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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 요약

 

지금의 미얀마. 개별 국가들의 제재가 있긴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대표적 국제기구인 UN이 적극적 개입을 못 하고 있는 상황이다. 군부의 강경함은 변함없고, 갈수록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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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직후, 미얀마 민주진영은 군부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국민통합정부(National Unity Government, NUG)라는 과도정부를 수립했다. 윈민이 대통령으로 추대되고, 아웅 산 수찌가 국가 고문으로 추대되었다. 이전 NLD 행정부 인사를 대부분 이어받았다.

 

쿠데타가 일어나고 과도 정부가 구성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엔 과거에 볼 수 없던 모습이 있다. 과도 정부에서 소수 민족 목소리가 많이 반영되고 있다. 더 놀라운 점은 거기에 카렌족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이다.

 

카렌족은 역사적으로 미얀마 주류 세력인 버마족과 지독한 갈등을 빚으며, 전쟁도 많이 했던 소수 민족이다. 미얀마에서 정부군 다음으로 강한 무장세력(카렌민족해방군)을 소유하고 있다.

 

일찍이 19세기~20세기 초의 영국 식민시절, 영국의 '분할통치(divide and rule)'로 인해 갈등이 시작되었다. 미얀마 독립 전후 시기부턴 연방 자치주가 아닌 독립국가 건설을 원하는 카렌족과 그걸 용인할 수 없는 버마족의 입장 차이로 인해 오랜 기간 전쟁이 이어져 오고 있다.

 

연방제로 있으며 차별받는 이유도 있지만, 카렌족이 독립을 원하는 더 큰 이유는 이미 그들만의 ‘민족 정체성’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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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민족해방군(KNLA)

 

1962년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시작되고,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카렌족과 미얀마군의 내전이 본격화됐다. 내전으로 인해 미얀마군이 카렌주에 밀고 들어오며 많은 난민이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카렌족이 거대 난민촌에 살고 있다.

 

생생한 현장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카렌민족연합 5여단 대변인 Mahn Mahn 장군과 온라인 인터뷰를 진행했고, 과거 현지 조사 때 만났던 Zipprorah 전 카렌민족연합 부통령의 생각을 기사에 담았다. (카렌족 지도자로 인터뷰에 응했으나, 두 사람의 응답이 반드시 카렌족 전체를 대표하는 건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1편 링크)

 

 

카렌족과 버마족 사이의 깊은 불신

 

역사적으로 카렌족과 버마족(특히, 미얀마군) 사이엔 깊은 불신이 있다. 그렇다고 카렌족이 그 불신의 감정에 기반해 무조건 버마족을 미워하는 건 아니다. 그들은 감정의 문제가 아닌, 그동안의 행적을 기반으로 버마족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카렌족은 과거 일련의 휴전 및 평화협정 과정에서 미얀마 중앙 정부 및 땃마도(미얀마 정부군)를 신뢰할 수 없음을 여러 차례 표명했다.

 

필자는 지난 2019년 2월 태국-미얀마 국경지역 매솟에서 현지조사를 하며 카렌민족연합 전 부통령 Zipporah를 만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 내용을 본 기사에 담았다. 그녀의 말을 통해 카렌족의 입장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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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pporah 전 부통령은 카렌민족연합의 사무총장직(2008-2012)을 맡았고, 그 후 부통령(2012-2016)을 역임했다. 부통령 재직시기 미얀마 내에 민주화 바람이 불었고, 당시 테인세인(Thein Sein) 미얀마 정부는 소수민족과 전국적휴전협정(Nationwide Ceasefire Agreement, NCA)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Zipporah 전 부통령은 휴전협정에 대표단으로 참여하는 등 당시 카렌민족연합의 목소리를 대변했던 인물 중 한 명이다. 2015년도 총선이 치러지기 직전, 당시 휴전협정엔 총 8개의 소수 민족 단체가 서명했다. 카렌민족연합도 그중 하나였지만, Zipporah 전 부통령은 협정 서명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당시를 회상하며, 그녀는 카렌민족연합과 미얀마 중앙 정부의 관계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카렌민족연합의) 몇몇 지도자들은 테인 세인 대통령, 아웅 민(휴전협정에서 미얀마 정부 측 중재자) 등 미얀마 정부, 군부 정권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미얀마 정부가 세워 놓은 계획에 따르고자 한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경계해야 하고 신중해야 한다. 유연하지만 확고한 기준을 세우고 그들과 협상에 임해야 한다.”

 

그녀는 당시 휴전협정을 하려는 의도는 소수민족 무장단체들을 무장해제 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녀는 정치적 협상을 위해선 무기를 내려놓아서는 안 되며, 그래야만 소수 민족 단체들이 협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각자 다른 이해관계 속, 그들(카렌족, 민주정부, 군부)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나

 

휴전협정은 잘 진행되지 않았다. 2015년 아웅 산 수찌 정부가 들어서며 협정이 잘 진행돼 소수 민족과 긴장 관계가 해소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기대와 달리 교착상태에 빠지게 된다.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원인은 수찌 정부가 군부의 눈치를 보며 주체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군부와 소수 민족 단체들이 원하는 바가 전혀 달랐다. 대표적으로 갈등을 빚었던 문제는 연방제 보장, 국경수비대 구성 문제 등이었다. 소수 민족 단체는 자신들에게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실질적 연방제를 약속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그다음 일들에 대해 협상을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군부는 우선 소수 민족 무장단체들의 무장해제와 함께 미얀마 국경수비대로의 편입을 주장하였다. 수찌 정부는 이 세력들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한 가지 알아둬야 할 점은 미얀마에서 수찌 정부, 군부의 관계는 우리나라처럼 정부 안에 군대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른 세력으로 봐야 한다. 이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독자는 ‘2021 미얀마 쿠데타 시리즈(링크)’를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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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찌와 Zipporah 전 부통령

 

계속되는 교착상태에 수찌 정부가 들어선지 3년 후인 2018년, (정부, 미얀마 정부군, 소수 민족 간) 고위급 정상회의 이후 카렌민족연합은 평화협정 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관련 절차는 모두 중단되었다.

 

그러다 이듬해인 2019년에는, 카렌주 파푼(Papun) 지역에서 도로 건설로 인한 갈등으로 미얀마군과 무력충돌이 벌어졌다. 왜 사회간접자본인 도로 건설을 군대가 하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미얀마군은 해당 지역 도로가 낙후되어있어 개발을 위해 보수 및 확장공사가 필요하다는 논리로 파푼 지역에 들어와 도로 공사를 강행했다.

 

파푼은 카렌민족연합의 군대 ‘카렌민족해방군(KNLA)’에서 관할하는 지역으로 전통적인 분쟁지역이다. 그중에서도 Mahn Mahn 장군이 속해있는 5여단 관할 지역이다.

 

미얀마군은 도로 공사를 하며 토지를 강제로 몰수하고, 근처 마을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는 등의 조치를 했다. 이로 인해 무력충돌이 한 번 있었고, 그 뒤로 경색국면이 지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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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겨레>

 

몇 달 뒤, 수찌 정부는 치앙마이에서 카렌민족연합, 샨족복원협의회(RCSS) 등 전국적휴전협정에 서명한 소수 민족 대표들을 만나 조속한 평화 협상 재개를 논의했다.

 

(카렌민족연합은 2018년에 공식적인 평화협상 채널에선 빠졌지만, 수찌 정부와 지속해서 물밑협상을 진행했었다. 또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무력충돌과 평화 협상을 투 트랙으로 진행했다. 이러한 이유로 미얀마군과 무력충돌하여 경색국면을 맞이한 상황에서도 몇 달 뒤, 수찌 정부를 만나 평화 협상 재개를 논의할 수 있었다)

 

논의는 진전을 보이는 듯했다. 논의의 후속 조치로 카렌민족연합의 사무총장은 휴전 협정 이행 체계 마련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고, 영구적 휴전(permanent ceasefire)과 연방주의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2020년 1월, 잠잠하던 파푼 지역 도로 공사가 다시 진행되며 카렌민족연합 5여단과 미얀마군이 다시 충돌하였다. 카렌의 사무총장은 미얀마군이 휴전 협정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판하며, 다시 경색국면을 맞이했다.

 

몇 달 뒤, 8월 ‘21세기 삥롱 회담(21st Century Panglong Conference)’이 열렸다. 다가오는 11월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평화 협상과정은 재개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미얀마 북부 종족 연합은 회담에서 제외하는 등 절차의 진정성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다시금 맞이한 경색국면에서 평화협상이 재개된 것에는 정치적인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수찌 정부가 소수민족 화합과 평화에 정말 관심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로힝야 사태’에 대해서도 관망적 태도를 취했고, 군부의 행태를 옹호하는 발언까지 한 수찌다. 수찌 정부가 소수민족들과 평화협상을 계속 진행하려는 이유는 미얀마 민주정권이라는 탈을 쓴 정부로서 국제사회에 보여줄 마땅한 제스쳐가 필요했을 것이고, ‘21세기 삥롱 회담’을 개최한 것도 앞의 이유에 더해 그동안 소수 민족 관련 문제에서도 별다른 진전을 내지 못하였기 때문에 총선을 앞두고 무엇인가 진전을 보여야 한다는 위기감의 발로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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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후, 그들(카렌족, 민주정부, 군부)에겐 무슨 일이 있었나

 

카렌족과 미얀마군의 갈등은 현재 진행형이다. 비교적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총선은 끝났지만, 카렌주에서 카렌민족해방군과 미얀마군 간의 충돌이 또 있었다. 총선 한 달 뒤인 2020년 12월, 카렌주 북부에서는 10,000여 명의 카렌 마을 주민들이 모여 미얀마군이 하는 도로 공사를 중단할 것을 요구, 시위를 벌이기도 하였다.

 

그로부터 두 달 뒤 군부 쿠데타가 발생(2월 1일)하며 두 집단의 대립은 더욱 심화되었다. 얼마나 크고 작은 충돌이 있었는지 정확히는 모르나, 시간이 갈수록 충돌은 격화되었다. 그러던 중 3월 27일, 카렌민족해방군은 미얀마군이 주둔하던 Thi Mu Hta 지역의 전초기지를 장악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군부는 3월 27일 본격적으로 카렌주에 공습을 시작했다(관련기사 보도). 이후 상황은 내전으로 치닫고 있다. Mahn Mahn 장군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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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7일 군부의 첫 공습이 시작된 이후 거의 매일 같이 공습이 이어지고 있다. 첫 공습부터 4월 3일까지 계속된 공습으로 군인, 민간인을 포함해 사상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다. 정확한 공습의 횟수와 사상자의 수는 밝히지 않겠지만, 매일 같이 공격을 하고 있으며, 심지어 어젯밤(5월 1일 토요일)에도 군부의 공습이 있었다.”

 

(그동안 군부와 가장 강경하게 싸워온 카렌민족연합의 입장에서 쿠데타를 통해 군부가 다시 정권을 잡는 것은 절대 반가울리 없을 것이라고는 생각하나, 왜 먼저 미얀마군의 전초기지를 장악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에 관한 질문을 했었지만, 군사 기밀에 해당하는 것인지 Mahn Mahn 장군으로부터 정확한 대답을 들을 순 없었다)

 

공습이 시작된 이후 많은 수의 난민과 국내 실향민이 발생하고 있으며,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태국 정부는 약 90,000여 명의 난민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Mahn Mahn 장군의 말에 따르면 국경을 넘지 않은 국내 실향민의 수도 약 30,000여 명에 이른다고 했다.

 

지금까지도 군부의 폭력은 계속되며 많은 사상자가 나오고 있다. 국민의 인권이 짓밟히는 슬픈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위기가 기회라고 했던가. 역설적이게도 지금의 쿠데타 상황이 군부에 대항하여 모든 세력들이 뭉치며, 미얀마 내 여러 민족들 사이에 지속된 갈등과 반목을 청산할 기회가 되고 있다. Mahn Mahn 장군의 말이다.

 

“현재 군부 쿠데타로 인해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군부 통치를 두려워하는 상황은 분명 좋지 않다. 잘못되었다. 아이러니하겠지만 소수 민족의 입장에 지금은 분명히 좋은 기회이다. 독립 국가로서 버마가 설립된 후 약 7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소수 민족은 자치권을 포함해 소수 민족으로서 버마족과 대등한 권리를 가진 위치에 서길 원해왔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것들이 중앙 정부, 땃마도(미얀마군)에 의해 결정이 되고 그들을 위주로 권력이 구성된다. 소수 민족의 입장에서 이러한 지지부진한 문제 해결에 대해 보다 근원적인 방법을 찾기에는 지금만큼 적당한 시기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발발한 지 4개월이 지나간다. 국내외의 지속적인 압력에도 불구하고 쿠데타 세력이 주도하는 국가행정위원회는 쉽사리 권력을 놓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얀마 관영 신문 <The Global New Light of Myanmar>에서는 매일 같이 정상적으로 국가가 돌아가고 있음을 과시하고 있으며, 많은 지면을 2020년도 총선 결과에 대한 검수에 할애하고 있다. 거의 매일 같이 발표되는 선거 검수 결과는 지난 총선이 부정하게 치러졌다는 군부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Mahn Mahn 장군은 이렇게 말했다.

 

“이 기회에 이미 소수 민족 연합이 작성한 연방헌법을 토대로 새 정부 구상을 논의해야 한다. 연방헌법은 이미 2000년에 1차 초안을, 2008년도에 2차 초안을 작성했다.”

 

“국민통합정부와 그 연방민주주의 헌장을 지지하지만, 지금부터 새 헌법에 대해 논의와 토론을 시작한다면 오히려 군부 쿠데타 세력에 시간을 벌어주게 된다. 신속하게 소수 민족의 도움을 받아 현실적인 연방국가 설립에 신경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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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민족연합 의장 '소 무투 사이 포'

 

최근 카렌민족연합 의장이 군부 쿠데타 세력과 정치적 협상을 해야 된다는 발언을 하여 카렌족 커뮤니티 내에서 상당한 파장이 있었다. 아무래도 정치적 수장을 맡고 있는 입장에서 발언한 것으로 보이나, 쿠데타 정권과 협상을 한다는 것은 그들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기 때문에 논란이 될 수밖에 없었다.

 

국민통합정부는 지난 5월 20일 새 헌법 제정을 위한 위원회를 설치했다. 새 연방헌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공감을 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그 작성 방식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연방민주주의 헌장 외에는 새 헌법에 대한 골자가 나온 것이 없다. Mahn Mahn 장군의 인터뷰에서 보듯이 소수 민족의 의견을 반영한 연방 헌법안이 어느 정도 수용될지 그래서 어떻게 흘러갈지는 좀 더 지켜볼 문제다.

 

 

지금이 오히려 새로운 미얀마로 태어날 기회일 수 있다

 

미얀마의 카렌족을 연구함에 있어 미얀마의 과거 정치, 사회 상황은 많은 제약을 가해왔다. 이에 다수의 연구자들은 비교적 접근이 가능한 태국-미얀마 국경 지역이나 태국에 거주하는 카렌족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정체성, 문화, 민속, 역사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때문에 미얀마에는 다양한 카렌족이 있음에도 통상 “카렌족”이라고 칭해지는 민족 집단은 태국 국경과 인접한 미얀마 카렌주 동부에 거주하고, 기독교를 믿으며, 무장항쟁을 포함한 카렌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카렌족”으로만 종종 대표되곤 한다.

 

범카렌(Pan-Karen) 정체성 형성은 소수의 카렌족 엘리트에 의해 주도되었다. 즉, 카렌민족주의 운동은 사회 하위 계층으로부터 시작되어 종족적 정체성을 쌓아 올린 것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카렌족 엘리트의 민족 국가 건설에 대한 염원이 더 주요한 동력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형성된 민족 정체성이 카렌족 전체에게 퍼져 독립된 민족 국가 건설을 꿈꾸었던 것이다.

 

지난한 대립의 역사는 오히려 이번 기회에 청산이 될 수도 있다. 아웅 산 수찌 정부에서조차 평화 협상을 적극적으로 이끌지 않았고, 로힝야 사태에는 침묵했다. 이러한 태도를 본다면, 왜 소수 민족들은 저항하는지를 알 수 있다.

 

아웅 산 수찌 본인 역시 미얀마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다수의 정체성(버마족&불교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녀의 국가-사회 인식 근저에는 현재 다수 지배 계층의 사고방식이 깔려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때문에 아웅 산 수찌의 독단적이고 권위주의적 행태는 한 측면에서는 미얀마 군부가 국가, 국민, 사회에 대해 인지하는 양식과 비슷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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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020년 총선에서 NLD의 압승은 오랜 시간 미얀마 사회가 군부에 저항해왔다는 부분을 제한적이나마 정치적 제도라는 틀 아래에서 보여준 부분이다. 하지만, 여전히 국가와 국민 그리고 사회의 관계를 규정하는 인지 체제는 다수의 논리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지배적이고 폭력적이다. 고착화된 미얀마의 이런 사회 구조적 관계를 재정립하기에는 지금처럼 좋은 기회는 없을 것이다. Mahn Mahn 장군의 말처럼 말이다.

 

문기홍 (시드니대학교, 정부 및 국제관계학과 박사)

 

 

 

Reference(자세한 내용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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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theborderconsortium.org/

 

-The Irrawaddy. (2019). Myanmar Govt, NCA Signatories Eye Resumption of Formal Talks Next Month. The Irrawad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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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HCR. (2007). Thailand: More than 20,000 Myanbmar refugees resettled in third countries.

https://www.unhcr.org/news/briefing/2007/12/475e6cdf2/thailand-20000-myanmar-refugees-resettled-third-countrie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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