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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러시아가 몰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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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국방부 장관과 총참모장에게 육군의 억지력 부대를 특수 경계 태세로 둘 것을 명령한다."

 - 2월 27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발언

 

여기서 말하는 '억지력 부대'는 바로 '핵무기' 억제력을 의미한다. 즉, 푸틴은 핵무기를 가지고 협박을 하기 시작한 거다. 이 뉴스를 접하자마자 든 생각,

 

"러시아가 몰렸구나."

 

시간은 우크라이나 편이다. 당장 전 세계적으로 경제 제재가 시작됐다. 여기까지는 예상 범위 안이다(2014년 이후 러시아는 치밀하게 경제 제재에 버틸 수 있는 내구성을 재고해 왔다). 이것보다 더 무서운 게 '라스푸티차(Распутица)'다.

 

2. 라스푸티차와 푸틴의 계획 

매년 10월 초나 3월 말이면, 해빙기에 토양이 '뻘밭'이 되는 걸 라스푸티차라고 한다. 히틀러가 소련 침공 당시 이 라스푸티차에 당해서 '바보'가 됐다.

 

"그럼 포장도로로 가면 되잖아?"

 

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럼 진격로가 제한된다. 그리고 매복 공격의 표적이 된다. 우크라이나 평균 해발 고도가 134m이다. 이게 뭘 뜻하는지 한국과 비교하자면 한국 해발 고도가 448m이고, 한반도 지형의 70%는 산악지형이다. 즉, 보병들이 움직이고, 산에 기어들어가 싸우는 게 가능하다.

 

반면 우크라이나 산악지형은 전체 국토면적의 5% 남짓. 그나마도 국경 근처다. 즉, 국토 대부분이 그냥 평평한 지형이란 뜻이다. 그런데 국토 면적은 한국의 6배나 된다. 이러다 보니, 이 지역에서는 탱크나 기갑차량이 없으면 전투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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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푸티차(Распутица)

 

괜히 기갑차량들이 막 움직이는 게 아니다. 2차 대전 때도 지금 한참 뉴스에서 나오는 하르코프를 둘러싸고 독일군과 소련군이 엎치락뒤치락 싸웠다. 드네프르강이나 키예프, 하르코프는 제2차 대전에 대해 일정 부분 지식이 있는 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지명이다.

 

지금 그 하르코프가 다시 불타고 있다. 우크라이나 지명으론 하르키우(러시아명이 하르코프다). 우크라이나에선 키예프 다음으로 큰 도시이며, 소련 당시에도 모스크바, 레닌그라드와 함께 소련 3대 공업 도시로 유명한 동네다. 이 동네에서도 교전이 벌어지고 있다. 친러 성향이 강한 동네인데, 이곳에서마저 러시아군에게 저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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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 방향에 보이는 게 하르키우  

출처 YTN 

 

개전 당시 느낌은

 

"졌잘싸 정도겠지?"

 

였는데, 우크라이나가 의외로 선방하고 있다. 사흘 정도면 키예프가 함락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우크라이나는 잘 버티고 있다. 자원한 민간 의용병이 13만이다. 러시아로선 최대한 빨리 전투를 끝내야 했는데, 일이 틀어지게 된 거다. 최초 언론에 나온 러시아군의 모습은 경보병의 느낌이었다. 까놓고 말해서

 

"얕봤다?!"

 

란 느낌이 강하다. 이어지는 영상들을 보면,

 

"러시아군도 어떻게 해야 할지 제대로 된 지침을 받지 못했다."

 

라는 의심이 들었다. 대표적인 예가 러시아 탱크를 맨몸으로 막아선 우크라이나 시민의 모습이다. 러시아군은 민간인들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제대로 지시를 받지 못한 거다. 아무리 푸틴이라지만, 민간인들에 대해선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에서 민간인 피해를 명분으로 개입할 수도 있고, 가뜩이나 욕을 먹고 있는데다, 명분도 부족한 마당, 민간인까지 희생한다면 여론이 뒤집힐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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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 앞을 막아 선 우크라이나 시민

출처 <CNN 화면 캡쳐>

 

여기서 결론이 나온다. 푸틴은 최초에 속전속결로 키예프를 두들겨서 빨리 항복을 받아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최대로 쳐도 5일 안에 키예프를 두들겨서 빼앗아야 했다. 제공권을 최초에 장악하고, 그다음에 경보병으로 재빨리 달려가 깃발을 꽂자는 게 푸틴의 계획처럼 보였다.

 

3. 러시아가 몰린 이유 

그런데 우크라이나가 버텨냈다. 이렇게 되니 푸틴이 몰리게 된 거다. 서쪽을 제외한 동・남・북에서 동시에 밀어붙였지만, 우크라이나는 항전 의지를 계속 불태웠다. 재블린은 러시아 장갑차량과 탱크를 병뚜껑 따듯이 따고 있었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가성비 안 나오는 대 '보병' 미사일 노릇을 해야 했던 재블린은 이제야 자기 본연의 임무를 맡아서 열심히 탱크의 목을 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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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블린

출처 - <ABC News 방송 캡쳐>

 

딱 보면 알겠지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상대로 대규모 회전을 벌일 만큼의 병력이나 장비가 없다. 병사 수 1/5, 탱크를 포함한 장갑차량도 1/5 수준, 공군전력은 1/10 수준인데 회전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핵은 어떻게 할 건가?

 

이 경우 우크라이나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시가전'이다. 자연지형을 이용한 방어를 할 수 있는 지형도 없는 상황에서 세 방면에서 진격해 오는 러시아군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피를 뽑아먹는 진공펌프'인 도시로 유인해서 러시아군을 죽이는 거다(여론전에도 좋은 게 명백한 민간인 피해를 보여줄 공산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을 포함한 나토에서도 대전차 미사일은 넘쳐나도록 지원해 줄 것이기에 러시아군은 꽤 고생해야 할 거다.

 

이렇게 최초의 공세가 무너지자 러시아군은 TOS-1 부라티노와 BMPT(터미네이터)를 키예프 쪽 전선으로 보냈다. 러시아는 자국 종군 기자들을 다 철수시켰다.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

 

체첸과의 전투에서 러시아가 개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 1개 기갑여단이 체첸 공화국 수도인 그로즈니로 진격했다가 그 자리에서 녹아버린 거다. 이 당시 그로즈니는 체첸 반군들에 의해 요새로 만들어졌다. 이들은 1층의 문과 창문은 벽돌과 콘크리트로 막아버려서 보병들의 진입을 막아 버린 후에 저격수・기관총 사수・로켓포 사수・통신수 등으로 꾸린 대전차 분대를 만들어 동네 여기저기에 흩뿌려 놓았다. 그런 다음에 다 박살 내 버린 거다.

 

이때 호되게 당한 러시아군이 2차 체첸 전쟁 때 들고나온 게 TOS-1 부라티노다. 이게 뭐냐면 열압력탄을 들고 도시 자체를 '평탄화'시켜 버리는 거다. 그다음에 나온 게 BMPT다. 전차와 비슷한 장갑에, 기동력(차체가 T-72다), 거기다가 보병들을 화력으로 압살할 정도의 엄청난 화력! 30밀리 기관포 2문에 대전차 미사일 4발, 30밀리 유탄발사기 2문에 동축 기관총 1문... 이 정도면 대전차 로켓을 쏘려고 고개를 드는 순간 몸체가 분리될 정도의 화력이다.

 

TOS-1 배치 뉴스_CNN 기자 트위터 캡쳐.jpeg

TOS-1 배치 중인 러시아

열압력 폭탄은 폭발 때의 고열과 고압으로

사람의 폐와 기관을 손상하여 죽인다 

출처 - <CNN 기자 트위터 캡쳐>

 

이에 더하여 지금은 2S19 자주포까지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제사회의 여론을 의식해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최대한 회피해 왔는데, 이제 찬밥 더운밥 가릴 상황이 아니란 거다.

 

키예프가 사흘 이상 버티고,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일치단결해서 덤벼드니... 러시아도 몰렸다.

 

4. 라스푸티차가 오면 한계가 온다   

만약 이대로 가다가 라스푸티차가 다가온다면 러시아군의 기동로는 일부 포장도로로 제한된다. 그렇다는 건 13만이 넘어가는 민병대・민간 의용병들의 뒤치기가 가능해진다는 소리다. 지금도 보급에 난맥상이 생겨서 곤란한 게 러시아인데, 이대로 시간을 더 끌다간 러시아는 정말로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

 

아니, 지금도 위험하다. 이 전쟁이 어떻게 끝날지 모르지만, 러시아가 전쟁 이전의 리더십이나 영향력을 유지하는 건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러시아의 실력이 확인된 거다.

 

"뭐야? 저색희들 별거 아니잖아?"

 

라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거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다급해진 푸틴이 열압력탄에 터미네이터를 붙이고, 자주포까지 키예프로 진입시키려 하는 거다.

 

다 떠나서 핵 위협을 하는 것 자체가 러시아가 몰렸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