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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SF, 시각효과 그리고 한국영화(2)
- SF영화의 구성

2004.9.6.목요일
<편대단편> 지민호







인터뷰 게시판에서 주로 나오던 이야기의 주제를 맞추기 위해 SF영화의 구성에 대한 이야기의 순서가 앞으로 왔습니다.




  SF




철학이라는 과목에 대해 처음 접근 할 때,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고대의 철학자들이더라. 이들은 흔히 수학, 과학 등의 분야에서도 업적을 남겼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몇몇 고대의 철학자들은 자신이 발견한 법칙들을 기반으로 삼으며 직관법까지 사용해서 세계의 형태를 구성하는 것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지구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도 모르는데 끝없는 땅과 시퍼런 하늘 위로 해와 달, 별들이 지나가던 시절. 모든 것이 환타지처럼 느껴졌을 것이고, 아직 다 파악하지 못한 세계의 형태를 직관과 미흡한 근거들로라도 예측해야(세상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대충이라도 짐작해야) 인간에 관한 이야기까지 할 수 있었다. 세계관이 구성되고, 세상의 원리들이 예측되고, 그 안에서 인간에 대한 질문과 답을 찾으려 애썼으며, 다시 거기에 각각의 시대에 걸 맞는 가치관과 철학자의 관점이 부여되는 순간, 그 모든 행위에 철학이라는 의미가 주어졌다. 혹은 제대로 질문할 수가 있었다.


현대에서 세계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물질적 원리와 근거를 찾는 작업은 과학의 몫이 되었다.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일반적인 환경에 대한 지식은 상식이 되었으며, 인간은 그 상식들 위에서 살며 삶의 답을 찾으려 한다. 그 너머의 미지의 세계에 대한 답은 과학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연구되며 하나씩 답을 찾아나가고 있지만, 인간은 여전히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이해하고 싶어한다.


과학자들은 미래세계의 단초가 될 획기적인 발견들을 언제나 약간씩 성공하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세상의 일상을 차지하는 미래시점을 직관하거나 상상하며 그 근거들로 세계를 구성하고, 그러한 환경과 시대에 인간에게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를 궁금해한다. 또는 어떤 질문이 주어질지 예측해 보려고 하며 그 직관과 상상, 예측되는 세상에 자신의 관점을 적용해 보기도 한다.


2004년 시점에서 문화를 장르로 구분할 때 그런 시도들을 SF라고 부른다.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를 충분히 알고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방법"들 말이다.


그래서 내 생각에 모든 미디어의 SF는 이렇게 구성된다.


1.현재의 과학자와 미래학자가 제시한 과학적 근거가 충분히 발달된 미래환경.
2.그 미래환경을 구성한 근거들의 영향으로 인간이 겪는 새로운 문제들의 표면.
3.작가의 관점 부여
4.환경과 갈등요인이 변해도 차이가 없이 적용되는 인간의 본질


이 모든 요소가 갖춰졌을 때, SF는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인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철학의 형태로 완성되게 된다.



  SF영화의 두 가지 완성도




원론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두고, 문화생산물 속의 SF, 그 중에서도 한국영화와 SF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한국영화에 타격을 줄 정도의 제작비를 활용했던 몇 개의 SF영화가 실패했다. 이 영화들은 부분적인 업적과 시도의 가치에도 불구하고 각자 다른 요인으로 장르팬이나 일반관객들의 외면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현재 충무로에서 SF시나리오나 전문인력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별로 없는 모양이다. 다들 쫀 것이지.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공론의 사후 해석으로 하나 같이 내러티브를 실패 요인으로 삼았다. 과연 그럴까. 그렇게 다른 영화들과 같은 기준으로 실패요인이 해석되거나 대안의 집중이 제시될 정도로 단순할까?


가) SF영화의 성공은 두 가지다.


-1. SF팬의 만족. "의미 있다".


영화라는 특정 미디어의 팬이 만족하는 영화적 의미와 전혀 다르다. 모든 미디어를 통 털어 SF를 즐기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2. 대중적 흥행 성공. "재미있다".


가-1)을 충족시켰을 때, 극장개봉에서는 소위 말하는 저주받은 걸작이 된다. 영화사 내부에서만 영화의 의미를 찾는 영화 중독자조차 SF문화의 범위와 지식을 이해 못하면 공개당시엔 의미를 못 찾는다. 찾긴커녕 세부 내용도 이해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세계를 무대로 출시제품시장을 활용하고 그 영화의 본질이 충실한 SF추구임을 홍보했을 때, 긴 시간을 두고 상당수의 지지자는 확보할 수 있다. SF의 팬은 한 나라의 시장을 봤을 때 소규모이지만, 전 세계를 통 털어 나라별로 유동성 없는 지지자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통 SF장르는 충실하게 구성된 작품일 경우 언제나 예측 가능한 시장이다.


가-2)를 만족시켰을 경우는 보통 가-1)의 영화가 갖는 필수 구성에서 일부를 조율하거나 대체하는 결과물의 형태다. 골수 장르팬에게 SF작품으로서의 의미는 반감된다고 해도 개봉 흥행 성공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문화다양화, 즉 SF장르의 정착과 재생산에는 큰 기여를 하게 된다.


그럼 양쪽 다를 만족시킬 작품은? 그것이 지금부터 몇 년간 치열하게 시도할 부분이다.



  SF영화의 구성.



자, 그럼 본격적으로 SF영화가 뭉뚱그려 재미없다.는 평가를 받을 때, 단순하게 영화라는 미디어관계자 내부의 시선으로 해석되는 내러티브 부족이라는 사후해석이 왜 오해이며 문제가 될까.


혹은 누구나 말할 수 있듯이 충무로에는 좋은 시나리오 작가가 많은데, 왜 백억이나 들이면서 내러티브가 뽀개졌을까? 영화를 다리 달린 솥으로 봤을 때, 다른 영화들이 연기, 연출, 내러티브 세 개의 다리를 가지고 서 있는다면, 잘된 SF영화는 다리를 몇 개 더 가지고 있다.


나) 장르팬이 만족하는 SF영화의 기본 구성


-1. 현재시점에서 과학자나 미래학자에 의해 예측이 시작되었거나 개발이 시작된 기술이 완전히 구축된 미래세계의 사회/과학적 혹은 시청각적 구성.


-2. 1에서 사용된 특정 기술이나 장치/환경이 영향을 준 그 세계 특유의 사회구조와 갈등, 문제점에 대한 직관/상상.


-3. 1과 2를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 부여.


-4. 1, 2, 3을 통 털어 세계관이라 부른다. 3이 강조될 경우 작가의 철학이 담긴다. 이 세계관은 구조 속의 인간을 보여주며 정서를 담당한다.  


-5. 다른 세계를 보는 SF의 목적에 부합되도록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모든 극적 장치와 사건은 2를 근거로 인간의 행동양식과 연결되어 발생한다. 내러티브는 감정을 담당한다.


위의 것은 밀리터리SF라는 소수 장르(위의 구성에 군사적 요소가 상식을 요구하는 상태로 추가된다. 영상에선 졸라 소수장르다) 창세기의 작업을 위해 내가 정리한 것이지만 스스로는 거의 철칙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SF장르팬은 동의할 것이다. 장르가 단순하기 그지없는 한국영화에서는 우물 안에서 개구리끼리 모래알 찾듯 새로운 것을 입버릇처럼 말한다. 외국에서 잘된 SF가 들어와도 "새롭지 않다. 새롭지 않다"는 소리가 단일 미디어 중독자들에게서는 쉽게 나온다. 안된 이야기지만, SF라는 분야에서 새롭다는 것은 다른 장르의 새로움과 다르다.


나-1)은 과학의 분야에서 구체적으로 성립되어 가는 부분들을 기초로 한다. 예를 들면 우주이주구에 대한 이론이나 인간복제 등 현재 가능성이 타진된 과학적 근거에서 저 얼개가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 과학적 소재는 대부분 현재 기초적으로 검증된 것이고 의외로 소수일 수 있다. 하지만 단순장르에 익숙한 우리나라에서는 그 기반 소재/설정이 같다는 것만으로도 난리가 난다. 히히. 그럼 과학자와 미래학자들이 예측하지 못한 것들을 상상력만으로 구성하라고? 그것은 과학적 근거나 사고를 통해 설득력 있는 다른 세계를 보여야 한다는 SF의 원칙에 위배되며 과학적 사고가 결여된 막연한 상상일 경우 기껏 인테리어 비쥬얼이나 특이해질 뿐이다.


정통 SF에서 새롭다는 것은, 비록 충분히 다양하지 못하고 중복가능성이 있지만 나-1)을 기반 소재로 사용하여, 나-2)의 에서 도출되는 구조를 충분히 상상하고 직관하는 방식에서 새로움을 추구하고, 그 과정에서 사용되는 나-3)에서 차별화를 준 형태다.


훌륭한 시나리오 작가? 일상적 갈등과 인간에 관해 많이 알고, 그 감정선에 대해서 재미를 동반할 수 있는 훌륭한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이 많다는 것은 알고있다. 하지만 그들이 모두 훌륭한 SF 시나리오 작가는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나-1,2)는 과학자군단의 검수를 받는다고 해도 소재 자체에 대한 작가의 지식과 관심, 세계전체로 확대되는 막대한 상상력을 요구한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캐릭터와 사건까지 연결되는 디테일들을 세계 자체를 기반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만약 여기에 전문적인 감각과 지식 없는 일반적인 장르의 시나리오 작가가 훌륭한 SF시나리오를 뽑는 방법이라면 나-1,2,3)까지가 구축되어 있는 훌륭한 원작을 바탕으로 삼는 방법뿐이다.


그렇다면 편법은 없을까? 배경만 미래로 해두고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멜로나 재미나는 내러티브 같은 것을 그대로 미래로 옮긴다면? "재미는 있을 수 있겠지". 그러나 안된 이야기지만 위의 철칙을 인지하고 있건 못하건 아주 일반적인 관객조차도 어디에서라도 그런 작품을 본 뒤 SF를 본 느낌을 느끼지 못한다. 즉 다른 세계에 다녀온 느낌이 들지 않는다. "80프로 부족한 느낌. 목말라". 게다가 SF의 관객층이 확실한 나라들을 생각하면, 내수시장을 못 벗어날 공산이 크다. 뭐 물론 재미와 흥행만으로 대박을 내면 장땡이라고 한다면 할 말 없다. 예전 TV드라마를 보자면 장르를 확장해보려고 시도한 몇 경우가 떠오른다. 주로 어떤 전문분야를 그려보려는 시도였는데 의학, 과학, 전문직을 주제로 시작한 모든 드라마를 통 털어 처음엔 꽤 열심히 취재와 연구를 한 내용들이 나오다가 3주가 지나면 그 안의 주인공들이 썸싱이 생기기 시작해서 드라마 끝까지 밀고 당기기 멜로 드라마, 결혼 드라마로 변질되며 전문직 권력자에 대한 신데렐라 컴플렉스나 펑펑 양산하다가 결국 전문용어 하나 안나오는 내용으로 가던 것을 보셨을 것이다. 그래도 시청률은 유지되는 경우가 있더군. SF에 그런 짓을 해놓으면... SF라 부를 수 있을까. 굳이 돈 드는 SF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


"SF가 아니어도 구성 가능한 이야기는 SF로 만들 필요가 없다".


우리 상업영화의 SF가 실패했을 때, 단순히 그것을 내러티브 부족이라고 보는 것은 이후의 SF영화 자체에 대한 편견을 양산하므로 또 위험하다. 어떤 미디어건, 대중적 재미보다도 취향과 의미만을 추구해서 만들어지는 비상업 작품들의 경우 별도로 지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실패의 이유는 그 영화의 목적에 맞추어 구분되어야 한다. 상업을 목적으로 했던 영화들을 보자.


* 기본에서 나-1,2,3)을 추구하려고 가장 애썼으나 SF톤의 상상력을 벗어나는 비약을 영화적 내러티브 전개를 위해 무리하게 배치하고, 제작환경을 고려하여 그 안에서 시청각적 타협을 찾다가 대사만으로 나-1)을 구성, 대사는 하드한 SF인데, 모든 볼거리는 현대물의 그것으로 만든 안타까운 영화도 있었고,


* 애초에 나-1,2,3) 의 구성을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한 차용과 부분적 짜집기로 둔 채(세계관 없이) 세계에 근거를 두지 않은 현대물의 드라마 타이즈를 빈자리로 옮기다가 복층구조 대신 내러티브 단층에 부분부분 설정만 튀어나와 완전히 길을 잃고 헤맨 경우도 있다.


* 또 아예 SF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가상현실 SF대작이라고 하다가 뭔지 모를 이상한 걸 만든 경우도 있다.


* 아니면 전체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감독 자신이 단편적으로 떠올린 비쥬얼에 집착하면서 전체 영화나 구조의 조율 대신 사적인 환상과 개인적 구현욕구에만 치중해 거대예산 작업 전체를 방황으로 이끌고 균일한 톤이 없는 완성을 이뤄, 아티스트로서의 자기 가오를 잡은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대박상업영화의 탈을 쓰고 부분적 목적만 달성할 거라면, 작은 한국시장에서 남의 돈들이지 말고 혼자 글로 쓰거나 개인 작업으로 만드는 편이 정의롭다. 그랬으면 적어도 영화 미디어를 떠나, 원래 관객접근성은 낮은 하드한 정통SF들까지 재미없다는 이유로 싸잡아 매도당하고 장르 자체가 특정 미디어에서 매장되는 결과를 낳진 않았겠지.


위 모든 작품을 위해 열악한 환경의 각 분야에서 놀라운 결과들을 뽑아낸 스텝들의 노력과 구현의 의미도 상업적SF의 성공이라는 작품의 본질이 실패하면서 사라져갔다.


위의 영화들이 가졌던 또 하나의 문제는 결과액수는 크더라도 과정에서 안정적이지 않았던 그 제작비 자체가 개봉시의 홍보요소가 된다는 사실이며, SF팬 이외의 관객에게 먼저 어필하려 한다는 것이다.


SF영화로서 일반관객에게 어느 위치에 있는가 라는 영화의 본질보다 모두가 재밌을 흥행작이라고 말하면 처음부터 다른 취향과 상식/기대치를 가진 관객의 잘못된 리뷰만 양산되지 않는가. 이해를 동반한 리뷰를 시작으로 취향관객군을 극장에서 먼저 다 만났어야할 훌륭한 코믹SF 한 편이 전혀 다른 장르로 홍보되며, 극장에서 일주일만에 사라져갔다.


그러나... 결국 뭐라고 해도 상업영화로 만들어질 때, 나) 원칙을 완고히 고수할 경우 마음 편히 영화를 즐기려는 일반관객에게는 부담스러운 작품이 된다. 나-1)부터 모든 관객의 상식범위를 벗어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작품의 정서가 풍부할 경우, 그런 기반 지식을 공유하지 않더라도 열린 관객에게는 가슴으로는 짐작하거나 여운을 남길 수 있다. 하지만 내러티브 자체가 SF의 완벽한 규격을 따라 진행될 경우 다수의 관객에게는 역시 단선적인 감정만 남기게 된다. 문제는 장르에 대한 오해가 팽배하여 시도조차 어려운 한국영화의 현실에서 100억 정도의 돈을 들여야 SF가 만들어진다면, 장르 시장의 유지를 위해서라도 초기 작품들은 반드시 흥행에 성공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콰당.



  상업 SF와 관객.


SF장르의 골수팬은 위의 원칙으로 구성된 작품을 즐기며, 흔히 하드SF와 그 외의 것들로 SF를 구분한다. 하지만 상업영화는 좀 더 많은 대중을 상대해야할 경우가 있으며, 현재 시점의 한국영화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상업 작품일 경우 하드SF의 본질을 약간 벗어나는 경우가 있다. 영화로 구현되는 SF는 다른 매체보다 의외로 적으며 하드SF이외의 것들도 SF로 불린다.


죠지 루카스의 졸업작품 <THX1138>은 꽤 하드한 SF물이었다. 과학적 근거를 재쳐두고라도 캐릭터와 세계를 구축한 요소들이 가지는 그 시대 자체의 전문성은 용어 하나에서도 아주 진한 느낌을 담고있었다. 정말 그가 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흘러 다니는 이야기들로는 이 작품의 실패이후 "다시는 잼없는 영화 안 만든다"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쿵.


77년 <스타워즈>라는 영화가 개봉되고 그 뒤 영화상의 SF는 흥행도 가능한 장르로 거듭났다. 죠지 루카스가 <THX1138> 이후 어떤 고민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단순히 밝은 분위기로 변환한 것인지, 앞에서 말한 나)의 법칙을 조율한 것인지 그것은 그만 알 것이다.


앞에서 말한 나-1)을 세계구성의 본질로 삼아 학습을 요구할 경우 역시 대중적 상식과 관심사와 이격될 경우가 있다. 스타워즈는 과학적 근거로 예측한 미래 대신, 이미 많은 서구관객이 수많은 컨밴션을 받아들이고 익숙해진 동서양의 중세 이야기들을 세계관의 토대로 삼아버린다. 쿵. 대단한 발상의 전환이다. 비쥬얼은 전혀 다른 세계의 기술을 보여주면서 중세시대의 사회구조와 이야기구조를 차용하고 포스를 타고 흐르는 선과 악의 신화적 대결에 자신의 관점을 집중시킨다. 즉 과학적 근거로 세계를 만들어 미래로 보내는 대신, 전혀 다른 환경/비쥬얼과 익숙하지만 환상적인 과거 사회의 구조를 가진 멀고 먼 옛날 은하계 저편으로 관객을 던져버렸다.


즉 SF와 판타지 장르가 공유해서 가지는 다른 세계를 보이는 목적을 그만의 방법으로 만족시켜버린 것이다. 콰당.


<스타워즈> 자체는 신화가 됐고, 당연히 지금까지도 그 고유의 세계에 대한 시리즈가 침범 받지 못한 성역이 됐지만, 갑자기 나타난 이 영화의 시청각적 체험 자극으로 시작된 SF에의 관심은 분명 그 당시보다 SF에 대한 이후 세대의 저변과 전문성을 넓혀놨다. 이제 스타워즈 이외의 작품이 스타워즈의 세계관 구성방식을 따를 경우 SF라고 불리우긴 어려울 수도 있다. 대신 판타지로 완전히 영역이 넘어가지 않을까.


사실, 지금에 와서 국내 SF팬을 빼고 딱히 우리나라 관객만 SF물을 외면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80년대 이후 흥행에 성공하던 헐리웃의 SF물들이 우리나라에서도 흥행에 성공해왔기 때문이다.


나) 법칙을 지키면서 일반관객에게 재미나는 SF를 만드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최근 개봉했던 <아이, 로봇>이 좋은 구성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 로봇>은 나)의 법칙을 원작에서 빌려와 충분히 지키면서 나-1)의 요소를 로봇(3원칙 포함)과 비쥬얼에 한정시키는 동시에(작품에서 규정된 로봇 자체가 한없이 많은 네러티브를 양산할 수 있는 형태다) 완성작에서 서브 플롯으로 보일 부분의 설명을 줄이고, 나머지 부분에 시청각적 환경구성과 스팩타클을 배치했다. 만약 스팩타클을 빼버렸다면, <아이, 로봇>은 일반관객에게 상당히 지루한 내러티브를 가진 하드한 SF물이 됐을 것이다. 이러한 즐길거리의 배치와 SF구성요소의 조율은 장르구성과 흥행성에서 가장 요령 있는 답이 될 것이다. 헐리웃처럼 극도의 흥행 알러지가 있지 않다면 나-3)을 감각적으로 강조해 작품성과 새로운 철학까지 얻을 수도 있겠지.



  전체의 균형.




그런데 요소들의 배치를 조율해서 흥행성까지 겸비하는 것이 그렇게 간단할까. SF의 경우 캐릭터들이 영향 받고 활동하게 되는 환경/ 세계관의 설정이 최우선인데다가 앞서 말했듯이 인간의 본질은 유지되더라도 내러티브의 기원이 되는 모든 장치와 원인이 그 세계의 특화된 그것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다른 세계의 고유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그런데 바로 그 장치들을 보이는 방법이 현재에는 실존하지 않는 사물이나 풍경, 사건일 경우가 허다하고, 바로 영화로 구현되는 과정에서 이 부분의 구현에 시각효과에 대한 기술집약이나 효율적 운용이 필요해진다. 즉 기술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으면, 여러모로 구조를 양보해서 내러티브가 단순해지거나 균형을 잃게 된다. 아니면 SF 이외의 드라마를 그 빈자리에 과잉구성해서 장르구성 자체에 실패하게 된다. 더더군다나 관객은 SF를 볼 때 현대물의 즐길 거리를 똑같이 보길 원하지 않으며, 새로운 시청각적 자극을 원한다.


자, 그럼 지금까지 실패한 한국SF가 왜 실패했는지 각자 한 작품씩 떠올려 주시기 바란다. 모두 상업을 목적으로 한 SF라고 봤을 때, 다른 세계로 보내려는 의도 중 어느 한 부분에서 타협이나 방황이 눈에 띄어도 관객은 본능적으로 외면했다. 그러니 가-1.2) 모두에 성공적인 작품이 만들어지려면 도대체 100억짜리 외발 자전거 위에 탄 감독은 몇 개의 공을 가지고 저글링을 하며 힘겹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가?


SF영화를 만드는 작법의 측면에서 저 위의 모든 원칙과 작업과정의 문제점들은 그 영화의 목적에 따라 훨씬 정교하게 전체가 한 부분도 포기 없이 조율되어야 하는 균형 감각의 문제다. 저 모든 부분의 균형이 잡혔을 때, 그리고 단지 SF의 구성만인지 흥행성공까지를 노리는지에 대한 확실한 목적으로 조율될 때, 그나마 평범하고 무난한 혹은 다른 장르 관객이 볼 때 지루한 SF 한 편이 나올 뿐이다. 거기까지가 기본이다. 적어도 저 모든 분야의 균형을 잃지 않고 한 덩어리로 느껴지는 SF영화.  


흥행성공은 여기까지 해 본 사람이 흥행을 위한 각 요소의 감각적 조율로 얻어내는 결과겠지.



  이해.


SF는 단순히 네러티브가 어쩌구 하는 다른 장르를 보던 관습적 잣대로 다 이해하거나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세계관구성 과정까지 내러티브에 들어간다고 우기며 완성된 영화를 기준으로 메인, 서브 플롯의 관계만 따지면 정말 이 복층 구조 장르 창작에 무식한 것이고 차기작에 대안이 되지 못한다). 완성된 영화들에 대한 지식만 가지고 역추론 하는 훈고학적 습관으로 영화의 표면 뒤에 세계가 숨겨진 장르의 대안을 제시할 수는 없다. 현장에 일단 가서 카메라 들여다보고 몇십 번 리테이크 가던 습관으로 저 정밀한 프리프러덕션과 고가의 기술과정을 감당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기술과정을 양보하고 세계를 보일 수도 없다. 소재의 문제가 전부가 아닌 SF구성을 두고 장르를 파괴하라는 가벼운 진보논리를 적용할 수도 없다. 유일무이하게 다른 세계를 구성하는 장르를 장르라고 해서 다른 장르와 같은 방식으로 해석할 수는 더더욱 없다.


SF는 장르구조를 파괴하거나 듣도 보도 못한 새 단어를 막연하게 만들어서 새로움을 얻을 수 있는 장르가 아니다. 왜? 아예 SF로서 성립이 안되기 때문이다. SF는 그 세계의 특성을 보이는 과정으로 밀도 있게 구성하고 상상력의 방향/구현과 작가의 관점에 새로움을 주면서 새로운 세계로 이끄는 장르다. 영화라고 해서 자꾸 다른 장르와 수평선에 놓고 단순해석과 표층비교로 난리 치는 단일 미디어 중독자들은 좀 잘못된 리뷰 좀 양산 말기 바란다. 상업SF는 고사하고 어차피 다른 분야에서 재미도 못 느끼고 대사도 이해 못할 진정한 하드SF는 영화로 구현될 엄두도 못내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 안타깝다.


이야기는 여기까지인데, 그건 그렇고 왜 좋은 SF의 목적은 다른 세계를 보이는 것일까?


그 의도는 다른 세계의 구조 속에서 본질적으로 우리와 같은 인간을 보임으로써 우리의 세계를 보게 하는 것이다.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 집의 의미를 아는 것처럼. 그것이 현실에 대한 판타스틱한 긍정이건, 암울한 부정이건. 아니면 단지 즐거운 여행이건. 수많은 질문이건.


당분간은 예산과 관객, 영화제작 현실을 계속 탓할 수만은 없다. 어느 수준에서건 평균이 맞아 한 덩어리로 느껴지는 여행. 그 전체의 조화는 영화에서는 결국 감독의 책임이다. 젠장. 졸라 어렵겠다. 어려워서 재밌겠다.



 



<편대단편> 감독
지민호(sv01@s-v.pe.kr)


덧붙여,
다음주에는 특수효과 스튜디오를 작품에 맞춰 테스크포스로 구성하는 형식과, 그 발전을 유도하는 연이은 작품기획과 조직유지에 대한 생각을 써보겠다. 역시 또 내 생각일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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