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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손 다음에 손, 다음에 또 손

 

바야흐로 월드컵의 시즌이 도래했습니다. 세계의 축구 선수들이 모여 자웅을 가리기 때문에, 축구 팬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축제일 텐데요. 여러분들도 충분히 즐기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월드컵 얘기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아이슬란드 축구 대표팀 때문입니다. 얼마 전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와 1:1로 비기면서 세계인들의 관심을 받았는데요. 축구 외에도 이들은 또 다른 방면에서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성(姓)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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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다시피 모두가 ‘손’ 혹은 ‘슨’이라는 접미사로 끝이 나고 있습니다. 감독은 하들그림손, 선수들은 할프레드손, 시구르드손, 아나슨, 마그누손... 매우 다양한 ‘손’과 ‘슨’이 우리를 어지럽게 하는군요.

 

이미 알고 계신 분들도 있을 것이고 눈치 빠른 분들은 알아채셨겠죠. 마치 접미사처럼 붙는 ‘손’과 ‘슨’은 ‘~~의 아들’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접미사입니다. 만약 딸이라면 ‘도티르’라는 접미사가 붙습니다.

 

이는 북유럽 민족 계통(노르드인, 북게르만 인)에서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던 관습입니다. 성에 접미사가 붙는다니 좀 특이합니다. 또 특이한 것은 대부분 아버지와 자식의 성이 다르단 겁니다. 당연하겠죠. 아버지와 아들의 성이 같으려면 아버지는 성과 같은 이름을 지녀야 한다는 말이니까요. 예를 들어 ‘시구르드 시구르드손’처럼요. 우리처럼 가족 성씨로 이뤄진 문화에선 생소한 전통이지요. 우리는 이미 이 문화를 무의식적이지만 친근하게 접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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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마블 코믹스의 등장인물로 잘 알려진 토르와 로키 형제의 원전(原典)은 북유럽 신화입니다. 당연히 북유럽식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요. 이들의 아버지는 누구죠? 오딘입니다. 즉 그들의 성은 오딘손이겠지요. 마블 영화 내에서도 자신을 소개할 때 오딘손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토르가 아들을 낳으면 토르손, 로키가 아들을 낳으면 로키손이 되겠지요. 딸을 낳으면? 손 대신 도티르를 쓰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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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작명 방식의 흔적이 남아있는 스웨덴. 이미 가족성으로 굳혀졌다.

 

이런 이유로 아이슬란드 축구 대표팀의 정보를 보면 비슷한 어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죠.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이런 문화는 북유럽 민족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던 것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한국과 맞붙은 스웨덴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웨덴이 위치한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는 19C 이후로는 이런 작명법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현재까지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아이슬란드가 특이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쯤에서 상상을 해보죠. 스웨덴계 성을 가진 여배우 스칼렛 요한슨이 만약 중세 시대로 돌아가 자신을 소개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시대 사람들이 듣기에는 어이가 없었을 겁니다. 분명 여성인데 자신을 ‘요한의 아들 스칼렛’으로 소개하고 있으니까요.

 

 

2. 유럽인들의 성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왕 아이슬란드 이야기를 했으니 유럽의 성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볼까요? 성(性) 문화 말고요. 가장 오래된 성씨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고 알려진 곳은 고대 중국입니다. 3000년 전부터 기록이 남아있다고 하는데요. 이 시기의 성씨는 혈연을 구분하는 ‘성’과 지역, 신분, 직업 등을 나타내는 ‘씨’가 구분되어 성씨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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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성씨는 여러 변화를 거쳐 현재 우리가 아는 한 글자 형태의 성씨로 변모하고, 우리나라 등 주변국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 결과 우리도 혈연(가족)과 지역(본관)이 결합된 성씨 체계를 사용 중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성씨는 기원전 1세기에서 5세기에 걸쳐 형성되었다고 추측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원시적 형태의 성씨가 나타나던 시기(기원전 10세기경)에도, 유럽에는 아직 성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고대 로마에서 성이라고 부를 만한 개념이 등장합니다. 고대 로마인의 이름은 3부분으로 구분되었는데, Praennomen, Nomen, Cognomen 이라는 부분으로 구분됩니다. 쉽게 설명하면 Praennomen는 이름, Nomen은 성, Cognomen은 동양 문화권의 호(號)처럼 개인별 별명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가령,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 의 가이우스는 이름(Praennomen)이고 율리우스는 성(Nomen), 카이사르는 호(Cognomen)이지요. 율리우스가 이름, 카이사르가 성이 아닙니다. 이러한 작명법은 로마에 카톨릭이 득세하며 점차 사라지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성씨는 정착 집단 내에서 다른 사람들과 자신, 혹은 혈연을 헷갈리지 않게 구분해 주는 역할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목 민족 같은 경우는 성이 없기도 했고요. 이 점은 유럽이나 동아시아나 같은 점입니다. 고대 로마 시기 유럽에서는 성(Nomen)으로 사용되는 단어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사회가 씨족 마을에서 도시 단위로 팽창하기 시작하며 한정된 수의 성으로는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곧,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도 성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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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윈저 왕조의 문양.

윈저 왕가로 이름을 바꾸기 전에는 Saxe-Coburg and Gotha(삭스-코버그-고타)라는 3가지 영지 이름을 합친 성을 썼다.

 

모든 사람이 성을 다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12세기 이전까지 성은 봉건 귀족들의 전유물이라 부를 만 했습니다. 강력한 영주 가문들이 자신의 땅을 기반으로 해성을 지었습니다. 그 외에도 자생적으로 성이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이름이 비슷한 사람들끼리는 어떻게든 구분할 필요가 있었으니까요.

 

예를 들면, 중세 유럽 브리튼 섬의 한 지역에 성이 없는데 이름이 같은 비슷한 연배의 남자가 2명 있다고 칩시다. 동네 주민들은 그들을 구분하기 위해 그들의 직업, 사는 곳 등등을 통해 구분하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대장장이네 존(John Smith)’, ‘재단사네 존(John Taylor)’ 이런 식입니다. 결국 이들의 직업은 그들의 가문까지 나타내는 것으로 의미가 확장되어 성처럼 사용되게 됩니다. 이렇게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직업, 혹은 자신이 출생한 지역의 유명한 풍경 등을 성으로 삼아 작명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별명, 종교, 민족, 가문의 문장, 직위 등에서 따와 성을 작명하기도 했습니다.

 

이베리아 반도나 브리튼 섬, 독일 지역에서는 단어를 결합해 성을 만드는 풍조가 나타나기도 했고요.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 이 방식의 작명은 유럽 전역에 걸쳐 사용되기에 이릅니다.

 

이렇게 형성된 성은 훗날 아예 정착되어 고대 로마처럼 가족의 성으로 완전히 자리 잡습니다. 대장장이가 아니더라도 Smith라는 성을 쓰고, 재단사가 아니더라도 Taylor라는 성을 쓰게 되는 거죠. 가족 성이 다시금 정착되기 시작한 곳은 비잔티움 제국이었고, 서유럽으로 범위를 넓혀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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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에서 이런 가족 성의 정착이 가장 빨리 드러난 곳은 10세기 아일랜드 지방이었습니다. 아일랜드에서는 자신을 소개할 때 ‘~~의 아들’이라는 식으로 소개하는 방식이 아예 성으로 굳어져 사용되었는데, 맥도널드(Mcdonald), 오브라이언(O'Brien), 오닐(O'neal)이라는 성이 그 예시입니다. 북유럽계 이름들처럼 모두 ~의 아들이라는 켈트어 접두사(Mc, O’)가 붙어있습니다. 이 이름들이 굳어져서 어느새 가족의 성처럼 사용된 겁니다. 그 외 서유럽 지방에서는 14세기경에 가족 성이 형성되었고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 계열 성씨의 모양이 정착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유럽권의 성 작명 방식과 역사에 대해 잠시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남들에게 자랑하기도 별로고, 그다지 이용할 구석도 없습니다. 그러나 왕좌의 게임 같은 중세 판타지 드라마나 그 시대를 다룬 게임을 하실 때는 일말의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왜냐면 제가 그랬거든요. 물론 그뿐 아니라 그간 궁금했던 성의 어원이 있다면 이 기회에 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