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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까놓고 말하자면, 한미 미사일 사거리 지침은 일종의 ‘타협안’이었다. 최초 주한 미군 사령관 스틸웰(재임 1973-1976)과의 약속도, 

 

“야, 우리도 살아보겠다고 그러는데, 너무 빡빡하게 하지 말고 이 정도에서 타협하자. 우리가 중국하고 싸우겠냐, 소련한테 엉기겠냐? 이 정도 선까지 양보 할 테니 좀 봐줘라.”

 

라고 일정 수준의 ‘양해’를 구한 거였다. 그 뒤로 신군부 쪽에선 이 양해를 공식화해서, 

 

“야, 너네들이 하지 말란 건 안 할게. 그러니까 우리 인정해 줘라. 남들이 쿠데타다 뭐다 말들 많은데, 너희들이 한 번 불러주면 우리 한고비 넘긴다. 한 번만 봐줘라. 응?”

 

이렇게 해서 공식화가 된 거다. 정말 재밌는 게 한반도의 운명과 관계된 수많은 ‘숫자’들은 정말 별거 아닌 이유로 만들어지고 사라진 게 많다. 38도 선이 그랬고, 한국군 숫자 60만의 경우도 그렇고, 이 미사일 사거리 지침도 그렇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미사일 지침의 제약을 줄여나가다

 

미국은 어쨌든 한국의 미사일에 족쇄를 걸고 싶어서 전두환-노태우 시절까지 꾸준히 압박을 가했었다. 그러다 김대중 정부 시절 북한의 미사일 개발에 따른 부담감 때문에 1차 개정에 들어가게 된다. 때마침 MTCR도 가입하고, 한국과 미국은 모양새 좋게 『사거리 300km, 탄두중량 500kg을 초과하는 고체 로켓을 개발하지 않는다』고 협의를 본 거다. 

 

이 1차 개정의 효과는 상당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1차 개정으로 군사적, 상업적으로 진일보한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우선 군사적으로 보자면, 에이테킴스(ATACMS)를 합법적으로 장비할 수 있게 됐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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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테킴스(ATAC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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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270 MLRS

 

 

북한의 군사 도발에 맞서기 위해 한국은 급거 M270 MLRS를 도입하게 됐는데, 여기에 장착할 수 있는 탄도 미사일이 바로 에이테킴스였다. MLRS가 말처럼 Multiple Launch Rocket System. 즉, 다련장 로켓이라서 12연장 227미리 로켓을 발사한다고‘만’ 생각할 수 있는데, 사거리 300킬로미터짜리 로켓도 발사할 수 있다. 그게 에이테킴스였다. 우리나라가 MLRS를 도입했다는 건 에이테킴스도 가져오겠다는 소리고, 그렇다면 미사일 사거리 문제가 거론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광명성 1호 발사 이후 비등해진 ‘우주’에 대한 여론몰이가 나오면서 상업적 로켓 개발에 대한 제한이 사라지게 됐다(액체로켓에 한정이다). 즉, 나로호 발사에 대한 기틀을 잡은 거다. 

 

 

점점 미사일 지침의 족쇄를 벗는 대한민국 (이명박, 문재인 정부)

 

2차 개정을 한 이명박 정부

 

이 1차 개정이 있고 나서 10년이 흐른 2012년 이명박 정부 때 2차 개정에 들어가게 된다. 이명박 정부 당시에 터졌던 수많은 군사적 충돌을 생각해 보라.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사건 등등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이명박 정부는 미사일 사거리 지침의 2차 개정에 들어갔다. 2차 개정의 골자는 『사거리 800km, 탄두중량 500kg을 초과하는 고체 로켓을 개발하지 않는다』였다.

 

이걸 기반으로 나온 게 현무 2C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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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무 2C / 이미지 출처-<중앙일보>

 

 

문재인 정부 시절에 나온 3차, 4차 개정안은 눈여겨봐야 하는 게, 바로 탄두중량의 제한을 극복했다는 거다. 

 

『사거리 800km를 초과하는 고체 로켓을 개발하지 않는다』

 

‘트럼프 덕분인가?’란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트럼프가 내키는 대로 이걸 결정한 건 아니겠지만, 트럼프 특유의 그 느낌적인 느낌이 있지 않은가? 문재인 대통령이 협상으로 그 틈을 파고든 게다.  

 

어쨌든 2017년 3차 개정을 통해 대한민국은 탄두중량에 대한 족쇄를 벗어났다. 이건 정말 커다란 의미를 가지는 게, 우리가 ‘핵을 가지게 된다면’이라는 ‘전제’에서다.

 

2020년 연초에 군사 관련으로 가장 뜨거운 이슈를 몰았던 주제 중 하나가 바로 현무 4 미사일의 개발 소식이다. 탄두중량 4톤급(사거리 500킬로미터), 탄두중량 2톤급(사거리 800킬로미터) 미사일을 한국군이 확보했다는 뉴스가 나왔고, 이후 한 달 뒤인 2020년 3월 현무 미사일 발사가 공식적으로 뉴스에 나오기 시작했다.  

 

탄두중량이 중요한 게 재래식 탄두일 경우에는 지상 목표물이 아니라 지하의 벙커를 타격하는, 흔히 말하는 벙커버스터용으로 활용이 가능하다는 거다. 탄두중량 500킬로그램으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런데, 탄두중량이 무제한이 되는 경우에는 지하를 관통하고 들어가는 탄두를 달 수 있다는 거다. 물론, 다른 의미로서도 중요하다. 

 

벙커버스터의 원리.jpg

 

만약, 아주 만약에... 한국이 핵무장을 고려한다면 우리나라는 탄두만 있으면 된다는 거다. 이미 미사일은 있으니 말이다. 탄두중량 무제한은 언제든 우리나라에 또다른 옵션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언제나 말하지만, 페이로드가 넉넉하면 넉넉할수록 사용할 수 있는 옵션은 다양해진다. 현무 4가 그 좋은 예이다.

 

(딱 보면 알겠지만, 한국군이 의뭉스러운 게 미사일 사거리 지침이 있어도 뒤에서 할 건 다 한다는 거다. 사거리 지침이 개정되고 3년도 안 돼서 현무 4 시험발사를 한 걸 보면 대충 짐작이 갈 거다. 그 이전부터 한국군은 사거리 지침을 아슬아슬하게 넘기며 지침을 지키는 것처럼 하다가 미사일 개발은 다 해놓는다는 말들이 많았다)

 

그리고 2020년 4차 개정을 하게 된다. 

 

『사거리 800km를 초과하는 군사용 고체 로켓을 개발하지 않는다』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 그렇다. 민간용 로켓은 사거리 제한이 폐지된 거다. 1차 개정 때 민간의 로켓 개발. 그중에서도 액체연료는 무제한으로 허용했지만, 고체연료는 계속 묶여 있다가 비로소 4차 때 해제된 거다. 

 

여기서 잠깐, 고체연료와 액체연료의 차이에 대해 설명해야겠는데, 액체연료는 우리가 흔히 아는 ‘엔진’의 그것을 생각하면 된다. 액체 상태의 연료, 연료에 불을 붙게 하는 산화제를 각각 다른 공간에 주입해서 터트리는 거다. 연료로는 주로 등유를 쓰고, 산화제로는 질산, 과산화수소 같은 걸 쓴다. 이걸 연소실에서 섞은 뒤에 불을 붙이면 나간다. 액체연료 시스템은 이게 복잡하고 정교해야 한다. 당장 부품 냉각, 순환, 가스 압력과 분출 조절 장치 등등 시스템 자체가 복잡하다. 대신, 스페이스 X에서 나온 팰컨 시리즈처럼 로켓을 재활용할 수 있다. 

 

고체 액체연료.jpg

 

그렇다면 고체로켓은 뭘까? 간단하다. 연료가 로켓이다. 

 

고체가 어떻게 연료가 되는지 언뜻 이해가 안 갈 텐데, 폭탄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다이너마이트의 원료인 니트로글리세린이 고체연료이다. 이 고체 추진체에 알루미늄 같은 분말을 섞어 놓으면 고온으로 연소하면서 가스가 만들어지고 이게 분사되면서 추진력을 얻는 거다. 

 

고체연료를 사용하면 좋은 점은, 구조가 단순하고 연료를 보관하고도 오랫동안 대기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비용이 싸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기에 군사용 로켓의 경우는 대부분 고체연료를 쓴다. 

 

이 상업용 로켓의 제한을 푼 게 4차 개정인 거다. 이제 한국은 군사적으로 완벽하게 사거리나 탄두에 대한 제한이 없는 로켓을 개발할 토대를 닦은 거다.

 

(민간용 고체로켓의 제한을 무제한으로 풀어버렸다는 건, 군사적으로 반쯤 다 허용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인공위성을 실어 나르는 로켓에 탄두만 바꿔 달면 그게 대륙간 탄도탄이다. 4차 개정에서 이미 한미 미사일 사거리 지침은 반쯤 폐지 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좁혀가는 대중국 미국 포위망, 한국의 미사일 지침 폐지

 

그리고 대망의 2021년. 미사일 사거리 지침이 드디어 폐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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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 간단하다. 사거리 지침이 폐지됨으로써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생각해 보면 된다. 

 

당장 생각나는 게, 

 

“북한처럼 우리나라도 대륙간 탄도탄을 만들자!”

 

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대륙간 탄도탄은 ‘핵’이 없으면 쓸모가 없는 물건이다. 그리고 이 녀석은 대기권 재돌입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난점이 있다. 굳이 핵을 개발하지 않을 거라면 주변의 따가운 시선까지 의식하면서 기술 개발의 난이도가 높은 대륙간 탄도탄을 개발할 필요는 없을 거다. 가장 현실적인 게, 

 

“사거리 2,000~3,000킬로미터짜리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개발한다.”

 

라는 것일 거다. 이 경우 우리나라가 가지는 옵션은 뭘까? 

 

“중국 내륙을 타격할 수 있다.”

 

가 된다. 이미 일본이나 북한은 지금 가지고 있는 미사일로도 타격할 수 있다. 사거리 지침의 핵심은 중국의 내륙을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만들 수 있다는 거다. 이게 가지는 함의는 크다. 미국의 보기에도, 

 

“한국이 대륙간 탄도탄을 개발할 확률은 지극히 낮다. 현실적으로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개발할 건데... 이 경우에는 중국에게 충분히 이빨을 들이밀 수 있을 거다.”

 

란 계산이 섰을 거다. 까놓고 말해서 사거리 800킬로미터짜리 미사일로도 충분히 북한과 맞서 싸울 수 있다. 그런데 그 이상을 바란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더구나 ‘민간’의 경우는 이미 4차 개정 때 모든 걸 풀어줬다. 

 

즉, 민간에서 말하는 우주개발을 위한 목적도 아니다. 그렇다면 사거리 지침의 폐지가 가지는 의미는 딱 하다가. 

 

“중국용이다.”

 

물론, 대외적으로 적으로 볼 게 중국 하나만은 아닐 거다. 러시아도 있고, 일본도 확률은 높지 않지만 어쨌든 싸워야 할 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거리 지침이 폐지되는 현실적인 이유 중 가장 큰 건, 역시 ‘중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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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클릭하면 확대 / 이미지 출처-<한겨레>

 

한국이 핵개발 옵션을 선택할지 안 할지에 대한 건 아무도 모른다. 다만, SLBM 발사 시험을 하고, 사거리 제한을 폐지하는 걸 보면 한번 의심은 해볼 만하다. 

 

여러 옵션 중에서 가능성이 낮지만, 어쨌든 그런 생각을 품을 수는 있을 거다. 이 핵개발 옵션을 제외하더라도 중거리 탄도탄을 가지고 있는 건 중국에게 꽤 큰 의미가 있다. 개발 난이도가 높은 대륙간 탄도탄이 아니더라도 중국에게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륙의 주요 거점 몇 군데를 주요 목표물로 설정해 놓고, 유사시에 반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카드는 쥐게 된다는 거다.

 

(중국과 싸워 이긴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중국이 때린다면 우리도 반격할 수 있는 수단 한 두 개는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게 어느 나라든 죽을 때 죽더라도 그냥은 죽을 수 없지 않은가)

 

미국도 이런 계산 속에서 미사일 사거리 지침을 폐지했을 거라 생각한다. 중국의 대두 앞에서 서서히 미국의 포위망이 하나둘씩 구체화 돼가는 걸 느낄 수 있는 시간. 

 

어쨌든 한국은 경제력, 문화력은 물론, 국방력까지, 어떤 외교 테이블에 앉아 있어도 만만치 않은 나라로 발돋움한 2021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