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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5월 18일, 영국에서는 또 한 번의  'Royal Wedding'이 거행되었다. 윌리엄-케이트라는 세기의 결혼식이 전 세계로 중계된 지 7년 만이다. 이제 영국 황실의 성년들이 다 결혼했으니 윌리엄-케이트의 첫 아들인 죠지(만 5세)가 결혼하기까지 약 20년간 세기의 결혼식은 없을 예정이다. 그런데 세기의 결혼식이라는 수식어가 불편하기만 하다. 왕족이라는 특권계급도 거슬린다.

 

사실, 의회민주주의가 시작된 나라 영국에서 여전히왕족(Royal Family)이라는 최상위 계층이 존재하고 귀족에게만 자격이 주어지는 상원의원 제도가 유지되는 모순은 참 납득하기 어렵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시작된 민주주의에 특권계층이 웬 말인가. 더욱이 이것을 '전통'(Tradition)이라는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포장을 하고 마치 대단한 가치를 보전하고 있는 척하고 있으니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영국이라는 나라가 그렇다. 젠틀맨의 나라라는 대대적인 홍보전략으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만드는 데 성공은 했지만, 실상은 모순덩어리인 나라가 영국이다. 지금이야 영연방이라는 명목으로 아름다운(?) 하나됨을 강조하고 있지만, 전 세계에 식민지 개척을 선도한 국가가 영국이고, 그렇게 시작된 무자비한 아프리카 식민 개척을 통해 노예제도를 시작한 나라도 바로 젠틀맨의 나라 영국이다.

 

을사늑약으로 일제가 우리나라에 조선통감부를 설치했을 당시 초대통감을 맡았던 이토 히로부미가 영국의 명문 UCL(University College London) 출신이다. 소달구지 달고 다니던 시절, 지하에 터널을 뚫고 철 덩어리로 운송수단을 사용했던 당시의 선진 영국의 국가 운영 시스템에 깊은(?) 영감을 받은 이토와 영국 유학파 친구 5인은 일본을 영국처럼 바꾸고자 메이지 유신의 핵심인물로 활약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비롯 동아시아 지역의 여러 나라들을 식민지화하고 동북아를 집어삼키려 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전 세계적인 식민지를 유행처럼 만들었던 영국이 아이디어를 제공한 셈이다. 약소국가를 식민지 삼아 싼값에 재료 사들이고, 비싸게 물건 팔아먹기 위한 교두보로 식민지를 개척했으니 이 어찌 젠틀맨, 신사의 나라란 말인가.

 

역사에 만약이란 없지만, 일본이 미국만 건드리지 않았어도, 그래서 미국이 세계대전에만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현재의 세계 지도는 다른 지형을 가졌을지 모른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미국을 침공함으로 독일과 같은 책임을 져야 했고, 영국은 통일 유럽을 꿈꾸던 게르만에게 침공을 받아 무자비한 폭격을 당한 피해 국가가 되었다. 가끔 본인들이 굉장한 피해자인 것처럼 묘사하지만, 승전국만 아니었다면 식민지와 노예제도를 비롯한 온갖 잔인한 흑역사로 인한 전 세계로부터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은 오롯이 영국의 몫이 될 뻔했다.

 

굳이 거창하게 역사적 사실을 언급하지 않아도 된다. 대영박물관만 가 보면 영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모순덩어리인지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위대한 조각상들은 그리스에서 볼 수 없다. 대영박물관에 있다. 영국이 다 훔쳐 왔기 때문이다. 선진 문화재 약탈국 가다. 그런데 그리스가 자신들의 문화유산을 돌려달라고 하면, 그리스는 아직 이러한 고귀한(?) 문화재를 보존할 수 있을 만한 능력도 없고 시설도 갖추고 있지 못하다며 반환을 미룬다. 조금만 따지고 보면 존재 자체가 모순인 나라가 영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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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의 결혼식이 갖는 의미: 모순을 벗으려는 노력, 특권에서 평범으로

 

이런 측면에서 보면, 파격적이라고 평가받는 해리 왕자의 결혼식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먼저, 그의 배우자 메건 마켈’. 영국인이 아닌 혼열 미국인에 이혼도 했다. 과거 왕실에서는 받아들여 질 수 없는 대상자를 해리가 배우자로 맞이한 것이다. 결혼식 자체도 매우 파격적인 형식을 취했다. 친정아버지가 아닌 시아버지 찰스가 신부를 이끌었던 것을 시작으로, 미국 성공회의 흑인 주교가 설교를 했고, 흑인콰이어가 미국 소울 음악으로 영국 왕실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렀다. 모든 정치인의 객석 채우기 또한 배제됐다. 왕실의 결혼과 정치의 분리다.

 

물론 수십억에 달하는 결혼식 비용이 말해주듯 여전히 특권층의 결혼식이라는 모양새는 남아 있지만, 곳곳에서 노력의 흔적이 보인다. 물론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배우자. 약혼을 할 때부터 해리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없으며 매건을 아내로 맞이함과 동시에 왕족으로서의 모든 권한도 포기하겠다고 했다. 특권을 내려놓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겠다는 그의 의지가 엿보인다. 그렇다면, 왜 해리는 스스로 이러한 평범함을 택하려 했던 것일까? '탈귄위', 탈계급'을 추구한 그의 선택은 어디서부터였을까.

 

어차피 형(윌리엄)이 나보다 서열이 높으니 난 내 맘대로 할 거야"정도로 생각해서 그랬다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는 군인으로서 파병도 다녀오고 나름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사실, 해리의 이러한 소탈함은 그의 모친인 다이애나 왕세자비에게서 엿볼 수 있다. 특히 매건과의 약혼을 하며 했던 특권의식을 버리고 평범하게 살고 싶다던 말에서 그의 어머니 다이애나비가 스치듯 지나간다.

 

 

레알(Real) 왕족이었던 그녀, 다이애나 왕세자비

 

다이애나는 여전히 영국이 사랑하는 왕세자비다. 그녀가 보여줬던 행보는 여전히 사람들의 뇌리에 기억되어 있다. 우는 자와 함께 울어라는 표어에 걸맞게, 다이애나는 다른 왕족들에 비해 인권활동과 빈민사역에 힘을 쏟았다. 아프리카 빈민촌 구호와 적십자 활동, 특히 대인지뢰 제거 활동은 인상 깊었다.

 

무엇보다 자녀교육이 파격적이었다. 사실 영국의 조기교육 중 왕실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독립심이다. 5~6세 정도가 되면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자녀를 안아주지 않는 원칙도 있다고 한다. 외로움과 고독을 스스로 달래고 터득할 줄 알아야 왕족으로서의 품위를 지킬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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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이애나는 자녀들을 안아주는 것은 물론 경호원 없이 함께 놀이공원에도 갔다. 덕분에 윌리엄과 해리는 시민들과 마주할 기회가 많았다. 왕족은 상징적인 의미만 있을 뿐, 특별한 권위 의식을 가질 필요 없다는 것이 다이애나가 자녀들에게 강조하던 가르침 중 하나였다. 혹 왕족이라는 것 때문에 얻은 게 있다면 반드시 사회에 환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알려주기도 했다.

 

그런 다이애나는 사실 백작 가문의 자녀였고, 그녀의 친정인 '스펜서'(Spencer)가문은 '스튜어트' 왕조다. 그녀는 17세기 영국와 스코틀랜드를 하나로 이어준, 지금의 연합왕국의 기틀을 제공했던 제임스 1세의 후손으로 혈통으로 보자면 지금의 윈저 왕가보다 레알(Real) 왕족에  가깝다(현 엘리자베스 2세는 윈저 왕가로 독일 하노버 왕족의 후손인 조지 6세의 자녀이니, 사실 다이애나가 왕세자비가 되면서 윈저 왕가가 왕족으로서의 위엄을 되찾은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퀸즈 잉글리쉬(Queens English, 여왕이 쓰는 영어)를 유난히 강조하고 왕족으로서의 위엄과 특권을 강조해온 독일계 반쪽 혈통 윈저 왕가는 지금도 의회민주주의에서 왕족이라는 특권을 중요시하지만, 정작 최상위 특권층이었던 다이애나는 소외된 이웃을 위해 봉사하며 탈귄위적 행보를 보였다.

 

그런 다이애나가 해리왕자의 결혼식을 봤다면 어땠을까. 가장 흐뭇해하지 않았을까 싶다. 성대하고 웅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특권의식과 권위를 내려놓는 시도를 했다는 의미에서 이번 결혼식이야말로 '세기의 결혼식'이라는 칭호를 붙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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