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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까] 내 아버지의 고백

2003.8.9.토요일
딴지 민원접수처

 




 
 

이번 현대자동차 임금협상을 놓고 참으로 뜨거운 설왕설래가 오가고 있다. 물론, 본지 데스크의 멜박스에도 각종 투고 및 민원이 속속 접수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이번에는 그러한 투고 및 민원을 가려 공개하기로 하였다. 홀라당 타벌릴 정도로 뜨거운 설왕설래가 계속 이어지길 바라며... 이어지는 투고는 여기로 하시라. 졸라~

 

우리 아버지를, 나는 제일 존경한다.

 

우리 남매는 나를 포함해 모두 세 명이다. 나는 글쓰는 걸 좋아해서 국문과에 들어갔다. 내 남동생은 만화를 좋아해서 애니메이션과에 들어갔다. 내 여동생은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해서 피아노과에 들어갔다가, 학교가 마음에 안들어서 지금 다시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모두 직접적으로 돈 벌어먹는 건 아무 것도 없다.하지만,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나는 기계만지는 걸 좋아했지만, 집이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상고에 진학했고, 거기서 공부해서 은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기계를 만지고 있지 않니?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이 곳으로 뛰어들었다면 아마 이렇게 힘들진 않았을 거야. 하지만 지금이나마 내가 하고싶은 걸 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너희들은 늬들이 하고싶은 걸 공부해라. 그래야 후회가 없다."

 

늘 이 말씀을 들으면 가슴이 찡했다.

 

우리 아버지는 역경을 계속 헤쳐나오셨다. 은행에 다니시다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아무것도 없이 사업에 뛰어드셨다. 경영난에 허덕이다 결국 부도를 맞으셨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40여년간 사시던 부산을 떠나 시흥시로 올라오셨다. 아는 친척의 도움을 받아 기계 두 대로 다시 일을 시작하셨다. 열심히 일하셨고, 조금 나아지시는 듯 했다. 그러다 IMF를 맞으셨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다라는 신념으로 몇 되지 않는 직원들 월급도 못주시며 그들을 격려해 어느 정도 사업을 일으키셨다. 그런데 우리 물품을 전량 담당하던 윗 단계의 공장이 부도가 났다. 당연히 우리 공장 역시 망해 버렸다. 나는 이 때 군대에 가있어서 이 사정을 전혀 몰랐다.

 

늘 전화하면 괜찮으시다고 말씀하셔서 난 그런 줄만 알았다. 내가 전역할 때까지, 우리 집은 언제나 밑바닥에서 쓰러지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었다. 나는 지금 전역을 했고, 복학하기 전까지 아버지 공장에서 일을 도와드리고 있다. 

 

우리 아버지는 영세기업 사장이시다. 디젤 자동차의 엔진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드신다. 우리 아버지가 만드시는 엔진 부품은 윗단계의 중소기업에서 하청을 받아 만드시는 것이다. 그들은 다시 그 부품을 모아 윗단계의 엔진제조업체에게 넘긴다. 거기서 다시 올라가는 게 현대자동차이다.

 

우리 아버지는 돈을 벌지 못하신다. 한 달 내내 쉬는 날 없이 나가서 일하시고, 더 많은 하청을 얻기 위해 뛰어다니신다. 그런데 돈을 벌지 못하신다. 너무도 짠 단가에 너무도 비싼 임금. 결국 그 속에서 허우적 대실 뿐이다. 나와 어머니가 그나마 일을 하면 임금이 줄어들기에 적자를 약간 면할 뿐이다.

 

요즘 아버지는 처음으로 이 곳에 뛰어든 걸 후회하고 계시다. 현대자동차 노조의 파업과 협상타결 장면을 보고 계속 한숨만 내쉰다. 이제 어떻게 일을 해야하는지 걱정하시고, 그들의 행태에 분노하신다. 밑의 글은 아버지께서 인터넷에 실어달라고 말씀하신 걸 내가 그대로 옮긴 것이다.

 

"나는 현재 디젤엔진 부품을 생산하여 납품하고 있는 영세기업체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 업에 종사한지가 현재 8년째 접어들고 있는데, 8년 동안 해마다 납품 가격의 인하를 강제적으로 당해왔습니다.

 

그러나, 8년전보다 지금의 자동차 가격은 훨씬 높게 인상이 되었습니다. 납품 가격은 인하되는데, 자동차 가격은 인상이 되고, 그럼 그 사이의 마진은 어디로 가있습니까? 이제는 납품을 해서 종업원들 인건비도 맞춰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앞으로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이 주 5일제 근무 및 인금인상을 실시하면 현대자동차는 그 재원을 어디에서 조달할 것인지는 뻔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자동차 가격 인상과 납품 업체의 납품 가격의 인하로 현대 자동차 종업원들의 임금 인상분을 충당할 것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 시점에서 과연 내가 이 부품을 계속 생산해서 납품을 해야되는지... 정말 삶의 회의가 옵니다.

 

물론, 현대자동차 노조원들의 요구사항도 당연히 좋은 이야기지만 그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서는 현대자동차를 구매하는 모든 소비자들과 납품 업체들이 피를 모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건지 그것이 궁금합니다. 저는 외국인 근로자 및 주부 사원 등 최저인건비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매달 임금을 맞춰주기가 정말 힘들고 집에 생활비 갖다주기도 정말 힘듭니다. 더구나 자식들 교육비, 부모님 모시는 경비 등을 조달하지 못해서 매일 피를 말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현대자동차 종업원들의 풍요로운 삶을 유지해주기 위해서 내가 흘려야 될 피가 얼마나 더 필요한지 그것이 걱정스럽습니다. 저는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기계와 씨름하면서 12시간을 일하고 있습니다. 쉬는 날은 정기 공휴일 이외에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현대자동차 노조원 여러분, 부디 우리 피를 마시며 만수무강 하십시오."

 

나는 참을 수 없다. 이건 말도 안된다.

 

전태일 열사가 분신자살을 하며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라고 외쳤을 때 결코 이런 꼴을 보자고 한 건 아닐 거라고 생각된다. 만약 계속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 아버지와 나는 투쟁할 것이다. 아버지와, 이런 일을 하는 자동차 부품 공장들이 힘을 합쳐 투쟁할 것이다.

 

우리 나라 최고의 귀족 노조 현대 자동차 노조를 없애기 위해... 이젠 노조를 없애기 위해 다른 노조가 생겨 투쟁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너무도 어이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아버지를 위해 좀 더 많은 곳에
보여지게 하고 싶습니다
쏘가리 (pyoungs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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