뭔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거죠.

 

안정환 - 여기서 잘 뺏었구요. 여기서 한 번만 접었어도! 접었어도! 아쉽네요. 저게 얀센 선수의 가랑이로만 들어갔어도. 저런 좁은 공간에서 상대 수비수의 가랑이는 정말 감사한 공간인데, 그 공간을 이용을 못 하네요.

 

박지성 - 좋아요. 적극적으로 압박을 통해 볼을 빼앗고 공격하는 모습은 황희찬 선수의 장점이거든요. 마지막에 각도가 안 나와 패스가 이어지진 않았지만 좋은 공격이었습니다.

 

황희찬의 압박 장면에서 세 명의 해설 차이점이 다시 뚜렷해졌다. 몸싸움으로 이긴 것 같은 그 짧은 순간을 이영표는 지능적으로 몸싸움을 피하면서 공을 뺏어왔다고 풀어냈다. 윙백 포지션에 섰던 선수로서 오랜 경험이 녹아든 분석이었다. 반면 안정환은 전형적인 공격수의 마인드를 “접었어도!”라는 절절한 표현으로 담아냈다. 특히 그의 ‘가랑이론’은 특유의 위트와 시원한 어법이 응집된 멘트였다. 압박 전문가 박지성은 다시 한번 선수의 강점을 짚어냈다. 실제로 황희찬은 지난 시즌 유로파리그에서 비슷한 정면을 몇 번 연출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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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 김민우 pk 상황

 

이영표 - 볼 살았어요. (var 확인 후) 지금 경기를 중단시킨 이유는 var이 뭔가를 발견했다는 뜻이거든요. 볼을 터치하지 않았어요. 페널티킥이 맞습니다.

 

안정환 - 반칙 아니죠. 아니죠. 계속 나가야죠. (var 확인 후) 애매한데요. 

 

박지성 - 파울 아니에요. 파울 아니에요. 역습 가야죠. (var 확인 후) 아, 가까이서 보니 김민우 선수가 볼을 터치하지 못했네요.

 

요즘 추꾸 팬들은 ‘국뽕 해설’에 민감하다. 상황을 지나치게 한국 쪽에 유리하게 해설하는 것을 극혐한다. 김민우의 파울에 세 명 해설 모두 파울이 아님을 강조했다. 그러나 비디오 판독 이후, 이영표는 냉철하게 피케이 선언을, 박지성은 원론적인 수준의 언급을 했으나, 안정환은 애매하다는 말로 아쉬움을 표현했다. 이전에도 한국 경기가 판정 시비에 휘말릴 때 가장 흥분하던 쪽은 안정환이었다. 다만, 이영표는 일본 경기만 맡으면 독립투사 수준으로 돌변하는데, 이번 월드컵에서도 콜롬비아에 골을 넣는 일본을 보고 “안 돼요!”를 외치며 화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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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0 이승우 교체 투입 후 어수선한 한국

 

이영표 - 대한민국 대표팀이 강한 팀과 경기를 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기동력이거든요. 경기를 보는 모든 사람이 정말 잘 뛴다, 많이 뛴다. 이렇게 봤던 모습이 과거 월드컵에서 좋은 경기를 한 원인이었죠. 그런 기동력은, 멘탈과 육체는 상호 보완관계가 있는데, 정신력이 뛰는 것을 매번 보완해줄 수 없거든요. 잘 뛸 수 있는 능력, 체력, 거기에 정신력이 뒷받침됐을 때 기동력이 나오는 거든요. 물론 훈련도 중요하고요, 프로그램도 중요하고요. 체력은 어떤 의미에서 최고의 기술 중 하나다, 라고도 정의할 수 있겠어요.

 

안정환 - 역습할 때 이승우 선수가 공간 침투를 많이 해줘야 해요. 얀센 선수 쪽을 많이 공략할 필요가 있어요. 황희찬, 손흥민 선수가 투톱으로 많이 섰어요. 둘이 호흡은 괜찮아요. 기대해봅시다. 

 

박지성 - 이승우 선수는 드리블도 좋지만, 원투패스를 통한 공격전개를 상당히 잘하는 선수거든요. 오른쪽 수비, 루스티크 선수를 괴롭히면서 공격의 공간을 만들어줄 수 있는 선수입니다. 손흥민 선수가 투톱의 한 축을 형성하는 상태로 변화했거든요. 4-4-2 형태로 전술을 변화하면서 남은 시간 공격적인 축구를 하겠다는 신태용 감독의 의도입니다.

 

70분 이후 이승우의 교체 투입은 신태용 감독이 짜 온 전략이었다. 두 명의 해설자와는 달리 본격적인 센세 모드로 돌입한 이영표는 고급진 어휘를 구사하며 체력과 기동력의 중요성을 설명했는데, 구체적으로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신태용이 짜온 전략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었다. 후반 상대의 체력이 떨어질 때를 기다렸다가 빠른 템포의 축구로 변화하겠다던 신태용의 전략에 마치 “그러기엔 우리 체력이 너무 엉망인데?”라는 태클을 건 것이었다. 한편 이영표의 이 멘트는 4년 전의 반복이기에 씁쓸하게 들을 수밖에 없었다.

 

후반막판 공격 실패.gif

44:30 잇따른 공격 실패

 

이영표 - 나와서 볼을 받는 것은 상대의 시야에 다 들어와 있기 때문에, 상대를 속일 수가 없습니다. 뒷공간으로 들어가 줘야 하죠.

 

안정환 - 조금만 더 한 발짝이라도 움직여 줘야 해요. 그래야 상대 수비가 끌려 나옵니다. 상대 수비보다 옆으로 공간을 벌려줘서 받아줘야 합니다. 패스하는 사람 시야에 보여줘야 합니다.

 

박지성 - 선수들이 빠른 판단을 해야 합니다. 선수들이 어떻게 경기해야 하는지 당황하는 느낌이 있거든요. 자신감 있게 자신이 하고 싶은 바를 적극적으로 경기장에 보여줘야 합니다. 신태용 감독이 문전으로 침투하라고 지시하고 있거든요. 지금 내려와서 볼을 받고 있는데, 누군가는 전방으로 침투를 해 줘야 하거든요. 우리가 어떻게 무엇으로 공격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요. 자신감이 결여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선수들이 크로스 타이밍인지, 패스 플레이를 통한 중앙 공격을 택할 것인지, 확실하게 선택해야 합니다.

 

길을 못 찾고 방황하는 패스 줄기를 보자 세 명의 해설은 입을 모아 패스를 받는 움직임에 대해 이야기했다. 특히 박지성의 멘트가 인상 깊다. 확실한 공격 패턴을 이어가야 한다는 박지성의 주장은, 세계 무대에서 늘 약팀이었고 어려운 상황도 많았던 그가 비슷한 상황에서 어떻게 팀을 이끌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2010 월드컵 우루과이전, 모두의 체력이 소진된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물회오리 슛으로 이어지는 확실한 찬스를 만들었던 그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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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0 황희찬 솔로 헤딩 찬스

 

이영표 - 왼쪽에서 상대의 뒷공간을 노리고 볼이 들어갔고요. 몇 차례 우리가 상대를 무너뜨리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는데, 그 횟수가 너무나 부족합니다. 

 

안정환 - 지금 헤딩할 때 머리를 너무 돌렸어요. 고개를 돌려야 할 헤딩슛이 있고 아닌 헤딩슛이 있는데, 지금 너무 돌렸어요.

 

박지성 - (침묵 후) 아, 아쉽네요. 황희찬 선수가 혼자 헤딩을 했었는데, 너무나 아쉽네요.

 

‘상대를 무너뜨리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는 이영표의 해설은 칭찬이면서 칭찬이 아니었다. 경기 막판에 가서야 방법을 찾았다는 것은 경기 준비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훌륭한 헤딩을 만든 안정환은 선수 개인의 테크닉을 지적하며 답답함을 표출했다.

 

이영표 - 선수들이 경기장 안에선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실은 월드컵을 앞둔 팀이라면, 상대보다 부지런히 뛰어야 하거든요. 선수들이 열심히 뛸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체력적인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안정환 - 자, 이번 대회 이변 많습니다. 멕시코, 독일 우리보다 강합니다. 하지만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여기서 한 번 졌다고 주저앉지 맙시다. 아직 할 수 있어요.

 

박지성 - 우리 선수들이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포기하게 된다면 더 안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거든요. 우리 선수들도 뭔가 할 수 있다는 모습을 경기장에서 보여줘야 합니다.

 

경기 후 멘트도 조금씩 달랐다. 꾸준하게 제기되는 ‘투지가 없다’는 비판에 이영표는 ‘투지가 아니라 체력이 없는 것’이라며 보다 근본적인, 그래서 더 두려운 비판을 했다. 안정환은 한 톤 높아진 목소리로 자신감을 불어넣었고, 박지성은 그와 비슷한 얘기를 차분하게 했다.

 

지금까지 월드컵에서 드러난 세 명 해설자의 특징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센세형’ 이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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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꾸를 보는 이영표의 눈은 감독의 눈에 가깝다. 선수 개인의 장단점이 짙어지는 대목에서 조금 더 큰 그림을 본다. 공간 침투가 늦거나 움직임이 느려진 상황에서 선수에 대한 비판이 아닌, 전술 선택의 실수와 준비 부족을 짚어낸다. 또한 공격과 수비를 진행하는 세부전술을 잘 짚어낸다. 예컨대, 몇 번의 코너킥 공격과 수비 상황을 지켜본 후 “공을 더 빠르게 보내면 가능성 있다.”라거나, 상대의 코너킥을 보고 “우리의 지역방어 전술로는 위험하다.”는 멘트는 빠르게 지나가지만, 핵심을 짚어낸다.

 

또한 문제점, 혹은 상대 파훼법을 선명히 제시하는 것도 뛰어난 장점이다. 스웨덴전에서 그는 경기 내내 "측면 깊숙한 공간에 공을 때려놓고 그곳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실제로 가장 위협적인 장면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러한 그의 해설 스타일이나 사용하는 어휘는 마치 추꾸 지도자 아카데미에 온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의 센세형 해설은 동시에 단점이 된다. 추꾸에 대한 관심이 그리 높지 않은 일반인에겐 다소 생소한 개념이 등장하거나, 시청자의 감정과 거리감이 있는 멘트가 종종 발생한다.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무슨 얘기를 한 건지 그 맥락을 파악하기 힘들 때도 있다. 가끔은 감독을 해야 할 사람이 해설로 재능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2. ‘쾌남형’ 안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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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스타’로 불렸던 그는 해설 스타일도 ‘판타지 스타’스럽다. 월드컵은 클럽 대항전과는 다르게, 팀의 조직적 완성도가 높지 않기에 개인의 번뜩이는 활약으로 경기를 뒤집을 수 있다. 한국도 몇 번의 위기에서 그의 번뜩임을 보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는 선수, 특히 공격수의 플레이를 보며 정상급 공격수의 센스를 가감없이 풀어낸다. 헤딩 장면을 느린 화면으로 돌려볼 때, 점프 노하우, 고개 돌린 각도, 몸싸움, 위치 등을 짚어내는 그의 멘트는, 시청자에게 높은 현장감을 부여한다. 또한, 일반적인 해설자는 관례상 할 수 없는 호쾌한 멘트, 예컨대 지난 월드컵의 ‘때땡큐’나 ‘가랭이론’ 등은 시청자의 귀에 쏙쏙 박히는 임팩트를 만들어낸다.

 

다만, 큰 그림에 대한 설명은 다소 부족하다. 전술과 포메이션 변화를 짚어내는 능력은 평이하며, 디테일한 세부 전술과 상대 대응 전략, 혹은 축덕들이 고개를 끄덕일만한 최신의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은 평타취라 하겠다. 가끔은 솔샤르를 미드필더라던가, 모로코를 모나코로 말하는 등, 잘못된 정보 전달이나 기초적인 실수를 반복할 때가 있다. 이렇게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본인은 매우 의식하는 것 같은데, 쉽고 친근한 일상 언어의 사용으로 경기 후에도 회자하는 임팩트를 잘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추꾸를 4년에 한 번쯤 보는 분들에겐 충분히 잘 먹히는 해설자다.

 

 

3. ‘우리형’ 박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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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들에겐 미안하지만, 한국 추꾸 한정으로 우리 형은 박지성이다. 러시아 월드컵 개막전 해설 때만 해도 목소리 톤이나 말하는 스타일에 대한 비판이 많았던 박지성은, 단점을 개선하고 매 경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역시 얼굴에 가려진 천재형 선수였다.

 

다른 해설과 비교했을 때 드러나는 특이점은, 경기장 내에서 뛰는 선수들의 멘탈을 말로 표현해 내는 능력이다. 한 선수의 활약, 혹은 실수가 다른 선수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짚어내고, 경기장 내에서 선수가 내려야 하는 판단에 대해 짚어내는 것을 들으면, 팀 플레이어의 표본이라 일컬어졌던 그의 커리어가 단번에 이해된다. 또한 어떠한 해설자들에게서도 들을 수 없는 경험담, 예컨대 퍼거슨의 헤어드라이어 썰이나, 오프사이드인지 아리까리한 대목에서 단호히 온사이드를 짚어내는 등, 그가 가진 압도적인 경험치는 날이 갈수록 해설을 발전하게 한다. 다가오는 멕시코전에서 치차리토와 함께한 썰을 들려줄 텐데, 무척 기대된다.

 

가장 큰 단점은 역시 목소리 톤이다. 최용수 감독이 저적했듯, 고등학생 같은 목소리 톤은 전달력이 떨어지는 것을 넘어서 채널을 돌리는 사람도 있게 한다. 또한 아직까지 캐릭터 성이 짙어지지 않았다는 단점도 있다. 명확하게 갈리는 안정환-이영표에 비해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 하지 못해 애매하게 보이기도 한다. 물론 이 점은 점차 나아지겠지만, 월드컵 한정 해설이니까 한국전 해설을 들을 날은 두 번밖에 남지 않은 것 같다 (으앙ㅠㅠ)

 

자, 필자가 나름대로 정리한 해설 삼국지. 당신은 멕시코전 채널로 어디를 택하시겠는가.

 

#어차피_그깟_공놀이

 

 

 

 

 

Profile
조선사 교양서를 쓰고 있는, 딴지가 배출한 또 하나의 잉여 작가
딴지의 조선사, 문화재, 불교, 축구 파트를 맡고 있슴다.
이 네 개 파트의 미래가 어둡다는 거지요.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시시콜콜 조선부동산실록』 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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