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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사람들은 기력을 높이 숭상하여 궁시(弓矢)와 도(刀)와 모(矛 : 긴창)를 능숙하게 다르며, 개갑(鎧甲 : 갑옷)이 있었고, 전투에 능했다.

-양서(梁書)

 

백제의 병기에는 궁전(弓箭)과 도와 삭이 있으며, 기사(騎射 :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것)를 특히 중히 여겼다.

-주서(周書)

 

신라는 8월 15일 음악을 연주하고, 관인들이 활을 쏘게 하며, 말과 베로 상을 내렸다

-수서(隋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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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시즌만 되면 당연하다는 듯 동이(東夷)족 떡밥이 나올 만큼 한민족과 활쏘기에 관한 연은 길다. 연원을 찾다보면, 너무 흔해서 식상할 정도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게,

 

“무기란 건 처해있는 상황과 필요에 의해 발전한다.”

 

란 단순한 진리이다. 즉, 한민족은 ‘활’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졌고, 이 때문에 활에 집착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활'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뭘까?

 

“지금 [고]연수에게는 책략이 세 가지 있을 것이다. 군사를 이끌고 곧바로 나아와 안시성을 연결하여 보루로 삼고, 높은 산의 험한 지세를 의지하여 성 안의 곡식을 먹으며 말갈 군사를 풀어 우리의 소와 말을 빼앗으면, [우리가] 공격해도 갑자기 함락시키지 못할 것이요, 돌아가려 하면 진흙으로 막혀, 앉아서 우리 군사를 피곤하게 할 것이니 이것이 상책이다. 성 안의 군사를 뽑아 함께 밤에 도망치는 것은 중책이다.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헤아리지 않고 나와서 우리와 싸우는 것은 하책이다. 그대들은 보아라. 그들은 필시 하책으로 나올 것이니, 그들을 사로잡는 것은 내 눈 앞에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제9 보장왕 上

 

당태종 이세민이 주필산 전투를 앞두고 책략을 말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당시 고구려의 전략적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게, 가장 좋은 상책은 군사를 이끌고 안시성에 들어가 버티는 것이었다. 이는 당태종의 생각만이 아니다. 중국의 역사서 주서(周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성안에는 오직 군량과 무기를 비축하여 두었다가 적군이 침입하는 날에는 곧 성안으로 들어가서 굳게 지킨다.”

 

고구려의 기본전략이자, 이후 한민족의 기본 전략이 되는 청야입보(淸野入保) 전략이다.

 

(주필산 전투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말이 많은데, 고구려가 청야입보 전략을 버리고 고구려의 15만 병력이 당나라와 회전을 벌였다는 걸 특기해봐야 한다. 주필산 전투는 안시성 근처에서 치른 전투다. 고연수가 아무 생각 없이 기존전략을 버리고 회전을 감행한 이유가 뭘까? 일개 개인의 객기나 무모함으로 설명할 수 없다. 나름의 전략과 승산이 있으니 회전을 감행한 거다. 중요한 건 이 전투가 고구려의 일방적인 패배로 보긴 어렵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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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안시성> 中

 

영화 <안시성>을 보면, 주필산 전투 한 번으로 고구려의 주력이 무너진 것처럼 나온다. 과연 그럴까? 당나라는 무난하게 고구려군을 물리친 걸까? 기록상으로 보면 패한 거 같지만, 행간을 살펴보면 당나라도 ‘꽤’ 고전을 한 것처럼 보인다. 만약 주필산에서 당나라가 대승을 거뒀다면, 그 여세를 몰아 코 앞에 있는 안시성으로 쳐들어가야 하지 않았을까? 전략전술에 대해서 누구보다 자신있어 하고, 그 스스로가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이세민이 아니던가? 그런데 당나라 군대는 주필산 전투에서 이긴 다음 무려 50여 일이나 있다가 안시성 공략에 나섰다. 당나라군이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했던 게 아니었을까? 주필산 전투를 고구려군의 일방적인 패배로 보긴 어려울 거 같다)

 

고구려는 성의 나라였다. 만주와 한반도에 있는 성이 200개는 훌쩍 넘어서는 걸로 추정된다(요동 방어선을 중심으로 100여 개의 성이 촘촘히 박혀 있다). 이 중 상당수는 산을 의지해 쌓은 산성이다. 주서(周書)의 내용처럼 고구려는 전쟁이 터지면 우선 성으로 들어가 험한 산세를 의지하며 버티다가, 적이 물러나면 뒤쫓아가 적의 후미를 공략하는 걸 좋아했다.

 

고구려 버전의 초토 전술이다. 이런 초토 전술은 고구려만 한 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흔하게 사용했던 방법이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정벌 당시에 러시아군이 사용했던 전술이 초토 전술이다. 적이 사용할만한 식량이나 연료만 없애도 원정군들은 지칠 수밖에 없다.

 

내연기관이 당연하게 쓰이는 지금도 보급이나 수송은 힘든 상황인데, 말이나 사람의 힘으로 보급이나 수송을 해야 했을 당시에는 더 큰 문제였다. 오죽하면 손자병법을 쓴 손자가 '적의 것을 빼앗아 먹으라'고 말했을까? 적의 1종을 먹는 건 아군의 20종에 해당한다고 말한 게 손자다. 덤으로 멀리 수송하면 백성이 가난해진다면서 원정이 길어지는 걸 경계했다. 이런 상황에서 산성에 들어가 버티는 적과 싸우는 건, 정말 피하고 싶은 일일 거다.

 

여기서 주목해 봐야 하는 게 평지에 쌓은 성과 산성이 많이 다른가 하는 대목이다.

 

산성은 평지성에 비해 많은 장점이 있다.

 

첫째, 산 능선 또는 절벽을 따라 성벽을 쌓기 때문에 적이 접근하기 힘들고, 방어하기에도 유리하다. 한민족이 만든 산성을 보면, 보통 산등선의 7부 정도? 그 정도에서 성을 둘러쳤다. 툭 까놓고 말해보자. 산을 올라가는 루트는 제한돼 있기에 공격자의 공격방향은 제한된다. 그리고 올라가는 것 자체가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수비하는 병력들이 화살을 날린다면 어떻게 될까?

 

둘째, 수원확보가 용이하다. 공성전을 할 때 적의 수원을 끊는 방식도 사용하곤 하는데, 산성의 경우는 계곡물을 활용할 수 있고, 물자를 비축할 공간도 많기에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

 

셋째, 기본적으로 성을 공략하는 방법은 성문을 깨고 들어가거나 성벽을 넘어가거나 성벽 아래를 파고 들어가는 방식인데, 산성의 경우는 성벽 아래가 암반이기에 땅을 파고 들어가는 게 어렵다. 성문을 공략하기 위한 공성무기를 끌고 올라가려고 하더라도 지형상의 난점 때문에 제대로 운용하기가 힘들다. 즉, 성을 공략하는 방법도 제한적이라는 거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고구려의 성은 “쌀과 화살이 떨어지지 않는 한 버틸 수 있다.”란 말이 나오는 거다.

 

자, 활이 왜 중요한지 이제 답이 나왔다.

 

성을 방어할 때 가장 쓸만한 무기가 뭘까? 칼이나 창은 기어오르는 적을 상대하는 게 고작이지만, 활은 성벽 위에서 조준해서 사격하면 그걸로 적병 1명을 전투불능으로 만들 수 있다. 공성전투에서 가장 빈번하게 활용하는 무기로 활만한 게 없다. 원거리 투사무기의 대표주자인데다 사냥과 같은 일상 활동에서도 유용하게 쓸 수 있으니, 오히려 활을 안 쓰는 게 이상하다.

 

국경 근처에서 빈번하게 벌어진 유목민족과의 전투도 생각해봐야 한다. 고구려 시절부터 시작해 조선시대까지 국경 근처의 유목민족과의 전투는 ‘활’과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유목민족들의 대규모 전투가 아닌 경우에는 대부분 ‘약탈’을 전제로 한 기동이었다. 이때는 강력한 방어구역이나 진지는 피하고, 비교적 허술한 지역을 노려 약탈을 하고 도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유목민족 역시 활을 자주 사용했고, 기병의 움직임을 봉쇄하기 위해선 역시 활만한 게 없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한민족은 활에 대한 집착을 보일 수밖에 없었고, 좋은 활을 만들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찾게 됐다.

 

겨울에 당나라 사신이 도착하여 조서를 전하고 쇠뇌 기술자 사찬(私湌 : 신라의 17관등중 위에서 8번째 직위) 구진천과 함께 당으로 돌아갔다. 당에서 그에게 나무 쇠뇌를 만들게 하여 화살을 쏘았는데, 30보 나갔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9년

 

유명한 이야기다. 구진천은 신라의 활 기술자였는데, 그가 만든 노(弩), 오늘날의 석궁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거다. 이 노가 1천 보를 날아간다는 소리를 들은 당나라 고종이 신라 조정에 구진천을 파견할 것을 요구한다. 약소국인 신라는 어쩔 수 없이 그를 보내는데, 구진천은 온갖 핑계를 대며 활을 만들지 않았다. 결국 당나라 고종의 계획을 무산시킨다(고려 시절이 되면 ‘팔우노’라 해서 이 천보노에 버금가는 노를 가지게 되는데, 역시나 사거리가 상당했다)

 

자, 문제는 이렇게 활에 대한 집착이 계속되다 보니 한민족의 군대가 상당히 기형적(?!)으로 발전하게 됐다는 거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활을 사용했는데, 다른 이들의 시선으로 보자면 이건 집착으로 보일 정도가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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