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걸다리뷰] 추억의 유머, 최불암 시리즈 편 2004.9.2.목요일
1990년대 초반 난맥상을 보이던 유머시리즈계를 완전평정하며 절대강자로 떠올랐으며 이제는 유머시리즈가 낳은 불세출의 스타로 기억되는 자가 있으니... 왠지, 희귀암반의 일종이 아닐까 사료되기도 하고 남성만이 지닌 내밀하고 음습한 주머니가 연상되기도 하는 그 이름. 바로 최.불.알. 아니 암. 지나간 추억의 유머시리즈를 디벼봄으로써 유머시리즈가 유행하던 시대를 재조명하고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을 심도있게 성찰을 해보는 척만 하고 옆으로 새는 이야기만 줄줄이 사탕으로 잇는데 만족하는 소박하기 그지없는 본 코너, 오늘은 참새시리즈에 이어서 그 두 번째 빠따로 최불암시리즈를 리뷰해보도록 하겠다. 인간에 대한 연민을 온 얼굴에 절절이 담아내고 그 음산한 바바리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남형사! 그 스타킹에 단서가 있지 않으까?" 와 같은 절제된 대사를 날려 주시던 그가, 우리 아버지는 저렇게 생기시지 않았는데 매스컴에서 자꾸 한국의 아버지상이라고 우기는 바람에 자신의 아버지가 진짜로 친아버지인가 한번쯤 의심토록 만든 장본인이었던 그가 냉혹하기 짝이 없는 유머 시리즈계에 데뷔한다고 발표했을 때, 주위에선 반신반의하는 사람 참 많았더랬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되돌아 보건데 그의 판단은 참으로 고독하고 사리분별 있는 판단이었음이 증명되었다. 아, 그 선견지명이란... 수사반장과 양촌리 김회장 이라는 한국사회의 주요 장자리를 두루 섭렵했음에 틀림이 없는 그가 백의 종군하는 심정으로 환골탈태하는 모습은 보는 이의 눈시울을 적시게 하고도 남음이 있다. ㅎ이 들어가야만 제대로 된 웃음소리일거라는 고정관념을 일거에 무너뜨리며 ㅍ이 들어가서도 참신한 웃음소리가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인 그의 신묘한 웃음소리는 최불암시리즈의 산파 역할을 했다는게 고전유머학계의 정설이다. 즉, 파~하는 웃음소리는 그동안 난공불략이었던 그의 근엄 이미지를 혁파하고 나아가 기존에 가졌던 엄숙 이미지마저 유모로 승화하는 데 물꼬를 텄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최불암시리즈의 눈부신 성공신화는 사회적 전파속도나 시리즈의 물리적 양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기록적인 것이었다. 종래의 유머시리즈의 유통이 구전에 한정되었던 것에 반해 최불암 시리즈의 유통은 구전 이외에 PC통신, 잡지, TV 코메디 프로, 라디오 토크 쇼, 사채시장 등 전방위로 펼쳐졌다는 점에서도 그 빛나는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특히 철딱서니 없는 그의 유년시절에서 학창시절과 군 바리시절 등을 지나 중장년에 이르기까지 전생애에 걸쳐 일반인에게 잘 드러나지 않았던 뻘짓과 삽질이 만천하에 까발려지고 뽀록남으로써 그때까지 고이 간직한 근엄이미지가 다년간 다져진 연기력이었음이 입증되어 과연 국민배우라는 찬사가 기우가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다음은 그의 파란만장한 뻘짓사례를 연대기로 정리해보았다.
어떠신가? 전 생애를 걸쳐 사자후를 토해내는 최불암의 마이 웨이는 여기서그치지 않는다. 자신도 주체할 수 없었던 이런한 재능을 꽃피운 그는 금동이, 김혜자, 유인촌, 일용이, 노주현, 최진실, 송승헌, 맹구, 람보, 터미네이러, 슈퍼맨, 후레쉬맨, 배트맨, 6백만불의 사나이와 조우하며 숨은 끼를 마음껏 발산한다. 특히 그는 외계인과도 대화를 하기까지 이르는데, 좀 길지만 ET와의 대화를 잠깐 엿들어보자.
ET를 만난 사람이 영구가 아니라 사오정이 아니라 단지 최불암이기 때문에 주는 웃음유발효과는 적지 않다. 그만한 나이에, 그만한 저명인사가, 그만한 사회적 품위를 유지해왔던 사람이 이렇게 사오정식의 대화(바디 랭귀지이긴 하지만)를, 그것도 ET와 한다는 자체가 대단한 충돌효과를 가져온다. 최불암의 기존 이미지와 철딱서니 이미지의 충돌효과 최불암이라는 이름의 뉘앙스는 전두환이나 김영삼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같은 저명인사라 하더라도 전두환시리즈나 김영삼시리즈는 이들이 대통령을 하던 시절을 살았던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졌을 이들에 대한 집단적 가학심리를 발동시키고 이를 어느 정도 충족시키는 반면, 최불암시리즈는 집단적 가학심리보다는 당연히 기성세대로 존경받아 마땅할 사람을 희화시킴으로써 기성세대가 가지는 정신의 완고함을 조롱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이러한 조롱은 일종의 우상파괴다. 같은 우상파괴라도 80년대 초반 이성복 시인의 시 <어떤 싸움의 기록>에서 "아버지 씹새끼, 너는 입이 열 개라도 말 못해"같은 직설적 공격이 아니라, 우회적인 야유에 가깝다. 최불암시리즈의 성공은 전두환이나 김영삼같이 공격하기 쉬운 대상을 공격하는 것보다 공격당해 본적도 없고 좀처럼 공격하기도 어려울 것 같은 대상을 공격하는 것 자체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집나간 금동이를 애정어린 눈으로 걱정하고, 세상은 변했지만 농꾼은 흙을 파먹고 살아야 된다고 둘째에게 타이르고, 적당히 인간적으로 무능하며 오랫동안 홀어머니(근데, 그 할머니 정말 오래 사시더라! 일용엄니가 할머니라고 부를 정도로)를 모시던 그의 이러한 완고함이 유머시리즈에서는 오히려 하나의 희화대상으로 전락한다. 최불암이 가졌던 기존 이미지와 유머시리즈 내의 철없는 말투나 행위가 정면으로 그러나 어이없이 부딫힐 때 일어나는 충격파 속에 들어간 사람은 흰 이를 드러내고 웃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최불암 시리즈 속에서 최불암 대신 영구같은 바보 캐릭터를 그대로 대입시켜 놓고 보면 웃음이 반감된다는 사실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미디어 속과 현실의 경계가 없는 캐릭터 <전원일기>출연자들과 그 외 탤런트들, 각종 만화 캐릭터들, 영화배우 등 미디어가 낳은 캐릭터들이 현실에서도 미디어 속 캐릭터 그대로 존재하는 것으로 최불암은 인식한다. 가령 최불암시리즈 중에서도 클래식이 된 <최불암과 지구의 평화>에서 최불암은 "독수리 5형제가 끝나면 지구를 누가 지키지?"라며 고민하다가 지구가 혹시 알렉터로부터 정말 점령당할까봐 전전긍긍하다가 급기야 "스머프 녀석들이 지구를 지킬 수 있을까?"라는 대사를 낳음으로써 우리는 웃는 동시에 미디어적 상상력의 허구성을 한 번 더 확인한다. 드라마는 드라마고 만화는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실재하는 것으로 믿어 의심치않는 정신의 완고함은 <전원일기>에서 양촌리의 김회장 캐릭터와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최불암이 "지구를 누가 지키지?"라며 걱정할 때 김회장이 흉년이 들어 피폐해진 논밭을 보며 짓는 그 특유의 근심어린 표정을 떠올릴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곳간에 든 호미나 괭이를 들고 게릭터 일당과 홀홀단신 맞서 싸우는 장면을 떠올릴 지도 모른다. 넥타이를 맨 기성세대들에게는 하나의 미덕으로 인정될 수 있는 최불암의 이런 종류의 고루함이 시리즈 생산자인 젊은층들에겐 하나의 웃음 소재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나르시스트의 공격성 <전원일기>에서 최불암은 자신의 욕구나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은 채 무덤덤한 표정일 때가 많다. 마치 자신의 욕구를 희생시키는 부분이 자신의 가부장적 위치를 더욱 두텁게 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진 양. 그러나 최불암시리즈에서 그는 비록 자기 속에서 갇혀 살고 있지만 이런 외곪수적 면모를 타인에게 공격적으로 과시한다. 그는 키가 작아 버스벨을 울리지 못하자 직접 "삐이~"소리 지르기도 하고, 음식점에서 주먹들을 만났을 때도 "나 양촌리김회장이야라 일갈하며, 교통신호를 위반하며 교통상황을 맘껏 유린하는 그를 교통순경이 제지하자 "너도 해봐 임마, 재밌어"라고 응수한다. 가령 새 팬티를 샀을 때는 다음과 같은 면모를 보인다.
얼마나 쪽팔렸겠능가? 만약 빅사이즈였으면 걸려서 팬티가 벗겨지지 않았을 것을...
최불암시리즈를 접한 어떤 사람은 "최불암이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닌데?"라며 의아해한다. 그러나 최불암시리즈 속의 텍스트를 텍스트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직성때문에 이러한 의아함조차 최불암시리즈식의 웃음을 유발한다. 최불암 본인은 이 시리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감을 밝힌 바 있다. "각박한 세상에 곧 멸종될 것 같은 김회장의 순박한 캐릭터가 어리숙한 최불암 시리즈를 낳은 것 같다. 광대의 한 사람으로 기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최불암은 사실,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읽고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는데 이런 성장배경은 그에게 아버지에 대한 일종의 강박관념을 심어주게 된다. 그리고 35년간의 연기생활에서 잃어버렸지만 항상 그리웠던 아버지상을 드라마에서나마 만들어내는데 18년을 바쳤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양촌리 김회장은 양촌리 주민들이라면 언제나 일단 숙이고 상대해야 하며 벗은 여자를 보고도 결코 꼴리지 않을 것만 같고 새로운 최신 유행팬티를 사입어도 가족들에게 자랑하는 법이 없으며 언제나처럼 안방에서 아랫목을 지키는 과묵하고 재미없는 아버지다. 하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최불암시리즈에서는 그가 중국집에 갔을 때 람보와 대치한 상황에서 단무지에 목숨 거는 속물근성을 내비치며, 노주현에게 팬티 자랑하다가 결국 그걸 노출시키고야 마는 푼수이며, 최진실과 옥소리를 쫒아다니는 바람둥이로써 최불암캐릭터가 탄력을 받는다. 상다리 부러지도록 음식을 장만해야만 했던 한국여자들이 있는 대가족의 가장이 아니었더라면, 그래서 진작에 가끔 최신요리강좌도 드나들고 가끔 부엌물에 손을 적셔주었드라면 최불암시리즈는 과연 탄생했을까 생각해 본다.
별걸 다 디벼보기 위원회 우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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