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형틀 계약자인 김사장은 계약대로 차질 없이 공사비를 지급받았는데 작업자를 보내던 인력회사에는 대금을 지불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중간중간 작업자들에게 노임 지급이 잘 되고 있는지 확인했을 때 문제가 없었는데 그건 김사장이 지급한 것이 아니라 인력회사에서 일당을 지급하고 있었던 거다.

 

4월쯤 김사장에게 하도급에 지급한 영수증이나 입금증을 요청했을 때 인력회사의 자필로 쓴 2천만 원 수령 영수증을 보내왔었다. 알고 보니 그건 김사장이 인력회사에 “대금을 받았다고 해야 기성이 나온다”라고 거짓말을 해서 가짜로 써준 거란다. 아이고. 펌프카 대금도 지급되어 있지 않았다. 인력회사는 인부들을 더 이상 보내지 않겠다고 나왔다. 김사장은 잠수를 탔다. 이쯤 되면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걸론 좀 부족하지 싶다. 글로벌적으로 활약한 악녀였나 보다. 혹시 클레오파트라?

 

베테랑 목수 임반장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인력회사 없이 일당 지급으로 공사를 이어갔다. 인력회사 문제는 노무비로 원청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가짜 영수증 발행은 사문서 위조로 형사처벌 사항이라는 것을 알았다. 인력회사를 만나 우선 1천만 원을 지급하고 김사장과 계약된 비용에서 형틀 공사 후 남는 비용이 있으면 추가로 지급하겠다고 협의했다.

 

김사장은 그 후로 연락이 되지 않다가 8층 마무리할 때쯤 현장에 얼굴을 내밀었다. 일도 거들고 필요한 것들을 챙겨줬다. 사람 관계란 참으로 어렵다. 성질 같아선 궁형에 처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이렇게 중간에 말썽이 생긴 하도급과는 공사에서 손 떼겠다는 협의서를 작성하는 것이 좋다. 일명 타절협의서. 이때 깔끔하게 매듭짓지 않은 게 실수였다. 공사가 다 끝나고도 대금 달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물론 형틀 공사에 지출된 대금을 증빙해서 김사장의 요구는 무시되었고 인력회사는 김사장에게 소송을 진행해서 미지급금을 받을 수 있었다. ‘사람은 좋은 것 같은데 셈이 흐리다.’라는 말이 이런 건가 싶다.

 

IE000933454_STD.jpg

출처 -<건설노조>

 

6월 중순에 옥탑 타설을 끝으로 형틀 공사가 완성되었다. 나는 애쓰셨고 사고 없이 끝내줘서 고맙다며 형틀팀 회식을 위한 카드를 드렸다. 형틀팀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두 분이 있다.

 

토목공사 당시 공사장 주변에서 나이가 지긋하신 노인을 보았다. 앞집 계단에 앉아 계시다가 “여기 앉지 마세요!”라는 봉변을 당했다. 하릴없이 구경하는 분이려나 싶어, 어떻게 오셨냐고 물었다. 말이 빠르고 새는 발음의 어르신은 목수 김사장을 기다린다 했다. 연세가 70대 후반은 족히 되어 보였고 허리도 약간 구부정한 그는 형틀팀 작업자, 송반장이었다. 어떻게 일하시려고., 걱정이 앞섰다. 김사장에게 전해듣기로, 예전엔 한가닥 하던 목수였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서 더 이상 목수 일은 힘들고 현장에서 일하는 목수들 챙겨주고 현장 정리하는 일을 한다. 송반장은 작업하는 목수들에게 큰 소리로 잔소리하도 하고 자재정리나 간식 등을 챙기며 꾸준히 현장을 지켰다.

 

공사가 거의 마무리될 무렵, 송반장님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현장에 나오지 못했다. 며칠 지나 아들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송반장은 아들 장례를 알리고 싶지 않다며 조문을 막았다. 갑자기 닥친 비보를 어떻게 버텨내는지, 그 속이 얼마나 시릴지 걱정이 되었다. 열흘 정도 지나 송반장은 현장에 나왔다. 박소장한테 어떻게 대하냐고 물었다. 그냥 아무 말 하지 말란다. 열흘 전에 그랬듯이 일하고 소리치고 짜증 내고 불평도 했다. 사람들은 모두 제 속에 어떤 고통이나 걱정이 있어도 그렇게 먹고살기 위해 몸을 움직인다. ‘사람 냄새’는 언제나 그곳, 현장에 있다.

 

90411413_349290699336663_5904026988313841944_n.jpg

 

다른 한 분은 목수 임반장. 목수라고 다 같은 목수가 아니다. 계단을 만드는 목수가 기술 좋은 목수다. 바로 임반장이 계단 작업을 맡았다. 샌님처럼 단정하고 조용한 그는 공사판에 어울리는 모습이 아니었다. 김사장이 말썽을 피우고 속 태울 당시 팀을 유지해서 공사를 진행할 수 있게 해준 분이기도 하다.

 

혹시 다른 공사를 하게 되면 형틀을 맡아서 하실 수 있냐고 물으니 싫단다. 오야지 하려면 작업자들 태워 다니고 장비 맞추고 책임져야 하는데 그게 귀찮다고. 몇 푼 더 버는 것보단 그냥 일당 받고 일하는 게 속 편한 것이다. 형틀 공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분이다. 그 외에 지속되는 민원과 야속한 날씨 속에서도 사고 없이 형틀을 끝낼 수 있었던 건 꼼꼼히 현장을 지키고 이끈 박소장 덕이었다.

 

형틀 공사 중반쯤에는 외벽을 어떻게 치장할지 결정해야 한다. 도면에는 벽돌로 외벽을 마감하도록 되어 있으나 공사 기간이 오래 걸리고 건물 높이가 높아서 비용도 적지 않았다. 돌로 마감하는 것을 문의하니 심의를 다시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럼 또 한 달. 하는 수없이 벽돌 공부를 시작했다.

 

벽돌의 종류는 무척 많다. 설계사는 스타벅스 벽돌을 추천했다. 고벽돌을 찾아본다. 고벽돌의 종류도 무척 많다. 무늬만 고벽돌인 것도 있고 중국에서 가져오는 고벽돌도 있다. 이건 다른 자재와 달리 중국에서 들여오는 벽돌이 더 비싸다. 추천받은 벽돌과 유사하고 내 맘에도 드는 벽돌을 고르고 견적을 받았다. 사실 벽돌은 가격이 비싸지 않다. 벽돌을 고정하는 앵글과 벽돌을 쌓는 노임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가는 거다.

 

선택한 벽돌은 크기가 일반 벽돌보다 크기 때문에 하중을 줄이고자 한쪽 면을 잘라내어 폭을 줄이는 가공을 했다. 비용 추가 발생. 벽돌 쌓는 노임도 견적을 세 군데 정도 받았다. “다른 곳은 장당 1,200원까지 해준다는데...”, 눈 질끈 감고 한번 찔러봤다. 부르는 값은 1,600원에서 1,200원까지 내려갔다. 나에겐 일종의 매직 같았다. 그래. 나라 여럿 말아먹은 글로벌 악녀인 줄만 알았는데 좋은 일도 조금은 했었나 보다.

 

벽돌을 5만 장 정도 사용하니 적은 비용이 아니다. 앵글 작업을 포함해서 박소장과 일해본 양사장님이 맡아 주시기로 했다. 와중에 가격도 맞춰줬는데 일을 안 줬다며 화내는 업체가 있었다. 좀 당황했다. 견적 받고 협의한다고 해서 무조건 계약해야 하는 건 아니잖은가. 이 글의 목적이 첫째는 내 잘난 척이요, 둘째는 내가 집을 지으며 겪은 다양한 인간 군상에 대한 단상인데, 아무리 다양해도 그렇지. 이런 경우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는지, 지금 생각해도 참 난감한 경우다.

 

외벽 작업은 거푸집을 해체하고 8층에서 줄을 내려 벽돌 쌓을 자리를 잡고 시작한다. 비계도 점검하고 단열재를 시공하고 형틀 자재를 정리하는 데 일주일이 필요했다. 그러고 나니 딱 장마철이다. 비가 오면 벽돌을 쌓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벽돌에 백화 현상(벽돌에 하얗게 얼룩이 생기는 현상)이 일어난다. 내 얼굴에 근심이 드리워진 걸 눈치챘는지, 양사장은 막걸리를 먹이면 괜찮다고 조언한다. 백화 현상을 막으려면 접착제 역할을 하는 시멘트에 막걸리를 부어 반죽해서 쌓으면 백화를 막는단다. 오... 일단 조금 안심. 막걸리 냄새가 진동하는 현장이나, 막걸리에 취해 작업하고 있는 광경을 상상하니 막걸리 사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한다.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한 달 넘는 벽돌 공사 동안 비가 거의 오지 않았다. 대신 살인적인 더위가 있었다. 34도를 넘는 더위가 열흘 넘게 이어졌고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들었다. 벽돌이 들어오면 각층으로 벽돌을 나르는 곰방(자재를 지어 나르는 일)은 지게에 벽돌을 한가득 지고 계단을 한발 한발 오르는데 땀범벅이 된다. 조금이라도 해를 피하려고 오전에는 서쪽과 북쪽, 오후에는 동쪽과 남쪽 작업을 하는 방법으로 작업했다.

 

커다란 선풍기를 틀어놓고 정수기를 하나 더 들여놓았다. 물 마시러 이동하는 것도 힘들 지경이었다. 약국에서 포도당을 구입해 작업자들에게 먹였다. 알아서 챙겨 먹는 사람도 있지만 무시하는 사람도 있기에 들고 다니면서 입에 넣어줬다. 더위에 사람들 얼굴이 무표정하고 사소한 일로 짜증을 내기도 한다. 싸움도 있고 집에 가버리는 작업자도 있다. 실수도 나온다. 외벽에는 층마다 두 줄의 홈을 내도록 되어 있는데 7층 홈이 왼쪽 귀퉁이에서 어긋나있다. 내버려 둘 수 없는 부분이다. 건물 네 면의 다섯 줄 정도의 벽돌을 다시 뜯어냈다. 내 속도같이 뜯겨 나갔다. 내 안의 부처님이 미소를 지었고 난 극락왕생할 것이라 확신했다.

 

형틀 작업에서 터지거나 위치가 잘못된 곳은 할석(콘크리트를 깎아내는 작업) 작업도 한다. 거푸집을 뜯어낸 골조에는 할석이 필요한 부분이 많았다. 1층 창은 3일 동안 할석 작업을 했다. 기계가 열받으면 기다렸다 다시 하느라 작업이 더디다. 이렇게 할석이 많으면 형틀 공사 비용으로 처리되어 형틀 김사장 부담이 된다. 어차피 현장을 버린 김사장이지만 이렇게 되면 인력회사에 지불할 대금이 없다. 나중에 형틀 비용을 정산하니 계약 금액에서 60만 원 정도만 초과되었다. 임반장과 박소장이 김사장 대신 열일 해 준 덕이다.

 

다운로드 (1).jpg

 

미장은 표면이 거친 벽이나 계단을 편편하게 시멘트로 화장 시켜 주는 작업이다. 이때 견출, 사춤, 미장이라는 용어를 배웠다. 하루 종일 시멘트 죽을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는 벽에 힘을 주어 시멘트를 바르는 작업자들의 어깨는 온전할까.

 

“건물주가 커피 사주면 덜 아프제!”

 

“암요, 커피 드려야지요.”

 

처음에는 작업자들에게 커피를 사다 드릴 때 원두커피를 드렸더니 남기거나 버리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노가다는 믹스야.” 보통 믹스 두 개를 종이컵에 물 넉넉하게 부어 대접하면 대충 오케이 된다.

 

미장으로 지하와 계단이 반듯하고 정갈해진다. 현장이 정리되지 않으면 더 복잡해지니 청소도 수시로 하고 폐기물도 계속 내보낸다. 폐기물도 종류에 따라 비용이 다르다. 목재만 있을 경우와 혼합돼 있을 경우 비용은 배 이상 차이가 난다. 현장이 넓으면 분리해서 배출해 비용을 아낄 수 있지만 자재 놓을 공간도 부족하니 매번 혼합 폐기물로 콘크리트, 목재, 각종 쓰레기들이 실려 나간다.

 

현장에서는 사장 외에는 거의 반장님이라고 부른다. 여성도 반장님. 연세가 좀 있으시면 ‘여사님’으로, ‘어이’ ‘아줌마’라 부르지 않도록 소장님과 통일했다. 근처 인력회사에서 자주 오시던 김반장님은 부지런하고 알아서 정리 정돈을 하신다. 분야 별로 못 하는 일이 없기도 해서 고정으로 근무해 주십사 청했다. 현장이 다 끝날 때까지 이것저것 힘이 되어 주셨다. 무더운 여름, 작은 현장에서 더위와 싸우면서 삶을 살아내는 조적공, 미장공, 잡부들의 분주한 움직임엔 일종의 경건함이 있다.

 

한 달 동안 벽돌 작업을 마치고 드디어 창을 달기 시작했다. 벽돌에 창틀을 다니 이제 건물 모양이 조금씩 드러난다. 맘에 든다. 빨리 비계를 해체해서 건물의 모습을 보고 싶다. 아니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창틀에 유리를 끼우고 방화문도 달았다. 엘리베이터는 별도의 준공을 받아 건물 준공 시 첨부해야 하므로 미리 준비한다. 기본적으로 도면에 마감과 자재는 정해져 있지만 형틀이 끝나면 선택해야 하는 사항이 많아진다. 예를 들어 외벽은 벽돌로 정해졌지만 벽돌에도 색과 모양이 무척 많고 전등과 페인트 색, 타일 등 수 십 가지를 결정해야 한다.

 

9월 초, 창도 달고 이제 비계를 해체하기 위해 사다리차, 지게차, 작업자들이 분주하다. 비계를 해체할 때 파이프를 던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던지지 말고 받아서 내려놓으라 주문하려고 다가섰다가 위험한 작업에 집중하는 그들이 얼마나 힘든지 보게 되면 또 아주 작은 소리로 “살살 좀...” 해보지만 소용없다. 공사 내내 민원인들의 요청과 작업자들의 입장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가슴 졸이는 일은 줄줄이 사탕이었다. 그렇게 건물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폭풍 민원도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