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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놀이] 쉬는 시간 익스트림 놀이 3종()


2004.9.9.목요일
딴지 고전발굴위원회



 


일찍이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 호이징하(Johan Huizinga)는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개념을 제창, 인간을 노는 존재로 규정한 바 있다. 실로 대가의 혜안이 간취해낸 통찰력 있는 진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바, 이는 우리 인간이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위해 혹은 회사의 무궁한 영업이익 흑자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오직 잘 놀기 위해 태어난 것임을 학문적 사상적으로 입증시킨 사례라 아니 할 수 없음이다. 호이징하는 놀이를 문화의 하위요소로 취급한 기존의 통설에 반대하여 문화 자체가 놀이적 성격을 갖고 있음을 역설한 바 있거니와, 놀이가 주는 재미가 어떤 목적의 달성을 위한 수단이 아닌 그 자체의 합목적성을 가지고 있다는 구구절절 옳은 말씀을 하신 바 있다.


이같은 대가의 가르침에 깨달은 바 있어 소시적은 물론 학교 졸업 후 남들 다 일할 때도 놀이문화 탐구에만 열중 ,꿋꿋이, 꽤, 오롯이, 시나브로, 일관성 있게 놀아왔던 본 기자. 감히 대가의 놀이에 대한 성찰에 있어 한 가지 누락된 사실을 지적하고자 한다.


놀이가 주는 재미에 있어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 중 하나가 바로 타이밍이란 사실이다.


어디서, 누구랑, 어떻게 노느냐만큼 언제 노느냐 역시 중요하다. 만일 이 사실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 유독 업무시간에 도끼눈 치켜뜬 상사의 엄중한 감시망을 뚫고 넷 속 살들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려야만 했던 직장인들의 욕망은 쉽게 용서될 수 없으며, 학창시절 하필 시험기간에만 그렇게도 당구장 다이의 포근함과 알콜의 감미로움을 갈구했던 우리의 초라한 육신 역시 영원히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잡설이 길었으나 결론은 간단하다. 남들 일하고 공부할 때 혹은 사회적 강요에 의해서든 뭐든 맘껏 놀 수 없는 객관적 상황에서, 그 모든 난관을 뚫고 놀 수 있을 때만이 진정한 놂의 너바나(nirvana)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들 놀 때 노는 것은 단지 하급의 놂에 불과할뿐 이런 체제순응적 놂에 한정되지 않는 사회적 금기와 억압에 저항하는 전복적 놂에 이제 눈길을 돌려야 할 때다 이말이다.


다행히 아직 우리에겐 전복적 놂의 추억과 역사가 아스라한 기억 저편에 남아있다. 추억의 놀이라고 하면 구슬치기, 딱지치기, 땅따먹기, 다방구, 나이먹기, 얼음땡, 뱀주사위놀이, 부루마블 등을 떠올리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뻑난 하드 복구하는 심정으로 쫌만 더 뒤져보시라. 우리에겐 그렇게 안온한 환경과 널럴한 시간적 여유 속에서 할 수 있는 놀이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그 숨막힐 듯 단조로운 학교생활에서 한시간마다 찾아왔던 10분간의 쉬는 시간. 그 폭압적 체제와 제도가 강제했던 쉬는 시간을 노는 시간으로 전화시킨 자랑찬 투쟁이 그 속에 있었다. 때때로 아니 사실은 졸라 많이 디비져 자기나 도시락까먹기에 침탈당한 아픈 기억이 있는 것 역시 사실이나, 그외 대부분의 시간을 우리는 오직 일로매진, 그 제한적인 조건 내에서 가능한 놀이의 개발에 몰두했던 것이다.


공부하라고 있는 학교에서 놀 수있다는 발상의 자유로움이 거기 있었다. 배움과 앎과 놂이 결코 따로가 아니라는 삶의 진실이 거기 있었다. 아울러 선생의 백묵탄지신공을 두려워 않고 수업시간에도 놀이를 중단하지 않는 호연지기가 거기 있었다.


 





 


최근 과거사 규명과 역사바로세우기 문제가 한동안 정치권을 떠들썩하게 한 바, 살짝 기대를 가져보았으나 역시나 이번에도 과거 우리들의 학창시절 쉬는 시간 놀이의 역사는 제대로 된 조명을 받기 힘들 전망이다.


이에 결국... 또 본지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 방대한 역사 앞에 본 기자, 그저 해변에서 조개 줍는 소년의 겸손함으로 기사 일발 발사한다.


 


 


 보드게임


말 그대로 판때기 위에서 하는 모든 놀이를 보드게임이라 한다. 부루마블처럼 럭셔리한 게임만을 보드게임이라 생각하기 쉬우나 아래사진처럼 보다 저렴한 형태의 보드게임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쉬는 시간 놀이의 개념과 한참 거리가 있으니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가방 속에 이런거 갖고 다녔다고 우겨도 소용없는게 익스트림 놀이란 명칭은 괜히 갖다 붙인게 아니다. 꼭 바퀴달린 신발로 오도방정 떨고, 절벽에서 스키 타야 익스트림이 아니다. 학교 담벼락 안이란 지리적, 자원적 제한과 담탱과 학주로 대표되는 수많은 감시의 눈을 뚫고 오직 자생적으로 개발된 놀이에만 익스트림 놀이의 거룩한 칭호가 하사된다. 극한의 조건 속에서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익스트림 게임(Extreme Game, X-Game)과 유사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야그가 샜으나 우쨌든 이같은 익스트림 놀이의 자격에 걸맞는 수많은 보드게임들이 과거에 탄생했던 바, 이는 오직 하나의 이유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바로 연습장!!!


 



초기에 질낮은 갱지로 제조되어 환경문제 해결에 이바지했을뿐 아니라 극악의 필기감으로 인해 수많은 학생들로 하여금 공부가 자신의 적성이 아니라는 빠르고 현명한 선택을 하는데도 어느정도 일조를 했었던 연습장... 이후 갱지는 보다 질 좋은 종이로 업그레드 됐으나 이같은 연습장의 가능성에 주목했던 일부 유저들에 의해 연습장은 영원불멸의 보드로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었다.


연습장이 보드지존의 자리를 꿰어찰 수 있었던 데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장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꺼운 도화지 재질로 완벽한 보드로서의 기능성을 갖춘 앞뒤 표지.


 스프링의 다양한 가능성.


 일상적인 학용품으로서 감시의 눈을 쉽게 피할 수 있었던 보안성.


 시간표에 관계 없이 항상 가지고 다닐 수 있었던 휴대의 용이성.


 저렴한 가격.


이같은 장점을 바탕으로 연습장은 주옥같은 보드게임의 명작들을 양산했던 바, 대표적 게임 세가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A. 축구








 



장엄한 스타디움 전경. 하프라인에 공식지정볼인 오십원짜리 동전이 보인다.


너무 유명한 게임이라 굳이 설명할 필요성조차 못느끼는 익스트림 보드게임계의 걸작. 볼펜을 이용 동전을 이칸 저칸 옮겨 가며 상대방 골문에 넣는 게임이다. 규정이 엄격해서 동전이 선에 닿으면 바로 공수가 바뀌었다. 팁이 있다면 사이드에 있는 스프링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것과 고수일수록 2타 3타 연속동작에 의한 득점이 많았다는 것. 또하나 과거 연습장의 표지는 비닐로 코팅된 경우가 많았는데, 수비측의 과도한 태클(전진을 막기 위한 볼펜 스크래칭)로 인해 잔디손상(비닐 벗겨짐으로 인해 찐득한 때같은 것이 말려 나오는 현상)이 종종 일어났고, 이 때는 양측합의하에 아예 경기장을 바꿔서 남은 경기를 속행시켰다. 정식축구와 달리 시간제한이 아니라 특정스코어제한(5점 먼저 내기 혹은 10점 먼저 내기)으로 경기가 진행됐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동영상보기 - 축구)


 


B. 야구









잠실야구장을 모델로 제작된 경기장


대중성 면에서 축구에 밀렸던 게 사실이나 작품의 완성도 면에서는 더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게임이다. 볼펜의 고리와 연습장 스프링 탄성의 상관관계에 착목했을 뿐 아니라 볼의 회전력까지 계산에 넣은 치밀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복잡한 야구의 규칙을 감안할 때 숫자야구놀이가 한계일 것이라는 기존의 통념을 사뿐이 즈려 밟고, 양팀 덕아웃간의 집단난투극을 제외하고는 야구의 거의 모든 것을 그대로 재현, 보드게임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기본적인 게임방식은 투수가 손가락으로 튕긴 동전을 스프링에 매달려있는 볼펜(혹은 제도샤프가 많이 쓰였다)으로 쳐내는 방식으로, 단순한 힘보다 정확한 타이밍이 요구되는 게임이었다. 지역마다 다르나 일반적으로 축구와는 달리 선에 닿았다고 무조건 아웃이 아니라 1/2이든 1/3이든 양측합의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는 유연한 게임이었다. 볼카운트나 아웃카운트 등은 대충 머리로 계산하고 횟수와 점수만 따로 전광판에 기입함으로써 본의 아니게 암기력 발달과 엑셀 사용능력 증진에 이바지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동영상 보기 - 야구)


 


C. 전쟁놀이



믿기 힘들겠지만 과거 연습장 보드게임중에서는 턴 방식의 전략시뮬레이션도 있었더랬다. 지금 설명할 전쟁놀이가 바로 그렇다. 안해본 독자들은 사진만 보고 게임방식을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몇가지 규칙만 알면 간단하다.


일단 볼펜촉을 지면에 대고 볼펜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죽 밀어주시라.(당근 날카로운 촉보다는 둥글고 부드러운 촉이 유리한 관계로 일부 파워유저들은 0.5미리나 0.7미리 전용볼펜을 요새 프로게이머들이 전용 키보드와 마우스를 들고 다니듯 항상 갖고다니기도 하였다.) 이때 남는 볼펜의 궤적이 곧 공격의 궤적이다. 최종적인 공격의 목표는 사진상 최북단 혹은 최남단에 위치한 적의 커맨드센타이며 이를 위해 몇가지 유닛들을 이용하게 된다. 대포만 이동이 불가능할뿐, 나머지 유닛들은 모두 볼펜의 궤적이 공격의 궤적이자 이동궤적인데 각각의 특성에 따라 맵상의 육상과 해상을 오가게 된다.


앞서 소개한 두 게임도 크게 다를바는 없지만 이 게임은 특히 선에 닿았네 안 닿았네서부터 이동한 유닛의 크기가 작아졌네 어쨌네로 끊임없는 분쟁을 일으켰던 게임이기도 하다. 자칫 게임상의 전쟁이 종종 실제의 혈투로 이어졌던 바, 공정한 심판의 부재가 못내 아쉬웠던 게임으로 기억되고 있다. 다만 어디를 가나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볼펜똥이 이 게임에서만큼은 우대를 받아 훌륭한 자원 재활용 사례로 기록된 바 있으니, 그 이유는 방사상으로 퍼져가는 강력한 산탄효과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동영상 보기 - 전쟁놀이)


 


 돌리기









간단한 퀴즈 하나. 위에 있는 걸상(의자가 아니다)과 방석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과거 우리가 받았던 제도교육은 모두 궁디에 밀착시키는 물건이라는 범생틱한 답변을 우리에게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우리 또한 제도교육의 요구를 종종 거절하는 깜찍발랄한 짓을 하곤 했다. 가히 기존 권위와 상식에 대한 도전으로 이름 불려 마땅할 우리들의 대답은 추호의 의심도 없는 단호함 그 자체였다.


저 둘은 모두 손으로 돌릴 수 있는 물건인 것이다.


그렇다. 과거 우리가 만들어냈던 수많았던 익스트림 놀이가 어찌 보드게임에만 한정될 수 있겠는가. 캡짱이든 꼬붕이든 범생이든 꼴통이든 우리 사이를 가로막던 모든 계급과 차별을 철폐하고 우리 모두 하나 되어 무엇인가 사정없이 돌려대던 그 순간의 감동을 독자 열분덜도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노래가사처럼 처음엔 그냥 돌렸다. 풀길 없는 답답함과 무료함에 먼 옛날 어느 누군가가 시작한 볼펜 돌리기가 그 시초인지 어쩐지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건 70년대 얄개시리즈에서나 나올법한 돌리기의 추억이 어느 누군가의 책받침, 교과서 돌리기를 통해 재점화되었고, 이를 기화로 전국 방방곡곡의 교실에서 돌릴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이 돌려지는 사태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책받침, 공책, 교과서, 참고서, 빨간책, 출석부, 도시락, 방석, 걸상, 티셔츠 등 형태와 재질, 무게를 가리지 않았다


걸으면서 돌리고, 뛰면서 돌리고, 똥 싸면서 돌리고, 꿈꾸면서 돌리고... 이러다보니 수업중 무의식중에 돌리다 마빡에 꽂힌 백묵, 청묵, 홍묵, 황묵 등 온갖 묵들의 시체는 또 얼마나 많았던가. 본 기자가 목격한 가장 안타까운 광경은 미처 수업종 친줄 모르고 출석부 돌리다 선생에게 걸려, 하드커버로 된 출석부의 모서리에 마빡을 강타 당한 사례다. 또하나 차마 생각하기조차 끔찍했던 기억. 학교에서 젤 악랄하기로 소문난 국사선생의 교육용 괘도 돌리기에 도전했다 걸려 교무실로 무참히 끌려가던 넘의 마지막 표정. 그래도 괘도는 돈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며 끌려가던 그 넘의 표정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아무튼지간에 당시 쉬는시간 종치기가 무섭게 수십명이 일제히 무언가를 돌려대던 풍경은 본 기자 평생 두 번 다시 못볼 장관으로 기억될 듯싶다.


지금와 생각해보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놀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일상의 발견이자, 그 어떤 것도 수 틀리면 돌려 버리겠다는 저항의식의 상징이었던 돌리기. 아직 늦지 않았다. 직장인 독자들도 지금 당장 결재철 돌리기, 각종 회사기물 돌리기 등을 시도해 보시라. 물론 그 결과는 알아서 책임들 지실 일이고...


 


 (동영상 - 돌리기)


 


교과서로 애니메이션 만들기



이제 살펴볼 익스트림 놀이는 당시의 놀이가 유희의 차원을 넘어 숭고의 경지,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례다.


교과서보다 더 좋은 참고서는 없다는 선생님들의 말씀을 금과옥조처럼 여겼던 과거의 학생들. 본문외에 여타 잡스런 디자인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은 채 한국적 여백의 미가 오롯이 살아있는 옛날 교과서들을 정말 소중히 다루었드랬다. 일부 몰지각한 범생들이 빨간색 볼펜, 파란색 볼펜, 심지어 형광펜으로 순결한 여백을 더럽힌 사례가 있었지만 그들은 소수였다.


그런데...


이것은 차라리 교과서의 재발견이라 할만 했다. 역사의 변혁기엔 어김없이 나타나는 일군의 선각자들이 다시 등장, 교과서의 그 거대한 여백을 채우는 놀이를 개발한 것이다.


소위 교과서 페이지마다 만화 그려서 애니메이션 만들기.


이 역시 어느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오직 그들 스스로 한페이지 한페이지씩 정성을 다해 만화를 그려가며 애니메이션의 원리를 자체 터득한 것이다. 처음엔 단순한 움직임에서 시작했으나, 이후 기법이 더욱 정교해져가며 내러티브가 생기고 <식스센스> 싸대기 갈기는 반전까지... 익스트림 놀이가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승화되는 장엄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이 놀이의 놀라운 점은 그 엄청난 노가다의 양 때문에 쉬는 시간만으로는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던 바, 작업시간의 대부분을 수업시간에서 충당했다는 점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남들 공부할 때 논다는 익스트림 놀이의 기본정신을 이보다 더 잘 구현할 수 있을까. 그 수많은 수업시간동안 잠 한번 제대로 못자고 중지의 물집까지 참아내며 기어이 완성시켰던 작품을 처음 친구들에게 시연할 때의 그 희열감은 또 어떤가. 땀의 소중함, 노동의 소중함을 몸소 깨닫게 해준 이 노가다예술의 결정판은 직접 보는 수밖에 다른 어떤 설명도 불가하다.


 


(동영상 - 콜드보이)


 



쉬는 시간 익스트림 놀이의 역사는 여학교, 남학교, 지역별, 시기별로 수렴해야할 사료가 엄청날 것으로 추정된다. 본 기사는 본 기자의 주관적 경험에 근거, 대표적인 몇가지만 추린 것에 불과하다. 생각같아서는 몽땅 디벼 버리고 싶은 마음 굴뚝 같으나, 본지가 먹고 있는 나와바리가 원체 넓은 관계로 나머지 사료의 수집은 독자 열분덜에게 맡기겄다.


바쁘고 힘든 세상, 졸라 일만 해도 먹고 살기 힘들 것 같은 세상. 역사가 일과 공부의 성과만으로 채워졌다면 우리네 삶은 또 얼마나 팍팍했겠는가. 허나 디벼본 바대로 역사는 우리편이었다. 가끔, 아니 꽤 자주 땡땡이도 치면서 즐겁게 사시기 바란다. 이상 졸라.


 
                                                              


딴지 고전발굴위원회
신짱(redpia@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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