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압류] 노 대통령, 그리고 두 가지 죽음

2003.11.17.월요일
딴지 편집국

최근 노동자들의 자살사건과 관련하여 지난 6일 노무현 대통령은 "분신을 투쟁수단으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그 시대는 언제 지났을까? 80년대 말, 노동자들하구 같이 배깔고 길거리에 눕던 노대통령의 인권변호사 시절... 그때를 끝으로 그런 시대는 지난 것일까?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 씨. 노대통령 또한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거다. 87년 회사측과의 협상이 결렬된 후 시위를 벌이다가 전경들의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였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이석규 씨의 억울한 죽음을 규명하려 하다가 제3자 개입금지 원칙에 의해 구속됐었다.

이석규 씨가 사망한 닷새 후인 1987년 8월 27일 당시 국무총리는 좌경세력을 척결하자는 특별담화를 통해 "노동분규 사업장을 투쟁거점으로 삼아 경제투쟁을 통한 노동해방구를 확보하여 정치투쟁 단계로 몰고 가려는 일부 좌경세력의 불순책동이 노학(勞學)연계투쟁의 이름아래 기도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한 마디로 인해 이석규 씨의 죽음은 좌경세력들의 불순한 책동이 되어버렸다.

노동3권 보장은 물론이요, 파업만 했다하면 와서 두드려 까고 조지던 그때. 그런 상황에서 죽어간 가난한 노동자를 보며 젊은 노무현은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그리고 그런 죽음을 좌경세력의 불순책동으로 몰아가는 정권을 보며 얼마나 분노했을까? 그런 그가 기껏 15년이 지난 지금 "분신을 투쟁수단으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다. 그가 그토록 애통해 하던 이석규 씨의 죽음과 최근 죽어간 김주익, 이용석 씨의 죽음은 다르다고 말하는 것이다.

과연 그 죽음이 다를까? 국가의 폭력에 의해 맞아 죽은 죽음과 사용자와 정부에 의해 궁지로 내쫓겨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 죽음이 그토록 차이가 있는 것일까?

다른 건 차치하고 오늘은 가압류 문제만 보기로 하자.
 

올초 두산 중공업 배달호 씨가 자살하자 손배가압류에 대한 보도가 많아졌다. 최근에는 이와 관련한 토론회도 많이 열리더라. 하지만 여전히 관심없는 사람들이나 모르는 사람들은 "파업으로 인한 회사측의 손해를 노동자들에게 배상토록 하는 것"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가기가 쉽다. 그리고 파업으로 인해 손해를 입혔으니 그건 또 당연한 것이 아니냐구 생각하는 것도 같다.

근데 파업이란 것은 사용자들에게 손해를 입히기 위한 행동이다. 때문에 파업으로 손해를 입었다고 그것을 배상해달라고 할 수는 없다. 울나라 노조법은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해놨다. 따라서 사용자가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경우는 그 파업이 불법파업일 경우에 한해서이다.

하지만 울나라는 불법파업 아닌 파업을 하기가 힘들다. 조합원 과반수 찬성을 얻지 않으면 파업이 불가능하고, 조정위원회를 통해 중재를 거쳐야 되고, 필수공익사업장은 아예 파업을 할 수 없게 해놓았으며, 일방중재니 강제중재니 해서 파업을 막아 버리고... 기타 등등등. 불법이란 단어 자체의 늬앙스가 좋지 않아서 불법파업하면 때려부수고, 화염병 던지는 것들을 떠올리기 쉬운데 그런 것만이 불법파업이 아니다. 울나라는 벼라별 게 다 불법파업이다. 암튼, 불법파업이 오늘의 주제가 아니니깐 이건 담 기회로 미루자.

그리하여 노동자가 파업을 했는데 그게 법을 어겼다 치자. 그럼 불법파업이 되고 관련자는 형사적으로는 업무방해죄 등으로 구속되거나, 수배 떨어지고, 민사적으로는 불법행위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되고 하는 거다.

하지만 울나라는 법치주의 국가다. 그러니 당연히 이런 과정도 재판을 통해 이뤄진다. 하지만 재판 해본 넘들은 알겠지만 이 과정에 시간이 꽤나 걸린다. 그래서 사용자들이 써먹는 방법이 바로 "가압류"다.

가압류... 쉽게 말하자면 돈 꿔간 넘이 돈을 안 갚을 경우, 법원에 신청하여 그 넘이 지 재산을 맘대로 못 처분하도록 그 넘 재산을 미리 찜해놓는 거. 이건 빠르면 하루 만에, 길면 4박5일 만에 법원에서 결정해줄뿐더러 서류로만 심사하므로 그 절차 또한 간단하다.

자, 그럼 사용자들은 이걸 어떻게 써먹을까? 어떤 회사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했다. 그럼 사용자들은 얘네가 뭔 불법을 저지르나 찬찬히 짱본다. 그러다가 얘네가 회사 경비원하고 부딪혀서 경비원을 다치게 했다. 그럼 아싸~ 이건 폭력을 사용했기 때문에 불법파업이 될 수 있는 건수가 되는 거고, 회사는 쪼르르르 법원에 달려가 얘네가 이렇게 불법파업을 해서 생산에 손해를 입혔다면서 그만큼 가압류를 해 버리는 거다. 글고 그렇게 가압류할 때는 다친 경비원의 치료비만큼만 가압류하는 것이 아니라 조업중단으로 인한 손해를 지들 임의대로 계산을 뽑아서 가압류를 해 버린다.

물론, 이게 불법파업으로 인한 업무방해인지 어쩐지는 오랜 재판을 거쳐야 하며 그로 인해 배상해야할 손해액도 재판을 통해 결정된다. 하지만 그런 재판 전에 이미 가압류를 때려놓으면 길게는 몇 년이 걸리는 재판 기간 동안 노동자들은 그 가압류에 걸려 꼼짝달싹을 못하는 거다. 이게 얼마나 악랄한 방법인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2002년 2월 25일부터 38일간 한국발전산업노조는 파업을 했다. 그러자 사측은 425억원 상당의 손해를 입었다면서 같은 해 3월 노조 및 간부들을 상대로 140억, 조합비를 대상으로 145억, 조합원 3천여명을 상대로 182억을 가압류한다. 그래서 노조원들은 길게는 6개월간 월급을 가압류당해 월급을 제대로 받아가지 못한다. 월급쟁이가 월급 제대로 못 받아가면 만사쫑이라는 건 두말하면 볼따구만 아프고...

그럼 얘네가 정말 파업을 통해 회사에 그런 손해를 입혔을까? 2002년 한국동서발전주식회사가 노조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31억6천만원에 대해 지난달 법원은 "손실이 발생하지 않았으므로 회사의 청구는 이유가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곧 회사가 손해본 게 없으니 배상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그럼 뭐하나? 이미 월급 가압류는 6개월여 동안 당했는데...

그리고 보시는 바와 같이 회사가 가압류하고 재판결과가 나기까지 시간이 1년 반 정도 걸렸다. 발전회사 같은 경우는 국정감사가 낑궈져 있어서 그 때문에 가압류를 풀어줬기에 망정이지 2002년 3월 가압류를 한 시점부터 판결이 난 지난 달까지 계속 가압류를 끌고 갔으면 가압류당한 당사자들은 버텨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실상 회사가 손해를 보건 안 보건 간에 무조간 가압류만 해놓으면 그 기간동안 노동자들은 생활을 영위할 수가 없어 노조을 탈퇴한다거나, 회사를 관두게 된다.

그 예로 금속노조 충남지부 센추리지회 노조간부들은 회사측의 가압류에 의해 받게된 월급이 최소 오백원, 많아야 20만원이었다. 올초 분신한 두산중공업의 배달호 씨 역시 자살하기 전 6개월 동안 집에 가져간 월급이 없었다. 이처럼 가압류는 순수하게 회사의 손해를 배상받기 위한 차원에서 사용되는 게 아니라 노동조합을 탄압하기 위한 차원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럼 월급만 이처럼 가압류할까? 지난 달 자살한 한진중공업 김주익 씨는 월급을 가압류 당해 실수령액이 13만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집과 퇴직금까지 가압류당해 있었다. 집과 퇴직금 뿐이냐? 각종 예금통장까지 가압류한다. 근데 거기까지도 좋다.

2002년 한라병원은 파업을 이유로 직원들에게 총 네 번에 걸쳐 30억에 달하는 가압류를 때린다. 임금, 상여금, 퇴직금 50% 가압류는 물론이요, 자동차, 적금통장 등등 무차별적으로 때리다 못해 입사시 신원을 보증했던 사람들의 재산에까지 가압류를 때려 버렸다. 신원을 보증했던 사람들은 당연히 부모님.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부모님 과수원이 가압류당하는 일까지 겪는 거다. 이외에도 예는 많다. 2001년 2월 장은증권은 노조위원장의 아버지, 작은 아버지, 할머니의 집과 선산에까지 가압류를 붙였고, 동광주병원은 보증인 47명에 대해 14억의 가압류를 붙였다. 이제 파업 한 번 잘못하면 자기 혼자 망가지는 게 아니라 완전히 패가망신하는 거다.

그렇다면 사측이 가압류하는 금액은 과연 일개 직장인이 열심히 일하면 갚을 수 있는 돈일까? 발전노조의 경우에는 고작 17명에 대한 가압류 금액이 1084억원이다.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금액을 사람 대가리 숫자로 나누는 게 아니라 그 금액 전체를 각각 개인마다 몽땅 가압류 붙여버린 결과다. 결국 이건 손해를 봤으니깐 배상을 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회사를 관두든 노조를 탈퇴하든 간에 감히 사측에 대해 까불지 말라는 얘기다.

이 가압류를 한층 적절하게 이용해먹는 방법은 또 있다. 한국시그네틱스 노조는 2001년 7월부터 여지껏 투쟁중이다. 근데 회사는 2001년 6월부터 가압류를 때리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5년차 노동자가 가압류로 인해 받는 한달 임금 실수령액이 35만원. 그런데 회사는 그냥 그러한 가압류 상태를 계속 끌고가기만 할 뿐 2003년 1월까지 본안소송인 손해배상 청구를 하지 않는 거다.(지금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지 못 했다) 손해를 입었다면 소송을 걸어야할 텐데, 정작 소송은 걸지 않고 가압류만 1년 반 동안 끌고가면서 노동자들을 괴롭히는 것이다. 심지어는 일부 회사를 나간 사람들한테도 가압류를 풀지 않는다. 가압류라는 민법조항이 노사관계에 낑궈들어 이렇게 이용돼먹고 있다.

올초 집계된 자료에 따르면 이처럼 가압류된 금액이 총 1370억이랜다. 씨바.
 

사실 가압류는 가압류 결정을 내리는 판사의 몫이다. 울나라 법은 무분별한 가압류를 막기 위해 담보를 제공토록 하고 있지만 돈있는 회사가 그깟 담보제공 못해서 가압류 신청을 안 할 리가 없고, 그렇다면 간단한 서면심사만 걸치면 되는 이 가압류 결정을 담당 판사가 심사숙고하여 내릴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김주익 씨가 자살한 후 이러한 문제가 다시금 부각되자, 대법원은 지난 10월 22일 전국법원 신청담당 판사회의를 열어 가압류를 엄격하게 실시키로 했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무분별한 사용자들의 가압류 신청을 받아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근데 그런 회의가 있은 후 불과 며칠 지나지 않은 28일. 재능교육은 재능교육 노조가 회사나 공공장소에 허위내용의 불법 스티커를 붙였다는 이유로 조합비 3억, 조합간부 등 8명에게 3억 해서 도합 6억원의 가압류 신청을 한다. 이 회사는 이미 2001년, 8억여원에 달하는 급여 가압류를 노조원들에게 하고 있었고, 스티커는 아마 그런 거뜰에 항의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근데 법원은 재능교육이 신청한 6억여원의 가압류를 다시 낼름 결정해주고 만다. 아니, 불과 며칠 전에 가압류 엄격하게 적용하겠다고 회의했다면서?

이게 지금 울나라 노동자들이 당하고 있는 현실인 거다. 노조에서 탈퇴하거나, 회사를 그만두면 가압류를 풀어주겠다고 회유하는 사용자 앞에서 노동자들은 그들의 뜻대로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전에야 노조 자체가 없었고, 또 노조를 만들거나 파업을 하면 공권력 투입해서 두드려까면 됐다. 하지만 이젠 대놓고 그럴 수는 없고, 그렇다면 파업하는 노조애덜을 어떻게 만져줘야 할까?

작년초 DJ는 아래와 같은 말을 한다.

"불법폭력 노조운동을 용납해서는 안되지만 구속만이 최선은 아니다."
"불구속기소나 민사소송 등 여러 가지 방안에 대해 검토해주기 바란다."

정부 역시 방관자 내지 동조자였다는 얘기다. 배달호 씨가 분신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이던 올해 1월. 그때 분신 사건을 접한 노대통령은 손배가압류가 남발하는 것을 막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개월 후... 손배가압류 남발을 막기는커녕 지난 달에만 두 명이 분신하고, 두 명이 자살했다.

87년 전두환 군바리 독재정권 밑에서 민주노조 한 번 만들어보겠다고 시위하다 목숨을 잃은 이석규 씨. 그리고 당시 목숨을 바치는 그들의 노력에 같이 어깨를 걸었던 노무현 대통령. 그와 노대통령이 그렇게 만들었던 노동조합이 자신이 대통령을 맡고 있는 지금 이때, 이처럼 산산이 깨져가고 있다. 그런데 그 당사자였던 노무현 대통령은 너무나 태연하게 "분신을 투쟁수단으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다. 최루탄에 맞아 죽은 이석규 씨의 죽음과 손배가압류에 쫓겨 자살한 김주익 씨의 죽음은 다르다고 말한다.

150억을 손배가압류하겠다는 회사의 압력이 있은 얼마 후, 노대통령의 말처럼 분신이 투쟁수단이 아닌 시대를 살고 있었던 한 노동자 김주익 씨는 아래와 같은 말을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이 회사에 들어온 지 만 21년, 그런데 한 달 기본급 105만원. 그중 세금들을 공제하고 나면 남는 것은 팔십 몇 만원. 근속 년수가 많아질수록 생활이 조금씩이라도 나아져야 할 텐데 햇수가 더할수록 더욱 더 쪼들리고 앞날이 막막한데, 이놈의 보수언론들은 입만 열면 노동조합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니 노동자는 다 굶어죽어야 한단 말인가.

이번 투쟁에서 우리가 패배한다면 어차피 나를 포함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 한사람이 죽어서 많은 동지들을 살리 수가 있다면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석규 씨의 죽음과 김주익 씨의 죽음은 다르지 않다. 최루탄이 이석규 씨를 죽였다면 손배가압류라는 노조탄압책이 김주익 씨를 죽였다. 이 두 가지 죽음을 다르다고 말하는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분신을 투쟁수단으로 삼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고? 그렇다면 같은 논리로 나도 말할 수 있다. 인권변호사였고, 그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던 노무현 씨와 지금의 노무현 대통령은 다르다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어깨를 내어주던 노무현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고...

 
딴지 편집국
철구(chulgoo@ddanz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