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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게이트의 서막

 

형틀목수팀으로 첫 출근하기 전날이었다. 따르릉 따르릉♪ 날 이끌어준 형틀목수팀 반장에게 전화가 왔다.

 

“송 군아. 목수 기본 연장은 개인이 사야 되는 거 알지? 불러줄 테니까 적어라. X자 안전벨트, 못 주머니, 망치 고리, 망치, 시노(30cm 정도 쇠막대로 끝이 가늘고 약간 구부러져 있다. 철사 조일 때 쓰는 연장), 줄자. 망치는 일본 게 좋아. 3만 원쯤 할 거야. 줄자는 국산. 이왕이면 7.5m짜리로 사라. 5m짜리는 좀 짧아. 동네 철물점에는 못 주머니나 시노 같은 거 없을 수도 있으니까 좀 큰 철물점 가서 사. 원래는 수평대, 사게부리(다림추라는 뜻으로 수직 잡을 때 쓰는 연장. 일본어 さげふり[사게후리]에서 파생), 목공톱, 먹통도 개인 연장인데, 그건 천천히 사는 걸로 하고. 아 그리고 X자 안전벨트에 못 주머니랑 망치 고리 미리 세팅해놔. 내일 아침에 하려면 정신없으니까. 내일 보자.”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 안고 집을 나섰다. 인터넷 검색해 제일 크고 좋은 철물점을 찾았다. 이리저리 꼼꼼하게 따져가며 반장이 불러준 연장을 샀다.

 

룰루랄라. 집에 오자마자 X자 안전벨트에 못 주머니와 망치 고리 연결하고, 망치와 시노를 걸었다. 내친김에 X자 안전벨트를 한 번 매봤다. 거울 앞에 섰다. 카우보이가 옆구리에서 권총 빼듯, 망치고리에서 망치를 쓱 빼 들어봤다. 올~ 자세 좀 나오는데? 하하. 드. 디. 어. 내가 못 주머니를 차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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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주머니(못 주머니와 망치& 고리, 망치와 시노까지 모두 세팅한 X자 안전벨트를 통칭해서 못 주머니라 부른다.) 찬다는 말, 노가다판에선 상징적으로 쓰는 표현이다. 잡부가 망치질하고 있으면 농담으로 “왜? 못 주머니 좀 차보게?”라고 표현하는데, 이 말은 “왜? 목수 좀 해보게?”라는 말이다. “너 그런 식으로 할 거면 못 주머니 벗어!”라는 말은 “너 그런 식으로 할 거면 목수 그만 둬!”라는 말이다. 그렇다. 드디어 못 주머니를 찬 거다. 그리고 그건 헬게이트의 서막이기도 했다…….

 

목수야말로 진짜 노가다꾼

 

직영 잡부 시절, 형틀목수 작업하는 거, 많이 봤다. 말 그대로 보기만 했다. 그래서 ‘쬐금’ 오해했다. 다른 공정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힘들지 않을까 하는 오해. 왜 그렇게 오해했냐 하면, 형틀목수는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을 뚝딱뚝딱 해내는 고급 기술자니까 힘보단 주로 기술이 필요하겠거니 했다.

 

내가 더욱 그렇게 오해할 수밖에 없었던 건 외국 노동자들 때문이었다. 형틀은 이미 외국인 비중이 훨씬 많은 공정인데, 그중 대부분이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등 동남아 쪽 외국인이다. 딱 보면 작고 호리호리한 친구들이 못 주머니 차고 다닌다. 그 친구들 보면서 더욱 확신했었다. 에이~ 저 친구들도 하는데, 내가 못할까 싶었다. 그렇다고 그들, 무시하는 건 아니다. 타고난 신체조건을 말하는 거다.

 

근데! 아니었다. 고급 기술자인 건 분명한데, 기술만큼이나 힘도 많이 쓰는 기술자였다. 출근 첫날, 내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단 걸 깨달았다. 오후 참 시간이었다. 어찌나 힘든지 기진맥진해서 앉아있었다. 같이 일하는 형님이 이렇게 물었다.

 

“어뗘? 직영 잡부 일 하다가 목수 일해보니까? 할만 혀?”

 

“보기만 할 때는 이렇게 힘든 줄 몰랐는데, 목수도 생각보다 힘을 많이 쓰네요. 목수는 그냥 기술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어요.”

 

“푸하하하하. 이 사람아! 목수야말로 진짜 노가다꾼이여.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 하는 사람이 바로 목수여~”

 

형틀목수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환상이 있었던 탓에 미처 헤아리지 못했을 뿐, 돌이켜보면 너무 당연한 이치였다. 그도 그럴 게 형틀목수가 다루는 자재 중에서 어느 것 하나 가벼운 게 없다. 그 모든 걸 일일이 들고 나르고 받쳐가며 작업하는 사람이다. 힘들지 않을 리가.

 

젓가락 들 힘도 없다는 말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형틀목수 시작하고부터 손목이 슬슬 아프기 시작했다. 직영 잡부 일할 땐 없던 통증이었다. 처음엔 이러다 말겠거니,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밥 먹으려는데 젓가락을 들 수 없었다. 젓가락 들 힘도 없다는 말,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구나 싶을 정도로 정말 손목에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갔다. 급한 대로 그날은 스프레이 파스 뿌려가며 일했다. 그래도 손목이 저릿저릿했다. 퇴근길에 같이 일하는 형님에게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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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오늘 정말 죽을 뻔했어요.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아침에는 젓가락을 못 들겠더라니까요. 손목이 너무 아픈데 어쩌죠?”

 

“푸하하하. 이 자식 이거 드디어 작업풍 걸렸구만. 너 목수가 하루에 망치질 몇 번 할 거 같냐? 유로폼(일정한 규격의 코팅 합판에 철을 격자무늬로 붙여 만든 거푸집 패널)은 또 몇 장이나 나를 것 같냐? 삿보도(천장 지지할 때 쓰는 원형 쇠파이프. 영어 Support에서 파생)는 몇 개나 받칠 것 같고. 그 모든 걸 손목 힘으로 하는 건데, 그걸 손목이 견뎌내면 그게 비정상이지. 원래, 목수 일 처음 시작하면 손목이 미친 듯이 아파. 그걸 작업풍이라고 해. 누구나 한 번은 거쳐야 하는 과정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좀 아프다 괜찮아질 거여. 정 아프면 진통제 먹고 며칠 쉬든가. 그래봤자 또 아플 테지만. 푸하하하하. 어쨌든 너도 이제 목수가 됐다는 증거니까 기쁘게 받아들이거라.”

 

며칠 뒤, 도저히 견딜 수 없던 난 생전 처음 통증의학과라는 곳에 갔다. 손목 힘줄이 너덜너덜해진 초음파 사진을 마주해야 했다.

 

“선생님……. 제가 목수인데요. 앞으로도 손목을 계속 써야 하는데, 괜찮을까요? 목수 일 계속할 수 있는 거죠?”

 

“하하. 그럼요. 지금이라도 병원 오셔서 다행이에요. 좀만 더 있었으면 손목 힘줄이 다 파열될 뻔했어요. 며칠 치료받고, 약 먹으면 괜찮아질 거예요.”

 

불쌍한 손목, 주인 잘못 만나 이게 뭔 고생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