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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권 분립

 

국가의 권력을 가지로 나누고 서로 견제하게 만들어 권력의 폭주를 막은 것은 인류가 오랜 세월 동안 많은 고통을 겪으면서 개발해 매우 중요한 지혜다. '많은 고통'이란 건조한 단어에는 국가의 모든 권력이 개인, 혹은 집안, 기껏해야 특정 소수 집단에 집중되어 있었던 탓에 억울하게 삶을 빼앗긴 사람들의 핏값이 포함되어 있다. 권력이란 예나 지금이나 무서운 괴물이고, 괴물을 완벽하게 통제할 자신이 없다면 최소한 적당한 크기로 나눠 놓기라도 해야 한다.

 

'삼권' 가지 권력이 무엇인지는 기본 교육을 이수한 사람은 모두 알고 있다. "삼권분립의 '삼권' 열거하시오"라는 질문에는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이 대답을 있을 것이다. 입법, 사법, 행정. 재미있는 것은 다음이다.

 

" 순서로 열거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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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순서

 

대부분의 경우 삼권 분립을 거론할 발음하기 편한, 혹은 말의 리듬감이 익숙한 순서로 열거를 하게 된다. 그리고 순서는 개인마다 조금씩 다를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권력의 상관관계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자리라면, 순서를 정한 이유가 "발음하기 편해서요"라는 적절한 대답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 어떤 순서가 좋을까.

 

헌법을 보자. 현행 대한민국 헌법의 간략한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총강

2 국민의 권리와 의무

3 국회

4 정부

5 법원

6 헌법재판소

7 선거관리

8 지방자치

9 경제

10 헌법개정

 

한국 사회가 1987년에 쟁취한 9 개헌의 상징 하나인 헌법재판소가 6장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건 일단 차치하고, 3 분립의 순서는 헌법에 기재된 순서상으로는 '입법-행정-사법'이다. 헌법이 삼권을 서술하면서 순서를 이렇게 설정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분석이 있을 있다. 나는 분석 중에서 "국민의 , 민의에 가까운 순서대로"라는 설명이 가장 설득력 있다고 생각한다.

 

 

 

3. 현실과 이상

 

지지율이 80% 넘나드는 19 대통령과 국민적인 불신이 지나칠 정도로 팽배해 국회인지 국해()인지 모를 지경이라는 말까지 듣는 제 20 국회를 보유한 현시점에서 이런 글을 쓰는 것에 심리적인 부담을 느끼지만, 일단 이론적인 것만 살펴보자.

 

대한민국의 국회는 재적 의석 300석의 단원으로 구성된다. 상하원이 따로 없는 심플한 하나의 국회에 국회의원 숫자도 외우기 좋게 300명이다. 그리고 300석은, 선출 방법 상의 디테일한 차이는 있지만 모두 국민의 손으로 선출된다. 지역구든 비례대표든 공천을 어떻게 받았든. 전원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표를 받은 사람들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오로지 국민의 표로만 선출된 사람들로만 구성된 집단의 '민주적 정당성'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행정부인 대한민국 정부는 이에 비하면 임팩트가 조금 부족하다. 물론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은 직선제를 쟁취한 이후 국민이 투표로 선출하고 있고, 유권자가 4천만 명이 넘는 거대한 단일 선거구에서 천 만을 훨씬 넘는 표를 얻어 선출되곤 하는(19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득표수는 13,423,800표다. 서울특별시의 인구보다 많은 숫자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 또한 매우 공고하다.

 

그러나 모두 알다시피 정부는 대통령 혼자서 구성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거나 청문회라도 거쳐 임명하는 국무총리 이하 장관들은 간접적으로나마 민주적인 견제를 받겠지만, 각종 시험을 통해 등용돼 내부적인 인사를 거쳐 승진을 거듭하는, 소위 관료 조직은 거칠게 말해 민주적 정당성과는 거리가 있다. 덕분에 일정한 확률로 국민을 문자 그대로 개돼지 취급하는 자가 나오고, 때로 한국 사회는 그런 자들이 누구에게 고용된 사람인지 제대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에 아까운 사회적 비용과 자산을 낭비하기도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조문 가운데 국민의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곤 하는 1 2,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결코 빈말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며, 따라서 삼권을 기술할 때도 국민의 뜻에 가까운 순서로 적어보자면 국가 원수이자 모든 의전서열의 당연한 1위인 대통령이 있는 정부보다도 국회가 앞에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국회는 전원 국민이 선출한 자들로만 구성되니까. 사실에 속쓰림을 느낀다면 제발 다음 총선 땐 제대로 국회를 만들어 보자.

 

법원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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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민주주의와 가장 민주주의의 수호자

 

사람이 죄를 지으면 경찰이 잡아가고 검찰이 기소하고 판사가 판결을 내리다보니 가끔 오해를 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경찰은 행정안전부 소속이고 검찰은 법무부에 소속되어 있는 엄연한 행정기관이다. 한국은 오랜 세월 사법시험의 전통 속에서 사시를 통과한 사람이 판사, 검사, 변호사가 있었다 보니 가끔 오해를 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검찰은 법무부에 소속되어 있고 변호사는 국가가 자격을 부여하긴 하지만 엄연히 국가권력에서 독립된 사람들이다.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 삼권분립의 축인 사법을 담당하는 것은 오로지 판사들이다.

 

그리고 판사들은, 국민에게서 표도 받지 않은 사람들이다.

 

인권과 정의의 최후의 보루인 법원이,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에서 가장 동떨어져 있는 아이러니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의외로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비록 최고위급 판사들의 임명에는 대통령과 국회의 영향력이 필요하고 따라서 일정한 수준의 민주적인 감시는 지금도 존재하지만, 그것만으론 설명이 부족하다고 모두가 느낄 것이다.

 

설명을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아픈 마음으로 동의해야 하는 전제 하나를 확인해야 한다. 다수결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민주주의는, 때론 잘못된 선택을 수도 있다. 따라서 다수결과 투표에서 독립된, 국가의 양심이라 만한 사람들을 오랜 세월 훈련시키고 교육시켜서 민주주의의 파수꾼 자리에 위치시켜 놓아야 한다.

 

21세기 들어 한국은 번의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을 도저히 받아들일 없었던 세력은 조금 과장하자면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다음날부터 그를 끌어내릴 방법을 강구했을 것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기회가 찾아왔고, 국회는 그를 탄핵했다.

 

노무현을 탄핵했던 대한민국 16 국회는 국민의 손으로 선출하고 구성한 국회였다. 달리 말하면, 탄핵은 민주적인 정당성이 삼권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국회가 다수결로 결정한, 지극히 민주적인 결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정은 국민의 표를 표도 받지 않은 헌법재판소의 기각으로 결국 무산됐다.

 

번째 탄핵 사태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선출되는 과정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결과만을 놓고 보자면 박근혜 대통령은 18 대선에서 무려 15,773,128표라는 어마어마한 득표를 하고 1987 이후 최초로 과반 이상의 득표를 기록까지 남겼던 정치인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학교 반장선거에서 5표를 얻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상기하면 숫자는 실로 두렵기까지 하다. 그리고 15,773,128명의 결정을 뒤집는데 필요했던 헌법재판관의 숫자는 고작 8명이었다.

 

개인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을 기각하고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동의하기 때문에 이런 감상이 더욱 공고해졌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 번의 탄핵 사태를 통해 한국 사회는 '다수결' '투표' 중심으로 움직이는 민주주의와 조금 떨어진 곳에, 국가의 양심을 육성해 놓는 제도의 효용성을 제대로 학습했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그를 탄핵한 국회의 눈치를 봐야 하는 사람들이 헌법재판관이었다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 그를 선택한 유권자의 눈치를 봐야하는 사람들이 헌법재판관이었다면, 우리의 현재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일 것이다.

 

나는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좋아하지만, 제도를 제대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때론 국민의 뜻에서 조금은 떨어진 집단에게 감시견의 역할을 맡겨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진 않다. 그렇기 때문에, 사법은 민의에서 조금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한, 혹은 민의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기에 오히려 민주주의를 수호할 있는 기관으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믿음이 근본적으로 무너지는 사태를 우리는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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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양심의 기로

 

사법농단 사태가 본격적으로 보도되기 시작한 이후, 양승태 대법원장이나 법원장급 판사들의 의견이라며 거론되는 문장들을 보고 느낀 첫번째 감정은 " 한가롭다"였다. 법원 내부의 해결이 중요하다.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국민들이 오해를 풀고 다시 법원을 믿어야 한다. 놀랍게도 법원이 아니라 문제에 분노한 국민들에게도 요구 사항을 내걸고 있다. 여기까지 오면 이들이 국민의 신뢰라는 것을 얻을 생각은 있는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표를 표도 받지 않는 집단에게 국가의 근본적인 권력 가운데 무려 1/3 맡겨 놓았던 것은, 불완전한 인간으로 구성된 집단이기에 때론 실수를 하기도 하는 국민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국가와 사회의 양심을 온존시켜 다수가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양심이 사회의 기조를 올바른 방향으로 바꿀 기회를 제공해 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양심을 운용하는 자들이 누군가의 삶과 생명을 테이블에 얹어 놓고 주거니 받거니 거래를 하고 있었다면, 국가의 주인인 국민은 그들에 대한 신뢰를 회수할 수밖에 없다. 법원이 사태를 자정할 역량이 없다면 헌법을 수정해서라도 법관에게도 민주적인 영향력을 미치도록 국가의 구조를 바꾸는 것마저 고려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국가적인 사법 불복종 운동이 펼쳐지는 사태보다는 훨씬 온건할 테니까.

 

묻고 싶다.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듯 신뢰도 국민에게서 나온다. 만약 국민 대부분이 사법부를 믿지 않게 된다면, 판사 여러분이 법복을 입고 높은 곳에 앉아 판결문을 낭독하는 행위가 취객이 공터에서 어린 시절 배웠던 구연동화를 연기하는 것과 도대체 얼마나 차이가 날까. 국민이 신뢰하고 따라 판결이 판결로 남을 있다. 근본적인 신뢰가 무너지고 있는데, 사법부의 권위니 법관들의 자괴감이니 한가한 소리나 하고 있을 셈인가.

 

대한민국의 사법부가 앞으로도 국가의 양심으로 남을 있을지, 법원은 지금 중대한 기로에 있다. 부디 법원을 구성하는 판사 개개인이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길 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국민이 가까운 시일 내에 다른 방법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알려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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