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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즐거운 시음시간

 

최종 공정인 패키징・라벨링을 다 보고 나면 이제 시음시간이지요. 시음장이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돌아갑니다. 아예 넉넉한 공간을 확보해 놓은 데다가 당일은 필자 일행을 포함해서 모두 4명. 느긋하게 맥주의 맛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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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하우스에 설치된 시음장. 넓이도 넓이지만 천장이 높은 것도 넉넉해 보이는 요인인 것 같아요.

 

시음은 1인당 3잔까지 할 수 있고 준비된 맥주는 3가지였지요. 일반적인 “이치방시보리”, 이치방시보리의 흑맥주인 “이치방시보리 쿠로나마(黒生)”, 그리고 “이치방시보리 토리데즈쿠리(取手づくり~”. 여기서 “토리데즈쿠리”는 토리데공장에서 특별하게 만든 이치방시보리로, 그냥 이치방시보리와 확연히 맛이 다릅니다. 물론 이 세 가지를 하나씩 마셔도 되고 똑같은 것을 3잔 마셔도 돼요. 아니면 보통 맥주와 흑맥주를 반반씩 섞어 마실 수도 있어요. 마시고 싶은 대로 시키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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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음장의 맥주 스탠드. 3잔까지 좋아하는 맥주를 마실 수 있고, 반반씩 섞어 마시는 하프앤하프도 된다네요.

 

필자의 한 잔째는 그냥 “이치방시보리”입니다. “그냥”이라는 말을 붙여서 부르기가 실례일 정도로 맛있었습니다. 따르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신선도가 가장 중요하지요. 공장에서 마시는 이치방시보리는 신선도의 중요성을 재확인시켜주는 맛이었습니다. 솔직히 3잔 다 특별한 “그냥” 이치방시보리를 마셔 볼까 고민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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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이치방시보리인 줄 알았는데 아주 특별했던, 엄청 신선한 이치방시보리. 맥주는 신선해야 맛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듯하네요. 시식용으로 과자도 주는데 이것 역시 일반 마트 등에서 구하기 어려운 버전의 “카키노타네(柿の種)”입니다.

 

무조건 최고인 맥주 시음인데 문제가 딱 하나 있어요. 시간입니다. 아마 20분 정도밖에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무튼, 첫 번째 맥주에 감동하다 시간이 지나갔는지, 빨리 두 번째, 세 번째 잔을 마셔야 할 상황. 서둘러 스탠드로 가서 한 번에 “쿠로나마”와 “토리데즈쿠리”를 시켰습니다.

 

흑맥주 하면 좀 더 쓴맛이 셀 거라는 인상이 있었는데 “쿠로나마”는 쓰긴 쓴데 쓴맛이 목을 지나가다가 살짝, 정말 살짝 고소하면서 달콤한 맛을 남기고 가는 느낌이 있지요. 평소 흑맥주를 마시는 습관이 없는 필자이지만, 다음에 한 번 사 먹을까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었지요. 다음 기회에 하프앤하프로 마시고 싶다는 기대감도 생겼고요. 한편 “토리데즈쿠리”는 맥아의 맛과 향기를 세게 느낄 수 있는 인상. 맥주가 말 그대로 “맥”주구나라는 것을 재확인했습니다. 공장 특제 맥주는 토리데즈쿠리 외에도 기린맥주의 나머지 여덟 군데 공장에서도 만들고 있으니 관심이 있는 분은 전국 공장을 돌아다니며 “기린맥주 맛비교 투어”를 해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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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나마”와 “토리데즈쿠리”는 각각에 특색이 있어서 재미있습니다. 흑맥주도 가끔 마셔 볼까 생각 중입니다.

 

20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1리터 남짓의 맥주를 마신 셈. 적당히 취해서 아주 좋은 기분으로 시음을 마쳤지요. 이렇게 세상에 기린맥주 팬이 한 명 더 늘어난 타이밍에 시음장을 나가면 바로 기념품 매점이 있다는 절묘한 설계. 대단합니다. 즉석 팬이 된 필자는 기념품을 몇 개 사서 공장을 떠났는데 기념품 이야기는 일단 뒤로 돌리고 먼저 뒤풀이 이야기부터 하기로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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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음장에서 나가면 바로 기념품매장이 있습니다. 가격대도 그리 비싸지 않아서 선물용으로 딱 좋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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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때 내렸던 “키타나카하라(北中原)” 정류장 바로 맞은 편에서 타면 토리데역까지 갈 수 있습니다. 배차간격이 기니 매점에서 시간표를 확인해두면 좋겠지요.

 

 

5. 세뇌 효과 1 ~뒤풀이도 기린맥주로~

 

카시와(치바현)에서 뒤풀이를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카시와는 일본의 전형적인 지방 도시답게 술집만큼은 많습니다. 그러나 그 날은 불행하게도 금요일. 필자가 가자던 술집에 갔더니 예약 없이는 두 시간이나 기다려야 된다네요. 어쩔 수 없이 전에 한번 가 본 적이 있는 “테바(手羽 ; 닭 날개)”가 맛있는 집에 갔습니다. 갔는데 이 집이 제공하는 맥주가 기린. 너무 맛있어 보이는 겁니다. 평소 같으면 “방금 기린을 먹었으니 이번에는…” 이런 흐름일 텐데 완전 세뇌 상태에 있는 필자는 오히려 방금 느낀 환상적인 맛이 생각나서 “뭐, 어쩔 수 없지…”라면서 독단했지요.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술을 마시는 친구가 옆에 있기도 하니, 1,500엔 짜리 술 무한리필 코스를 시켜놓고 안주는 단품으로 주문하기로 했습니다.

 

여기는 일본. 당연히 첫 번째 잔은 맥주입니다. “일단 생맥 두 개 주세요”라고 했지요. 그렇게 나온 맥주가 기린라거. 완벽한 전개 아닙니까? 아무리 괜찮은 술집이라 해도 공장에서 마시는 이치방시보리보다 맛있는 것을 제공해 주는 집은 없겠지요. 게다가 필자는 원래 기린라거의 빅 팬입니다. 맥주잔을 얼려둔 것도 사장님의 식견을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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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풀이도 기린맥주. 이 집 생맥주는 기린맥주의 기본형인 기린라거. 더해서 잔을 미리 얼려 둔 것도 제법. 기본을 굳게 지키는 자세가 아주 좋지요.

 

이 집은 일단 닭날개 튀김이 명물입니다. 먼저 시로(しろ ; 흰색)와 쿠로(くろ ; 검은색)의 세트를 시켰지요. 간장을 바탕으로 시로는 약간 얼큰한 맛이 나고, 쿠로는 조금 달아요. 둘 다 찬 생맥에 딱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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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생맥과 맛있는 테바(닭날개 튀김).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계절에는 밖에서 먹는 것도 묘미인 것 같습니다. 이 집 앞에는 차가 지나다니지 않기 때문에 밖에서 먹기에 적합하네요.

 

갑자기 한국 친구가 “홋피(ホッピー)가 뭐에요?”라고 물어 왔습니다. 독자 여러분 중에도 아는 분이 있겠지만 이자카야(술집) 메뉴에 나와 있는 홋피라 함은 보통 일본 소주와 맥아 발효음료(맛은 맥주 같은데 도수는 0%)의 세트를 가리킵니다. 정확히는 그 도수가 없는 맥아 발효음료가 홋피인데 말이지요. 그래서 짙게 마시는 사람은 홋피(맥아 발효음료)가 남고, 약하게 마시는 사람은 그만큼 홋피를 많이 넣으니까 홋피가 먼저 떨어지지요. 때문에 홋피를 “나카(なか ; 안)”랑 “소토(そと ; 밖)”라는 개념으로 나누고, 소주를 “나카”, 맥아 발효음료 홋피를 “소토”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홋피를 마시다가 (맥아 발효음료) 홋피가 남았으면 “나카”를, 좀 도수가 센 것 같으면 “소토”를 추가로 시키면 됩니다. 일본 이자카야에 들를 기회가 있는 분은 한번 시도해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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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피 세트. 잔 안에 얼음과 소주가 들어 있고, 잔에 넣는 홋피는 따로 나오지요. 도수를 조절하면서 마실 수 있고, 나카(소주)랑 소토(홋피)를 따로 시킬 수 있습니다.

 

뒤풀이가 끝난 것은 밤 10시쯤. 카시와역에서 헤어져서 필자는 집으로, 친구는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오후 4시 넘어서부터 마시기 시작해서 밤 10시까지. 무한리필의 힘을 느끼면서 잠들지 않도록 열차 안에서는 자리에 앉지 않고 서 있었지요.

 

 

6. 세뇌 효과 2 ~빛나 보이던 기념품~

 

그럼 기린맥주 토리데공장 견학투어 리포트의 마무리로 필자가 사 온 기념품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기념품은 세 가지. 하나는 1888년부터 1957년 사이에 사용된 기린맥주의 라벨이 나온 테누구이. 테누구이(手ぬぐい)는 일본식 손수건인데 일반적인 서양식 손수건보다 길어서 크기는 보통 수건에 가까울 겁니다. 재미있는 것은 책자 형태로 꿰매진 점. 그림의 레트로하고 부드러운 느낌과 맞물려 구매 의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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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맥주 테누구이. 포장된 상태로 보면 그냥 수건으로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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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지에서 꺼내면 책자 형태로 꿰매져 있네요. 사용법에 따라서는 이대로 써도 될듯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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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돼 있었군요. 푸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잘 꿰매졌네요.

 

또 하나 사 온 것은 이치방시보리 클리어파일(A4 사이즈)입니다. 클리어파일은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대놓고 이치방시보리를 내세운 디자인은 비즈니스맨이 쓰기에 상당한 용기를 요구하지요. 재수가 좋으면은 (예를 들어 보는 사람이 재미로 받아들이면) 순식간에 거리를 가깝게 만들어 주는 마력이 있는 디자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필자는 사적인 장소에서만 쓰도록 조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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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인 이치방시보리 클리어파일과 기린 레트로 테누구이. 필자에 대한 세뇌가 성공적으로 이뤄진 증거이기도 하네요.

 

마지막 세 번째 기념품은 이치방시보리 맥주 토리데즈쿠리 2개 세트입니다. 토리데즈쿠리 자체는 토리데공장의 출하 지역에 있는 편의점이나 슈퍼에서도 구매할 수 있지요. 하지만 맥주의 생명은 신선도. 제조일을 확인해 봤더니 역시 제조된 뒤 바로 진열된 모양이었지요. 게다가 이 2개가 세트로 들어 있는 플라스틱 케이스가 너무 귀여운 겁니다. 병맥주를 운반・보관할 때 쓰는 맥주 케이스를 본뜬 케이스도 같이 나오는 거라 흔들림 없이 구매 결정. 케이스는 단품으로도 살 수 있는데 맥주와 세트로 사면 가격이 싸지기도 해서 더 좋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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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데즈쿠리 2개 세트는 맥주 케이스를 본뜬 케이스랑 같이 나옵니다. 토리데공장장의 진필 메시지 카피도 첨부돼서 기린 팬한테는 더할나위 없는 만족스러운 기념품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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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케이스 측면에는 기린 로고가 찍혀 있어요. 아주 예쁘죠?

 

이상으로 기린맥주 토리데공장 견학 리포트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얼핏 필자가 기린맥주의 편을 들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아사히도 잘 마시고 삿포로도 즐겨 먹습니다. 지갑에 여유가 있을 땐 프리미엄 모르츠나 에비스로 마시고요. 언제 될지 모르겠으나 다음에는 아사히맥주 모리야공장을 견학하러 갈까 생각 중입니다. 그냥 집 가까이에 있어서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