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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치혁신의 원조 아이돌


육군 중위 만기제대, 기업주도 환경보호운동의 선구자, 유한킴벌리 사장, 킴벌리 클락 동아시아 총괄 사장, IMF 때 대량해고 대신 잡 세어링(job sharing)을 선택하여 극찬을 받은 기업가. 17대 대선을 4개월 앞둔 2007년 8월, 창조한국당 대표로 출마해 초기 20%의 높은 지지율을 달리다가 당시 민주당 후보인 정동영과의 후보단일화 실패로 득표율 4위로 낙선, 이듬해인 2008년 이재오를 꺾고 은평구에서 18대 국회의원으로 당선. 6개월 뒤 이한정 전 창조한국당 비례의원으로부터 공천헌금을 받은 죄목으로 기소, 1년 뒤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으로 의원직 상실.


3년간의 짧은 정치역정 끝에 오만 질타와 비난을 안고 영생의 나라로 떠나 버린 정치혁신의 원조 아이돌. 문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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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안철수가 오버랩되지 않으면 엔쥡니다. 7년 전의 그 막장극이 오롯이 재방되는데 시청자는 채널을 돌릴 수가 없습니다. 돌려도 돌려도 쫓아다니는 종편광고처럼, 호러는 끊임없이 되풀이됩니다.
 


2. Who Are You? Who. Who.. Who. Who..


2011년 9월 이후 정치인 안철수를 향한 물음입니다. 


그간 많은 ‘생각’들을 제시해 왔지만, 창조경제의 주창자인 박근혜 대통령처럼, 안철수의 생각들도 오리무중입니다. 문재인과의 단일화 과정은 절차적으로 민주적이지 못했고, 단일화 이후의 행보도 승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굳이 비집고 앉은 노원병에서의 출마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후 새정추, 새정치연합, 윤여준, 김성식, 금태섭 등과 관련된 일련의 과정들은 스캔들에 가까웠지요.


국정원 대선개입, 국정원-검찰 간첩조작, 세월호, 국정원 불법사찰, 메르스, 차기 전투기 F-X사업 비리의혹, 국정화 교과서, 복면금지법, 인터넷 명예훼손 제3자 신고 등 굵직굵직한 사안들이 다달이 터져 나오는데 그 어디에서도 안철수씨의 모습은 보기 힘듭니다. 그나마 전문분야라 기대했던 국정원 불법사찰 진상특위도 용두사미로 끝나버렸습니다.


핵심 메시지였던 ‘새정치’도 명징하지 못하긴 마찬가집니다. 호남과 공천배제 대상인 비주류 대상들을 등에 지고 외치는 혁신은 더 이상 신(新)하지 못합니다. 안철수가 겨냥한 목표가 창조적 파괴였을 수도 있습니다. 외부적 혁신 이전에, 내부적 혁신을 통해 뱃속의 기생충들을 일소하고 민주당의 환골탈태를 꾀하겠다는 것. 하지만 헌 자루를 들고 새 술을 붓자는 외침에 시민들은 어리둥절합니다. 안철수의 탈당이 창조적이지 못한 이유입니다.


안철수란 이름에 걸었던 기대가 일개 국회의원의 그것과는 달랐기에 낙담도 큽니다. 실적으로만 평가한다면 정치인 안철수는 내년도 해고 대상 0순위입니다.



3. ‘설탕물이나 팔면서 남은 인생을 보내고 싶습니까?’


탈당 후 첫 행보를 노원병의 경로당 방문으로 잡으면서 안철수가 뱉은 한 마디는,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창업주였는데 존 스컬리 대표에게 쫓겨났다. 그 다음 결과들은 잡스의 몫인 거죠”


였습니다.


존 스컬리는 블라인드 테스트(눈을 가린 사람들에게 코카콜라와 펩시를 맛보게 한 후 어느 콜라가 맛있었냐고 답하게 하는 내용)와 펩시 세대(Pepsi Generation)란 광고로 콜라 전쟁을 승리로 이끈, 마케팅의 귀재였죠. 이 승전물을 바탕으로 잡스는 펩시의 CEO를 지내고 있던 그를 삼고초려 끝에 애플의 사장으로 초빙합니다. 애플의 사장이 되어달라는 잡스의 제안을 4개월간이나 고사하던 스컬리의 마음을 돌린 것은 잡스가 던진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설탕물이나 팔면서 남은 인생을 보내고 싶습니까? 아니면 세상을 바꿀 기회를 붙잡고 싶습니까?”


새정치민주연합은 2013년 안철수가 새정치 추진위원회-새정치신당-새정치연합의 창당과정에서 김한길과 협의 끝에 민주당과 합당하여 만든 당입니다. 그 과정 속에 새정추의 핵심멤버였던 윤여준과 김성식이 이탈했습니다. 안철수가 주장하는 제3지대 신당에 대한 회의론이 비등했습니다. 공동창업자라고 보기엔 안철수의 지분은 미미했고, 세력도, 입지도 불명확했습니다. 새정련은 안철수와 김한길 등이 공동창업했다기보다는 안철수가 김한길에게 합병당한 거라고 보는 게 더 가까울 듯 합니다. 도장 깨기 하러 간판을 지고 들어갔는데 간판만 뺏기고 눌러앉은 셈이죠. 과연 안철수가 새정련의 창업주인가에 대한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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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연합뉴스)


둘째, 잡스는 애플에서 부당해고 된 것이 아닙니다. 매킨토시의 판매가 예상치의 10퍼센트를 머무는 등 판매부진이 계속됐고, 잡스의 진두지휘하에 만들어진 애플 리사와 매킨토시2는 재앙에 가까웠습니다. 성격파탄에 가까운 잡스의 특이한 ‘개성’으로 인해 사장이었던 스컬리와의 불화는 돌이킬 수 없을 지경이었죠. 이사회의 투표로 매킨토시 부서의 지휘권한을 내려 놓기까지 잡스는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스컬리의 중국 출장을 틈타 기습 이사회를 열어 스컬리를 해임하려고 꾀하기도 하고, 스컬리에게 회장직을 제의하고 자신은 사장직을 맡겠다고 회유하려고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매킨토시 부서를 뺏기지 않기 위해 스컬리 앞에서 울기까지 했습니다.


잡스는 순결한 희생양도 아니었지만, 스스로 애플을 팽개치고 걸어 나온 것도 아니었죠.


안철수가 잡스와 스컬리의 일화를 들어 어떠한 은유를 하고 싶었는지는 모릅니다. 만약 원하는 것이 토사구팽식의 일방적인 가해자와 희생양의 구도였다면 안철수의 탈당과 잡스의 해임을 동항(同行)으로 묶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바로 보충성의 원칙 때문입니다. 과연 안철수는 자신이 창업한 새정치연합을 두고 탈당 외에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했다고 평가받을 수 있을까요. 탈당전야에 집을 찾은 문재인을 문전박대 하던 안철수에게서 연상되는 것은 2002년 12월의 어느 새벽입니다.


셋째, 잡스는 매킨토시란 결과물이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해 ‘워즈니악. feat 잡스’지만 애플이란 결과물을 통해 스스로의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었죠. 내 자식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남의 자식이었던 새정련을 안철수의 결과물이라 칭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IPO(기업공개)까지 가는가 했던 브랜드 ‘새정치’가 킥 스타터의 흔하디 흔한 먹튀 펀딩으로 끝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만연합니다. 안철수의 공정성장론을 기억하는 시민이 과연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안철수는 스티브 잡스 이야기를 꺼내어서는 안됐었습니다. 그는 새정련을 창업하지도 않았고, 새정련을 놓고 끝까지 투쟁하지도 않았으며, 새정련과 어떠한 결과물도 내어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안철수는 잡스가 아닙니다.



4. 돈 키호테


돈 키호테는 세르반테스의 동명의 명저에 나오는 주인공입니다. 풍차를 향해 창을 꼬나쥐고 달려가는 망상증 환자이자 루저인 시골 귀족의 우스꽝스런 활극이 시공간을 거슬러 생명력을 갖는 것은 그 당시가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암울한 세상이었기 때문입니다. 돈 키호테의 적의는 착각으로 인한 것이었을 망정, 그 동기는 한없이 순수하고 정의로웠기에 많은 이들이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갖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시골집으로 귀가한 이 중늙은이가 맞이하는 현실은 엄혹합니다. 고향 집 거실에서 망상에서 벗어나 제정신을 찾은 이 ‘루저’에게 남은 것은 죽음뿐이었습니다. 꿈을 소진한 그에게 당면한 삶은 더없이 가혹했기 때문입니다.


자칫 ‘어느 과대망상증 환자의 소동기’쯤으로 치부될 수 있었던 이 이야기가 의미를 갖는 것은 산초 때문입니다. 탐욕스럽고 식탐 많은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던 산초는 이상주의자인 돈 키호테와 사사건건 부딪히면서 변화합니다. 짓궂은 공작의 장난이었을 망정, 바라타리아 섬의 총독까지 되는 산초는 공작과 그 부하들의 끊임없는 간계 속에서도 선정을 베풀며 좋은 법들을 만들어 냅니다. 돈 키호테의 광기 넘치는 이상들이 숱한 사건들 속에서 최적화되고 산초를 통해 현실화된 것이죠.


돈 키호테는 광기 어린 여정을 통해 산초란 열매를 빚어냅니다. 그리고 그 산초를 통해 또 다른 돈 키호테와 산초가 배양되는 것이죠. 수렴, 확장, 수렴을 통한 끝없는 확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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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가 돈 키호테가 되기 위해서는 산초의 존재가 필연적입니다. 여정을 함께하고, 여정이 끝나더라도 계속 이어 달릴 누군가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안철수의 지난 3년은 버림의 여정이었습니다. 최창집, 윤여준, 김성식, 금태섭 등 안철수를 안철수로 판단 받게 한 많은 이들을 떠나보내고 스스로 올라탔던 로시난테에서 내려왔습니다. 남은 것이 돈 키호테의 쓸쓸한 말년만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5. 문국현의 그림자


지난 대선, 나꼼수의 유명했던 타이틀인 ‘정권교체냐 정권교대’냐는, 사실 2007년 대선에서 문국현이 정동영과의 단일화를 거부하면서 했던 말입니다.


“세력 늘리기만을 위한 후보단일화 제안은 잘못됐다… (민주당의)정권연장 차원의 단일화가 아닌 정권교체, 시대교체 차원의 후보단일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대선 패배 후 몰락은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국회의원 당선 후 6개월만에 이권을 대가로 당의 공천권을 판 파렴치한으로 규정되면서 2년 여를 식물 국회의원으로 지내다가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하죠.


대선 당일 미국으로 외유를 떠나, 정권인수기간 내내 박근혜 당선자 못지않게 화제 몰이를 하던 안철수도 민주당과 합당 및 7.30 재보궐선거 패배 후부터는 찻잔 속의 태풍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탈당 즈음해서는 새누리당의 2중대 혹은, 새정련의 X맨으로까지 매도당하는 처지입니다. 


위태한 것은 안철수표 새정치만이 아니라, 새정치와 닿아있는 불신입니다.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것에 대한 불신은 도전을 회피하고 과거에 천착케 합니다. 새정치의 실패가, 한국 정치의 정체가 아닌 '퇴화'가 되는 이유입니다. 문국현, 안철수의 학습효과가 과거로의 회귀로 결론지어져서는 안 됩니다.


안철수의 탈당을 보며, 존경하는 한 선생님이 하던 푸념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경영하러 들어왔는데, 시다바리 부서 팀장 노릇이나 시키니 미치겠는 거죠. 딱 회사 나와 창업하는 사람들 느낌이에요. 중요한 정치적 상징자산을 버리고 호남이나 비주류를 끌어안는 것은 ‘닥치고 창업’ 깃발을 든 경영자적 마인드죠. 정리해고 대상이거나 회사자금 횡령한 놈이라도 당장 창업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판단되면 일단은 안고 가는 예처럼 말이죠. 착한 벤처 사업가외에 그 어떤 정치력도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6. 호랑이를 잡으러 간 사나이


탈당 한 안철수가 당면한 과제는, 지난 3년간 멈춰있던 ‘안철수표 새정치’의 복원이 아니라, 안철수의 새정치를 향한 시민들의 불신을 해소하는 것입니다. 그 나물에 그 밥들을 두루두루 말아 광주에서 홀로 비비는 것은 새정치가 아닙니다. 골방에 틀어 앉아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빌려준 빚이나 세고 있는 좀팽이가 되어서도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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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 홀로 목이 터져라 나팔을 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안철수의 탈당을 계기로 악화(惡貨)들이 도태되서, 새정련이 강소정당으로 거듭나고, 정의당이 약진하는 가운데, 안철수 독자신당이 세력화 될 때에야, 이번 탈당이 창조적 파괴로 평가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3년을 각 라운드로 본다면, 안철수는 철저히 아웃 파이터로 상대(?)와 싸웠습니다. 적극적으로 상대에게 다가가 몸을 부딪히는 대신 풋워크를 이용해 멀찌감치 서서 상대방을 요격하는 전술을 택했죠. 문제는 안철수는 리치도 길지 않고, 풋워크도 좋지 않고, 맷집도 좋지 않다는 점입니다.


부산 등의 격전지가 아닌, 현 지역구인 노원병 출마를 기정사실화 한 안철수의 탈당 후 첫 행보는 실망스럽습니다. 안철수는 싸우지 않습니다. 내어주거나 포기합니다. 정치를 On Line에서만 할 수는 없습니다. 직접 뛰어들어 현피라도 할 각오가 없다면, 또 다른 산초들을 불러 모을 수 없습니다. 제한된 전장, 통제된 상황, 예측 가능한 돌발상황만을 상정해 정치를 하려는 것은 과욕입니다. 결국 감동이란 예측불가능한 상황 하의 반전에서 나오는 것이니까요. 인파이터가 되어야 합니다.


호랑이를 잡으로 간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호랑이 굴로 들어가 잡아 먹힌 사람들도 있고,
호랑이 굴로 들어가 호랑이가 되어 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안철수씨 앞에 놓인 정치여정이 어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호랑이 굴 앞에서 호랑이가 늙어 죽기만을 기다리는 못난이는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잡스도 돈키호테도 문국현도 아닙니다.


안철수가 되어야 합니다. 



쪼가리


문국현씨는 검찰에서 기소한 정치자금법 위반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중 정치자금법 위반은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이한정씨가 대여한 6억이 사익용도가 아닌 창조한국당 운영비용도로만 쓰였음을 인정받았죠. 1, 2, 3심 재판과정 중 적법절차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문국현씨의 의원직 박탈로 인해 당시 왕의 남자로 불리던 이재오씨가 다시 보궐선거에서 당선될 수 있었습니다. 3심에서 주심 대법관은 바로 신영철 전 대법관이었습니다. 기소에서 의원직 박탈까지 걸린 기간은 총 14개월이었습니다.




무천


편집 : 딴지일보 너클볼러,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