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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단, 단 한번도 다수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4월 7일 재보선이 코 앞이다. 31일까지의 여론조사만 보면 서울과 부산에서 집권여당이 거지꼴을 못 면할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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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에선 '지난 몇 번의 서울시장 선거 결과를 돌이켜보면, 막상 뚜껑을 열었을 때 박빙이었다'며 투표를 독려하고 있고, 이는 일정부분 사실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개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낙담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막판 스퍼트를 위해 결집하고 독려할 때다.

 

그런데, 이기면 대박이고 져도 근소한 차이로 지면 ‘졌잘싸’라며 족발에 쏘주 한잔 하고 집에 가서 발 씻고 자면 그만일까. 도대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무슨 잘못을 어떻게, 얼마나 했길래 국민밉상이 되고 만 걸까. 이를 살피고 복기하는 것은 1년 짜리 임기의 지자체장 선거를 넘어 1년 후 대선의 정권재창출 여부에도, 아니, 다음 정권과 그 다음 정권에서도 중요한 참고사항이 될 것이다. 이 기회에 따져보고 넘어가야 하지 않나 싶다.

 

2017년 5월 9일 제19대 대선에서 촛불시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어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다고 다들 믿고(?) 있는 문재인 후보의 득표율은 40%, 탄핵당한 자유한국당 후보 홍준표 24%,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21.4%, 자유한국당에서 떨어져나온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6.8%, 정의당 심상정 후보 6.3%였다.

 

거칠게 나눠서 범진보(문재인+심상정)=46.3%, 범보수(홍준표+안철수+유승민)=52.2%란 얘기다. 5.9%차로 범보수가 앞선다. 그 이전 18대 대선에서 박근혜와 문재인이 맞다이를 놨을 때 표차가 3.5%였던 것에 비해 4년 후 탄핵과 촛불시민의 힘에도 불구하고 격차가 줄기는커녕 2.4%나 격차가 늘었으니 해괴한 노릇이다. 

 

하지만 놀랄 것 없다. 따지고 보면 IMF로 나라를 말아먹은 정당의 후보인 이회창이 김대중과의 대결에서 겨우 1.5%로 석패했고 40.3%를 얻은 김대중에 비해 이회창+이인제가 얻은 표가 57.9%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 격차가 줄어드는 추세인 건 맞다만, 어쨌거나 이 나라는 70여 년 전 대한민국 정부가 세워진 이래 선거판에서 단 한번도 진보가 다수인 적이 없었다.

 

나라를 말아먹어도, 대통령이 탄핵당해도 선거를 하면 보수가 표를 더 많이 얻는 게 상수인 나라다. ‘진보는 분열로 망하고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지만, 아니다. 결정적일 때 분열로 망한 건 보수나 진보나 매한가지다.

 

여튼 그렇게 촛불시민의 압도적인(?) 지지로 화려하게(?) 당선된 문재인은 (지금은 조선 전기 세종 18년에 있었던 일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2018년 4월 27일 도보다리를 산책하며 지지율 70%를 찍는다. 그리고 글줄깨나 읽고 쓸 줄 안다는 모든 이들이 집권 3년 차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의 중간평가라며 야당의 승리를 점쳤던 2020년 4월 15일 제21대 총선에서 범여권은 180석이라는 압승을 거뒀다.

 

 

2. 문재인 최고의 무기, '국민적 신뢰도'는 어떻게 움직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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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문재인의 업적을 하나만 대보라던데, 코로나 19로 임기 5년 중 2년을 통째로 날린 정권에게 코로나 방역을 빼고 말해보라는 건 “선동렬이 공 잘 던지는 거 빼고 뭘 잘하냐?”고 묻는 것과 같다. 선동렬은 공 잘 던져서 돈이라도 많이 벌었지, 넌 두루마리 많이 쓰는 거 밖에 잘하는 게 없잖냐.

 

깨놓고 말해서, 국지적으로 퍼진 구제역이나 조류독감도 아니고 글로벌급으로 들이닥친 재앙을 방역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이 정도로 방어해냈다는 건 역대급 치적이다. 하물며 다들 잊었나 본데, 코로나19 초창기 휴전선 인근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창궐해 비상이 걸렸더랬다. ‘엎친데 덮쳤다’는 건 이럴 때 쓰라고 생긴 말이다. 그런데 문재인이 그걸 해내네? 이게 역대급 치적이 아니라고?

 

문재인이 숨겨놓은 금괴를 풀어서 해결한 것 같지는 않다.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고 나뭇잎으로 강을 건너고 5개국어를 구사하며 패션외교로 형광등 100개를 켜는 능력도 없는 것 같다. 비법이 뭘까. 별 거 없다. 일이 터진 초창기에 정부는 시민들에게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며 협조를 요청하고 시민들은 이에 적극적으로 부응한 것이 성공의 요체다. 신천지나 태극기 광화문 집회 따위는 우리의 성공을 더욱 찬란하게 만들 극한의 퀘스트였을 뿐. 아니냐.

 

여기서 중요한 건 정부와 시민사회 간의 ‘신뢰’다. 이명박은 왜 구제역 방역에 실패했고 박근혜는 왜 메르스 대응에 실패했나. 늑장대응이라는 무능도 있겠지만 정부에 대한 비판이 높아질까봐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았다가 일을 키웠다. 정부는 시민을, 시민은 정부를 신뢰하지 않았다. 아니냐고.

 

따라서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국정 동력 자산은 문재인 개인이 갖고 있는 ‘국민적 신뢰’다. 문재인은 반듯한 사람, 거짓말하지 않을 사람, 국민에게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한 사람이라는 공적 신뢰가 대통령 당선도 당선이지만, 그동안 국정을 끌고 가는 가장 큰 원동력이었단 말이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왠지 내 말에 귀를 기울여줄 것 같은 자상한 대통령”인 것이다. 그런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맞아 국민들에게 이렇게 됐고, 이렇게 하고 있고, 이렇게 하겠다고 구구절절 설명하니 따라줄 마음이 생기겠어요? 안 생기겠어요?

 

이게 깨졌다. 금이 간 건 누가 뭐래도 조국 사태였다. 억울하겠다. 억울한 거 맞다. 조국의 법무부장관 임명을 앞두고 윤석열이 대통령 독대를 청하며 주변에 뭐라고 했다던가. 표창장이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사모펀드 수사해 봐서 아는데 범죄다. 그런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법무부장관으로 임명돼선 안된다, 고 했다잖은가. 그래서? 사모펀드 재판 결과가 어떻드나? 지위를 이용한 권력형 비리드나?

 

조국 수사 기간 내내 윤석열은 명백히 정치를 했다. 사모펀드에, 표창장도 모자라 별건으로 조국 남동생까지 털었다. 범죄혐의에 달려든 게 아니라 조국이라는 표적의 ‘낙마’를 목표로 했다. 자의적 판단으로 인사권자에게 반기를 들었다. 이게 정치가 아니면 나는 마사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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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조국은 유죄란다. 2심에 대법 판단까지 남았지만 어쨌거나 유죄란다. 표창장 위조가 유죄인 건 말할 것도 없단다. 그래, 조국보다 훨씬 억울한 장관 후보자도 청문회에서 별 것 아닌 이유로 날아간 케이스가 널렸다. 쌓아놓으면 조선일보 방상훈이네 담벼락보다 높다. 기존의 상식대로라면 조국은 스스로 물러나든가 대통령이 날렸어야 했다. 조선 천지에 오로지 조국 한 사람만이 검찰개혁을 할 수 있다면 그런 나라는 망하는 게 맞고. 

 

하지만 대통령은 조국 후보를 날리지 않고 버텼다. 장관에 임명하기까지 했다. 결국 물러나고 추미애가 그 자리에 앉았다. 조국 시즌 2는 그렇게 시작됐다. 한땀 한땀 뜯어보면 행간이 있고 국정철학이 있고 개혁의 명분이 있고 오만가지 변명의 여지가 없지는 않겠다만, 가리봉산 5번지 김포쌀상회 박씨의 눈엔 그저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대검의 멱살드잡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을 게다. 다른 할 일도 많을 텐데... 하고 말이다. 코로나 19로 만신창이가 된 자영업자들 눈에는 이 건이 어떻게 비쳤을까를 생각해 봐야 한다. 

 

 

3. 부동산과 공정에 대하여 

 

허나 유권자는 바보가 아니다. LH 비리를 문재인이 시켰나? 이 정권 들어와서 생긴 신종 수법인가? 아닌 거 다 안다. 하지만 가리봉산 5번지 김포쌀상회 박씨의 눈엔 그 쇠털 같이 많은 시간을 윤석열이 멱살 잡느라 바빴잖냐는 얘기로 바뀐다. 

 

개인적으로 속상한 게 하나 있다. 기억이나 할는지 모르겠는데, 문대통령이 취임 1년 후 던진 화두가 있다. 개헌이다. 문대통령이 제시한 개헌 안엔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지난 87체제의 모순과 병폐들에 대한 해법이 오롯이 담겼다. 그 중엔 토지공개념에 대한 것도 있다. 딱 한 줄이다.

 

“필요한 경우에 한해 특별한 제한”

 

이게 어떤 의미냐 하면, 노태우 정부 때 입안한 토지공개념 3법(토지초과이득세, 택지소유상한제, 개발이익환수) 중 토지초과이득세는 헌법 불합치를, 택지소유상한제는 위헌 판결을 받았고 개발이익환수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가 되었다.

 

왜 토지공개념 3법은 헌재에서 판판이 깨졌을까. 헌법의 공평과세 원칙에서 개별 과세의 방법론 따위가 문제가 된 것이다. 따라서 개헌안에 “필요한 경우에 한해 특별한 제한”이라는 근거를 못박고 개별 입법에서 세부조항을 강화하는 솔루션인 것이다.

 

이걸 문프랑 민주당은 다 알았다고! 토지공개념 3법을 손대지 않고는 하늘이 두 쪽 나도 현행 국룰에서 이 미쳐돌아가는 부동산 시장을 틀어잡을 수 없단 사실을, 다 알았다고! 하지만 안 했다고! 180석 가지고 안했는지 못했는지 나야 몰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안 했다고!

 

개헌 돌파는 200석 이상이니까 20석 모자라서 못했다는 소리는 인간적으로 하지 말자. 민주당이 어떤 로드맵을 갖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게을렀다. 명백하게 게을렀다. 

 

하지만 난 이 타이밍에서 민주당 쉴드를 쳐야겠다. 입만 열면 180석, 180석 하는데 개혁과 혁명은 다르다. 그냥 다른 것도 아니고 차원이 다른 거다. 개혁은 지난한 과정이다. 이걸 잊으면 안된다.

 

민주당이 180석으로 밀어부친 건 전월세거래신고제•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 등 임대차 3법, 공수처법•국정원법•경찰청법 개정안 등 권력기관 3법, 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 등 공정경제 3법, 대북전단살포금지법안, 5·18왜곡처벌법안, 사회적참사진상규명법 등이다. 뭐 하나 심각하지 않은 법안이 없다. 저 법안들의 면면을 보고 민주당이 놀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방송국 장악하고 국회 앞에 땡크 깔아놓고 곽상도나 김도읍 같이 헛소리 나불대는 인간들 남산에 데려가 코렁탕 먹이고 박덕흠이 같은 인간들 목을 따서 광화문에 효수한 후 체육관에서 일사천리로 개헌안 통과시키면 속이야 후련할는지 몰라도 그럼 안되는 거다. 우리 국민들, 안 좋아한다. 아무리 개혁이 속 터지게 흘러가도 필리핀이나 미얀마 흉내 내선 안되는 거다. 우리, 그 정도 레벨은 넘어섰잖냐.

 

그래, 민생은 하느라고 했는데 타이밍이 안 좋았다 치자. 어디 민생만 욕을 먹고 있는가.

 

공정? 조국 딸이 수시에 필요한 스펙 쌓는 과정에서 케어받은 건 목구녕이 찢어져라 분노하며 촛불을 들면서 제 학교 교수 자제들이 특혜 누린 건 눈이 있어도 못 보고 귀가 있어도 못 듣고 입이 있어도 말 못하는 공정? 조국이 어디서 뭘 먹고 뭘 사입었는지 탈탈 털었으면서 제 식구는 96만 원 특가로 와리비끼해주는 공정?

 

커트라인 안쪽에 들어 있는 인간들은 뭘 해도 그러려니 하지만 커트라인 바깥 쪽에서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새끼는 터럭 만큼도 부정하면 안된다는 그 공정? 세상 없이 맑고 깨끗한 사회를 원하지만 언젠가 성공할지도 모르는 미래의 날 위해 적당히 뒷구녕은 남겨놔야 한다는 바로 그 공정?

 

난 문재인 정부가 먹는 욕 중에 이 ‘공정’이 젤 꼴값을 떠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조국 사태로 등을 돌린 반문이들이 요란하게 흔들어대는 깃발에 떠억하니 쓰여있는 두 글자. ‘공정’. (차라리 ‘동정’(童貞)이었다면 동정(同情)의 여지라도 있으련만)

 

사실 쟤들이 쓰는 ‘공정’의 용태를 가만히 살펴보면 이는 사전적 의미의 ‘공정’이 아니다. 그냥 ‘내로남불’이다. 또한 내로남불은 하루이틀 된 역사가 아니다. 조선일보가 창간 이래 줄기차게 천착했던 화두이기도 하다.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서사, 이른바 ‘진보의 위선’.

 

조선일보는 조선 독립으로 ‘내선일체’를 타의에 의해 내린 후 ‘피아일체’로 갈아탈 수밖에 없었다. 친일의 역사, 독재 부역의 역사 등 윤리영역에서 접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 숙명에선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피아일체만이 유일한 위안이요, 방어기제였을 게다. 꼰대가 할 말 없을 때 던지는 말이 “너 몇 살이야?”이듯, 똥 묻은 개가 던지는 마지막 대사는 언제나 “그런 너는 얼마나 깨끗하냐?”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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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향은 최상의 먹잇감이었다. 당시 언론에 도배된 그 많은 추문과 의혹들은 검찰 기소 단계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반 년 째 재판이 공전되고 있지만 현재 재판에 회부된 혐의들은 “비싸게 사서 싸게 팔았으니 배임” 대충 이 따위 것들 몇 가지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다. 진보세력 중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던 정의기억연대가 추문으로 얼룩지기만 해도 조선일보에겐 혈당이 내려가고 내장비만이 절로 녹아내리는 기쁨이었을 게다. 

 

진짜 슬픈 건 이게 본방사수가 아니란 점이다. 재방이다. 그것도 기시감이 찐득하게 묻어 뚝뚝 떨어지는 재방이다.

 

 

4. 가랑비에 옷, 또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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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 보자. 처음엔 노무현의 말투를 문제 삼았다. 맥락은 중요치 않았다. “대통령 못해먹겠다.” 대통령답지 않은 천박한 말이란다. 이건 감상의 영역이다. 내가 그렇게 느꼇다면 그런 것이다. 그 어떤 데이터나 객관적 근거가 없다. 그냥 느낌이 그렇다는데야...

 

가랑비에 옷이 젖었다. 미운 털이 하나둘 박혔다. 그리고 부동산과 비정규직. 시민과 진보는 등을 돌렸다. 이라크에 파병했다고 배신감을 느꼈단다. 부동산으로 박탈감도 느꼈단다. 이게 얼마나 네모난 축구공 같은 소린 줄 모른다. 하나만 하라고. 대통령에 대한 조롱은 국민스포츠가 됐다. 이명박이 청렴해서 뽑은 게 아니란 건 조선 천지가 다 안다. 거기에 뉴타운이라는 욕망에 대놓고 기름을 붓고 불을 당겼다. 그렇게 정권은 넘어갔다.

 

내로남불이란다. 진보의 위선이 까발려졌단다. 맥락과 경중은 따질 이유가 없다. 맥락과 경중을 살피지 않고 ‘그놈이 그놈이다’ 해버리면 더 부패한 쪽이 기뻐할 노릇이지만 상관 없다. 내가 상처 받았다는 게 중요하다. 그러면서 한다는 소리가 “국힘당이 좋아서 찍는 게 아니다. 문재인 정권 심판 제대로 하자는 거지”라니.

 

아, 네. 그르시구나. 나찌가 좋아서 찍는 게 아니에요. 바이마르 정권 심판 제대로 하자는 거지. 그래도 쪽팔린 줄은 아나 부다. 여론의 과반 이상이 지지하는 제1야당 찍겠다면서 그냥 당당히 찍으면 되지 뭔 구구절절 말이 그리 많은지.

 

거르고 걸러서 대표로 내보낸 인간들이

 

'측량하는 곳에 있었지만 없었습니다.' 

 

'길 가다가 마주쳤는데 청약에 떨어졌다길래 불쌍해서 거져줬다.'

 

는 수준인데 부동산 정책 실패로 민주당을 심판하겠다는 건 그냥 하는 소리다. 심심해서 그냥 해보는 개소리란 얘기다.

 

그럼 대체 왜?

 

5. 그때, 여론조사는 무의미해진다    

가랑비에 옷이 또 젖은 건 맞다. 그렇게 쏟아 붓는데 안 젖을 쏜가. 허나 고개 숙이고 국민의 분노에 귀 기울이는 것도 전만 못했다. 논리는 잠시 놔두자. 중도층이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런 거다. 

 

다 부질없는 결과론이지만, 아무래도 노무현을 반면교사 삼았지 싶다. 대통령이 모든 이슈에 전면으로 나서면 종국엔 십자포화를 맞고 스러진다고 여겼을 게다. 그런 상황은 어떻게든 피하고자 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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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감이 드는 이 재방에서, 오세훈과 박형준 역시 정확히 이명박의 전술을 복제하고 있다. 유권자의 세속적 욕망에 불을 지르는 것이다. 우리 동네에 장애인 시설이 있으면 집값 안오르니까 장애인 시설을 없애겠단다. 자신들의 부패 의혹 따윈 신경도 안 쓴다. 변명과 해명에 최소한의 성의도 없다. 이번 선거의 ‘본질’이 아닌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본질’은 무엇일까. 말이 멋있어서 ‘정권 심판’이지, 이건 그냥 하는 소리다. ‘홧김에 서방질’이 본질이다. 삐친 거다. 정권과 집권여당이 삐치게 만들었다. 그것에 대한 ‘반작용’이다. 하지만 우리 같은 장삼이사야 국개론을 입에 담아도 정치집단이, 공당이, 하물며 국정의 무한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와 집권여당이 그런 생각을 꿈에도 해선 안된다.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는 말을 새겨야 한다. 마누라가 삐치면 내가 잘못한 거다. 이걸 이해하려 들면 안된다. 그냥 외워야 한다.

 

보수가 항상 표를 많이 얻는 나라에서, 내가 맞다고, 내가 옳다고 고개를 뻣뻣이 들다가 처맞는 거다. 이런 유권자의 심리를 논리로 접근해선 안된다. 그냥 잘못한 거다. 그럼 여기서 가랑비에 옷 계속 젖어가며 똑같은 방식으로 한 번 더 져야할까?   

 

난 이번 선거과정에서 참 희한한 경험을 했다.

 

우리 두산베어스가 20년 동안 듣는 소리가 ‘불안한 불펜’이다. 헌데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리즈 시절의 NY 마리아노 리베라 같은 선수가 마무리를 하고 있네? 이게 얼마나 가슴 설레는 소리인 줄 아는가.

 

선거마다 판판이 깨지며 자아비판만 하던 우리네 과거를 생각해보자. 지금 어떤가. 살다 살다 민주당이 ‘조직에서 앞선다’는 소릴 듣는다. ‘콘크리트 지지층’이란 말이 등장했다. 모든 정국 이슈에서 민주당이 주어다. 국힘당을 찍겠다면서도 “민주당을 혼내기 위해서”란다. 30년 동안 민주당은 항상 종속변수였고 저쪽에서 거대한 삽질이나 똥볼을 차야 그나마 겨우 기회가 열렸던 게 엊그제다.   

 

지금은 어떤가.

 

대선 쳐다보지 말고 밀어부쳐보자. 주어가 달라졌다. 실력은 충분하다. 고개를 숙이고, 비판대신 설득으로, 옷깃을 여미고 그때로 돌아가자.   

 

그때, 여론조사는 무의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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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면 찌른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