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지난 회에는 일본국헌법도 삼권분립제를 채용하고 있고, 국회(입법부), 내각(행정부), 재판소(사법부)가 각각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서로 억제・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약하면 법률을 만드는 의회가 있고, 의회가 만든 법에 기초해서 정치를 하는 정부가 있고, 또 의회나 정부가 헌법을 어겼을 때 무효화시킬 수 있는 사법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기관이 권력을 휘둘러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서로 억제・견제하는 시스템이라는 점이죠. 이런 큰 구도는 한국 헌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의회, 정부, 법원이 각각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을 가지고 헌법이 규정하는 역할에 알맞게 활동하게 돼 있습니다. (물론 일본이든 한국이든 헌법이 기대하는 만큼의 역할을 다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도 있지만요)

 

구체적으로 보면 일본과 한국의 삼권분립 모습엔 크고 작은 차이가 있지요. 가장 뚜렷한 차이점은 역시 행정부가 아닌가 싶네요. 한국은 대통령이 정치를 이끌어가는 대통령제를 채용한 반면, 일본은 수상(首相)이라고도 불리는 내각총리대신(內閣總理大臣)이 정치를 책임지는 의원내각제(議院內閣制)를 취하고 있습니다. 아마 일본 헌법에 전혀 관심이 없는 분들도 일본에는 대통령이 없고 행정부의 우두머리는 수상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수상’이라는 호칭은 내각의 우두머리(首)를 맡은 대신(相)이라는 데서 유래합니다)

 

요즘 한국에서 개헌 이슈가 있죠. 대통령제를 대신하는 정부 구성 방식으로 의원내각제가 거론되는 걸 본 분도 있을 거에요. 그때 일본의 의원내각제가 살짝 언급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언급되는 내용은 너무 단편적이고, 의원내각제의 좋은 점이나 나쁜 점만을 부각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내각이나 그 우두머리인 수상이 어떠한 존재이고, 의원내각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 전체적으로 정리해 보는 것도 매우 유익한 일이 아닐까 싶어요.

 

대통령제와_내각제.jpeg

 

 

1. 내각의 의미와 하는 일

 

내각은 어떤 조직이고 어떤 역할을 맡고 있을까요. 일본 헌법 제5장은 “내각”이라는 제목 아래에 내각의 역할이나 구성 등에 대해 규정하고 있습니다(제65조부터 제75조까지). 먼저 제5장의 첫 번째 규정은 간략히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第65条 行政権は、内閣に属する。

 

“행정권은 내각에 속한다”입니다. 간결해서 좋은데 애당초 '행정권'이란 뭘까요? 여러 논의가 있는데 “모든 국가 기능에서 입법과 사법을 제외한 나머지 기능을 행사할 권한” 정도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국가 권력 전체에서 입법권과 사법권을 제외한 것이 다 행정권이라는 이야기지요. 내각이 엄청나게 광범위한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을 새삼 알 수 있겠네요.

 

여기에서 응용문제를 하나 내볼게요. 정부를 구성하는 부서 중에 자체적으로 규칙을 제정하거나, 심결 혹은 심판이라는 형식으로 판단을 내리고 제재까지 가하는 기능을 갖춘 곳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정거래위원회(公正去來委員會)가 그래요. 독점금지법(한국의 공정거래법에 상응)에 기초해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그것에 어긋난 행위를 법을 어긴 것으로 보고 단속하고 있어요. 이것은 행정기관인 공정위가 사실상 법을 만들고 적용하고 제재까지 가하고 있단 셈이 되고, 게다가 업무 집행에 있어서 수상이나 내각의 간섭을 받지 않아요. (적어도 제도상 그렇게 돼 있어요)

 

공정거래위원회와 같이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정부기관을 일본에서는 “독립행정위원회”라고 총칭하고 있어요. 가이드라인(지침)을 만들고 그것에 기초해서 제재를 가한다고 하니 입법이나 사법 기능에 가까운 일을 하고 있는 거지요. 행정권을 가진 것으로 규정된 내각에서 독립해 활동하기도 하고요. 얼핏 보면 삼권분립 원칙에 어긋났다고 볼 수 있지 않아요? 하지만 실질적으로 문제 삼는 입장은 없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공정위 같은 독립행정위원회에 의한 조치도 국회가 만든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을 뿐이고, 조치 대상이 된 사람이나 회사는 최종적으로 재판을 통한 구제를 구할 수 있어서 재판소의 통제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독립행정위원회는 법에 유사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그에 기초해서 제재까지 가하고 있어서, 일견 입법권이나 사법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회가 만든 법률의 틀 안에서만 할 수 있고, 최종적으로 재판소의 통제도 받기 때문에 삼권분립 원칙을 어긋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잠깐. 입법부랑 사법부와의 관계는 일단 알겠어요. 그런데 독립행정위원회는 행정권이 속한다고 규정된 내각에서 독립해 일을 한다잖아요? 그렇다면 원래 내각이 갖고 있는 행정권을 침해하고 있는 거 아닌가?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당연한 의문입니다. 다만 인권보장이라는 관점에서 독립행정위원회는 수상이나 내각에서 독립돼 있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독립행정위원회는 경찰과 마찬가지로 정부(내각)의 정치적 성향에 영향을 받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위에 언급한 공정거래위원회 외에도 공무원 인사를 맡은 인사원(人事院)이나 국가의 경찰청을 관리하는 국가공안위원회(國家公安委員會) 등도 독립행정위원회로 분류될 수 있는데 이들 역시 직무 집행이 정치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는 게 낫겠지요.

 

japango_1-sfpeter.jpg

 

행정권은 모든 국가권력에서 입법권과 사법권을 제외한 모든 권한을 말하고, 그런 어마어마하게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하는 기관이 내각이란 점이 포인트입니다. 물론 독립행정위원회로 분류되는 내각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하면서 이법이나 사법에 유사한 기능을 하는 부서가 일부 있다는 것까지 알면 더 좋고요.

 

다음으로 그 행정권을 갖는 것으로 규정된 내각이 어떤 사람들로 이루어지는지 살펴볼게요.

 

第66条 内閣は、法律の定めるところにより、その首長たる内閣総理大臣及びその他の国務大臣でこれを組織する。

2 内閣総理大臣その他の国務大臣は、文民でなければならない。

3 内閣は、行政権の行使について、国会に対し連帯して責任を負ふ。

 

제 66조 제1항은 “내각은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그 수장(首長-집단을 통솔하는 이)인 내각총리대신 및 기타 국무대신으로 이를 조직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내각(內閣)은 우두머리인 수상과 그 외의 대신들로 이루어진다는 뜻인데요, 수상 외의 대신들은 보통 각 중앙정부기관(한국에서 “ㅇㅇ부”로 불리는 그것. 일본에서는 “ㅇㅇ성(省)”이라 하지요)의 장을 가리키지요. 재무성의 장은 재무대신, 농림수산성의 장은 농림수산대신, 이런 식으로요. 단 법률상 특정 행정기관의 장을 안 맡는 대신(담임하는 바가 없다는 뜻으로 '무소임(無所任)대신'이라 합니다. 법령상 용어가 아니고 속칭이지만 말이지요)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내각법 3조 2항).

 

실제로도 비교적 장기적인 정책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내각부(內閣府)에 설치되는 내각부특명담당대신, 그때그때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단기적 과제에 대처하기 위해 내각관방(內閣官房 - 내각에 관한 여러 사항을 정리・조정하는 내각의 내부 기관)에 두는 내각담당대신이라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어요. 현재 아베 내각(제4차)의 명단을 보면 “내각부특명담당대신(ㅇㅇ담당)”이라는 직함을 단 대신이 모두 10명, 그냥 “국무대신”이라는 직함이 달린 대신이 1명 있습니다. 10명 있는 내각부특명담당대신이 맡은 일을 보면 “소비자 및 식품안전”, “지적재산 전략”, “우주 정책”, “규제 개혁”, “원자력 재해” 등등 비교적 장기적 관점에서 정책을 마련・추진할 내용임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반면 그냥 “국무대신”이란 직함이 달린 대신이 맡은 일은 “도쿄올림픽・패럴림픽 경기 대회”입니다. 전형적 단기 정책이지요.

 

잠깐! 주의할 점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대신의 인원수. 내각법의 규정상 대신은 원칙적으로 14명 이하,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에는 17명까지만 늘릴 수 있다는 제한이 있어요. (단 현재는 동일본대지진을 계기로 부흥담당대신을 설치하기 위한 특별 조치 때문에 최대 18명까지 대신을 둘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또 하나는 헌법 제66조 제2항에서 규정되고 있는 내용. “내각총리대신, 기타 국무대신은 문민(文民)이어야 한다”는 거지요. 문민? 일반인한테는 낯선 말이지요.

 

사전이 가르쳐 주는 뜻은 “직업 군인이 아닌 일반 국민”입니다. 그렇다면 제2차 세계대전 때 군인이었던 경력이 있는 사람, 자위대 대원(헌법 해석상 군대로 간주되지 않는)이나 그 경력을 갖는 사람도 대신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논의가 있는 부분이긴 한데 개인적으로는 군국주의의 배제에서 비롯된 일본 헌법임을 중시하고 싶습니다. 결국 군인 경력이 있는 사람은 물론, 현역 자위대원이나 그 경력이 있는 사람도 문민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네요(내각의 구성에 대해서는 아래 제68조 제 1항도 참조).

 

이어서 제66조 제3항은 “내각은 행정권의 행사에 관하여 국회에 대해 연대해서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지요. 국회에 대한 내각의 연대책임. 이게 바로 일본이 의원내각제의 나라임을 확실하게 선언한 부분이라 할 수 있겠지요. 다만 이 조항 하나만이 일본이 의원내각제임을 밝혀 주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의원내각제가 무엇인가에 대해 여러 입장이 있는 가운데 일단 “정부(내각)가 의회(국회)의 신임에 기초하여 성립・존속하는 제도”라고 생각한다면 아래와 같은 규정들 역시 일본의 의원내각제를 뒷받침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image_5453057721481186812211.jpg

 

 

第67条 内閣総理大臣は、国会議員の中から国会の議決で、これを指名する。この指名は、他のすべての案件に先だつて、これを行ふ。

2 衆議院と参議院とが異なつた指名の議決をした場合に、法律の定めるところにより、両議院の協議会を開いても意見が一致しないとき、又は衆議院が指名の議決をした後、国会休会中の期間を除いて十日以内に、参議院が、指名の議決をしないときは、衆議院の議決を国会の議決とする。

 

제67조 제 1항에 보면 “내각총리대신은 국회의원 중에서 국회의 의결로 이를 지명한다. 이 지명은 다른 모든 안건에 앞서서 이를 행한다”고 규정되어 있지요. 수상이 국회의원이어야 되고, 국회의 의결에 의해 뽑힌다는 점에서 정부가 의회의 신임을 얻어야 비로소 성립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2항은 의원내각제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이른바 “중의원의 우월”을 나타내는 규정이지요.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 번역만 하면 이렇습니다. “중의원과 참의원이 다른 지명의 의결을 한 경우에, 법률에 정한 바에 따라 양 의원의 협의회를 열었음에도 의견이 일치하지 아니하는 때, 또는 중의원이 지명의 의결을 한 후 국회의 휴회 기간을 제외하고 열흘 이내에 참의원이 지명의 의결을 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중의원의 의결을 국회의 의결로 한다”고 하고 있지요.

 

일본 국회가 중의원이랑 참의원의 두 의원(議院)으로 구성되어 있는 점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 않나 싶은데, 헌법상 몇 가지 대목에 대해서는 참의원보다 중의원이 힘이 더 강합니다. 구체적으로는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지금은 일단 일본 국회는 중의원과 참의원으로 구성되고, 중의원이 참의원에 우월한 대목이 있다(중의원의 우월) 정도 알아 놔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 제68조는 의원내각제라는 관점에서는 제1항 단서가 주목됩니다.

 

第68条 内閣総理大臣は、国務大臣を任命する。但し、その過半数は、国会議員のなかから選ばれなければならない。

2 内閣総理大臣は、任意に国務大臣を罷免することができる。

 

 

image_2231623081481183921142.jpg

 

제1항의 규정을 보면 “내각총리대신은 국무대신을 임명한다. 단 그 과반수는 국회의원 중에서 뽑아야 한다”고 하며, 내각을 구성하는 대신의 과반수가 국회의원이어야 함을 밝히고 있지요. 이 규정도 내각이 국회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을 시사하지요.

 

제2항은 “내각총리대신은 임의로 국무대신을 파면할 수 있다”며, 제1항 본문과 맞물려 수상이 마음대로 내각을 꾸밀 권한을 갖고 있다는 것을 규정하고 있지요. 물론 사실상 여당의 의향을 조절해서 조각(내각을 조직하는 것)을 하는 것이 관례입니다만.

 

다음 제69조는 내각이 국회, 특히 중의원의 신임이 있어야 존속할 수 있다는 점을 직접 규정하고 있습니다. 의원내각제의 핵심적인 규정이라 할 수 있겠네요.

 

第69条 内閣は、衆議院で不信任の決議案を可決し、又は信任の決議案を否決したときは、十日以内に衆議院が解散されない限り、総辞職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

 

말하기에 “내각은 중의원에서 불신임의 결의안을 가결하거나 또는 신임의 결의안을 부결한 때에는 열흘 이내에 중의원이 해산되지 아니하는 한 총사직(總辭職)을 해야 한다”고 하네요. 중의원이 “이 내각에 정치를 맡길 수 없다”라는 의결을 하면 내각이 해체된다는 말입니다. “열흘 이내에 중의원이 해산되지 아니하는 한”이라는 부분은 중의원이 “내각을 신임 못 해”라고 하게 될 때 내각 측에서 중의원을 해체시키는 것을 상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다음 제70조의 내용.

 

第70条 内閣総理大臣が欠けたとき、又は衆議院議員総選挙の後に初めて国会の召集があつたときは、内閣は、総辞職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

 

즉 “내각총리대신이 빠진 때 또는 중의원의원 총선거 후 처음에 국회의 소집이 있은 때에는 내각은 총사직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중의원이 “내각이여, 너희들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라는 의사를 표시하면 내각으로서는 “알았어… 그럼 우리가 물러설게" 해서 아무 대항조치 없이 총사직할 것은 사실상 없지요. 실제로는 “그럼 국민들한테 판단하게 하자”라며 중의원을 해체시킵니다.

 

071111_0305_4.png

 

이때 중요한 것은 수상이 국회의원(사실상 중의원의원)이어야 하다는 점. 내각이 중의원을 해체시키면 수상 역시 중의원의원의 자격을 상실하게 되는 겁니다. 그 결과 제70조가 규정하는 “내각총리대신이 빠진 때가 되죠. (물론 “내각총리대신이 빠진 때”에는 수상이 사망한 경우 등도 포함됩니다. 단 질병이나 생사 불명일 경우에는 아직 수상이 빠진 경우에 대항되는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부총리가 임시로 수상의 직무를 대행합니다.)

 

“앞 2조의 경우에는 내각은 새로 내각총리대신이 임명될 때까지 이어서 그 직무를 한다”고 하니 중의원 해산에 따른 내각 총사직의 이유가 수상의 중의원 의원 자격 상실이든 총선거 후 처음의 국회 소집이든 새로운 내각이 조직되기까지 종전 내각이 직무를 계속 행합니다. 큰 차이는 없는 거지요.

 

여기까지 일본은 의원내각제를 채용하고 있으며, 내각과 국회(중의원)는 서로 생살여탈의 권한을 갖고있다, 이 2개 포인트만 이해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참의원도 내각 불신임을 결의하거나 신임을 부결할 수는 있어요. 단 내각에게 총사직하게 하는 법적 효력(강제력)이 없을 뿐입니다. 내각 입장에서는정치적인 의미는 있겠으나 법적으로는 그냥 외면해도 무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