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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지방의원 해외 견문록

2000.9.04.월요일
딴지 편집장 김도균

우여곡절끝에 이 땅에 지방자치제가 도입된 지 어언 6년여..


지방자치체는 그 지역의 행정수반과 의회를 지역주민이 직접 선출으로써 주민 의견수렴과 풀뿌리 민주주의를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이기주의가 심화되고, 지역토호의 정치세력화를 가져오는 폐단을 가져오기도 했으며 일부 자질이 모자란(대개는 모자란 자질만큼 돈이 허벌나게 많은) 지방의원이나 의원회때문에 지방의회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본지, 한 지방의회의 모범사례를 통해 진정 지역주민들을 위해 지방의회가 갖춰야 할 정신과 자세를 설파코저 한다.
 




본지가 소개할 지방의회는 부산시 동구의회..


98년 7월에 구성된 동구의회는 다른 지역의회와 마찬가지로 무보수 명예직 의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즉, 지방의원들은 각자 생업에 종사하며 틈틈이 의원직을 수행한다는 말이다. 조빠지게 일해도 겨우 자기 식구 먹여 살리기 힘든 이 때, 참으로 시대의 빛과 소금이라 할 만 하겠다.




그런데..


이러한 척박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의정활동에 전념하던 부산 동구의회 13명의 의원들과 3명의 공무원들은 무려 12박 13일동안 미국, 캐나다로 해외시찰을 떠났게 되었다. 지방의원들이 혈세를 낭비하며 외국관광을 떠난다는 일부 사회 불만/불순세력들의 순전히 배아픔에 비롯된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오로지 지역주민의 복지증대와 지역발전을 위해 근 보름간이나 자신들의 생업을 포기한 채 장엄한 여정을 떠난 것이다.


무보수 명예직에 불과한 지방 의원들이 주민들의 안녕과 복지향상을 위해 생업을 포기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간적 번민과 고뇌가 있었을까하는 생각에 똥꼬주름이 아려온다. 허나 해외시찰에 불참한 의원은 불과 4명. 이들이 얼마나 투철한 봉사정신으로 똘똘 뭉쳤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아, 숭고한 멸사봉공 정신이여..!

 




그럼 우선 이들이 제출한 <해외시찰보고서>를 통해 해외시찰 목적과 일정이 어떠했는지 함 살펴보자.








해외시찰



시찰목적


선진국의 의회제도, 도시기반시설, 자연보호 및 공원관리실태 등을 비교시찰하여 견문을 넓히고, 습득한 지식을 의정에 반영함으로써 선진 의정활동을 구현하고자 함.


 시찰기간 : 2000.5.2 ~ 5.14 (12박13일)


 지역 : 캐나다 (밴쿠버, 캘거리, 토론토)
               미 국  (워싱턴, 뉴욕, 라스베가스, LA)
               일 본  (동경 : 경유지)
 


 


일부 사회불만세력들은 위 내용을 보구선 어림짐작으로 의원시찰이랍시구 국민혈세로 해외관광 다녔왔구만할 거다. 의원시찰이라면서 일정은 북미관광 상품과 비스무리하게 잡아 놨으니 그러한 오해를 함직도 하다. 그러나 어찌 평범한 범인이 지방의원들의 숭고한 해외시찰의 뜻을 어찌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있으리오.


자, 보라..


이들은 선진제도의 시찰을 통한 선진 의정활동 구현이라는 거대한 목적에도 불구하고 여행사에서 파는 북미 여행상품과 거의 흡사한 시찰일정을 잡은 이유는 이들의 시찰을 단순한 관광인 것처럼 위장함으로써 만에 하나 생길지 모를 방문국 의회 및 행정부의 견제를 미연에 차단해 버리기 위함이었다. 철저한 준비정비과 유비무환의 태도가 엿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들 시찰단은 빽빽한 스케쥴 속에서도 공식일정 하나없는 2박3일간 라스베가스 방문을 통하여 미래 고부가가치 산업인 관광/게임업계의 실상을 몸소 체험하시었으며, 그랜드캐년을 돌아보며 대자연의 정기를 흡입함으로써 자연보호의 중요성을 몸소 체득하시었던 거다.




빡빡한 스케쥴 속에서도 오로지 게임산업의
비젼탐방를 위해 기필코 찾고야만 곳.. 라스베가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의원시찰의 백미는 단연코 이들이 시찰후 제출한 <해외시찰 보고서>였다. A4 9장으로 이루어진 이 시찰문은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이나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견주어도 결코 손색이 없는 생생한 자료와 여행체험이 들어있다.
 




보고서 9장중 무려 5장이나 차지하고 있는 방문국 및 방문도시 개요에는어떤 내용이 있는지 함 보도록 하자.


 








방문국 및 방문도시 개요



 
캐나다


캐나다 국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단풍나무 모양이다. 1965년에 만들어진 국기의 상징은 중앙의 붉은 단풍잎은 광대하고  변화가 많은 영토에 사는 다양한 민족들의 통합을 상징하고 있다.어디를 가나 단풍나무가 많고 또 그것을 좋아하는 캐나다인들의 습성을 고려한 것 같다.


캐나다는 면적이 세계에서 가장 넓은 나라다. 면적이 998만㎡로  북아메리카의 1/3을 차지하나, 인구는 3천여만명 뿐이며 이중 영국계가 43%, 프랑스계가 26%,기타 이민자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하 중략.. 해도 아까울 거 없는 내용임>




   미국


미국은 연방공화국으로 강력한 민주주의와 3권 분립이 엄격히 구분되는 정치와 경제의 선진국이다. 면적은 975 제곱킬로미터, 인구는 2억 7천만명인데 이중에 백인이 80.3%, 흑인이 12.1%이며, 기타 7.6%로 분포되어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8천여달러이며 주마다 담배가격도 다르고, 버지니아주의 담배가격이 가장 싸다고 한다...


<같은 이유로 중략.. >


    <제 6 방문 도시 라스베가스 (2000.5.11)>


동부에서 서부로 로키산맥을 넘으면 허허벌판 사막의 한가운데 화려하게 드러나는 라스베가스는 24시간 잠을 자지 않는 도시다. 시내에는 거의가 호텔시설뿐이고 주거지는 외곽에 있다. 최대 호텔인 그랜드호텔의 객실수는 5천여개로 우리나라 전체 호텔 객실수와 맞먹을 정도이다. 그러나 낮에는 휘황찬란하던 모습이 사라지고 여느 한적한 도시와 다름이 없다.

 



 


이러한 내용에 대해 또다시 일부 사회불만/불온세력에선 알맹이없는 시찰을 갔다와서 대충 여행책자와 국가 소개자료를 짜깁기해 만든 보고서에 불과하다고 폄하할 것이 뻔하다. 허나 보고서의 반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방문국 및 방문도시 개요>을 이렇게 중학교 지리교과서와 사회과부도를 절묘히 섞어 놓은 내용으로 채움으로써 역설적으로 이들이 얼마나 교과서적인 시찰을 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캐나다의 국기는 단풍나무 모양이다 라는 국민학교 운동회에서 펄럭이는 만국기를 봤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사실을 굳이 현지까지 날라가 확인하고야 하는 이들의 꼼꼼하고 세심한 검증은 행정부를 견제, 감시해야 하는 입법부의 의원으로서 마땅히 견지해야 할 자세라 할 것이다.








강렬한 색깔과 무늬로 운동회 만국기중 가장 눈에 잘 띠던 캐나다 국기문양.


미국에서 담배가 가장 싼 지역은 버지니아라는 시찰목적이나 장소에도 전혀 관련없는 정보가 들어간 것은 짜깁기 과정에서 묻어 들어간 내용인 듯 싶으나 짜깁기 공정의 복잡성을 감안할 때 이러한 사소한 실수는 불가피한 법.. 대범하게 넘어가도록 하자.  


아직 갈 길이 멀다. 계속 가 보자.
 


 


지금까지 보여 준 지방의원의 <해외시찰 보고서>의 내용은 아직 시작에 불과할 뿐.. 이들의 <해외시찰 보고서>의 백미는 바로 아래의 시찰소감문이다. 긴 말 필요엄따. 함 보시라.








시찰소감


 2000. 5. 2 ∼ 5. 14까지 13일간의 캐나다, 미국지역 도시등 선진국의 행정기관과 도시기반 시설 및 유적지와 공원 등을 시찰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견문을 넓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며, 여기서 배우고 느낀 점을 우리 실정에 맞게 벤치마킹 하여 앞으로 우리 의정활동에 적극 반영하여 선진 의정활동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역시 같은 이유로 중략...>


미국이나 캐나다 시민들은 우리와는 달리 형식에 치우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행동하는 것 같으면서도 뭔가 질서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작은 실수를 하여도 상대방에게 Excuse me!를 연발하며 양해를 구하는 것이 생활화 되어 있었고, "우리"라는 개념보다는 개인주의가 발달되었으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그들의 생활 방식인 것이다.  


이번 해외연수는 짧은 기간에 빡빡한 일정이라 겉핥기 시찰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선진국의 제도와 도시기반시설, 자연환경 등 하나라도 더 배우고 많은 것을 경험하기 위해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생각한다. 거의 매일, 기상시간은 새벽 4:30∼5:30 이었으며 취침시간도 늦을때는 새벽 2시를 넘겼으나 모두가 긴장된 상태였기 때문에 단체행동에서 누구하나 이탈하지 않고 잘 적응해 매우 다행이었다.   


5월 7일, 비행기 연착으로 워싱턴으로 가는 길 도로변 화물차 주차장 옆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 흙먼지가 날리는 잔디밭에서, 그것도 밤 10시가 넘어 도시락으로 저녁을 때우던 일이며 5월 10일, 갑작스런 폭풍으로 비행기내에서 장장 7시간을 대기하면서도 질서정연히 기다리는 선진 국민들의 행동이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이날도 밤 11시경에 식당에 도착한 일 등을 떠올리며 일부 의원들은 연수가 이렇게 힘든 것인 줄은 미처 몰랐다며 지나고 나니 고생한 일들이 정말로 보람된 일이었다고들 한다.


<해외시찰 보고서 전문 다운로드  >


 


아아.. 동구의회 의원들의 12박13일간의 험난한 여로가 눈앞에 선연히 비쳐지면서 그들의 숭고한 살신성인, 멸사봉공의 자세에 숙연해질 따름이다.








빠듯한 일정속에서도 호연지기
연마를 위해 찾은 곳.. 그랜드케니언
 


지방의원의 해외시찰에 감히 늦어 버린 무엄한 비행기 때문에 희미한 가로등 밑에서 흙먼지 날리는 잔디밭에서 그것도 밤 10시가 넘는 끔찍한 삼중고를 겪으며 도시락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그들 의원시찰단 앞에서 유격훈련장에서 진흙탕 물을 뒤집어 쓴 채로 먹던 군바리들의 식사는 산해진미요, 성찬이라 할 것이다.


또한 늦어 버린 비행기 때문에 밤 11시에야 식당에 도착한 일은, 저녁도 거른 채 밤 12시가 넘도록 기사를 쓰고 있는 본 기자의 배고픔 따위와는 비견조차 할 수 없는, 차마 생각만 해도 온 몸이 지 혼자 벌벌 난리부르스를 칠 만큼 끔찍한 악몽이었을 게다.


더구나 몬 짓을 했는지 범인들은 알 수도 없고 감히 상상조차 할 수도 없겠지만 우쨋든.. 새벽 2시를 넘긴 취침시간과 이른 새벽기상에도 불구하고, 수학여행간 고삐리처럼 알콜조달을 위해 야밤 담치기같은 일탈행동없이 시찰기간 내내 잘 적응해 나간 건, 이들에겐 오로지 지역발전과 지역주민의 복지증대라는 거대한 시찰목적을 의원 하나하나가 가슴속 깊이 새겼기 때문이리라.


아.. 가슴이 막 벅차올라구 한다. 씨바..

 


  


이 <해외시찰 보고서>는 부산 동구의회의 홈페이지 의회보 결산자료란에 공개된 자료였다. 그러나 참된 공인의 자세를 온 몸으로 보여주며 사람들의 심금을 알알이 울려주던 이 보고서는 안타깝게도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왜? 그 내막을 함 알아보자.


<해외시찰 보고서>가 공개되자 의회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초등학생 수준의 기행문 돈값도 못하면서 힘들다고 엄살피는 의원들이라는 둥 의원들의 해외시찰을 비난하는 게시물이 줄줄이 올라왔다.


배우고 느낀 점을 ... 적극 반영하여 선진 의정활동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겠다 류의 초등학생 일기 수준의 글짓기에 실망한 일부 시민들이 의원자질에 대해 의문을 나타내기도 했으나 이는 현재 유행하고 있는 키치적 문화사조를 도입한 작문법이라는 걸 모르는 데서 나온 오해다. 또한 이들의 시찰이 국민의 혈세를 낭비한 유람성 관광이라는 비난도 이미 밝혔듯이 해외기관의 방해공작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을 뿐인 거다. (아님 말덩가..)


어쨋든.. 국태민안, 공공복지를 위하여 생계를 내동댕이치고 대의(大義)를 좇은 동구 의회 의원들의 해외시찰이 일부 사회불순/불만세력들의 배아픔성 시기질투로 인해 참혹하게 난도질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불만에 씨껍한 의회측은 8월 초순, 얍실하게도 의회보 결산자료에 올라있던 <해외시찰 보고서>를 슬쩍 내려버림으로써 지금은 이 보고서를 찾아볼 길은 없다. 식사도 제대로 못해 가며, 오로지 지역발전의 일념 하나로 똘똘 뭉친 동구의회 의원들의 숭고한 헌신성을 제대로 이해 못하는 우매한 네티즌들의 비난공세를 감내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리라.


민족정론임을 자처하는 본지, 시대의 명문으로 후대에 길이 남을 <의원시찰 보고서>가 이렇게 역사의 뒷구녕으로 사라져 가는 걸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더구나 일부 네티즌의 순전히, 아주 순전히 배아픔성 시기/질픔로 인해 이 보고서는 사라져 버림으로해서, 이 역사적 사료를 본지가 대강 꾸며 만든 이야기가 아닌지 의문을 때리는 졸라 의심많은 독자덜마저 있을 거다. 또한 동구의회에서 세간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혹시라도 보고서의 내용이 조작됐다거나 아예 보고서의 존재 자체를 부인해 버리는 사태가 일어날 지도 모르고...


허나.. 본지가 누군가.


동구의회 홈페이지에서 삭제하기 전, 본지 최정예 테스크 포스팀은 재빨리 이 <해외시찰 보고서>를 입수하는 개가를 올렸다. 입수한 이 보고서는 아래 한글로 작성되어 있으며, 파일명이 kyul10(3).hwp으로 되어 있었다.


현재 동구의회 홈페이지 의회보 결산자료 페이지에서 확인해 본 결과, 자료들이 kyul1.hwp , kyul2.hwp ... kyul12.hwp순으로 정렬되어 있으나 문제의 <해외시찰 보고서>인 kyul10(3).hwp라는 파일명만 쏙 빠져 있는 상태다. (이 보고서의 파일명이 kyul10(3).hwp인 건 아마도 이 해외시찰 보고서가 3개의 파일로 구성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부 불순한 네티즌들에게 당당히 맞서지 못하여, 얍실하게 보고서를 내려 버리고만 동구 의회는 반성하시라. 이런 건 왠만큼 쑤셔도 꿈쩍도 안 하는 좃선일보한테 한 수 배우고 오덩가..




문제의 의회보 결산자료페이지의 자료 및 첨부파일명
kyul10.hwp는 어디로 갔단 말이뇨?

 





 


본지, 하마터면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묻혀 버리고 말았을 <의원시찰 보고서>의 존재사실을 최초로 확인하고, 이를 다시 복원하였다는데 가슴 벌렁이는 희열을 느끼는 바이다. 이 보고서는 21세기 신흥 문예사조인 키치문학의 결정체로서 문학적 가치가 남다를 뿐 아니라, 이 시대 정치인의 멸사봉공, 살신정신의 자세를 후대에 널리 알려줄 귀중한 역사적 사료라 하겠다.  


마지막으로 무보수 명예직임에도 오직 지역발전과 주민봉사를 위해 고되고 힘든 해외시찰을 감행하였던, 더구나 시찰로만 그치지 않고 금과옥조와 같은 시찰보고서를 남긴 동구의회 의원들에게도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아.. 대한민국 만세!! 동구의회 만세다!!!  씨바..






한 번에 한 넘만,
그러나 신랄하게 패 버리는


딴지일보 편집장  김도균  
(
ddanziedit@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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