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자유소견]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2001 2.26 월요일

딴지 영진공 위촉위원 겸

딴지 생활부 기자 스폰지
 




 
 

딴지 영화진흥공사는, 공사 부설 "자유 소견란"을 통해 각계각층각종 다양한 소견을 접수/공개하고 있다는건 다들 잘 아실꺼구.. 최근의 비공인 위촉위원들의 열렬한 소견제출의 추세에 부응하기 위하여, 본 공사 수뇌부는 각종 우수 소견을 지속적으로 발굴, 공개하기로 방침을 정하였다.

 

그 첫빠따로 Best Jr. 등급의 영광에 빛나는 잔잔무비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에 대한 소견을 은근슬쩍 사칭하여, 뭇 사람의 똥꼬를 사뭇 아리게 한, 한 위촉위원의 소견을 이 자리에 공개한다.

 

 

 

(이하 소견내용)

 

요즘 상영중인 영화제목을 따왔지만, 절대 그 영화에 대한 얘기 아니다. 말 그대로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문장과 관련된 얘기다. 속았다 싶은 넘들.. 미안타만.. 내 얘기 좀 한 번 들어봐주라..

 

 

 

 

 

 

 

 

 

얘들에 대한 얘기 절대 아녀..

 

 

 

 

 

 

 

얼마전 대학 선후배간 술자리에서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거기서, 직장여성으로 근무하고 있는 한 여자 후배가 이 문장에 대해 토를 달았다. 솔직히자기도 아내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싶다구(사실 불가능하지만)..

 

 

아침에 밥해주고, 빨래 빨아주고, 이거 저거 뒷일들 도맡아서 내조해주고, 밤에는 성적 욕구도 꼬박꼬박(?) 채워주는 아내라는 존재를 자기두 하나쯤 가지고 있었음 좋겠다는 것이다. 머, 결국 직장인으로 근무하면서도 집에 돌아와서는 가사에 얽메이는, 이중의 부담을 떠 안고 있는 이 땅의 여성으로서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그런 것이었다.

 

 

남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궁금한 듯 나를 쳐다보기에(난 남자다 -_-;).. 나는 이렇게 얘기했다.

 

 

"난 아내가 되구 싶어.."

 

 

잠깐.. 여기서 오해의 소지를 박멸토록 하겠다. 내가 아내가 되구 싶다고 한 것은, 남편들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나 하냐... 아내노릇이 얼마나 편하구 좋은 건데 배부른 소리하지 마라... 따위의 의도가 아니라는 거다(마쵸넘덜.. 미안타만, 난 너네 편이 아냐..).

 

 

머.. 차츰 이야기 하다 보면 비슷한 이야기로 이해될 수도 있겠지만(어쨌든 난 남자니까..쩝), 분명히 못 박아두건데, 난 우선 그 여자후배가 얘기한 이땅의 여성이 겪는 불합리한 이중의 고통에는 공감하는 바이다.

 

 

게다가 나는 비록 남편노릇은 힘들고 아내노릇은 편하지만, 어찌됐건 내가 남자니까 남편노릇을 헌신적으로 하겠다 또는 여자들은 불평불만을 삼가라라는 식으로 입에 발린 소리를 하려는게 아니다.

 

 

나는 성의 구분을 떠나서 정말로 아내가 되고 싶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거다.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면 나는 전업주부가 되고 싶다 이거다.

 

 


 

 

 

이쯤에서 자쓱, 남자망신 다 시키네.. 고추 떨어질라 하며 혀차는 넘덜이 있을줄 안다. 허나 니덜의 예상과는 달리, 내 고추는 늘 혈기왕성하며, 적시적소에서 분기탱천한다. 니덜 고추나 염려 하시라.

 

 

 

어머, 그래도 남자가 아침엔 집밖으로 나가야지.. 그런 남자 시러 하는 여자분들, 걱정마시라. 나도 그대들에게 대쉬할 생각, 추호도 없으니까..

 

 

 

 

 

 

 

 

 

 

 

IMF사태 이후, 직장을 구하기는 힘들어지고, 오히려 명퇴가 판을 치는 작금의 현실로 인해 이땅에도 많은 남성 전업주부가 양성된 건 사실이지만, 실상 남성이 전업주부를 한다고 하면 능력없는 졸장부이거나, 명퇴 이후 갈 곳 없는 사람이나 할 짓이라는 시선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성의 정체성마저 의심하는 눈초리가 횡행하는 것이 현실이다. 씨바.. 내 거시기 까보여주랴?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용감히 전업주부가 되고 싶다고 말하련다. 물론 본인, 대학 4년, 졸업후 4년... 도합 8년간의 독신생활을 통해 가사일이라는 것이 얼마나 번거롭고 힘든 일인지를, 더구나 아무리 열심히 해도 표도 안나고 보람도 찾을 수 없는 일인지를 잘 알구 있다.

 

 

근데, 솔직히 직장생활은 머 별 다를 거 있냐 이거다(사실 나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출발했다). 직업과 직장생활이 자아실현의 장이 된다는 건, 도무지 윤리 교과서에서나 나오는, 구름 위의 솜사탕 같은 말이라는 거다. 남에 주머니에서 돈 빼내오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실제 현실의 직장인들은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기위해 조빠라지게 뛰어다니거나, 돈 한푼 더 벌어보겠다고, 혹은 상사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별별 굴욕적인 포즈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지 않은가 그 말이다.

 

 

자아실현? 개코다. 그게 어디에 있어.

 

 

어느날 갑자기 안정적인 직장을 때려치고 나온 한 선배가 하던 말이 생각난다.

 

 

 

 

 

 

"울 나라 직장인들의 인생이란, 죽기보다 하기 싫은 일을 해서 번 돈으로, 가끔 자기가 하구 싶은 거 해보면서 사는 거야"

 

 

 

 

 

음.. 죽기보다 하기 싫은 일이란 건 조금 과장된 것 같지만, 결국 이게 허울좋은사회생활의 실상이라는 거다. 대개의 일반인덜은 직장생활에서 자아실현을 한다기보다는, 그걸로 인해 생긴 여유와 여가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이거다.

 

 

아니라구? 그럼 넌 정말 자아실현하러 직장 댕기니? 좋겠다. 쩝.. 물론 간혹 그렇게 제대로 사는 넘들이 있긴 하다.

 

 

"이 일 하시면서 언제가 가장 즐거우셨나요?"

 

 

"늘..(밝게 웃으며) 늘 즐거웠어요.."

 

 

<성공시대>같은 TV푸로에 나오는 이런 뇬넘들 보면, 정말 부럽기 그지 없다. 그러나, 얼마나 저런 년넘들이 희귀하면 TV에서 인터뷰꺼정 하겠냐하는 생각이 앞선다. 저렇게 자신있게 대답할려면 무언가 한가지에 제대로 미칠 수 있거나, 아님 특출난 능력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처럼, 무언가 한가지에 제대로 미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뛰어난 능력도 갖추지 못하고, 게다가 별다른 큰 야망도 없는 넘은 평생 TV에 나오기는 글렀다 그말이다. 그럼 할 수 없지. 죽기보다 하기 싫은 일이라도 해서 돈 벌어 갖고 그걸루 여가선용이라두 해야지 뭐. 근데, 그것마저두 사실 만만치 않다.

 

 


 

 

 

얼마전 딴지기사에서두 다뤘었지만 울나라 직장인들, 때깔나고 멋드러지게 여가선용하기 쉽지 않다. 여가시간을 알차게 채워주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사회적 인프라도 열악할 뿐더러, 가뜩이나 꽉꽉 채워진 근무시간에, 뻑하면 잔업이다 야근이다 해서리 겨우 생긴 자신만의 시간엔 잠으로 피로를 풀거나, 술로 스트레스 풀거나.. 그렇게 그렇게 쳇바퀴처럼 인생이 메꿔져 가더란 말이다.

 

 

 

반면.. 전업주부라는 직업은 어떠한가. 적어두 왠만큼 성실하기만 하다면, 명퇴당할 염려는 없다. 남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 아둥바둥 경쟁해야 할 필요도 다른 직업에 비하면 훨씬 덜하다. 시간이 풍족하게 남아돌지는 않겠지만 적어도내가 나의 시간을 계획하고 사용할 수 있다. 이는 여가선용을 학실히 보장받기 위해 아주 중요한 거다.

 

 

게다가 근래 이 전업주부라는 직업에 엄청난 이점이 생겼다.

 

 

인터넷. 이거 아주 사람 잡는 거다. 예전에는 사회생활 안하고 집구석에만 쳐박혀 있으면 여러모로 사람이 뒤쳐진다고 인식되었다. 글나, 이넘의 초고속 인터넷이 바로 그 집구석 구석까지 넘나들면서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하루종일 직장의 울타리내에서 뛰댕기다가 집에 오면 쓰러져 잠만 쳐자는 남편들보다, 집안에서 짬짬이 인터넷으로 세계를 넘나드는 주부들이 훨씬 더 풍부한 정보와 상식을 겸비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말이다.

 

 

여력이 닿는다면, 집안에 가만히 앉아서 이른바 SOHO도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은가.. 쇼핑도 할수 있고, 제테크도 할수 있고, 심심하면 게임도 할수 있다. 특히 나처럼 나다니는 것 별로 안좋아하고, 인터넷은 정말 정말 재밌는 사람에게, 전업주부와 초고속 인터넷의 매치는 환상적이다. 집구석? 그게 뭐 어때서? 난 그게 좋다니깐...

 

 


 

 

 

그런데, 내가 정말 전업주부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음.. 몇가지 걸림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남성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편견? 그 따위는 그 동안 갈고 닦은 엽기공력으로 걍 씹어버릴 수 있다. 그런데 결혼한 내 친구들, 대부분 맞벌이 한다. 먹고 살기도 빠듯한 터에, 집 장만하고, 뭐하고, 나중에 얘덜 교육비 생각하면 혼자 벌어가지곤 택도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사귀는 아가씨에게

 

 

"여자가 사회생활하는 것 물론 찬성입니다.
여자라고 집에서 애나 보라는 법 있습니까"

 

 

이렇게 이야기하면 점수 땄었다. 열린 사고를 가진 개방적인 사람이라고 말이다. 요즘은 그렇게 말하면 욕 먹는다. 나중에 맞벌이 시켜서 마누라 고생시킬 넘이라고 말이다.

 

 

"아무 걱정말고 살림만 잘해.. 내가 돈 벌어서 호강시켜줄께"

 

 

이게 바뀐 정답이다..

 

 

한마디로 요즘은 여자로 곱게 자라나도 전업주부가 되기 힘든 세상이라 이거다. 이렇게 살기힘든 세상에, 나를 데려다 집안에서 살림만해도 된다고 해줄 그런 능력좋은 여자가 어디 흔하겠는가. 이건 모두 여성의 사회 진출 및 사회적 성공을 저해하는 이 땅의 남녀 불평등한 현실 때문이다. 속히 남녀평등한, 아니 양성평등한 사회가 되어 나를 구제해줄 능력좋은 여성이 많이 배출되어야 한다. 비꼬는 거 아니다. 양성 불평등은 확실히 두개의 성 모두에게 불평등한 조건을 제공한다.

 

 

여성들의 의식도 변해야 한다. 어릴 때는 키 큰 남자, 잘생긴 남자만 찾던 새침떼기들이, 결혼 적령기만 되면 (경제적) 능력 좋은 남자에 안착하고 만다. 

 

 

나.. 경제적 능력은 어떨지 모르지만 키 170 넘고, 얼굴 핸섬, 몸매 늘씬하다. 살림두 잘한다. 깔끔한 실내 인테리어, 감칠맛나는 요리.. 자신 있단 말이다. 결혼 적령기의 여자들이여 나 데려다가 살림시켜라(근데, 솔직히 이건 약간 비꼰 얘기니까 액면 그대로 믿지는 말길 바란다. 믿어주면 뭐, 좋고).

 

 

 

 

 

 

 

 

 

 

 

또 한가지의 걸림돌.

 

 

전업주부의 주된 일 중 하나는 육아다. 아직 본격적으로 해본 적은 없지만 닥치면 나도 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병아리 키워서 닭으로 만들어 본 적도 있다(삼계탕.. 그거 아주 맛있었다..). 강아지도 키워봤다(음.. 이 녀석은 아직 무사하다).

 

 

위의 사례는 웃기라고 한 이야기고, 어쨌건 난 잘 해내리라고 생각한다. 육아의 경우, 심각한 육체노동을 동반하므로, 남자인 내가 그런 면에서 유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모유 먹이기. 이건 한계가 있다. 어찌어찌해서 분유와 함께, 모유는 그녀의 퇴근 이후로 뭐 이렇게 해서 극복한다 해도, 임신과 출산!!! 이건 분명 내 능력 밖의 일이다. 유전공학, 시험관 아기, 이런것들이 어디까지 진척됐는지는 몰라도 아무래도 그것만은 자신이 없다.

 

 

이넘의 걸림돌도 사회가 해결해 주어야 한다.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나아졌지만, 임신과 출산에 따른 여성의 사회적 불이익은 완전히 철폐되어야 한다. 그녀가 돈 벌어오고 내가 살림하는데, 그녀가 애 가졌다고 사회적 불이익 당하믄 우리 가정은 우찌 되겠는가.

 

 

서구에서는 아내가 임신하면, 남편에게도 똑같은 출산휴가가 주어져서 남자에게도 동등한 육아의 의무를 지워준다고 하던데, 그렇게만 된다믄야... 임신과 출산에 따른 불이익이 전혀 없는 사회가 된다믄, 그녀가 임신한다해도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나는 임신한 아내를 위해 맛있는 요리를 만들고, 출산 후에는 아내의 산후조리에 최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아.. 나는 아내(전업주부)가 되고 싶다.

 

 

양성평등한 사회여, 어서 빨리 오라. 
 

 

 

 

 

 

 

[피에쑤]

 

혹시라도 오해하는, 이해력 부족한 이들을 어엿비 너겨 첨언한다. 내가 말하고자 한 것은 직장생활은 힘들고 고약한 일이고, 전업주부는 탱자 탱자 편한 일이다!! 라는 것이 절대 아니란 말이다.

 

사실 그것은 개인적 취향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집안에만 있어서는 좀이 쑤셔서 못 견디겠다거나, 이 사람 저 사람 만나서 밤 늦도록 술을 꺽는 것이 인생의 낙인 사람에게는 어찌 전업주부가 편한 일이될 수 있겠는가..

 

다만 나에게 있어서는, 집안에 쳐박혀 이것 저것 정리하기 좋아하고 나다니기 싫어하고 인터넷 서핑이 진짜 서핑보다 더 좋은, 나 같은 취향의 사람에게는 전업주부가 적성에 맞는다는 것이지.

 

이러한 각자의 개인적 취향을 무시하고 단지 성별로 개인의 사회적 위치를 제한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고로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든 남성의 가정적 진출(?)이든 간에 그에 대한 불평등은 철폐되어야 한다 이거지.

 

글구, 중간에 잠깐 말했지만, 내가 바라는 그런 이상적인 팔자 좋은 전업주부도요즘엔 드물다니깐..

 

울 형수덜.. 부업하느라 뼈가 빠진다더라.

 

 

 

 

 

(이상 소견 마침)

 

 

 

 

 

 

 

- 딴진공 공인 위촉위원 겸
딴지 생활부 기자
스폰지(iskra91@netian.com)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