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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걸다디벼보기]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진실과 신화사이

2004.4.2.금요일
딴지 별걸다 디벼보기 위원회


  산타클로스에 관한 진실

 

여러분은 산타클로스의 기원에 대해서 아마 들어본 바 있을 것이다. 원래 산타클로스는 어려운 사람들이나 아이들을 헌신적으로 도와주었다던 성자 니콜라스가 그 기원이다. 하지만 이 세인트 니콜라스의 모습을 그린 그림들을 보면 그 인상은 지금의 산타클로스와 전혀 다르다. 가냘픈 몸매에 퀭한 얼굴을 가진 할아버지일 뿐이다.

 

생각해봐라, 그 할아버지는 맨날 남들 도와주느라고 자기는 먹지도 쉬지도 못 했을텐데, 뺨이 터질 것 같이 팽팽하고 혈기가 돌리가 없지 않은가. 이 가냘픈 니콜라스 할배가 지금의 산타가 된 계기는 코카콜라 광고였다.

 

1931년, 코카콜라의 광고를 담당했던 미국의 화가 헤든 선드블롬 (Jhaddon Sundblom)이 현재 우리에게 알려진 이미지로 창조해낸 것이다. 산타 클로스의 트레이드 마크인 빨간 옷과 흰 수염은 바로 코카콜라의 상징색과 신선한 거품을 상징화한 것이고 말이다.

 

이렇게 창조된 산타클로스는 코카콜라의 이미지를 여름에만 즐기는 음료수가 아니라 추운 겨울 크리스마스에도 당연히 즐길 수 있는 음료수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코카콜라가 범세계적으로 전개한 성공적인 마케팅 활동에 힘입어 산타클로스는 코카콜라만의 산타에서 세계인의 산타로 자리잡게 되었고, 오늘날까지도 전세계인의 가슴에 간직된 꿈과 환상을 채워주는 크리스마스의 상징으로 전해지게 된 것이다.






 
 

 

오리지널 세인트니콜라스와 코카콜라 광고를 통해 변신한 산타클로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이렇게 이미지가 확 바뀐 것은 산타클로스만이 아니었다. 기독교의 기본적인 사실에서부터 이미지의 변화와 조작은 이미 이루어져왔다.

 

이제부터 하는 이야기는 아마 어떤 분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들일 것이다. 본 우원도 예전부터 여기저기서 듣고 봐온 자료들만 가지고 있었을 뿐, 종교학자도 아니고 해서 이런 것들에 대해 특별히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 본 우원으로 하여금 이 이야기를 정리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는 이제 막 개봉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와 이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였다.

 

이 영화에 대한 가장 심각한 오해는 이 영화가 당시 상황을 역사적이고 사실적인 고증을 통해 구현했다는 믿음이다. 배우들이 당시에 사용된 언어인 아람어하고 라틴어를 쓰는데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처음 20분에 사용된 것과 같은 피와 살이 관객의 얼굴까지 튀기는 듯한 연출은 그런 오해를 확신으로 만든다. 하지만 이 영화가 충실하게 구현한 것은 예수의 마지막 고난에 관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그럼 뭐냐고? 이제부터 그것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겠다.

 


  예수의 얼굴...






 
 

 

 

우리가 익숙한 예수님 얼굴

 

일단, 예수의 얼굴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예수는 유태인이었다. 그리고 신의 아들로서 세상에 나서기 전까지는 분명히 다른 유태인들과 잘 지냈다. 결국 그는 유태인스럽게 생겼다는 얘기다. 그런데 보통 우리가 아는 예수의 얼굴은 어떤가? 대개 옆의 그림과 같을 것이다.

 

이건 유태인의 얼굴이 아니다. 그보다는 선이 가늘고 잘생긴 남부 유럽 남자의 얼굴이다. 머리카락도 마찬가지다. 유태인의 머리칼은 곱슬이고, 당시 사람들은 머리를 기르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예수의 머리칼이 이렇게 웨이브가 찰랑거리는 장발이었을 리도 없다.

 

그렇다면, 실제 예수님의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아마도 아래 사진과 비슷할 거다. 이건 영국의 맨체스터 대학 연구팀이 1세기 당시 유태인들의 평균적인 골격을 기초로 만들어낸 것이다. 머리칼과 수염도 성경에 묘사된 딱 그 수준으로 재현했다.






 
 

 

진짜 예수 얼굴에 더 가까운...

 

도대체 어떤 조화가 있었길래 원래 이랬던 얼굴이 저런 곱상한 백인 얼굴로 바뀐 것일까? 그 이유야 아주 간단하다. 처음 기독교를 수용한 로마인들부터 자기들에게 친숙한 이태리인의 얼굴로 예수를 상상하고 묘사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도 기독교가 각 나라로 전파될 때마다 예수의 얼굴은 그 나라 사람들의 얼굴과 미적 기준을 반영하면서 조금씩 변화한 결과 지금과 같은 꽃미남 얼굴이 된 것이다.






 
 

 

다양한 모습의 예수님 얼굴

 

참고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막달라 마리아 역은, 유태인이 아니라 이탈리아의 대표적 미인인 모니카 벨루치가 맡았다. 이탈리아의 조상이 로마인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 캐스팅 역시 중세 유럽의 마리아 이미지에 딱 맞는다는 걸 알 수 있다.

 


  토리노의 성의와 예수님 얼굴






 
 

 

 

토리노성의 전체

 

덧붙여, 이 예수 얼굴 얘기하면 떠오르는 게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성의이다. 성의란 예수의 시신을 감싸는데 사용되었다는 천을 말한다. 이 성의라고 주장되던 물건이 토리노의 한 성당에 보관되어 있었고, 1898년에 이 성의의 사진을 찍어보니까 아래 같은 예수님 형상이 나타났다고 해서 한때 정말 떠들썩했었다.

 

그 이후 이 얼룩이 실제 사람의 피로 그려진 것임이 확인되면서 예수님은 키가 180센티에 체중은 80kg에 혈액형은 AB형이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러나, 결론만 말해서 이 성의는 진짜가 아니다.

 

첫 번째 증거, 1988년에 옥스퍼드 대학에서 이 성의의 일부를 가져가서 탄소연대 측정법으로 조사한 결과 이 아마포 천은 약 14세기경의 물건 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예수님은 2천년 전에 죽었으므로 그보다 1400년이나 지난 다음에 만들어진 천이 성의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토리노의 성의에 새겨진 예수 얼굴

 

두 번째, 이 형상은 사람의 얼굴이 도장처럼 찍혀서 만들어진 것일 수가 없다. 심즈 같은 게임을 위해서 캐릭터 스킨을 제작해보신 분들은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아래는 한 심즈 스킨 전문 사이트(http://barbie.new21.net/)에서 얻은 스킨이다.






 
 

 

왼쪽 캐릭터를 구현하려면 오른쪽과 같은 스킨이 필요하다

 

사람의 얼굴은 3차원 입체이므로 이것을 2차원 평면의 천으로 감쌌다면 이 스킨처럼 얼굴 정면은 좁고 옆으로 갈수록 퍼지는 모양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이 성의에 새겨진 얼굴은 그냥 초상화다. 사람 얼굴을 감싼 천에 그 얼굴이 새겨짐으로써 만들어진 모양은 절대로 아니란 얘기다. 그 천이 무슨 카메라 필름도 아니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 성의가 가짜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성의에 남겨졌다고 주장되었던 그 얼굴 역시 장발의 백인 얼굴이었다는 점이다. 아래 그림은 멕시코의 어떤 성당에 나타났다는 예수님의 얼굴이라는데, 누군가는 위의 성의에 새겨진 얼굴과 이 얼굴이 딱 맞아 들어간다면서 이를 성의와 이 사진이 진짜임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제시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이 둘이 모두 예수 얼굴에 대한 비슷한 상상의 산물이라는 증거로밖엔 해석이 되지 않는다.

 

덧붙여, 이 토리노의 성의에 그려진 예수의 시신에는 손바닥이 아니라 손목에 못이 박힌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자. 실제로 역사가들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십자가형을 가할 때는 손바닥이 아니라 손목에 못을 박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손바닥은 체중을 버틸 만큼 두텁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는 손바닥에 못 박는 장면이 아주 리얼하게 묘사된다. 과연 멜 깁슨이 몰라서 그랬을까? 토리노의 성의에 묘사된 대로 왼쪽 눈이 부어오른 예수의 모습을 재현했던 멜 깁슨이 말이다.

 

이런 걸 봐도 이 영화는 역사를 재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중세유럽에서부터 전해 내려온 기독교인들의 전통적인 믿음 속에 존재하는 예수의 수난 이미지를 재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멜 깁슨이 묘사하려고 했던 십자가형은 실제 역사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중세 때부터 유럽인들에게 익숙해졌던, 성당과 교회에 늘 걸려있는 바로 그 십자가 예수상이었던 것이다. 아래 그림과 같은 이미지 말이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십자가 위의 예수 스케치

 

여기에 대해서는 내가 굳이 설명하기보다는 이번 호 뉴스위크의 기사를 그대로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누가 과연 구세주 예수를 죽였나?>

 

멜 깁슨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에서 이뤄진 개혁을 부정하고 정통을 고수하는 지극히 보수적인 천주교도다. 라틴어 미사를 선호하고 금요일에는 고기를 삼가며 엄격한 성경 해석과 교리를 신봉한다. 이 영화에서 예수를 연기한 제임스 카비젤은 "깁슨은 예수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그리스도의 상처로 자신의 상처가 치유됐다고 말했다. 영화가 그것을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고 말했다.

 

깁슨은 복음서들을 충실히 재현하는 데 중점을 뒀고 비판적 분석이나 역사적 맥락은 배제했다. 그는 분명 예술가로서 원하는 영화를 만들 권리가 있고, 많은 관객들이 그가 그려낸 이야기에서 깊은 감동을 받는다.

 

John Meacham 기자

 


  수용하는 사람들이 창조하고 변형해온 예수님

 

정리해보자. 이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극장에 들어간 사람들로 하여금 마치 그 역사의 현장으로 시간여행을 해서 당시 예수가 돌에 맞고 채찍질을 당하고 놀림거리가 되고 못질을 당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을 직접 보는 듯한 체험을 하게 만들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






 
 

 

 

인디오의 예수님

 

하지만 그렇게 구현된 장면은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다. 예수는 장발의 꽃미남도 아니었고, 십자가형도 영화와는 달랐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역사와 달랐을 것이다. 교황이 이 영화를 보고 사실 그대로다라고 말했다는데, 그때 말한 그 사실은 우리의 믿음 속에 존재하는 사실이지, 실제 있었던 역사로서의 사실은 아닌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2천년 전에 예수님이 이 세상에 왔었고, 싸움이 아니라 용서와 화해를, 죽어버린 율법보다는 사랑을, 욕심보다는 나눔을, 그리고 속죄와 구원의 길을 전했으며 결국 십자가형을 당해 죽으셨다는 사실 자체가 바뀌는 건 아니다. 예수가 꽃미남이 아니라는 사실로 인해서 믿음이 흔들리는 기독교도가 있다면, 그에겐 애초부터 믿음이 없었다고 보는 게 당연할 거다. 나 역시 기독교도이지만, 이런 사실을 안다고 해서 예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나 그 의미가 변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그런 소위 말하는 성물이나 성상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해 보일 뿐이다.






 
 

 

 

아프리카인들의 예수님

 

유럽인들이 예수의 얼굴을 제멋대로 바꾸었다고 비난할 일도 아니다. 어떤 문화에서 발생한 종교가 다른 문화에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그 새로운 문화의 특성을 체화하며 변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그 종교를 수용하는 측의 사람들이 그 종교를 자기 식으로 해석하고 재창조해야 비로소 종교가 전달이 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이렇게 수용자의 문화에 맞추어 변형된 기독교의 역사는 얼마든 쉽게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역사적으로 봐서는 예수의 출생일은 10월 중순경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런데 10월이 아니라 12월에 성탄절을 치르게 된 이유는 당시 유럽의 겨울 축제에 맞춰서 성탄축하를 하기 위해서였단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을 가져볼 수도 있다. 지금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과연 우리들의 기독교 맞나? 혹시 성경에 있는 기독교가 아니라 유럽인과 미국인들이 수용하고 변형한 기독교가 진짜 기독교라고 믿는 것은 아닐까?

 

내 생각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적어도 일부의 사람들에게는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조선시대에 주자학을 받아들이던 방식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중국을 섬기던 사람들이 중국의 주자학을 진리로 받아들인 것처럼, 해방과 625를 거치면서 미국을 섬기게 된 사람들이 미국의 기독교를 주자학과 비슷한 의미의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싶은 거다. 최소한 2년 전에 광화문 네거리에서 한 손에는 성조기, 다른 손에는 십자가를 들고 (하나님이 아니라) 미국에 참회하던 일부 기독교인들에 대해서는 이런 의심이 택도 없지만은 않다.






 
 

 

운보 김기창 화백이 그린 예수님

 

오바라고 욕하는 분들이 분명 있을 거다. 하지만 유럽인들이 자기들에 맞게 백인 예수를 만들어냈듯, 다른 문화권에서도 각자의 예수를 만들어내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위의 그림들처럼 말이다.

 

 

 
딴지 별걸다 우원회
짱가(jnga@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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