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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은 방사능

 

잠수함도 인간이 만든 무기다. 무기는 언제나 ‘파괴’를 전제로 만들어진다. 비행기도 격추되고, 배도 침몰된다. 잠수함은? 당연히 격침된다. 2차 대전 당시 대서양에서 벌어진 U-보트와 호송선단 사이의 전투를 보라 수백 척의 U-보트가 격침됐다.

 

그렇다는 건, 당연히 핵잠수함도 격침된다는 의미가 된다. 당연하다. 격침된다. 적과 싸워서 격침되지 않더라도 여러 원인에 의해 침몰당할 수 있다.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1954년 인류 최초의 핵 추진 잠수함 노틸러스가 취역한 이래 근 70년 동안 9척의 핵 추진 잠수함들이 60여 개의 핵탄두를 품은 채로 바닷속에 가라앉았다.

 

1963년 4월 미국의 스레셔(thresher)호가 침몰했는데, 그 안에 핵무기도 있었다. 1968년에는 콜피온(Scorpion)이 침몰했다. 역시 핵무기를 탑재하고 있었다. 미국이 이렇게 핵 추진 잠수함을 잃었다면 소련은?

 

소련(러시아)은 미국보다 심했다. 인양한 K-429나 K-141을 제외하더라도 7척의 핵잠수함이 물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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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서 궁금한 게,

 

“물속에 있는 원자로와 핵무기는 안전한 건가?”

 

란 근원적인 의문이다.

 

우선 원자로인데, 침몰할 때 제대로 원자로가 폐쇄된다면 ‘이론상으론’ 안전하다. 당장 생각해 봐야 하는 게, 원자로는 만들어질 때부터 꽤 신경을 써서 만드는 점이다. 이게 한 번 잘못되면 엄청난 문제를 일으킬 걸 알기에 최대한 튼튼하고 안전하게 만든다. 잠수함 안에 들어가는 원자로는 두꺼운 강철 방호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만약 배가 가라앉는다 해도 주변에는(당연하겠지만) 바닷물이 잔뜩 있다. 즉, 원자로를 식혀 줄 냉각수가 잔뜩 있다는 거다. 한마디로 말해 후쿠시마의 원자로처럼 멜트 다운될 확률이 낮다는 거다.

 

잠수함에 탑재 돼 있는 핵탄두의 원료인 플루토늄이나 농축우라늄은 어떻게 될까? 이것도 이론적으로 보면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 이 핵물질들은 바닷속에서 자연 산화한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이다. 1989년 4월 7일 노르웨이 북부의 바렌츠 해에서 침몰된 소련(러시아)의 K-278 콤소몰레츠(Komsomolets)를 보면 사태를 낙관적으로만 볼 수 없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게 불이 나면서 가라앉은 거라. 다른 원자력 잠수함에 비해서 상처가 많이 났어.”

 

“많이 박살 났다는 소린가?”

 

“그렇지. 이 때문에 원자로실을 포함해서 티타늄 선체 곳곳이 파열됐어. 여기에 원자로 냉각 파이프도 박살 났어.”

 

상당히 심각한 피해일 거 같은데, 실제로 해양 생태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노르웨이 조사팀에 의하면 콤소몰레츠에서 기준치 이상의 세슘이 발견됐고, 핵어뢰에서 플루토늄이 누출되는 게 확인됐다(다행히 지금은 자연적으로 누출이 멈췄다).

 

방치된 시한폭탄

 

보면 알겠지만, 핵잠수함이 바다에 가라앉으면 꽤 골치 아프다. 건져낼 수 있다면 건져내는 게 좋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당장 콤소몰레츠만 해도 바렌츠 해 수심 1700미터 깊이에 가라앉아 있다. 인간의 힘으로 이걸 건져 올리는 건 거의 힘들다고 보는 게 맞다.

 

문제는 이 핵잠수함의 처리를 할 수 없다고 팽개치는 경우다. 이 부분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핵 추진 잠수함을 운영하는 수많은 국가들이 있지만, 이들 중 핵잠수함 퇴역 후 그 ‘원자로’를 제대로 처리하는 국가는 미국 정도가 고작이란 거다. 러시아 같은 경우에는 시쳇말로 그냥 원자로를 내다 버렸다고 할 정도로... 그냥 방치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핵 추진 잠수함 건조에 대해 고민을 하는 시점인데... 이 대목을 잘 고민해 봐야 한다. 당장 운용할 때는 모르지만, 30년 뒤에 이 핵잠수함을 퇴역시킬 때 그 원자로를 어떻게 폐기해야 할지에 대해선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러다 보니 바닷속에 가라앉은 핵잠수함의 원자로를 처리하거나 퇴역한 핵 추진 잠수함의 원자로를 어찌해야 할지는 해당 운용 국가의 ‘의지’에 달려 있다. 만약 미국처럼 ‘상식’이 통하는 나라라면 괜찮겠지만, 이런 상식이 없는 나라라면?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이 복잡한 이야기의 시작을 알려준 것이 바로 러시아다.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로 넘어가던 그 시절 러시아의 호주머니 사정은 말이 아니었다. 가지고 있던 무기들을 팔아 연명하던 그때 핵 추진 잠수함의 관리. 그것도 퇴역한 잠수함의 원자로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이미 바다에 가라앉은 핵잠수함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이것도 큰 문제지만) 육지에서 정상적인(?!) 퇴역 절차를 밟은 핵잠수함의 원자로도 문제였다.

 

이때 가장 문제가 됐던 게 바로 알파급이었다.

 

러시아가 제대로 신경을 썼다면 모를까 거의 방치되다시피 버려진 이 잠수함들은 주변국들에게 크나큰 위협이 됐다. 소련 시절부터 잠수함 부대가 주둔하고 있던 곳이 무르만스크주의 그레미카란 동네였다. 문제는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뒤통수 부근인 이곳에 구소련의 잠수함들이 하나둘씩 문제가 생겨 가라앉은 거도 모자라 이곳에 그냥 방치됐다는 거다.

 

(스칸디나비아반도 근처 연근해와 북극해에 가라앉은 러시아 잠수함 때문에 노르웨이를 위시해 근처 국가들, 유럽 국가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조사를 해보면 방사능이 유출되고 있는 게 확인되고 있는데 러시아는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나 돈 없어!’를 시전하기에 유럽 국가들은 끙끙 앓을 수밖에 없었다. 방사능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유출되고 있기에 피해는 다 같이 보고 있는데, 정작 원인 제공자인 러시아는 팔짱 낀 채로 ‘아쉬우면 너희가 건지든가’를 외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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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도 말했지만, 알파급의 원자로는 액체금속 냉각 원자로이다. 납-비스무트 합금이기에 이걸 액체 상태로 유지하려면 온도가 125도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온도가 떨어지면 굳어서 고체가 되고, 이런 부피 변화로 원자로 그 자체를 파괴하게 된다. 실제로 알파급 잠수함은 냉각계 관련 문제로 네 번이나 사고를 일으켰을 정도다.

 

딱 이야기만 들어도 ‘꽤’ 골치 아프고 난감한 문제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골치가 아프다는 건 돈이 많이 들거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문제는 당시 러시아는 돈을 낼 형편도, 의지도 없었다는 거다.

 

핵 폐기장이 되어가는 바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유럽. 그중에서 프랑스가 나서게 된다. 프랑스 국가 기관인 원자력 위원회(CEA)가 수천만 유로를 들여 해체 장비를 개발하게 된다. 유럽 재건 개발은행에서도 1200만 유로 정도를 러시아 원자로 연구소에 투자했다.

 

이렇게 해서 알파급 잠수함의 원자로 해체 장비를 개발해서 러시아에 ‘기증’이란 형태로 지원하게 된다. 덤으로 알파급 잠수함 해체를 위한 전용 건식 도크 SD-10도 만들어졌다.

 

그리고 알파급 잠수함의 원자로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와 유럽의 자본이 러시아의 원자로 해체를 도와준 거다. 이렇게 급한 불은 끄긴 했지만,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니다. 알파급 잠수함에 들어있는 원자로의 프로토타입에 해당하는 게 있다. 바로 바다에 버렸다는 K-27이다. 액체금속 냉각 원자로의 프로토타입 격으로 탑재했던 게 바로 K-27인데, 북극해 항해 도중에 사고가 나 어찌 수습할 방법을 찾지 못해 그냥 가라앉혔다(당시 승무원들은 대거 방사능에 피폭됐다).

 

다행히 바닷속에서 방사능을 누출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걸 처리한다고 들어 올리는 과정에서 바닷물이 들어가기라도 하면 그때부터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게다가 지금까진 괜찮은데 앞으로도 괜찮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쇠니까 바닷속에서 삭을 수밖에 없다(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래서 러시아는 K-27을 두고,

 

“방사능 시한폭탄”

 

이라고 말하고 있다(자기들이 싸놓은 똥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는 게 우습지만). 이렇게 자극적으로 말해서 국제 사회의 이목을 끌려고 하는 건데, 일단 성공한 거 같다. 이걸 건져 올려서 원자로를 해체해야 한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국제사회에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하나다.

 

“걱정되면 돈 좀 보태라.”

 

어찌어찌해서 올 3월. 러시아는 k-27 인양계획을 발표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인양계획이다. 이걸 들어 올리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갈 것이고, 그 돈을 누가 낼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다.

 

다시 말하지만, 바다는 핵 폐기장이 아닌데 원자력 잠수함을 운용하는 국가들은 그 사실을 종종 망각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핵 추진 잠수함을 건조할 거 같은데, 이 부분에 있어서는 한 번 생각을 모아봐야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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