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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을 바로 잡습니다-

 

본문 중 SK와이번스의 '전신'으로 쌍방울 레이더스가 언급된 것이 사실 관계와 다르다는 지적을 해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당시 SK와 쌍방울 구단 측의 접촉이 있었던 것은 사실로 알려져 있으나, 매각 성사 여부와는 별개로 쌍방울 레이더스의 KBO 퇴출이 확정되어 있었기에 SK 측은 협상 테이블에서 철수하게 됩니다.

 

결국 쌍방울 레이더스는 구단을 매각하지 못하고 해체되었으며, 이후 SK는 전 쌍방울 소속 선수들을 데려와 와이번스 구단을 창단했습니다. 쌍방울 레이더스의 선수들이 주축이 되어 SK와이번스가 창단된 것은 맞지만 쌍방울 레이더스 구단을 정식 인수한 것은 아니므로 쌍방울 레이더스는 SK와이번스의 '전신'이 될 수 없습니다. 

 

내용을 축약하여 설명하다보니 오해를 살 수 있을만한 표현을 사용했던 점, 뒤늦게 바로 잡아 말씀드리고 양해 구합니다.


 

 

예상치 못한 야구단이 팔렸다.

 

나는 인천 프로야구팀 팬이다. 

 

태어날 때 인천 야구팀은 삼미 슈퍼스타즈였다. 간난 아기 때라 연패를 거듭하던 슈퍼스타즈의 기억은 다행히 없다. 마찬가지로 청보 핀토스도 기억에 없다. 청보 핀토스를 인수한 태평양 돌핀스가 프로야구에 대한 최초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초등학교 땐 아빠를 졸라 무려 태평양 돌핀스 어린이 회원에 가입했다. 단 한 해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네 식구가 단칸방 전세를 살던 그 시절 아빠가 내게 해준 최고의 선물이었다.

 

1998년, 인천 프로야구팀이 감격의 첫 우승을 할 때 나는 중학생이었다. 팀은 현대 유니콘스였다. 우승 맛을 보여준 현대 유니콘스는 연고지를 서울로 이전할 생각으로 인천을 버리고 수원으로 떠났다. 

 

바톤 터치하듯 쌍방울 레이더스를 인수한 SK와이번스가 인천에 왔다. 2000년, 고등학생 때였다. 2007년에는 처음으로 한국시리즈를 경기장에서 직관했다. 그해 SK와이번스는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나에게는 인천 팀의 두 번째 우승, SK와이번스는 첫 우승이었다.

 

프로야구의 오랜 팬으로서 종종 딴지일보에도 야구 관련 글을 써왔다. 최근에는 경영난과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야구단을 움켜쥐고 있는 두산그룹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기사 링크). 매각은커녕 소속 선수와 거액의 FA계약을 맺는 걸 보고 두산은 ‘야구가 미래’라며 비판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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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이 나의 비판을 들을까 했지만,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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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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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각된 것은 SK와이번스였다.

 

인천에 프로야구팀이 생긴 지 올해로 마흔 해째, 삼미-청보-태평양-현대-SK를 거쳐 신세계가 여섯 번째 인천 프로야구팀이 될 예정이다(한국프로야구에서 인천만큼 팀 이름이 많이 바뀐 연고지는 없다).

 

‘별안간, 뜬금없이, 갑자기’ 등등의 비슷한 표현을 다 갖다 붙여도 모자랄 만큼의 깜짝 뉴스였다. ‘매물로 나왔다’. ‘인수자를 알아보고 있다’, ‘매각설이 돈다’는 식의 소리 소문도 없이 나온 소식에 국내 프로야구 관계자, 언론, 팬 할 것 없이 모두가 놀랐다. 

 

후속 보도를 보니 SK와이번스 구단 관계자도 몰랐다 한다. 

 

갑자기 팔았단 얘기다. 그럼 왜 갑자기 팔았을까. 무슨 문제라도 있었던 겐가.

 

 

왜 팔았나

 

1982년에 6개 구단으로 출범한 한국프로야구가 2021년 시즌을 앞둔 지금(현재는 10개 구단 체제)에 이르기까지 여러 기업들이 야구판에 발을 담갔다. 

 

원년부터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삼성과 롯데, 두산(OB베어스로 창단하여 그 사이 연고지와 팀명이 바뀌었으나 구단은 매각 없이 그대로 존속)과 현재 운영되고 있는 나머지 7개 팀을 제외하면 그 사이 삼미, 해태, 청보, 태평양, MBC, 쌍방울, 현대가 프로야구단을 창단했다가 발을 뺐다(발을 뺀 일곱 팀 중 네 팀이 인천 연고이다).

 

전두환의 3S 정책(’스크린, 스포츠, 섹스’의 영어 첫 글자를 딴 것으로 국민의 관심사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한 정부 차원의 우민화 정책을 일컫는다)으로 태동한 한국프로야구 원년, 프로야구 흥행을 위해 방송사도 하나쯤 넣어야 하지 않겠냐는 정부의 의지로 창단한 MBC가 1990년 들어 LG그룹에 야구단을 매각한 사례를 제외하면, 그동안 프로야구단이 매각된 이유는 모두 ‘모기업의 경영난(구조조정)’ 때문이었다. 

 

SK와이번스의 매각 뉴스가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 건, 소식 자체의 느닷없음과 함께 ‘도대체 왜’라는 물음표가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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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단 매각=모기업 경영난’이라는 등식에 SK와이번스를 대입할 경우 ‘SK와이번스 매각=SK텔레콤 경영난’이어야 하는데, 현재 SK텔레콤의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다. 

 

운영할 자금이 없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야구단을 팔았다. 지금까지 한국 프로야구판에서 거의 없었던 일이다. 

 

그럼 SK와이번스는 왜 팔렸나. 그전에 한국 프로야구단들이 어떤 연유로 창단됐는지부터 짚어봐야겠다.

 

 

프로야구단은 이런 까닭으로 창단됐더랬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프로야구의 태동은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원년 멤버였던 구단들은 정부의 압박이 주된 창단 동기(?)였다고 볼 수 있겠다. 그 밖에 이유를 찾자면 기업의 사회 공헌 같은 걸 들 수 있겠다. 

 

애초에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 육성이라는 목표(이 또한 독재정권 3S 정책의 일환)가 ‘기업의 사회공헌’이라는 명분(정경유착의 과실을 따먹은 기업의 조공)과 만나 온갖 체육 종목 협회장에 기업인들이 포진해 운영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관행처럼 이어져 온 유구한 전통인 바, 프로야구단 창단 또한 비슷한 대의가 있었다. 

 

그게 본질적으로 독재 권력에 빌붙기 위함이었는지 진짜 사회에 공헌하기 위함이었는지는 여기서 따져 묻지 말고 각자 취향껏 믿는 대로 생각하자.

 

‘구단주의 야구 사랑’도 빼놓을 수 없겠다. 모기업 오너가 너~무 야구를 사랑한 나머지 야구단 만들어 운영한다는 건데, 이건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프로야구 역사 전반에 걸쳐 꾸준히 해당되는 얘기다.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NC 다이노스가 우승한 뒤 선수 못지않게, 아니 선수보다 더 회자되는 것이 구단주 김택진 대표의 이름이다. 소문난 야구팬이어서 신생 구단을 창단하고 지금까지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택진이형’의 미담이야말로 대표적이고 따끈따끈한 ‘구단주의 야구 사랑’ 최신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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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관람 중인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 윤송이 사장 부부

 

예나 지금이나 대한민국 기업의 지배구조가 워낙 수직적이다 보니 정점에 있는 오너의 말 한마디가 조선 시대 임금님 ‘어명’과 맞다이 가능한 무게감을 자랑한다. 따라서 ‘야구를 몹시 사랑한 OOO회장께서 몸소 나서 야구단을 창단 하시어따’ 류의 야구단 탄생 스토리는 대부분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

 

굳이 경영적인 관점에서 프로야구단 창단 목적을 바라보자면, 마케팅적 이유를 들 수 있겠는데... 소비재 산업이 주류를 이루었던 1980년대에 특히 그랬다. 

 

해태, 롯데, 빙그레는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팔았고 삼성은 가전제품을 팔았다. OB는 주류 업체였으며 잠시 스쳐 지나간 청보는 라면을 팔았으니 프로야구단 운영을 통한 직접적인 마케팅 효과를 노려봄 직했다. 예전엔 그랬는데 지금은 아니란 건 아니고, 기대 효과가 훨씬 컸다는 말이다.

 

암튼 이러한 이유들로 각자의 지분을 가지고 개입해 프로야구단은 만들어졌고, 운영되어 왔다. 그러다 모기업의 지갑 사정이 궁해지면 팔았다. 이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하나의 결론은 이 바닥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하나의 사실과 일치한다.

 

 

프로야구단은 돈이 안 된다

 

글타. 프로야구단은 돈이 안 된다. 원년부터 지금까지, 프로야구단을 창단한 모기업은 야구단을 운영해서 돈을 번 적이 없다.

 

LG트윈스와 KT위즈, 키움 히어로즈를 제외한 7개 구단의 2019년도 감사보고서를 확인해봤다(LG와 KT는 야구단과 타 종목의 프로구단이 같은 법인에 있어 ‘야구단’ 만의 재무제표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히어로즈는 유일하게 모기업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 경영을 하는 구단이다). 

 

세부내역은 생략하고, 결과적으로 7개 구단은 매출 규모 대비 크지 않은 액수의 흑자 또는 적자를 기록했는데,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당기순이익이 흑자나 적자냐가 아니다. 살펴봐야 할 것은 특수관계자 거래, 즉 모기업 혹은 모그룹과 관련된 회사를 상대로 얼마나 매출을 올렸느냐다. 

 

8개 구단이 대부분 특수관계자 거래에서 200~300억 원 사이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 중에는 SK와이번스처럼 SK텔레콤이라는 하나의 법인을 상대로 거의 모든 매출을 올린 구단도 있고 롯데자이언츠나 한화이글스처럼 모그룹 내 여러 계열사를 상대로 매출을 올린 구단도 있다. 특수관계자를 상대로 한 매출 명목은 대부분 ‘광고’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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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자이언츠의 특수관계자 거래 내역 / 2018년도에는 250억 원가량, 2019년도에는 200억 원가량의 매출을 롯데 계열사를 상대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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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는 매출액에서 매출 원가를 뺀 매출총이익이 106억 원쯤 된다. 여기에 판관비 지출을 뺐더니 4억 여 원의 당기순이익이 발생했다. 참고로 같은 해 삼성 라이온즈가 특수관계자를 상대로 올린 매출이 242억 여 원이다. 

 

특수관계자 거래를 제외한 야구단의 한 해 매출 규모는 대략 200억에서 400억 사이이며 지출하는 비용 규모는 400~600억 사이에 분포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200~300억 원의 적자를 딱 알맞게 메꾸는 역할을 특수관계자 회사의 광고비 매출이 담당한다. 이렇게 저렇게 돈 쓰고 벌었더니 딱 요렇게 흑자나 적자가 나는 게 아니라 빵꾸난 액수만큼을 광고비 명목으로 채워 넣는다는 거다. 

 

그래서 들리는 썰에 의하면 모 구단은 야구단 운영자금을 전년도 계열사들의 흑자 규모에 따라 뿜빠이시킨다나. 처음부터 비용에 상응하는 마케팅 효과를 기대하고 광고비를 지출하는 게 아닐지 모른다는 매우 합리적인 의심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재무제표상 당기순이익의 흑자나 적자 여부는 그냥 숫자놀음일 뿐, 모기업에 종속된 국내 프로야구단은 재정적 자립 능력이 없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SK와이번스는 왜 팔렸을까.

 

 

그래서 SK와이번스를 왜 팔았나

 

앞서 살펴본 몇 가지 전제를 깔고 다시 생각해보자. 

 

국내 프로야구단은 구단 운영의 전권이 사실상 그룹 오너에게 있다. 그리고 야구단 운영에는 돈이 든다. 돈 벌려는 목적보다는 구단주 개인의 의지나 명목상의 사회공헌, 그리고 얼마간의 마케팅 효과를 누리기 위해 야구단을 운영한다. 그런데 SK와이번스의 모기업은 갑자기 야구단을 매각할 정도로 자금 사정이 어렵지 않다.

 

그럼 왜 팔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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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단주인 최태원 회장이 ‘팔고 싶어서’ 판 것이다. 

 

그 ‘팔고 싶음’의 이유가 SK그룹이 최근 밝힌 대로 프로 스포츠보다는 비인기 종목에 투자를 확대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인지, 갑자기 구단주의 야구 사랑이 식어서인지는 알 수 없다. 

 

인수자로 나선 신세계 그룹 정용진 부회장의 야구 사랑이 자신을 능가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신세계그룹이 야구단을 인수하면 한국 야구 발전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랬나.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정황상 추론해볼 수 있는 사실은 SK와이번스의 매각이 매우 갑작스럽게 결정되었다는 점, 먼저 매각 의사를 나타낸 것이 아니라 매각 제안을 수락하는 방식이었다는 점, 매각 진행의 최종 의사결정을 그룹 오너인 최태원 회장이 했다는 점이다. 

 

 

한국 프로야구단은 회장님의 명품백인가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경영난에 빠져 수조 원 대의 공적 자금을 지원받고, 수천 명의 직원을 명예퇴직 시키면서도 야구단을 매각할 생각은 없어 보이는 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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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의 인수 제안을 받아들여 갑작스레 야구단을 매각하는 SK. 결과는 다르지만, 과정은 같다. 

 

‘오너의 의지’에 프로야구단의 운명이 달렸다는 것. 오너가 원하면 기둥뿌리를 뽑아가며 그룹을 지탱하는 와중에도 야구단을 안고 가지만 원하지 않으면, 언제든 팔 수 있다.

 

이를 두고 인터넷 기사 댓글이나 커뮤니티에서는 프로야구단 운영을 ‘재벌 오너의 고급 취미 생활’, ‘회장님의 명품백’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한 번 사려면 큰돈이 들 뿐 아니라 매년 유지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는, 그렇다고 돈이 있다고 아무나 살 수는 없으니 그냥 명품백도 아니고 에르메스 급은 되는 명품백이겠다. 

 

없다고 손해 보는 것은 아니지만 들고 있으면 사람들의 시선 한 몸에 받을 수 있고 누군가는 치켜세워주기까지 하니 곱씹을수록 그럴듯한 비유다.

 

 

명품백 신세, 벗어날 수 없나

 

결국 문제는 재정적 자립이다. 세상사 모든 관계가 그러하듯 일방적으로 휘둘리지 않으려면 제힘으로 먹고 사는 게 첫째 조건이다. 

 

그러나 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들리는 자조적인 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프로 구단이 재정적으로 자립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기엔 인구 규모도 작고 팬들이 돈도 잘 안 쓴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묻고 싶다. 

 

“언제 한 번 제대로 시도는 해봤나?” 

 

국내 프로야구 기준, 히어로즈를 제외하고 어느 한 구단이라도 모기업의 재정 지원을 벗어나려 노력해본 적이 있었던가. 그렇다 한들 그런 노력을 허용해 줄 모기업이 있기는 할까 싶긴 하지만 말이다.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돈 들여가며 만들었으니 손에 움켜쥐고 있는 한 그걸 두고만 보지는 않을 테고, 한 번도 자립해본 적 없으니 엄두가 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허나 이 상태로 그런 당연함이 지속되면 반드시 존재 자체를 위협받는 날이 온다는 데에 치명적인 함정이 있다. 

 

지금은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0년대와 상황이 많이 다르다. 

 

프로야구단 운영으로 기대했던 ‘그나마’의 마케팅 효과도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져 가고 있다. 그때와 지금은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는 기업들이 활동하는 무대의 범위 자체가 다르다. 내수 시장보다는 해외 시장을 바라보는 기업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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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 시장을 위주로 마케팅 활동을 전개하는 기업 입장에서도 80~90년대에 비하면 요즘은 마케팅 수단이 훨씬 다양해졌다. 야구단 운영은 대체 불가능한 홍보 채널이 아니며 현재 들이는 비용 대비 그다지 효율적인 수단도 아니다. 

 

재벌가 오너가 2세, 3세로 내려갈수록 ‘구단주의 야구 사랑’도 장담할 수 없어졌다. 경영권처럼 야구 사랑도 승계되면 참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언제 매각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프로야구단 운영에 돈이 드는 것은 모기업 오너에게 큰 문제가 아니겠지만 프로야구의 인기가 떨어진다면, 그건 아주 큰 문제다. 명품백은 다수의 사람들이 인정하고 우러러 봐주어야 명품백이다. 날이 갈수록 볼거리는 다양해진다. 사람들은 짧은 콘텐츠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 바닥 최상위 클래스인 미국 메이저리그도 주춤하는 야구 인기에 고민이 많다

 

고로, 모기업 오너의 의지에 모든 것을 맡기기에는 프로야구의 앞날이 너무나 불투명하다. 야구단 스스로 먹고살 능력을 키우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사항이다. 

 

 

회장님의 의지가 아닌 팬들의 성원으로

 

야구단을 매각하는 SK를 바라보는 시각은 하나 같이 우려 일색이었던 반면, 인수하는 신세계 그룹과 정용진 부회장을 바라보는 시각은 걱정과 기대가 교차한다. ‘용진이형은 제2의 택진이형이 될 수 있을까’ 류의 기사 제목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그저 하나의 명품백이 다른 사람의 손으로 옮겨가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야구장과 쇼핑 공간을 융합하겠다는 신세계의 포부는 프로야구단을 기업의 ‘간판’ 정도로 이용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직간접적인 매출 기반으로 만들겠다는 그럴듯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조금이나마 기대를 갖게 한다. 물론 두고 봐야 할 일이고 그것이 곧 프로야구단의 재정적 자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한계도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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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가장 좋은 방향은 현재 키움 히어로즈가 가고 있는 길이다(히어로즈는 히어로즈대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야구단 자체의 수입으로 운영이 가능한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필요하면 입장권료를 올리고 공짜 중계도 유료 중계로 바꾸어야 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이 제 돈을 들여 경기를 보고 지갑을 열어 구단 관련 상품을 사게끔 만들었을 때 가능한 이야기다. 

 

‘누가 그렇게까지 해서 야구를 보냐’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른 나라 프로리그를 예로 들겠다. 국내에도 시즌 패스를 구입해 NBA나 메이저리그를 보는 사람이 있다.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못한다가 아니라 그게 불가능하면 없어지는 게 맞는 말일 수도 있다. 단지 프로야구단의 모기업 계열사라는 이유만으로 매년 수십, 수 백억을 광고비로 삥뜯기고 있는데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현실이 더 말도 안 되는 일 아닌가.

 

2000년도에 쌍방울 레이더스를 인수해 창단한 SK와이번스는 스물한 시즌을 치르고 한국프로야구 무대에서 퇴장하게 됐다. 인천 야구팀이 하도 많이 바뀌어서 그냥 왔다 가는구나 할 수 있겠지만 시간을 따지면 해태 타이거즈가 치른 스무 시즌보다도 더 긴 세월이었다. 

 

삼미가 청보가 되고 태평양이 되었다가 현대를 지나 SK를 거쳐 신세계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해도 팬으로서 더욱 아쉬운 건, 슈퍼스타즈팬이 핀토스팬이 되고 돌핀스를 응원하다가 유니콘스 응원가를 부르고 와이번스 유니폼을 입다 이제는 또 다른 이름의 팬이 되는 일이다.

 

누구 말마따나 팬이 없으면 그깟 공놀이일 뿐인 프로 스포츠라면, 이제는 회장님 의지가 아닌 팬들의 성원에 운명을 맡기는, 팬들이 존재하는 한 언제고 같은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야구팀의 팬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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