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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생물학 무기를 디벼주마!!
- 생물학 무기의 역사(1)

2003.8.24.일요일
딴지 의학부


우선 지난 번에 내용에 오류가 있어서 변명 좀 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우선 9.11 테러가 2002년에 일어났다는 큰 실수를 하였고, 영화 <아웃브레이크>에서 원숭이 잡아서 얻어내는 것은 백신이라고 실수하였다.


9.11테러는 2001년에 일어났고, 원숭이 잡아서 얻어낸 것은 모타바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항체인데 백신이라고 잘못 적었다. 과학 한국의 미래를 위하여 불철주야 술 만 마시고 과기 정책 씹던 중에 기사를 처음 써서 실수를 한 것 같다.


각설하고 지난 회에는 생물학 무기의 대표적인 것들을 디빌링 해보았고, 이번엔 예고한 대로 생물학 무기가 이용된 역사를 2회에 걸쳐서 디빌링 해보려고 한다. 우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생물학무기의 역사는 3천년을 훨씬 넘는다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왜 병원균들이 사람들을 죽이는지 몰랐고 단지 죽은 시체에서 나오는 부패한 악취가 전염병을 일으킨다고 생각하였으며, 이런 이유로 시체들을 생물학 무기로 이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로 미생물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생물학 무기는 발전을 하게 된다.



  고대









생물학 무기 테러리스트 모세


역사 기록은 아니지만 구약 성서 출애굽기에서는 하나님이 유대인들의 이집트 탈출을 돕기 위하여 열 가지 재앙을 이집트에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중에서 이집트에 전염병인 악성 종기를 창궐하게 만든 재앙이 있는데 이 내용을 읽어보면 상당히 재미가 있다.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가마의 재를 파라오 앞에서 하늘을 향해 뿌리라고 말씀하셨으며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것을 공중에 뿌리니, 그것이 사람과 짐승에게 붙어서 악성 종기를 일으켰다"라고 언급한 것은 현대의 생물학무기 테러를 연상시키고 있다.


또 같은 지역에 거주함에도 불구하고 유태인들에게는 악성 종기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성경에서는 선택된 민족이라서 그렇다고 하지만 내 생각에는 유태인들은 백신이나 다른 예방법으로 종기에 대처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또 구약성서 사무엘 전서에도 유대인의 보물인 성궤를 탈취한 블레셋인들에게 엄청난 전염병이 일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성궤로 인한 전염병으로 블레셋인 약 5만 명 정도가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후세의 연구가들은 블레셋인을 죽인 전염병에 대하여 천연두, 페스트 등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것도 트로이의 목마 바이러스 식의 생물학 무기로 그려진다.


그런데 성궤가 무엇이냐고? 인디아나 존스 박사가 1편 <레이더스>에서 찾은 그 보물이다. 영화에서 인디아나가 성궤를 찾아 미국으로 가져가는데 전염병이 돌지 않은 이유는 미국이 유태인 지배 하의 나라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디아나 존스 박사가 찾아낸 트로이의 목마 바이러스... 아니 성궤


생물학무기에 대한 역사 기록으로는 기원전 14세기 이집트와 히타이트 간의 전쟁 중에 천연두 유행에 대한 기록이 있다. 전쟁 당시에 천연두에 감염된 이집트 군인들이 히타이트에 감염되었으며 이들로부터 히타이트 국민에게 천연두가 전파되게 되었다. 이로인해 수많은 군인과 시민들이 모두 감염되었고 히타이트 왕과 그의 후계자도 천연두를 피하지 못하였으며, 이후 히타이트 문명은 급격히 쇠퇴하여 멸망하게 되었다고 한다.


기원전 6세기에는 아시리아가 적군의 우물에 호밀 맥각을 넣어 오염시킨 사실도 있다.


이 호밀 맥각은 호밀에 기생하는 곰팡이로써 사람이 먹게 되면 팔다리 끝이 썩게 되고, 임산부들은 유산을 하게 되는 무서운 독성을 갖고 있어서 신의 불 또는 악마의 발톱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1925년 스위스의 화학자 로빈은 이 무서운 곰팡이로부터 편두통을 치료하는 약제인 에르고타민을 분리하여 독을 약으로 바꾸는 쾌거를 이룬 바 있다. 이후 기원전 1세기에 스키타이 궁수들은 화살촉을 퇴비와 시체의 썩은 물에 적셔서 적을 공격할 때 이용하였다.


기원전 6세기에 그리스 아테네의 정치가인 솔론은 주변의 도시국가인 크리사를 공격할 때에 시의 상수원으로 통하는 물길에 설사를 유발하는 약초인 헬레보루스 뿌리를 사용하였다. 이후 아테네의 문화와 권력이 절정에 달하였던 기원전 430년에 아테네는 스파르타를 주축으로 한 동맹 도시들의 공격을 받는 펠레폰네소스 전쟁이 시작된다.


당시 아테네에는 20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전쟁으로 도시의 환경이 나빠지게 되었고 엄청난 전염병이 돌게 된다. 결국 많은 군인들이 전염병으로 희생되었고 아테네의 지도자인 페리클레스도 전염병을 이기지 못하였으며 이 전염병은 아테네 인구의 3분의 1을 희생시켰고 아테네를 스파르타에 굴복하게 만들었다.


아테네가 전염병으로 스파르타에 굴복하고 35년 후에 로마도 유사한 전염병으로 고통을 겪었다. 이때 카르타고가 로마의 도시인 시라쿠사를 공격하였는데 전투 물자를 수송하던 배를 통하여 로마의 전염병이 카르타고로 전해졌으며 이후 북아프리카로 퍼져나갔다. 이후 로마는 125년, 165년과 251년에 전염병이 창궐하여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4세기 로마는 각각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에 수도를 둔 두 개의 제국으로 분리된다. 로마는 5세기 말에 먼저 붕괴되고 東로마는 당시 황제인 유스티니아누스가 로마제국 재건을 부르짖으며 영토 확장을 실시하여 북아프리카, 시칠리아, 스페인을 회복하였다.


그러나 이때 페스트가 창궐하여 전 유럽을 휩쓸었다. 페스트는 590년까지 지속되었으며 이후 150년 동안은 국지적으로 발생하였다. 페스트의 유행은 로마를 역사로부터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었고 그 뒤를 그리스어 계통인 비잔틴 제국이 이어가며 중세가 시작되었다.



  중세


로마가 멸망한 이후 1000년까지는 특별히 위협적인 전염병은 발병하지 않았다. 허나 이와 같은 상황의 지속에 농업기술의 발전이 더해져 수확량도 늘어났기 때문에 유럽의 인구는 1300년도까지 두 배로 늘어나게 되었다.


결국 10만 명 정도의 인구가 거주하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가 다시 나타났으며 수공업과 교역과 여행이 부활되었다. 그러나 13세기 막판부터 유럽에는 홍수와 흉작과 기근이 계속 발생하게 되었다.


이 기근으로 도시의 인구가 10~15%나 줄어들었으며 1333년에는 유럽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와 중국에도 가뭄과 기근이 덮쳤다. 특히 1330년대에는 비정상적으로 건조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씨 때문에 몽고와 투르크의 유목민들이 식량과 물을 찾아서 새 땅으로 이주하였으며 페스트균을 보유하고 있는 설치류들도 함께 이동하게 되었다.


페스트는 중앙아시아에서 인도, 중동을 거쳐갔으며 사막을 횡단하는 상인들의 길을 따라서 서쪽으로 전진하였고 1346년에 흑해 연안의 항구 도시인 카파까지 도착하였다. 당시 카파는 몽고의 후예인 타타르족에 공격당하고 있었으며 그곳에 우연히 이탈리아의 상인들이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친 공격에도 불구하고 타타르인들은 카파를 함락시키지는 못하였고 때마침 자신들의 부대에서 페스트가 발병하여 공격을 포기하게 되었다. 타타르족은 철수하기 전에 투석기를 이용하여 페스트로 죽은 동료의 시체를 성벽 안으로 던져 넣었으며, 카파의 거주민들도 시체들을 성벽 너머 바다로 다시 던져 버렸지만 결국 페스트는 시 전체로 퍼지게 되었다.


카파에 있었던 이탈리아 상인들의 일부가 시칠리아로 이주하면서 유럽에 페스트가 퍼지게 되었고 다시 시칠리아 사람들이 배를 타고 다른 지중해의 항구로 옮겨가서 유럽 전체로 페스트가 퍼지게 되었다.









투석기로 성을 공격하는 몽고군... 투석기로 시체를 성안에 던져 넣어서 페스트가 유럽에 퍼지게 하였다.


또 1340년에 현재의 북 프랑스의 한 성에서도 투석기를 이용하여 죽은 말과 다른 죽은 동물들의 시체를 성 내부로 던져 넣는 방식으로 공격하였다. 당시 성을 지키던 사람들은 동물 시체들로 인하여 냄새가 나고 환경이 나빠져서 결국 참지 못하고 휴전을 제의한 일이 있다.


그와 비슷한 예로 1422년 보헤미아의 칼스테인 전투에서도 공격자들이 페스트로 죽은 병사들의 시체와 가축의 배설물을 적의 성에 퍼부었지만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5개월만에 철수한 바 있다.


1489년 스페인은 그라나다에서 이슬람 세력과 전쟁을 진행하고 있었다. 스페인은 전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이슬람 세력인 투르크인(현재의 터키)과 전쟁 경험이 있는 지중해 동부의 섬나라인 키프로스의 용병을 고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도착한 직후 스페인의 군대들은 앓아 누웠고, 아무도 전에 본 적이 없는 병으로 죽기 시작하였는데 후대에 그것이 티푸스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스페인은 2만 명의 군사를 잃게 되는데 이 중 전투 중에 죽은 숫자는 3,000명이었고, 1만 7,000명이 티푸스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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