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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빨리 백신을 맞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다만 언론에서 하도 '백신 나쁘다'고 떠들어대는 통에 AZ 백신을 불신해 예약조차 하지 않았던 아빠(지금은 예약), 접종 예약은 했지만 왠지 불안해하는 엄마와 살다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한 살이라도 어린 내가 본때(?)를 보여줘야겠다'

 

이렇게 백신접종이라는 결말에 이르고 만다.

 

 

생일 안 지난 91년생도 되는데요

 

(당연한 얘기지만) 한창 접종 중인 아스트라제네카(이하 AZ) 백신을 맞았다. 만 30세 이상만 가능하다는 백신을 맞음으로써 자연스럽게 나이가 까발려졌는데, 이렇게 된 거 생일 선물이라도 받겠다는 심정으로 생년을 밝힌다. 저는 1991년 8월 생으로, 현물보단 현금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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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991년생은 생일을 기점으로 만 29세와 만 30세가 갈린다. 현 시점에서 생일이 지난 1991년 생 김 모씨는 만 30세, 생일이 안 지난 1991년생 챙 모씨는 만 29세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생일이 지나지 않은 91년생은 AZ 백신을 접종할 수 없다,

 

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꽤 있다(ex. 우리 아빠). 선거권도 아닌데 굳이 칼 같이 나눌 필요가 있을까? 생일을 기준으로 만 30세를 나누면 접종 기간에 생일을 맞은 애들을 매일 같이 리스트업 해주어야 한다. 일 늘어나는 소리가 저쪽에서부터 들리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인지 실제로는 '1991년 12월 31일 생까지' 접종이 가능하다. 8월에 태어난(강조)인 저도 대상이 되었다, 마 이런 얘기다.

 

 

잔여백신을 맞을 수 있는 방법

 

현 시점에서 잔여백신을 맞을 수 있는 방법은 두 개가 있다.

 

1) 백겟팅

잔여백신 예약 티켓팅의 줄임말로, 스마트폰을 통한 예약방식
 

2) 각 병원에 전화로 예약

백신을 접종해주는 동네 병원에 전화해서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리면, 잔여백신이 생길 때마다 병원에서 순서대로 연락을 준다. (질병관리청 '예방접종 사전예약 시스템(링크)'의 '사업참여 의료기관 찾기'에서 검색되는 병원은 기본적으로 다 예약이 가능한데, 어디까지나 병원의 재량이므로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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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겟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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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예약

 

이 시점에 백신을 맞았다는 거 보면 '백겟팅'의 성공자로 보이겠지만, 사실은 전화예약을 통해 접종한 케이스다. 5/27부터 시작된 백겟팅과 달리 전화예약은 고령자 대상 접종이 시작된 4월부터 알음알음 이뤄지고 있었다.

 

나는 백겟팅이 시작되기 대략 일주일 전인 5월 21일 오전에 예약을 했다. 접종할 수 있다는 전화를 받고 '한 시간 안에 병원에 도착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으므로, 일부러 집에서 가장 가까운, 걸어서 10분 안에 갈 수 있는 병원에만 전화를 걸었다.

 

총 다섯 군데를 걸었지만 예약을 받아준 건 세 곳이었다. 나머지 두 곳은 '독자판단 아래 91년생의 예약은 받지 않기로 했다'며 거절했기 때문이다. 91년생이라고 해도 사실상 20대와 크게 다름이 없으므로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였다. AZ백신이 20대에서 부작용이 심한 것, 내가 아직 합법적인 20대(만 29세)라는 것. 이 두 가지가 있었기 때문에 바로 순응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20대는 이렇게 유연한 사고를 한다.

 

91년생도 받아주었던,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 가능했던 병원 세 곳은 각각 이런 말을 남겼다.

 

A병원: 앞에 대기한 사람 15명 있어요.

B병원: 접종하기 힘든 요일이 있나요? (ex. 사정 상 한 시간 안에 병원으로 찾아오기 불가능한 날)

C병원: 자리가 나면 오후 5시 10분 쯤 전화가 가요. 안 받으면 바로 기회가 날아가니까...

 

이 때만 해도 다음날에 전화가 올 줄 알았다. 특히 15명 남았다는 A병원에서, 빠르면 당일에도 전화가 오겠다고 생각했다. 블로그 등에 올라온 '잔여백신 후기'에 '대기명단에 올린 지 하루 만에 맞았어요' '전화했더니 바로 오라던데요?'라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6일이 지났다. 옛날에 잠깐 들었던 소설 창작 수업에서 '이렇게 시간을 훅 뛰어넘는, 개연성 제로의 글을 쓸 수 있는 겁니까'라는 쿠사리를 들은 적 있기에 갑자기 일주일 가량을 제껴버리는 무례함을 범하고 싶진 않았지만 현대인은 성격이 급한 법이다.

 

5월 27일, 백겟팅이 시작된 날이었다. 6일 동안 병원에서 전화가 없었기 때문에 동네 병원들이 아무래도 단체로 날 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백겟팅의 노예가 되어 0에서 벗어나지 않는 네X버 어플의 잔여백신 예약 페이지를 새로고침하고 또 새로고침 하던 때였다.

 

B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그 때가 오후 2시 20분이었는데, 3시까지 올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충정로 딴지사옥이었고 집은 서울 변두리다. 최소 1시간 걸리는 거리라 근두운을 타지 않는 이상 힘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1시간 안에는 가보겠다'고 쇼부를 보았다.

 

 

1차 접종을 했지 말입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땐 3시였다. 무려 1시간 거리를 40분 만에 도착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병원에 도착하니 사람이 엄청 많았다. 90퍼센트가 '3시 접종 대상자'였고, 나머지 10% 정도가 일반 진료를 하려는 사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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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에 '잔여백신 맞으라고 전화와서 왔는데요'라고 하면 바로 문진표를 준다. 코로나 이후 왠지 친근해진 문진표를 작성, 제출하고 나면 열을 잰다.

 

3시 접종자의 대부분이 접수를 마친 뒤 백신의 뚜껑을 따는 듯, 어느 순간부터 한 명씩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접종 자체는 금방 끝났지만, 나는 말번에 가까웠기 때문에 조금 기다려야 했다.

 

이 사이에 두 가지를 알았다. 하나는 접종율이 98%에 달한다고 해도, 잔여백신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열이 난다던가 몸 상태가 안 좋아서, 제 시간에 병원에 방문한다 해도 접종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어플을 통한 예약, 즉 '백겟팅'을 뚫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다. 아직 각 병원들에 대기명단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병원에 전화예약을 한 사람들에게 먼저 연락을 하는지, 내가 기다리는 잠깐 동안에도 나처럼 전화를 받고 온 사람이 꽤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도 여러 사람에게 '자리가 남았다'고 전화를 했다. 아마 어플에 물량(?)이 풀리는 건 각 병원이 대기자를 털고 나서가 아닐까 싶다. 라고 이미 백신 맞은 애가 이런 소리를 하면 뺨을 때리려고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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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명이 들어갔다 나왔다 한 뒤 드디어 나를 불렀다. 사실 백신 접종이라고 해도 여느 진료와 다르지 않다.

 

진료실에 들어가 -> 의사에게 주의사항 등을 듣고 -> 간호사에게 주사를 맞는다

 

다만,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오래 걸렸다. 두 번째 과정인 '주의사항'이 더 길었기 때문이다.

 

'접종한 지 10시간이 지나면 아프기 시작한다'

'젊은 여성들이 특히 아파한다. 아는 의료진도 그랬다'

'48시간에서 72시간까지 아픔이 지속된다'

'타이레놀이 짱이다'

 

말을 줄이면 '굳이 맞아야겠니?'였지만, 시방 나는 일주일을 기다린 상태였다. 거기다 1시간 거리를 40분 만에 도착하기 위해 전력질주까지 한 터라 땀에 쩔어있었다. 들인 고생이 있는데 여기서 빠꾸하면 지구 제일 양아치로 자란 아이의 체면이 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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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종 받고 나면 금방 문자가 온다

2차까지 알아서 잡아줌

 

그렇다, 저는 이렇게 백신을 맞았다.

 

 

부작용, 의사 선생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상이 생길 수도 있으니 주사 맞고 15분~20분 정도 병원에서 대기하다가, 특별히 열이 오르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귀가했다.

 

당일은 정말 괜찮았다. 혹시나 해서 타이레놀을 섭취하긴 했지만, 없어도 될 것 같았다. 크게 열이 오르는 느낌도 없었고, 머리도, 목도 아프지 않았다. 주사를 맞은 왼쪽 팔만 조금 아팠는데, 그것도 주사 맞은 주변만 그랬지 팔을 못 쓰겠다던가 마비가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 접종 다음날: 아프긴 아픕디다

 

아픔은 주사 맞은지 10시간이 지나가는, 당일에서 다음날로 넘어가는 새벽에 시작되었다. 하루 7~8시간은 자야하는 나는 베개에 머리만 누이면 귀신 같이 잠들어버리는 몸을 갖고 있다. 큰 소리가 난다거나 누가 흔들지 않는 이상 새벽에 깨는 일이 거의 없는데, 이 날은 무려 아파서 깼다. 온수매트를 켰음에도 추웠고, 삭신이 쑤셨다. 특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여기에 체온이 높아진 탓인지 모기놈들까지 찾아와서 왕창 물어댔다(원래 맛집이긴 함).

 

머리는 깨질 것 같고 상체는 아리고 하체는 간지러운 상태에선 머리만 대면 자는 애도 잠을 설칠 수밖에 없다. 결국 오전 5시에 깨는 기염을 토했다가 수면부족에 정말 토를 할까봐 어떻게든 6시까지 침대에 부비적대다 몸을 일으켰다. 혹자는 새벽에 일어나서 약을 먹지 그랬냐고 하던데, 원래 새벽에 깨는 걸 엄청나게 싫어하는 데다 새벽에 일어나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자체가 지는 것 같았으므로(대체 누구에게) 근성으로 버텼다.

 

다행인 건 앉아있으면 머리가 좀 덜 아팠다는 것이다. 그리고 타이레놀이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다.

 

머리 아프면 안 되니까 등에 쿠션을 댄 채로 침대 위에 앉아있으면 이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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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정체성을 찾고 싶진 않았다고...

 

AZ 백신의 부작용은 여성과 젊은 층에서 가장 심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그런데 얘는 여성X젊은 층이다. 독감 백신을 맞고도 꽤 앓았던 터라 고생을 하나도 하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치 않았지만, 시간별로 타이레놀도 꼬박꼬박 챙겨먹고 있는데도 아플 건 아니지 않나? 온몸이 뜨끈뜨끈하고 접종 받은 왼쪽 팔 자체를 못 쓰겠고, 어깨는 누가 올라탄 것처럼 무겁고, 목구멍이 턱 막힌 것처럼 침 삼키기도 힘들 일인가? 코로나 '백신'이 아니라 코로나 그 자체를 맞은 거 아닐까 조중동식 의심이 들 일인가?

 

다들 이런가 싶어 후기를 찾아봤더니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대체로 같은 증상을 호소하고 있었다.

 

"몸이 부르르 떨리게 추웠음"

"두통이 심함. 골 깨지는 줄"

"추운데 더웠음"

"두드려 맞은 듯 근육통"

(드물게 나타나는 증상에 '혈전'이 있다는데, 나도 그렇고 후기에서도 혈전이 생겼다는 내용은 보지 못했다)

 

가장 나쁜 위로법이라고는 하지만, 누가 "남들 다 그래"라고 하면 열 받아 하면서도 참아내고 마는 게 접종률 98%의 민족이다. 의사 아저씨(어느새 아저씨로 호칭이 변경됨)가 48시간까지는 아플 거라고 했으니 빨리 시간이 지나길 기다리며 타이레놀을 삼켰다.

 

 

- 접종 후 48시간: 완쾌의 아이콘이 되다

 

접종 당일인 목요일엔 잠을 설쳤지만,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밤엔 매우 잘 잤다. 심하게 잘자서 여느 때보다 늦게 일어난 참이었다. 푹 자서 그런지, 두통, 오한 등은 사라졌고, 미열과 접종 부위 통증 정도만 남아있었다. 이제 나은 것 같다는 안도감(자만)이 들었지만 타이레놀의 위엄을 몸소 느낀 바, 약만은 꼬박꼬박 챙겨먹었다. '백신 접종 때문에 타이레놀 품귀현상이 일어날지 모르니 사재기해둬라'는 말이 우스개 소리가 아니었다. 타이레놀 만드는 회사의 백만주주가 되는 게 좋겠다.

 

타이레놀의 힘을 빌긴 했지만 접종 후 48시간이 지나자, 철인 3종경기도 나갈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해졌다. 굉장히 의외겠지만 며칠 운동을 하지 못해 좀이 쑤신 상태였는데(헬ㅊ 아님), 이 상태라면 당장 턱걸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객기로, 제자리에서 살짝 뛰어봤는데 뇌와 전정기관이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괜찮아진 것 같아도 나대지 말고 타이레놀을 생활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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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더 지나, 남들보다 먼저 접종했다는 우월감에 빠져있을 즈음엔(마스크 잘 하고 다니는데 우월감만 든다는 것임), 이런 문자가 온다. 접종하고 3일이 지났다고 질병관리청에서 보내준 문자로, 요는 이상반응이 있으면 얼른 신고를 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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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자신의 건강상태를 체크하라는 문자가 온다. 자신의 건강상태를 알리는 겸, 빅데이터를 위해 정보를 모으는 용도로 보인다. 나는 이상반응 중 '발열(38.4도 이하)'과 '접종부위 통증'이 있다고 체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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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성실하게 대답하는 타입

 

 

 

접종으로부터 72시간도 지난 현재, 미열도 없는 상태에서 느낀 백신은 '문제 없음'이다.

 

지금은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꾼 것 같지만 접종 후 조중동 이하 수구언론들이 말하는 거시기함 같은 건 없었다. 두통, 발열 등 부작용은 독감 예방 주사를 맞고도 겪었던 일이다. 코로나 백신이 그 강도가 조금 셀 뿐인데, 코로나19가 독감과는 비교불가할 정도로 강력한 바이러스라는 걸 생각하면 백신도 그만큼 센 게 당연하다.

 

ㅅ신문의 어느 동갑 남자 기자는 전에 백신 욕해놓고 누구보다 빠르게 백신을 맞았던데(심지어 '부작용 걱정을 덜어내고 항공권 검색을 시작했다'며), 욕하던 사람도 헐레벌떡 뛰어가서 맞게 하는 게 이번 백신이 아닌가 싶다.

 

8월로 잡힌 2차 접종 후에도 아프지 않을까 조금 두렵긴 하지만, 1차보단 2차가 여러모로 덜 하다고 한다. 이렇게 된 거 얼른 8월이 왔으면 좋겠는 마음이다. 물론 8월에 내 생일이 있어 그렇다(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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