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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6일, 전북 정읍의 내장사 대웅전이 한 승려의 방화로 전소되었다. 사찰의 화재 소식은 해마다 몇 건씩 전해지지만, 실화나 합선, 또는 타 종교인의 방화가 아닌, 사찰 내부의, 그것도 승려에 의해 대웅전이 홀라당 타 버렸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충공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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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 외부에서 이 사건을 바라본다면, ‘땡중’이란 단어를 떠올리는 것으로만 그칠 수도 있겠다.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라는 속담을 뒤엎은 사례로 소개되며 사람들의 웃음을 끌어냈다. 절을 태워버리는 스님이라니, 차라리 ‘빈대 잡다가 초가삼간 다 태운다’라는 속담이 더 현명해 보일 지경이다.

 

그러나 절밥 20년 차, 그리고 문화재 덕후인 나로선 이 사건을 엄근진하게 바라보게끔 하는 두 가지 맥락이 있다. 하나의 사건은 사회문화적 압력이 현상으로 표출된 지점이다. 그 맥락의 이해도에 따라 사건을 받아들이는 심각성은 차이가 있다. 궁예의 관심법으로 돌려본 두 가지 뇌피셜, 펼쳐보겠다.

 

불이 넘모 무서웡

 

우리에게 전해지는 목조 건축 문화재는 아무리 오래되어도 2~300년을 넘기기 어렵다. 목조 건축은 지속적인 케어가 필요하며, 100년 정도가 지나면 대대적인 보수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천년 고찰’ 운운하는 사찰들의 문화재(여기서 문화재라 함은, 꼭 국보나 보물, 또는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되지 않는 것들까지 포함한다)는 어떤 면에서 과대광고에 가깝다. 겉으로 보기엔 고색창연한 사찰의 건축물들이 알고 보면 20세기에 완전 해체하여 보수한 결과물이거나, 혹은 아예 새로 지은 것들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가치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른 가치라는 얘기지)

 

화재는 수천 년간 사찰의 주적이었다. 절을 새로 짓게 된 이유를 적은 기록은 상당수 화재가 원인이다. 방화, 실화로 시작된 불이 삽시간에 번져 손쓸 틈도 없이 수많은 건물을 홀라당 태우고 “밤새 안녕”하는 사태가 왕왕 있었다. 실제로 그런 일을 겪으면 정신적 충격이 상당하다. 짧게는 수 년,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애지중지 관리해 온 사찰이 화마에 삼켜지면 아무리 마음 수양을 하는 스님일지라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된다. 내가 아는 한 스님은, 절이 홀라당 불타 버린 뒤 합선이라는 소방 당국의 이야기를 믿지 못하고 ‘악심을 품은 누군가의 방화일 것이다’라는 의심을 평생 거두지 못한 채 세상을 뜨셨다.

 

지금이야 부처님 오신 날에 거는 연등에 LED가 들어가지만, 수십 년 전에는 진짜로 초를 끼웠다. 시간이 조금 흘러 꼬마전구로 교체한 후에도 합선의 위험성은 남아있었다. 그래서 연등 행사를 진행하는 기간, 스님과 불자들이 밤새 교대로 불침번을 서곤 했었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있었던 내장사 대웅전 방화 사건은 전국의 스님들을 벌벌 떨게 하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10여 년 전, 낙산사 일대가 모조리 불에 타 버린 사건은 불교계 큰 쇼크로 남아있다. 그 뒤로 규모가 있는 사찰은 앞다투어 화재보험(졸라 비싸다)과 각종 화재진압 시스템을 갖추려고 노력했으나, 작은 사찰은 재정 문제로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여전히 미비한 시스템을 갖춘 사찰의 스님네들은 내장사 대웅전이 불타는 사진을 보고 등에 한 줄기 식은땀이 솟았을 것이다. 게으르기 짝이 없는 나조차도, 목조가 아닌 샌드위치 판넬로 지은 우리 절을 느닷없이 한번 돌아봤을 정도니까.

 

그러나 이 사건이 더 충격적인 이유는 사실 ‘불만’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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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x) 태워버린다(o)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듯,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걷는 수행자들의 집단도 온갖 알력 다툼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상당한 예산으로 운영되는 큰 절이야 당연히 그렇고, 신도 수가 30명이 채 안 되는 작은 절도 신도들끼리, 스님들끼리 알력 다툼이 벌어진다. 사찰의 법적·공식적 대표인 주지 > 예산을 담당하는 총무 > 보급 총책임자인 공양주로 구성된 역학 관계 안에서 벌어지는 구질구질한 에피소드는 여기가 승가(僧家)인지, 속가(俗家)인지 아리송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찰의 핵심 공간으로서, 알파이자 오메가인 대웅전에 불을 지른 내장사 승려 A 씨가 술을 마신 상태에서 “서운해서 불 질렀다”라고 진술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대관절 어떻게 된 요량인지 머릿속에 그려졌다.

 

사찰에 들어오는 승려는 각자 사연을 갖고 있고, 들어오는 형태도 제각기 다르다. 승려가 대략 50대 정도 되면, 적당한 소임을 받아 월급을 받고 절에서 생활하게 된다. 능력이나 인맥에 따라 주지, 총무 등의 직책을 맡아 권한을 행사한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소위 ‘개털’ 스님들은 이른바 ‘부전살이’를 하게 된다.

 

부전살이란, 대웅전, 관음전, 극락전 등 다양한 전각 하나 또는 여러 개를 맡아 염불, 불공 등을 전담하는 스님을 뜻한다. 사찰 운영에 매우 필수적이지만, 스님 커뮤니티 안에서 '부전살이 했다'라는 말은 ‘힘없고 기댈 곳도 없이 서럽고 어려운 생활을 했다’라는 의미다.

 

자연히 부전살이 스님들과 주요 직책의 스님들 사이에 크고 작은 갈등이 발생한다. 심지어 부전 스님이 가장 많은 권력을 갖고 있는 큰 스님의 직계 제자라 하더라도, 항상 화목하고 훈훈하게 굴러가지는 않는다. 이렇게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 결국 부전스님은 그 절을 떠나 새로운 절에서 부전살이를 시작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는 이런 사정에서 생겨난 말이다.

 

그렇다고 부전스님이 항상 피해자인 것은 아니다. “부전 살이가 서럽다”라는 말속에는, “나도 총무나 주지를 맡고 싶다”라는 욕망을 내포한다. 실제로 나는, 한 부전스님이 읍내에 나갈 때마다 “내가 ㅇㅇㅇ사 총무스님입니다”라고 사칭하고 다녔다는 에피소드를 들은 바 있다. 그런 면에서 부전 VS 집행부의 갈등은 일종의 사내 정치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늘 부전스님의 탈주로 끝났던 역사를 뒤집고, ‘대웅전 방화’라는 금기 중의 금기를 택한 그 스님의 선택은 놀라운 것이다. 외부에서는 이를 ‘개인의 일탈’로 보겠지만, 불가에서 그동안 유지되었던 권위가 해체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아무리 훌륭한, 신도들의 칭송을 받는 부전 스님일지라도 주지 스님의 말 한마디면 방을 빼야만 했다. 대놓고 저항하는 것은 아예 옵션에 없었다. 승려들의 세력 다툼은 반드시 파벌에 기반하고 있는데, 대놓고 싫은 소리를 듣는 스님들은 이렇다 할 파벌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부전스님과 갈등을 겪는 주지, 혹은 총무스님들은 그 뉴스를 보는 순간, ‘혹시 우리도...?’라는 생각이 잠깐 스치고 지나갔을 것이다. 만약 그랬던 스님들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한번 다시 되돌아보시라. 함께 수행하려 모인 스님들이 온갖 갈등에 스트레스를 받아 위장병을 달고 사는 일이 옳게 된 일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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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무서운 것은 따로 있다

 

지금부터는 조금 다른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 사건이 정말 무서운 것은 숭례문 방화 사건에서 그랬듯, 한 개인이 미친 척하고 달려들면 손쓸 재량이 없다는 점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쓰면 내장사에게 너무나 미안하지만, 내장사 대웅전은 국가지정 문화재는 아니었다. 그러나 2012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불로 전소된 대웅전이 다시 지어진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이러한 사고를 당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2012년 화재 당시, 내장사는 사설 업체의 시스템 덕분에 매우 빠르게 화재를 발견했지만, 불길을 잡지 못했다.

 

대웅전을 전통 기법으로 짓는다고 가정하면, 축조 비용만 수억 원이 든다. 끝이 아니다. 여러 기의 불상, 탱화, 상단을 비롯한 내부 조각까지 장인에게 맡기면, 수천만 원에서 억대에 가까운 추가 비용까지 요구된다. 절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끔찍하게 절망적인, 상상하기도 싫은 사태다. 그런데 해당 건물이 문화재라면, 얘기는 더 심각해진다.

 

전통 사찰, 즉 국가지정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사찰은 국가로부터 보조금을 지원받는다. 이는 해당 사찰의 수입의 상당량을 차지하며, 나아가 대한불교 조계종의 주요 수입원이다. 그런데 화재 등으로 문화재가 소실될 경우, 문화재 지정도 해제되어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

 

여기까지가 해당 사찰의 경제적 손실의 측면이라면, 사회적 손실의 측면에서 손실은 더 무겁다. 사찰 문화재는 보조금을 받는다는 점에서 공공의 유산이다. 따라서 하나의 문화재가 소실 또는 도굴되면, 그것은 해당 문화재를 소유·관리하는 사찰의 손해일뿐만 아니라, 해당 문화재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사회 전체의 손실이다.

 

2020년 국정감사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도난된 문화재는 약 1만 3천 건에 이르며, 회수율은 15%에 불과하다. 게다가 문화재 사범 전담 단속반은 단 3명뿐이다. 도난 문화재의 특성상, 통계에 잡히지 않는 건수를 생각하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비록 사회적 인식이 달랐던 과거보다 나아졌지만,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도굴꾼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 지금도 어느 경매장에서 도난 문화재가 경매품으로 올라오고 있을 것이다.

 

우려되는 것은, 사찰 내부의 승려가 브로커들에게 중요한 문화재를 넘기거나 내장사 대웅전 방화 사건처럼 스스로 훼손하는 행위이다. 이 중, 전자의 사례로 추정되는 ‘선암사 관음불상 진위 논란’ 사건은 시사하는 점이 있다.

 

한국불교 태고종의 총본산이자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 중 하나인 순천 선암사에는 조선시대에 제작된 목조 관음불상이 있다. 90년대 후반, 선암사 내부의 한 스님은 당시 주지 스님이 “진짜 관음불상을 빼돌렸다”라고 주장하며 처음 제기되었다. 의혹이 제기되자 당시 주지 스님은 “보존을 위해 원불을 박물관에 안치하고, 모조불을 전각에 놓았다”며 해명했고,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원불을 원래 있던 자리로 돌려놓았다.

 

그럼에도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과거 사진과 현재 원불의 모습이 다르다는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고, 2004년 태고종 내부에서 이 문제를 두고 피 터지게 싸우기 시작했다. 선암사가 태고종 최대이자 종단 내 권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핵심이기 때문에, 이에 관한 시비가 매우 뜨거웠다.

 

결국, 2004년 외부 전문가의 참관 아래 불상의 복장을 공개하기에 이른다. 모든 불상 내부에는 일정한 텅 빈 공간이 있다. 불상을 새로 조성하게 되면, 해당 공간 안에 경전, 다라니, 보석, 발원문 등을 넣고 종이 등으로 막는다. 복장이 다시 열리는 일은 좀처럼 흔하지 않은 일이다. 특히 조선 시대 이전에 조성된 불상들은 복장에서 중요한 유물들이 함께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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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봉암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복장유물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그런데 선암사 관음불상의 복장에서는 영문 상표가 붙은 다섯 개의 손거울이 뿅 하고 나와버렸다. 해당 사건을 다룬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면 당시 모습이 영상으로 남아있는데, 지켜보던 사람들의 표정은 그야말로 ‘띠-용’이었다. 이는 해당 불상이 모조품이라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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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용

 

그러나 2010년대 들어서서야, 방사선 탄소연대측정법과 전문가들의 자문 등을 통해, 해당 불상 자체는 진품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점에는 나도 이견이 없다. 해당 불상의 제작 방식이 현대의 기법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포함하여, 진품이라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남았다. 복장은 어디로 갔는가.

 

이에 대해 당시 주지 스님은, “개금불사(불상에 금칠을 새로 입히는 것)를 할 때 복장을 새로 넣었다”라고 해명했는데, 복장에 거울을 넣는 것은 듣도 보도 못했고, 게다가 현대에 새로 조성된 불상이 아닌 조선 시대의 불상에 현대 용품을 넣는 것은 문화재 관리에 대한 기초적 개념을 인지하는 사람이라면, 아니지, 그냥 제정신이라면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원래 있던 복장 유물이 어디로 갔는지도 나는 모르겠다. 한쪽에서는 1697년에 조성된 복장 유물을 확인했다고 하는데, 복장 유물이 출토되면 사진을 찍고 다시 복장하거나 따로 보관하는 것이 일반적임에도 워낙 논란이 되었던 사안이라 그런지 사진을 찾을 수 없었다. 아마도 있다면, 선암사 성보박물관에서 보관 중일 것이다. (이 사안과는 별개로, 당시 주지 스님은 선암사와 인근 사찰의 복원 사업에 누구보다 열심이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었다)

 

예전부터 일부 절간에서 스님들이 절간의 창고에서 보유하고 있는 탱화나 그림을 브로커에게 개인적으로 팔아넘긴다는 흉흉한 소문을 들은 바 있다. 선암사 관음불상 모조품 의혹이 처음 제기된 것에도, 절간 안에서 나돌았던 흉흉한 소문에서 비롯되었다. 모든 농담에는 반드시 한 줌의 사실이 담겨있기 마련이다. 그 옛날, 비구-대처 간에 ‘절 뺏기’ 싸움이 한창 격화하던 50~70년대, 일부 주지 스님들은 사찰에 딸린 땅을 팔아 해 먹기도 했다. 지금 유력한 관광지의 사찰 앞에 줄지어 늘어선 이상한 가게들은 그 시절의 스님들이 개인적으로 땅을 팔았던 결과라는 얘기도 들었다. 그런 시대였으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탱화나 그림을 넘기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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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도 문화재 보존 과학을 배울 때

 

꼭 흉흉한 도난이나 도굴이 아니더라도, 사찰 문화재가 그리 잘 관리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는 사찰뿐 아니라, 문중이나 양반가, 혹은 서원에 속한 문화재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문화재는 박물관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사찰 문화재는 사찰 안에 있을 때 가장 가치 있기 때문에, 모조리 박물관으로 옮기는 것은 가카께서나 하실 법한 구상일 것이다. 대신에 보조금을 지급하여 국가 대신 잘 관리해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선암사 관음불상은 진위 논란이 격해지는 동안 관리 소홀로 금이 쩍 가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또한, 지금도 전각 안의 탱화들은 양초의 그을음, 촛농이 묻어 훼손되고 있으며, 대충 둘둘 말아놓은 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염료가 종이에 달라붙어 펴지지도 않는 작품도 있다.

 

지금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청정한 스님들에게 누가 되는 글이 될 수도 있겠다. 나는 항상 악의보다 선의가 다수를 차지한다고 믿는다. 청정하고 순수한 스님들이 쇠 파이프를 휘두르는 스님보다 많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다만, 불교계에는 안 좋은 것을 감추고, 숨기고, 외면하려 하는 악습이 분명히 존재한다. 경종이 필요한 때다.

 

지금도 밤잠을 줄여가며 문화재 보존을 위해 새벽 순찰을 도는 스님 또는 사찰 관계자도 분명히 있다. 썩은 개천이 있다고 그 강이 다 썩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문화재를 팔아넘기는 스님들이 소수, 아주 극소수에 지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나아가, 현재 성보 박물관 등을 통해 사찰 문화재를 보존하려는 인식과 노력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상승했다. 문화재가 주요 수입원이니, 당연한 조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현재 승려를 양성하는 강원 또는 불교대학 과정에서 문화재 관련 교육은 거의 없다. 이제 사찰이 국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제도가 자리 잡은 시점에서, 문화재 관리를 위해 관리 주체인 승려들이 조금 더 전문적인 지식을 배워야 마땅하다. 문화재청의 전문가 또는 공무원들이 사찰을 방문할 때 종종 보존 행태를 보고 한숨을 쉬는 일을 “건방지다”고 할 게 아니라, “부끄럽다”고 여겨야 한다.

 

그래서 스님들, 혹은 절간에서 일하려는 불자들이 문화재 보존 과학을 배워야 할 때가 됐다. 물론, 중앙승가대학교에서 이미 불교문화재학과가 설치되어 교육 중이고, 동국대도 2022년 문화재 학과를 설치할 예정이다. 이러한 교육을 모든 불교 관련 교육기관으로 확대하여, 특정 학과생뿐 아니라 모두가 반드시 수강해야 하는 필수 과목으로 진행해야 한다.

 

혹자는 말한다. ‘문화재 그거 조계종만 해당하는 얘기 아니냐?’ 나는 그럴 때마다 서울의 안양암(安養庵)의 예를 든다. 1926년 창건된 안양암은 100년이란 시간이 흐르자 근대불교를 상징하는 주요 문화재가 되었다. 즉, 문화재 보존 스킬은 과거의 문화재에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새로 조성되고 있는 사찰, 불상, 탱화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들 또한 시간이 흐르면 문화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하고 특별하지 아니한 것이라는 인식 때문에, 그것이 문화재가 될 가능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험하게 관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열심히 만든 대웅전을 홀라당 태워버리는 무지각도 그러한 인식에 근거한다.

 

날이 갈수록 어두워지는 불교의 미래에서 문화재는 불교를 지탱할 중요한 축으로 그 중요성이 점점 커질 것이다. 그렇다면, 단순히 지극정성으로 관리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방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러한 고민을 범 종단의 차원에서 진지하게 시작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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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조선사 교양서를 쓰고 있는, 딴지가 배출한 또 하나의 잉여 작가
딴지의 조선사, 문화재, 불교, 축구 파트를 맡고 있슴다.
이 네 개 파트의 미래가 어둡다는 거지요.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시시콜콜 조선부동산실록』 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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