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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Cebu, Philippines)에서 가이드로 일할 때 손님들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받았다.

 

“여기 살려면 한 달에 얼마나 들어?”

 

이 질문은 아마도 동남아시아에 사는 한인들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질문은 단순해 보이지만 답하기는 매우 까다롭다. 

 

여행 성수기 때는 한 달에 몇 번씩 이런 질문을 받는데, 이 질문을 받으면 나는 대답하기가 힘들어 대충 얼버무리며 슬쩍 넘어가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 질문에 이어,

 

“내가 듣기로는 한 달에 한 200 정도면 기사 쓰면서 집에 일하는 사람 두고 살 수 있다는 데 사실이야?” 

 

이런 말까지 이어서 나오면 대답을 더는 피해가기가 힘들어진다.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많은 경우 "은퇴”“이민(이주)”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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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이 동남아시아로 여행을 많이 다니게 되면서 이쪽 지역의 삶을 동경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게다가 주변에 이민 성공담을 많이 듣다 보니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필리핀에서 최대 1억 투자로 월 순수익 500만원, 정말 가능할까

 

“여기 살려면 한 달에 얼마나 들어?”

 

순진한(?) 한국 여행객이 하는 이 간단한 질문 하나는 이후에 그 여행객의 인생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오게 될 출발이 되는 경우가 많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예시는 50대 후반의 손님과 가이드(브로커)의 대화이다.

 

손님 : 여기 살려면 한 달에 얼마나 들어?

 

가이드 :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다르죠.

 

손님 : 그렇게 애매하게 이야기하지 말고, 한 달 생활비가 얼마나 드냐고?

 

가이드 : 음, 그거야 식구가 몇 명이고, 어떤 수준으로 사느냐에 따라 다르죠. 

 

손님 : 그래? 그럼 나 혼자 여기 와서 산다면 얼마나 들까?

 

가이드 : 사모님하고 애들은 한국에 두고요? 

 

손님 : 뭐, 어쨌든 혼자 살면 200 정도면 돼?

 

가이드 : 200이면 여유 있지는 않지만 살 수는 있을 거 같네요. 

 

손님 : 일주일에 골프 한두 번 치면서 살 수 있을까?

 

가이드 : 그럼 월세 같은 다른 생활비를 좀 줄여야겠죠. 

 

손님 : 그래? 음~~(생각에 잠김)

 

가이드 : 왜요? 혼자 한 번 와서 살아 보시게요?

 

손님 : 난, 한번 해보고 싶어. 

 

가이드 : 여기가 좋으세요?

 

손님 : 난 이런 데서 혼자 한 번 살아 보고 싶어. 일주일에 골프 한두 번 치러 다니고, 여행도 다니고 술도 마시면서 혼자 한번 살아보고 싶어. 

 

가이드 : 200으로 그렇게 살려면 좀 빠듯할 수도 있어요. 여기 생활비가 생각보다 많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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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 그러면 여기서 집세 낼 정도 수입이 있으면 사는 데는 지장 없다는 이야기네.

 

가이드 : 아무래도 여기 사업체가 있으면 생활비도 적게 들고 여유자금도 생기겠죠? 여기서 사업하는 사람 중에 아는 사람 있으세요? 

 

손님 : 후배 하나가 마닐라에서 식당을 해. 그게 꽤 괜찮다고 하더라고. 그 친구 말로는 아직 필리핀에는 할 게 많다는데.....

 

가이드 : 요즘은 식당은 한물갔고요. 마사지샵이 대세죠. 식당은 실패 확률이 높지만, 마사지샵은 실패 확률이 거의 없거든요.

 

손님 : 그래? 마사지샵 한국인들이 많이 하나 봐?

 

가이드 : 오늘 가셨던 마사지샵 있잖아요. 그거 다 한국인이 하는 거예요. 입구에 골프채 있는 거 보셨죠? 사장님이 친구들과 일주일에 서너 번 골프 치러 다닌 데요. 가끔 손님들에게 골프채 빌려주기도 하고 그래요.

 

손님 : 한국 여행사 끼고 사업하려면 힘들잖아. 영업도 해야 할 거고, 여행사에 아는 사람도 있어야 할 거 같은데. 그게 쉽겠어?

 

가이드 : 그건 그래요. 여기 여행사 상대로 하는 마사지샵은 대부분 그쪽 출신들이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건 일만 힘들고 돈은 별로 안 돼요. 진짜배기는 현지인 상대로 하는 삽들이죠. 그게 돈이 돼요. 신경도 훨씬 덜 쓰이고요. 한국에서 은퇴하신 분이 여기서 또 한국인 상대로 사업을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거 얼마나 짜증 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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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 그건 그래... 내가 말이지 회사 생활만 30년이야. 영업하고 접대하는 데 아주 지긋지긋해. 그래서 한국인 상대로 하는 사업은 다시 안 할 거야.

 

가이드 : 맞아요. 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외국에서 한국인 상대로 하는 사업 하는 거예요. 여기서 오래 살려면 현지인 상대로 하는 사업을 해야 안정적이에요. 그리고 인터넷에 광고만 좀 하면 요즘은 자유여행객들이 알아서 찾아온다니까요. 여행사 샵들보다 싸니까 자기 발로 찾아와요. 그런 걸 해야 돈 벌어요..

 

손님 : 그래? 그런 거 하나 하려면 보통 얼마나 들까?

 

가이드 : 여기서도 제대로 하려면 좀 들어요. 음~~ 그러니까 침상 20개 이상 마사지샵 하려면 못 들어도 7~8천은 들어야 할걸요? 좀 좋게 하려면 1억은 들 거예요. 차량에 허가까지 다 포함해서요. 

 

손님 : 1억? (미소가 번진다)

 

가이드 : 네, 여기 물가가 그리 싸지 않아요.

 

손님 : 어허~~, 크크크.... (1억이면 싼 거지)

 

가이드 : 왜요?

 

손님 : 아니, 그냥.. 허허허....(네가 세상 물정을 모르는구나)

 

이쯤 되면 손님은 가이드가 한국 물정을 잘 모른다고 생각하고, 자기보다 한 수 아래로 접게 된다. 그리고 내심 “요 녀석 내가 잘 요리하면 현지에서 잘 써먹을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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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흐흐

 

정년퇴임이 가까워 회사에서 직위가 높은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일단 자기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직위가 낮아 보이는 사람은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들이 무척 똑똑하다고 여긴다. 

 

그런 이들은 이렇게 상대가 약점을 슬쩍 보이면 바로 우월감에 사로잡혀 자존감이 끝도 없이 상승한다. 하지만 브로커 입장에서는 손님이 이렇게 뭔가 가르치는 자세로 변하면, 자신의 “사업(?)” 첫발이 성공적으로 내디뎌진 것이다. 

 

계속된 대화는 대충 이런 식으로 흘러갈 것이다.  

 

손님 : 한 7천쯤 들여서 마사지샵 하면 한 달에 수입이 얼마나 될까?

 

가이드 : 차량 운영하고 인터넷에 광고 좀 하고 하면 아마 한 달에 순수익 4~5백은 떨어지지 않을까 싶은데요. 

 

손님 : 그래?

 

가이드 : 침상 10개도 안 되는 마사지샵도 한 달에 2~3백은 가져간다고 하더라고요. 

 

손님 : 음~~~, 한국인 매니저  월급 주고 나면 뭐 남나?

 

가이드 : 한국 매니저 한 달에 100 정도면 일할 사람 많아요. 어학 연수생들 많잖아요. 가이드나 여행사 출신 써도 한 200 주면 좋다고 할 사람들 줄 설걸요. 그렇게 줘도 사장이 기본 2~3백은 가져가니까 그럭저럭할 만하죠. 나중에 자유여행객들에게 소문이라도 잘 나고 하면 한 달에 500은 우습게 번다고 하더라고요. 

 

제 후배들이 가이드 그만두고 마사지샵이나 식당, 카페 매니저로 많이 갔는데, 전부 빨리 돈 모아서 가게 오픈할 생각만 하던데요. 저도 웬만하면 투자비 모아서 한번 해 보려고 알아보고 있어요.

 

손님 : 그래? 음~~~

 

이쯤 되면 손님은 그날 밤 깊은 고민에 빠져 잠을 못 이룬다. 가족들이 있다면 방에 재워놓고 혼자 호텔 로비나 라운지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미래에 대한 상상에 빠져들기 시작할 것이다.

 

 

손님과 가이드, 그들의 동상이몽

 

1. 손님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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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퇴직금을 받으면 한 1~2억 정도는 여유가 생긴다. 아니 당장 가지고 있는 예금이나 유가증권 같은 것만 처분해도 그 정도 돈은 만들 수 있다.

 

만약, 그걸로 한국에서 ‘치킨집이나 편의점 또는 피자집 같은 체인점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과연 1억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1억은 한국에서는 무엇을 하던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그런데 세부(Cebu)에서는 맥시멈 1억만 있으면 꽤 괜찮은 사업을 시작 할 수 있다. 사실 7~8천으로 시작하고 비상금으로 3천 정도 챙겨 놓으면 1년 정도 사업을 진행하는 데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적당한 가게를 인수하면 좋겠지만 그건 투자비용이 추가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인수과정에서 장부만 잘 확인하면 가게를 인수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수익이다. 자세히 알아봐야겠지만, 단순 계산만으로도 한 달에 500만 원 정도 수익은 낼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인 매니저의 인건비를 준다고 해도 200~300만 원 이상이 남는다. 마닐라에서 식당 한다는 친구도 한 달에 그 정도는 번다고 했다. 내 노동력이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1억 투자로 이만큼의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한국에 있나? 내가 알기론 없다. 

 

매력적인 건 내가 여기 붙어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우리 가이드가 사람도 좋아 보이고 진실성이 있어 보인다. 게다가 요즘 가이드도 힘들다고 하니 매니저로 영입해서 월급 200 정도 주면 일을 한다고 할 것 같다. 나도 주말에 한 번씩 다녀가며 일이 진척되는 걸 보면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지방에 출장 가는 것보다 차라리 필리핀에 다녀가는 게 더 쉽고 재밌을 것 같다. 

 

근데 장사가 생각만큼 안 되면 어떡하지? 그건 매니저를 자르고 내가 직접 운영하거나 월급이 적게 드는 현지인 매니저를 두면 될 것이다. 솔직히 수입이 적게 나와도 가게 월세와 인건비만 해결할 정도면 된다. 어차피 한국에서 연금이 나오니 필리핀의 가게는 핑곗거리 정도로 유지만 해도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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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를 누리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눈치 안 보고 골프나 치러 다니고 스쿠버다이빙이나 하면서 살면 소원이 없겠다. 게다가 여기는 술값도 싸다. 촉이 온다. 이건 두 번 생각해 볼 여지가 없는 좋은 사업이다. 당장 시작해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 

 

만약, 자리가 잡히면 가게를 하나 더 내자. 그럼 2억 투자로 한 달에 400만 원 이상의 순수입은 올린다. 내가 여기 들어와서 관리한다면 수입이 두 배는 늘어날 것이다. 이 정도면 은퇴 수입으로는 꽤 괜찮은 사업이다. 원래 이런 일은 점포가 늘어날수록 수익은 배로 늘게 마련이다. 돈을 조금 더 당겨서 가게를 몇 개 더 낼 수 있다면 수입은 훨씬 늘어날 것이다. 

 

그래도 자세히 알아보자. 혹시 무슨 꼼수가 숨어 있을지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 가이드가 필리핀 사정은 잘 아는 것 같은데 한국 물정은 모르는 것 같다. 친하게 지내면서 정보를 좀 더 캐봐야겠다. 내일 가이드 기분 좋게 팁도 좀 주고 쇼핑도 많이 해 줘야겠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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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이드(브로커)의 생각

 

어제 온 손님이 은퇴 자금 투자할 곳을 찾는 것 같다. 일단, 좋아할 만한 걸 던졌으니 한국 가기 전에 입질이 올 것이다. 어차피 한국에서 어설픈 사업하는 거보다 같은 돈이면 필리핀에 투자하는 게 훨씬 낫다. 

 

팔려고 나와 있는 가게도 많으니 그거 하나 연결해주면 1~2천 정도는 떨어질지도 모른다. 기회가 되면 거기서 매니저 하면서 공사비나 월급도 챙길 수 있을 것이다. 새로 가게를 오픈한다고 하면 가게 오픈 때까지 월급 또박또박 챙기고, 공사비용은 뒤로 남길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다음에 혼자 골프 치러 한번 오라고 내일 꼬셔봐야겠다. 가족들만 아니었으면 오늘 Ktv 데려가서 혼을 쏙 빼놓는 건데 아쉽다.

 

≫용어 설명

Ktv: 필리핀을 밤 문화의 대표격인 유흥주점의 종류.

 

 

필리핀은 사업이 성공하기 쉬운 곳이 아니다

 

사업을 하는 건 서로 이익을 좇는 것이니 각자의 생각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외국에서의 사업이 그리 쉽겠는가? 특히, 한국식 마인드로 접근하면 동남아시아 특히, 필리핀 같은 곳에서는 성공하기가 정말 힘들다. 아무리 많은 자료를 뽑아도 그 자료가 내게 적용된다는 보장이 없는 곳이 필리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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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돈을 싸 들고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시아로 찾아드는 것은 한국보다는 가성비가 좋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이런 소액의 해외 개인 투자를 지지한다. 실패도 많지만 성공하는 사람도 꽤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제발 좀 잘 알고 시작하기를 바란다. “그 사람 믿을 만한 사람이야!” 또는 “이런 건 내가 좀 해 봐서 아는데...” 따위의 말이 본인의 입에서 나왔다면 실패 확률이 매우 높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예전에 필리핀 커뮤니티에 나온 글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질문 

 

저는 필리핀 이주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제가 필리핀에 와 보니 000 전문점이 없더군요. 도대체 왜 이 나라에서는 그 사업을 하지 않을까요? 제가 한번 시작해 보려고 하는데 의견이 어떠신지요?

 

▶베스트 답변

 

당신이 무엇을 하려고 하던 그걸 하려 했던 사람이 최소 100명 이상이었을 겁니다. 000 전문점이 지금 여기 없다면 뭔가 이유가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똑똑합니다.

 

“필리핀에서 사기당하는 법”이라는 다소 황당한 제목을 붙였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 기사의 제목은 “사업에 실패하는 법”이라고 하는 게 맞다. 

 

앞에 예로 들었던 대화의 두 사람 “가이드(브로커)와 손님”이 몇 년 후 사업이 망했다고 가정해 보자. 아마도 망하는 과정에서 꽤 긴 고통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돈은 사라지고 피해자만 남는 묘한 상황이 발생했을 수도 있다. 뭐 대부분은 그렇다.

 

그들은 세월이 지난 뒤 이렇게 말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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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 내가 사람을 잘못 만나서 말이지, 그 녀석 알고 보니 사기꾼이더라고...

 

브로커 : 내가 투자자를 잘못 만나서 말이지 그 사람 알고 보니 돈도 없는 데다 사사건건 지적질이나 하는 꼰대더라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 아니길 바란다. 

 

 

다음 편

 

다음 편에선 어떤 메커니즘으로 사기를 당하게 되는지, 그리고 사기(실패)를 당하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뤄보겠다. 

 

 

Profile
"Sometimes I think I'm fighting for a life I ain't got time to live"
- Dallas Buyers Club, 2013.
가끔은 살려고 애쓰다가 정작 삶을 누릴 시간이 없는 거 같다.
-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