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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노트 이상을 내는 수중전투요격함이라는 개념을 생각해 낸지 10여년만 1971년 Project 705, 리라급 잠수함 초도함 K64가 완성됐지만, 1972년 시운전 중에 원자로에 균열이 가는 사고가 터지는 바람에 운용을 중단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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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 705, 리라급 잠수함 초도함 K64

 

문제가 안생기면 그게 이상할 정도로 ‘파격적인’ 설계였다. 물론, 알파급만 그런 게 아니라 수많은 배들은 건조되고 나면 크든 작든 문제를 일으키긴 한다. 예상했던 문제가 터진 거다. 게다가 선체를 점검해 보니 티타늄으로 제작된 선체에도 크랙이 확인됐다. 결국 1번함은 수리를 포기하고 2번함부터는 설계를 전면 수정하기로 했다.

 

그래서 2번함부터는 원자로를 OK-550을 BM-40이라는 새 원자로로 교체하고 문제점을 전면 보완한 형태로 재설계했다. 형식명도 Project 705와 705K로 달랐다. 아무튼 그렇게 개량된 2번함 K123이 1977년 말에 완성되면서 알파급이 세상에 정식으로 등장할 수 있게 된다. 

 

등장하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리고 문제점도 많았지만, 적어도 기동성능 하나만은 진짜였다. 시운전에서 최대속도 41노트를 냈고, 10노트 이하의 저속에서 40노트까지 가속하는데도 1분 내외밖에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뢰급 기동성”

 

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아니, 실제로 수중에서의 기동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최대속도에서 180도 선회를 하면 다른 잠수함은 몇 분이 걸리는데, 알파는 42초면 가능했다. 이 정도면 다른 잠수함의 뒤를 잡는 건 어린아이 팔 비틀기처럼 보였다. 

 

실제로 알파급 잠수함 부대를 지휘한 적이 있는 보가체예프 제독의 증언에 의하면, 

 

“뱃지 위에서도 180도 선회가 가능하고, 엄청난 가속력을 살려서 수중 음영지역에서 다음 음영으로 점프하듯 기동할 수 있었다.” 

 

라고 자랑을 할 만했다. 실제로 알파급이 바다를 헤집고 다닐 때 서방 세계 관계자들의 반응이 이러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기동성을 자랑하는 잠수함이 등장하자 미국을 포함한 NATO 해군은 패닉에 빠진다. 1979년 3월 바렌츠해에서 알파급 2번함의 시험항해를 포착했는데, 신형 디젤 잠수함인줄 알았던 녀석이 사실 40노트가 넘어가는 괴수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부랴부랴 대책을 세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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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뢰가 빨라봤자 40~45노트인데, 그래, 45노트라고 치자고. 알파가 10km쯤 떨어진 곳에서 180도 돌아서 전속력으로 도망칠 때 어뢰를 쏘면, 어뢰가 한 시간을 전속력으로 따라가도 알파급을 완전히 따라잡지 못해! 이 말은 우리 어뢰로는 알파를 잡지 못한다는 거야!”

 

이때부터 상상과 억측, 부정적인 망상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알파급 잠수함은 최대 45노트까지 낼 수 있다.”

 

“최대 잠항심도는 800~1200m 정도 될 거다.”

 

라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알파급에 받은 충격이 너무 강해서인지 아니면 냉전 시기 상대에 대한 공포 때문인지, 이도저도 아니면 단순히 ‘예산’을 타내기 위해서 일부러 공포를 조장한 건지는 몰라도 이 당시에 알파급에 대한 공포는 NATO를 중심으로 서방 세계 곳곳에 퍼져나갔다.

 

수많은 군사소설, 밀리터리 만화, 영화 등등에서 알파급에 대한 수많은 억측들이 쏟아져 나왔다. 냉전시기 구소련의 병기들은 그 실체가 부풀려지는 것이 일반적인 통례가 아니었던가? 미그25의 경우는 일본에 넘어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거의 꿈의 전투기로 불리지 않았던가? 알파급도 같은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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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G-25’ 전투기

 

퇴역한 뒤에 공개된 자료들에 의하면 안전잠항심도는 대충 400~450m 정도일거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설계 시작할 때는 500~600m도 목표로 삼았는데, 그렇게 만들자니 티타늄 가공비가 너무 들어서 포기한 거였다. 하지만 그런 정보를 몰랐던 서구 국가들은 45노트로 달리고 1000m까지 내려가는 잠수함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 결과 서구권 국가들은 이 알파를 상대하기 위한 무기개발에 뛰어들게 됐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게 서구권 최강의 어뢰로 평가받는 미국의 Mk.48 ADCAP나 영국의 스피어피시다. 뇌내망상으로 만든 알파급을 잡기 위해 50~60노트 이상의 속도에, 7-800m 심도까지 들어가도록 개발된 거다. 

 

만들어진 공포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이 공포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알파급이 자랑하던 속도가 필요가 없어지게 된 거다. 

 

알파급을 개발한 목적은 핵무기를 탑재한 잠수함이나 항공모함이 소련 본토나 소련군에 접근하기 전에 요격하는 거였다. 하지만 핵무기의 사거리가 늘어나면서 더 이상 과거처럼 접근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 거다.

 

오하이오급 전략원잠에 장착된 트라이던트 미사일의 경우는 사거리가 1만킬로를 훌쩍 뛰어넘게 됐다. 이러다 보니 굳이 소련 앞바다까지 갈 이유가 없었다. 안전한 미국 영해 안에서 ‘전략초계’를 해도 충분했던 거다.

 

냉전시대, 그리고 지금도 전략핵잠수함들은 핵무기 보유국의 가장 중요한 ‘전략자산’ 중 하나이다. 전략핵잠수함이 있기에 다른 핵보유국들이 ‘선제공격’을 주저하는 거다. 눈에 보이는 적의 핵시설과 핵무기를 다 제거한다고 하더라도 물속에 숨어있는 전략핵잠수함의 보복공격을 막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70년대, 80년대의 경우에는 북극해에서 숨바꼭질을 하면서 서로의 전략핵잠수함을 찾았지만, 이제 미사일 사거리가 늘어나면서 굳이 위험한 북극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됐다. 이때부터 전략핵잠수함과 항공모함을 상대하는 방법이 달라지게 됐다. 

 

이제 핵잠수함들을 은밀하게 몰래, 그리고 오랫동안 따라다니는 능력이 중요하게 됐다. 즉, 방금 전까지 100미터 스프린터의 시대였다면, 이제는 42.195킬로미터를 달리는 마라토너의 시대가 됐다는 거다. 이제 잠수함들은 전략핵잠수함이 항공모함 뒤를 몰래 쫓아다니는 시대가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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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문제는 알파급은 이게 불가능한 잠수함이다. 잠수함의 생명력이 할 수 있는 ‘정숙성’을 포기하고, 압도적인 속도를 선택했기에, 

 

“물속의 스포츠카”

 

가 돼야 했다. 속도도 스포츠카였지만, 소리도 스포츠카만큼 냈기에 알파는 주변에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며 쏘다녔다. 그런데, 이제 그 속도가 필요 없게 됐다. 끈질기게 따라붙는 스토커 같은 존재가 필요한 건데, 대놓고 소리 지르는 덩치 작은 건달을 어디다 쓸까? 

 

“작지만 오래 버틴다!”

 

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알파는 체급부터가 문제였다. 선체도 작고, 교대할 인원도 없어서 오랜 시간 임무를 수행하기 어려워서 이런 임무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알파는 서서히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나마 발 빠른 게 통할 때만해도, 

 

“속 썩이긴 하지만, 그래도 쓸 만 한 구석이 있어.”

 

라며, 그래도 알파급이라며 등을 두들겼는데 이제 그 발이 쓸모없어지자 그 동안 덮어왔던 문제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1번함처럼 치명적 결함만 없었을 뿐, 이후 건조된 6척의 알파급이 다들 원자로나 자동화 장비 문제로 트러블을 겪었다.

 

2번함이자 705K급 초도함인 K123은 1982년에 방사능 물질 누출사고를 겪어서 9년 동안이나 수리를 해야 했고, 1984년에 4번함 K373이 충돌사고를 내거나, 1989년 K-316이 증기파이프 파열 사고를 겪는 등등등. 숱하게 문제를 겪었다. 결국 소련 해군은 1990년을 기해 한 척의 알파급만 남기고 모든 알파급을 퇴역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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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5K급 초도함 K123

 

운용자의 평가는 여러모로 갈리는데, 특히 잠수함 부대를 지휘하고, 수리하는 사람들 평은 좋지 않았다. 승무원이 항상 부족해서 다들 피곤해 했다던가, 원자로를 관리해 줄 보일러가 설치된 3개 기지가 아니면 정박도 못했다던가, 퇴역하기까지 20년 간 실제로 임무를 수행한 기간이 다른 잠수함 10년 치도 안 된다던가하는 악평들이 주류를 이뤘다.

 

이렇게 관리하는 입장에선 여러 불만들이 튀어나왔지만, 반대로 직접 잠수함을 몰던 지휘관들은 압도적인 성능에 마음을 빼앗긴 경우가 많았다. 당시 나온 모든 잠수함을 압도하는 ‘빠른 발’로 물속에서는 무적이었다는 사실이 깊이 각인 된 거다. 

 

그러나 알파급은 퇴역했다고 모든 게 끝이 난 게 아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