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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개혁실천팀의 해체 1주년을 기념하며)


1999.7.6.화요일

딴지 방송전문기자 임종태




 사측 입장 변화에 대한 노조와 개혁실천팀, 그리고 시민 단체의 대응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개혁실천팀은 5월 4일 금기와 성역은 끝내 그대로 남는가?라는 제목의 <이제는 말한다> 불방 관련 성명서를 발표했다.







5월 3일 방송할 예정이었던 "개혁실천 특별제작팀"의 첫 프로그램이 불방되었다.... 성역을 파헤치고 금기를 타파하려는 시도가 조선일보라는 살아 있는 성역 앞에서 좌절되고 있는 것이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KBS가 이제 또 다른 통제 권력을 스스로 인정하려 하는가? KBS가 지난 번 노사합의를 통해 자임한 것은 이 사회의 개혁을 가로막는 모든 세력에 대해 감시하고 비판하는 파수꾼 역할이었고, 옳바른 길을 가지 못하는 언론, 정권 창출까지 제 마음대로 한다는 오만한 언론 권력에 대한 비판도 당연히 그 범주에 들어간다.


그러므로 개혁실천 특별기획 <이제는 말한다> 프로그램은 취재된 내용이 가감 없이 방송되어야 한다. 그것은 시청자에 대한 우리의 의무이자 시청자가 우리에게 명하는 명령이기 때문이다.


개혁실천 프로그램이 KBS 개혁의 시금석이라면, <조선일보>편 방송여부는 개혁실천 프로그램의 향후 진로에 대한 시금석이다. 금기를 다루지 못함으로써 그것을 더욱 확고한 성역으로 고착화시킨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이 성명서가 발표되자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은 5월 6일 KBS의 개혁 프로그램 <이제는 말한다> 불방사태와 관련해 성명을 내어 "방송 개혁, 언론 개혁의 첫걸음이라고 할 이 프로가 불방 결정된 데 대해 충격을 금할 수 없다"며 즉각 방영할 것을 촉구했다.


이처럼 무기한 연기된 <이제는 말한다>의 방영을 놓고 사회적 압력이 거세지자 KBS내에서는 이 문제를 조속히 매듭지어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노사는 5월 6일과 7일 개혁 프로그램에 대한 노사협의회를 가졌다.


하지만 우선 편성을 주장한 노조와 특별 사전 심의기구 설치를 주장하는 사측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 협상은 결렬되고 만다.


그러자 불방에 항의해 4일부터 사장실 농성에 들어갔던 오수성 노조위원장은 7일부터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가는 등 단계적으로 투쟁 수위를 높여나갔다. 이같은 노조의 대응에 시민 단체들도 연대하기 시작했다.


5월 7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성명을 내어 "족벌언론의 압력에 굴복해 2편 <조선일보를 해부한다>의 방영이 취소된다면, 국민적 반대에 부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언론조합연맹도 5월 8일 성명을 내고 "개혁 프로그램이 좌초위기에 놓인 것은 경영진의 개혁의지 부족과 보신주의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박권상 사장의 결단을 촉구했다.


분위기가 이쯤되자 민언련, 서울 YMCA 시청자 시민운동 본부, 통신자유를 위한 모임 등 pc통신이용자 8개 단체도 프로그램의 조속한 방영을 요구하며 시청료 거부 운동과 항의 집회 등을 통해 노조와 연대 활동에 나설 움직임을 보임으로써 <이제는 말한다> 불방 사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편성권을 둘러싼 노사간의 팽팽한 줄다리기


노사간의 쟁점은 편성과 심의 문제로 집약되었다. 노조측은 편성을 먼저하되, 공방위에서 양쪽 자문변호사가 참석한 가운데 공동시사회를 열어 법률적 자문을 받는 방식의 중재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사측은 특별심의기구를 통한 심의를 주장하며 이를 거부했다.


오수성 노조위원장은 "이미 지난번 개혁 프로그램을 합의하면서 5월 중에 방영키로 정한 것 자체가 편성을 인정하겠다는 의미"라며 "일반 프로그램도 받지 않는 특별심의를 받는다는 것은 개혁 프로그램 방영의 합의 정신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처사"라고 강력하게 항의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박권상 사장을 비롯한 사측은 "제작 자율권을 합의한 것이지 편성 자율권을 합의한 것은 아니"라고 맞섰다.


박권상 사장은 또 지난 5월 6일과 7일 노사협의회에서 "프로그램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반드시 확보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개혁 프로그램은 공사가 꾸준히 만들고 보강해 나가야 할 사항이지, 노사갈등의 대상이 아니다"며 원칙론을 강조했다. 사태가 이처럼 진전을 보이지 않자 개혁실천팀은 5월 9일 <이제는 말한다> 편성을 확정하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하며 제작중단을 선언했다.







강대영 TV본부장은... <이제는 말한다> 편성 문제가 노사문제로 확산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지금까지의 입장을 재천명하였다. 또... 먼저 심의하지 않으면 편성은 할 수 없다는 입장을 확고히 하였다....

현재 <이제는 말한다> 방송을 가로막고 있는 사태의 핵심은 <조선일보>다. <조선일보>의 방송여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절차상 문제나 사전 심의를 통한 프로그램의 완성도 등을 운위하는 것은 본말을 흐리는 호도책에 지나지 않는다....


또 노사 합의에 입각한 특별제작팀의 위상을 노사간의 안건에서 제외시키려는 시도는 차후 중대한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인식하기 바란다. 이제는 말하게 해달라.


편성이 전제되지 않는 프로그램 제작이란 상식 밖의 일이며, 완성도 제고라는 명목의 사전 심의가 정작 금기와 성역의 알맹이를 모조리 뽑아버리는 사전 <검열>이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일단 편성을 확정하여 개혁 프로그램의 첫 출발을 보장하라. 사전 심의는 법률적인 검토에만 국한하라. 기타 세부적이고 부차적인 사항은 그 이후에 자연스럽게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5.18을 계기로, 별도의 계기 특집으로 편성된 <이제는 말한다>


사태가 이처럼 결말을 맺지 못한 상태에서 5.18이 가까와오자 사회적여론에 부담을 느낀 박권상 사장은 5월 12일, 오수성 노조위원장과 긴급노사협의회를 열어 그동안 진통을 겪어왔던 <이제는 말한다>의 방송 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합의하고 합의문에 서명한다.







사측은 지난 2월에 노사 비대위에서 합의된 대로, TV1국에 둔 개혁실천 특별제작팀의 제작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을 재확인하고, 노측은 편성권이 사측에 있음을 확인한다.

개혁실천 특별제작팀이 제작하는 프로그램은 노사가 합의한 대로 주 1회 정규 편성하고, 이 팀이 제작한 프로그램중 특별제작팀과 TV1국장, TV본부장 사이에 이견이 있을시 공정방송위원회에서 법률적인 문제를 검토한 뒤 방송한다.


KBS 개혁관련 프로그램은 5월 16일에 방송하고 특별제작팀이 제작하고 있는 프로그램 언론관련 개혁 프로그램은 6월중에 방송한다. 단, 광주민주화 관련 프로그램은 별도의 계기 특집으로 5월 18일 이전에 방송한다.(제48차 노사협의회 합의문, 98.5.12.)


이같은 합의문이 발표되자 개혁실천팀은 5월 13일 TV본부장을 비롯한 간부진으로부터 개혁 프로그램의 방송에 대한 의지를 확인하고 제작중단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제는 말한다> 시리즈는 KBS 2TV에서 5월 16일 오후 10시대에 잠정 편성된 1편 <KBS, 그 굴종과 오욕의 역사>를 시작으로 정상적으로 방송될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조선일보(98.5.14)에 따르면, 오수성 노조위원장도 13일 오전 별도의 성명서를 내어, "언론관련 개혁 프로그램이 쟁점 프로그램임을 KBS 고위간부가 확인했고, 또한 6월중 이라는 시기가 6월 7일임을 확인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측은 <조선일보를 해부한다>와 관련해 여전히 특정 신문사만을 다루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한겨레신문(98.5.13)에 의하면, 당시 KBS의 중견 간부는 "현시점에서 언론개혁의 필요성은 당연한 것이나, 특정 신문사만을 다룬다는 것은 표적 수사나 마찬가지"라며 "합의문에도 조선일보라는 말대신 언론관련 개혁프로그램이라고 표현돼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제는 말한다> 프로그램에 대해 사측인 TV본부장과 TV 1국장이 이견을 제시할 경우 노사 각 5명씩 모두 10명으로 구성되는 공방위에서 법률적인 문제를 검토한 뒤 방송하기로 돼 있어, 이 과정에서 노사 양측이 제작 자율성과 편성권 보장을 내세우며 대립할 가능성은 여전히 불씨로 남아 있었다.


 시민 단체의 압력에 밀려 방영된 <광주대학살>


5월 15일. 마침내 KBS 1 TV가 개혁실천팀이 만든 광주민주화 관련프로그램을 5월 18일 오후 10시-11시까지 방송하기로 최종 확정했다. 개혁실천팀은 KBS 노사합의에 따라 별도의 특집으로 확정된 이 프로그램이 80년 5월 광주의 현장과 그 의미를 선명한 시각으로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일보를 해부한다>가 편성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압력의 한 형태로서 조선일보의 지속적인 저항과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편성되지 못한 대표적인 경우라면, 거꾸로 <광주대학살>은 우리 사회 시민 단체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편성돼 방송을 탈 수 있었던 보기 드문 케이스였다.


물론 별도의 계기 특집으로 편성된데다 제목까지 <5.18 광주민중항쟁>으로 수정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개혁실천팀의 <이제는 말한다> 가운데 우리가 유일하게 시청할 수 있었던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방영을 놓고 노사간의 벌어졌던 협상 과정을 살펴보면, 오히려 노조가 사측에 놀아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시 말해 이미 사측은 <이제는 말한다>를 불방시키려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시민단체의 압력이 가장 거세면서 자신들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광주대학살>을 별도의 특집으로 편성하는 방법으로 <이제는 말한다>와 분리시켜 방영함으로써 시민단체의 반발을 완화시킨 후,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고 부담스러운 <이제는 말한다>의 나머지 프로그램을 불방시키려 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일단 <5.18 광주민중항쟁>이 방영되자, 사측은 편성권을 이용해 <이제는 말한다>의 나머지 프로그램에 대해 강력하게 제동을 걸어왔다.


 5.18 이후 강경 일변도로 돌아선 사측의 입장 변화

<이제는 말한다> 방영을 놓고 사측과 몇 달 동안 치열한 전투를 하느라 힘을 소진한 노조와 점차 자신의 업무에 바빠지기 시작한 일선 동료 PD들의 무관심 속에 개혁실천팀은 점차 소외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5.18 광주민중항쟁>의 방영을 계기로 시민 단체의 거센 압력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 판단한 사측은 6월 15일로 예정된 프로그램 개편을 앞두고 노골적으로 개혁실천팀을 압박해오기 시작했다.


KBS는 프로그램 개편(6.15.) 뒤인 6월 17일부터 개혁 프로그램을 주 1 회 시리즈로 정규 편성키로 합의했었다. 그래서 <이제는 말한다> 1편 <KBS, 그 굴종과 오욕의 역사>와 2편 <조선일보를 해부한다> 편을 각각 6월 17일과 24일에 방송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사측은 6월 9일 프로그램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갑자기 태도를 돌변해, 개혁 프로그램의 명칭을 <이제는 말한다>에서 <개혁리포트>로 바꾸고, 방영 시간도 60분에서 45분으로, 제작 방식도 기존의 생방송 방침에서 녹화방송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녹화방송을 한다는 것은 <이제는 말한다> 프로그램에 대한 사전 검열을 실시하겠다는 사실상의 선전포고였다. 게다가 2편 <조선일보를 해부한다>의 방영일로 예정된 24일 편성표에서 <조선일보를 해부한다>를 아예 빼버리고, 대신 6.25 특집물을 집어넣었다. <조선일보를 해부한다>편에 대해 사측이 방영 불가론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지난 5월 12일 사측은 노사가 작성한 합의문에서 분명히 6월 중 언론 개혁 관련 프로그램 방영을 명시하고, 그 핵심 내용이 조선일보 문제임을 구두 합의한 바 있었다. 그런데 이날 TV 본부장은 갑자기 태도를 돌변해 "언론개혁 프로그램이 조선일보 관련 내용임을 인정한 것은 사실이나, 이견이 있으면 조율한다는 전제에서 답한 것"이라며, 언론 전반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사주의 재산비리 등 특정 매체의 내부 문제만을 다루는 것은 기획의 본질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6월 8일 TV본부 차장단회의를 소집한데 이어, 6월 10일에는 공방위에 무단불참하면서 까지 TV1,2국 PD 총회를 주관해 "개혁실천팀이 자율이라는 이름하에 기존의 제작체계를 심히 훼손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내용을 지시 감독도 거부한 채 편파방송을 내보내려 하고 있다"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TV본부장이 이 말을 하기 한달 전, 개혁실천팀은 이미 TV1국장에게 <KBS>편과 <조선일보>편에 대한 구성안을 전달한 상태였다. 그런 까닭에 "개혁실천팀이 자신의 지휘감독을 받지 않는다"는 TV본부장의 주장은 스스로 직무유기를 했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면, 개혁 프로그램의 방송 저지를 위한 트집잡기에 불과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 자리에 참석한 어느 간부는 "담당 PD가 이중의 원고를 갖고 있다"고 개혁실천팀을 모함하는가 하면, "개혁실천팀을 해체하고 김철수 팀장은 퇴진하라"는 어처구니 없는 발언으로 좌중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말한다> 불방과 개혁실천팀의 해체


이같은 사측의 편성 방침과 TV본부장의 일련의 행동을 지켜본 개혁실천팀은 6월 12일 <강대영본부장은 진정 파국을 원하는가!>란 성명서를 통해 배수의 진을 쳤다.







... 그는(TV본부장) 노사합의에서 <주1회, 60분 편성>을 명시한 약속을 뒤집고 이번(6월9일) 프로그램 개편에서 15분을 줄여 <45분>편성으로 확정하였고, 생방송을 하고자 했던 제작팀의 제안을 사전 통제의 명분으로 녹화방송으로 바꿀 것을 고집하는 한편, 또 이미 한달여 전 사내외에 홍보된 <개혁실천 특별기획-이제는 말한다>의 제목도 방송을 목전에 앞둔 지금와서 <개혁리포트-사실과 진실>이라는 마치 3류 잡지의 제목을 연상하는 타이틀로 방송할 것을 요구해왔다.

본부장은 노사합의문과 그 정신에 따라 특별제작팀의 제작 자율성을 보장하라! 프로그램에 이견이 있을 경우 법률적 검토만을 하라! <KBS>와 <조선일보>편은 6월중에 방송하라!


우리는 거듭 경고한다. 다음주로 예정된 방송이 원만히 나가지 못할 경우, 그 책임은 전적으로 강대영 본부장에게 있음을 우리는 엄중히 경고한다.


강본부장은 수구적 논리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구시대의 모순과 비리를 성역 없이 이제는 말하게 하라. <이제는 말한다>의 방송은 바로 시청자 곧 국민의 권리요, 우리 KBS의 책무임을 잊지 말라.


하지만 이같은 개혁실천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당시 TV본부장은 6월 14일, 개혁실천팀으로부터 넘겨받은 <KBS, 그 굴종과 오욕의 역사>의 데모 테입을 일방적으로 보도국에 넘김으로써, 그 프로그램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 보도국 당사자들과 동료 기자들의 개혁실천팀에 대한 반발을 유도했다.


그리고 이같은 보도국 기자들의 반발은 결국 노조내 PD와 기자간의 노.노 갈등을 일으켜, 그동안 개혁실천팀의 버팀목이 돼주었던 노조마저 개혁실천팀으로부터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6월 15일 오후 2시, 마침내 노사 양측은 <KBS, 그 굴종과 오욕의 역사>에 대한 시사회을 가진데 이어, 저녁 8시에 열린 공방위를 통해, 이 프로그램이 객관성과 공정성을 살리지 못했으며 일부 인신공격적으로 제작됐다는 이유로 전면수정 재제작할 것을 개혁실천팀에 요구하였다.


또한 논란이 돼온 개혁 프로그램의 제목을 <개혁리포트-이제는 말한다>로 정하고, 생방송이 아닌 60분 녹화 방송키로 합의했다. 동아일보(98.6.17.)에 따르면, 이같은 내용을 담은 합의문이 발표된 6월 16일, <KBS, 그 굴종과 오욕의 역사>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 KBS 기자협회분회도 성명을 내어 "이 프로그램은 특정 집단(PD)은 선이요, 특정 직종(기자)은 악이라는 인식을 줄 우려가 크다"며 이 프로그램은 "특정 제작진 일부의 시각일 뿐 KBS 조합원 전체의 뜻과 의지를 담은 프로그램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그동안 개혁실천팀의 버팀목이 돼주던 노조마저 기자와 PD의 직종간에 발생한 노.노 갈등으로 태도를 바꾼데다, 사측으로부터 사실상의 사전 검열을 뜻하는 녹화 방송을 전제로 한 프로그램의 재제작 요구를 받은 개혁실천팀은 마침내 6월 16일, "팀 구성에 대한 노사합의의 기본정신인 자율성이 손톱만큼도 보장되지 않는 현 상황에서 더 이상 방송을 제작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며 개혁실천팀의 해체를 선언한다.


이로써 98년 2월 27일 노사 합의에 의해 탄생한 개혁실천팀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마침내 6월 16일, 팀 해체를 공식적으로 선언하게 된다.


 <이제는 말한다> 불방과 그것을 은폐한 <개혁리포트>


한편, 개혁실천팀이 해체를 요구하자 여론의 따가운 시선에 부담을 느낀 사측은 새로운 제작팀을 구성했다. 사측은 7월 1일 노조위원장 출신의 차장을 팀장으로 임명한데 이어 7월 4일에 PD 9명과 기자 2명으로 이루어진 <개혁리포트팀>을 구성했다.


개혁리포트팀은 7월 30일, <위기의 노사정>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것을 시작으로 9월 3일과 4일, 각각 방송과 신문의 단편적인 개혁과제를 점검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한데 이어, 5일에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프로그램은 원래 개혁실천팀이 방영하려다 전면 수정 재제작을 요구받은 언론개혁 프로그램을 대신해 개혁리포트 팀이 제작한 언론 관련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KBS 개혁리포트팀이 <조선일보를 해부한다>를 대신해 내놓은 <책임지지 않는 언론(9.4)>편은 한마디로 기대 이하였다.


한겨레신문(98.10.15)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은 권언유착의 주범인 조선일보는 가만 놔둔 채, 오히려 제작진의 질문에 유일하게 답변한 동아일보에 대해 그 답변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어이없는 행태를 보여, KBS는 이 프로그램이 방영되고서 동아일보의 반론 보도문을 내보내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이처럼 개혁리포트팀이 언론을 개혁하겠다고 내놓은 프로그램은 거꾸로 해당 언론사로부터 반론 보도문을 받아 내보내는 해프닝을 벌일 정도로 엉망인 프로그램이었다. 이는 제작의 독립성을 확보한 개혁실천팀과는 달리 개혁리포트팀은 제작의 자율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오히려 개혁프로그램 운영협의회라는 이상한 협의회를 통해 프로그램 제작과정에서부터 사측 및 보도국 간부들과 사전 긴밀한 협의(?)를 거쳐 프로그램을 만든데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개혁리포트팀은 이전 개혁실천팀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아니 오히려 개혁실천팀의 해체에 대한 비난 여론을 무마시키기 위해 사측이 급조해 낸 무늬만 개혁의 옷을 입힌 기존의 제작팀에 불과했다.


 기록을 마치며..



" 언젠가는 우리가 꾸었던 소박한 꿈이 당연한 현실로 구체화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


개혁실천팀이 팀 해체를 선언하며 마지막 남긴 말이다. 그리고 만 1년이 지났다.


개혁실천팀의 해체 1주년을 기념하면서 <이제는 말한다>의 불방과 개혁실천팀의 해체를 우리는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개혁실천팀이 해체될 당시, 어떻게 해서든지 팀이 살아서 KBS를 희망 있는 직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던 동료들의 질타처럼, 차라리 그때 사측과 적당히 타협하는 선에서라도 밀어붙였어야 하는 건데,...라고 한탄하며 포장마차를 찾는 것으로 자위해야 할까?


수많은 논란 끝에 지난 98년 2월 27일 탄생해 6월말 해체된 KBS 개혁실천팀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나 지난 50년간 정치와 권력에 이용당하던 방송이 거꾸로 정치와 권력을 방송에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각했다는 점에서, 또한 그동안 방송사 경영진에 의해 통제되던 제작의 자율성과 편성권의 확보를 위해 투쟁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과 연대해 프로그램을 제작했다는 점에서, 그것은 매우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한편으론 조선일보의 압력과 내부 보수 세력의 방해를 받으며, 다른 한편으론 <KBS, 그 굴종과 오욕의 역사>, <조선일보를 해부한다>, <광주대학살>, <5%(특권층)의 공화국> 등의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그것을 방영시키고자 했던 그들의 노력은, 비록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훗날 우리나라 방송, 언론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으로 평가될 것이다.


필자는 그 사건을 이렇게 기록해 남긴다는 것만으로 나름의 의미를 찾는다. 그러나, 정녕 이렇게 실패한 기록만으로 남길 것인가...


지난 50년간 정치와 권력의 도구로 이용돼왔던 방송의 굴레로부터 탈주를 시도했던 개혁실천팀의 꿈을 그냥 꿈만으로 영원히 남길 것인가...


다음 호에서는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 이야기를 하기로 해보자.


꿈이 당연한 현실이 되는 명랑한 그 날을 기다리며...



 


- 딴지 방송전문기자 임종태 ( echorhim@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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