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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가 또 철수했다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사실 나는 5년 전 치러진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찍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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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당시 문재인 후보의 당선이 확실했다는 점, 둘째 안철수가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에게 야권 단일후보를 양보했다는 점, 셋째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2위를 차지하여, 자유한국당을 몰락시키고 건전한 대안 야당으로 자리매김할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물론 내 기대와는 달리 안철수는 홍준표에게도 뒤진 3위에 그쳤고, 이후 바른정당과의 합당과 분당, 그리고 선거때마다 반복된 단일화 논란에 발목이 잡힌 끝에 원내 3석 정당의 대표로 전락하고 말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정계 입문 당시 40대였던 안철수가 어느덧 환갑을 맞이한 것처럼, 그가 내세웠던 '새정치'의 좌표도 과거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제3세력에서 이제는 민주당에 맞서는 제3세력으로 달라진 것 같다. 변하지 않은 건 어느 쪽에서든 '정권교체'를 위해 '단일화'(라고 쓰고 '양보'라고 읽는)를 해야 한다는 압력 뿐.

 

지난 10년간 두 번의 합당과 세 번의 창당, 두 번의 대선과 세 번의 서울시장 선거를 거치며 동메달 두 번, 양보 세 번의 성적표를 남긴 안철수는 세 번째 대선을 6일 앞둔 2022년 3월 3일, 세 번째 합당과 네 번째 양보의 길을 선택했다.

 

선거 때마다 안철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단일화 논란은 결선투표제가 없는 선거제도의 특성상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택해야 한다는 '사표방지론'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다당제를 지향하던 안철수(와 지지자들)의 성향과 달리 양당체제의 유지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안철수는 현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활약한데 이어, 대선 후 국민의힘과도 합당하기로 합의함으로써 추호 김종인 선생과 함께 최근 10년 사이 양대 정당에서 모두 활동하는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유의미한 제3세력을 넘어, 구 적폐세력을 물리치고 건전한 보수야당의 입지를 확보하기를, 그리하여 '민주당이 싫어서 국민의힘을 찍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괜찮은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기를, 아울러 여야가 소모적인 정쟁에서 벗어나 건전한 정책대결을 하길 바랐던 나의 소망은 오늘로써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명색이 정치 칼럼을 쓴다면서, 5년 앞을 내다보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을 뼈저리게 반성한다.

 

아울러 개인적으로 더 안타까운 것은 이번 안철수-윤석열 단일화 과정에서 안철수가 평소 지향해 왔던 '새정치', '중도', '다당제' 등의 가치를 담아낼 제도적인 장치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그저 국민통합, 미래, 개혁, 실용 등 듣기 좋은 말을 나열했을 뿐인데, '정권교체'라는 키워드와 후보 이름만 가리고 본다면 이재명과 단일화한다 해도 어색할게 없는 합의문이었다.

 

결국 (물밑에서 이뤄진 이면합의가 없다면) 안철수는 대선 후 윤석열 정부의 지분이나 지방선거 공천권, 차기의 가능성을 노리고 베팅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안철수의 희망은 장밋빛이었겠지만 예상되는 미래는 첩첩산중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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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정치인 안철수의 앞날

 

무엇보다 모든 것의 전제가 되는 '윤석열의 당선' 자체가 불투명하다. 윤석열이 낙선할 경우 이 모든 것이 나가리 날 뿐 아니라 뒤늦은 단일화(+밀당 과정에서 벌어진 신경전과 윤석열에 대한 극딜까지)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될 테니, 국민의힘은 물론 정치권 전체에서 안철수의 설자리는 없을 것이다.

 

설령 윤석열이 이긴다 해도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이다. 지금이야 다급한 윤석열이 대등한 파트너 그 이상으로 안철수를 예우하고 치켜세워주겠지만, 3월 10일 이후 '대통령 윤석열'과 국회의원도 아닌 안철수의 위상은 넘사벽의 차이가 난다. 아울러 3석 국민의당을 이끌고 국민의힘에 합류한들, 안철수는 홍준표 유승민 원희룡과 경쟁해야 하는 고만고만한 잠룡 중 하나, 원오브뎀에 불과하고 심판이 될 당 대표는 안철수의 영원한 안티, 이준석이다(아울러 2027년 차기 대선에는 이준석도 출마할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공동정부의 인사권이나 지방선거의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해봤자, 안철수가 이끄는 국민의당 인재풀이 워낙 협소하다보니, 인사청문이나 본선의 관문까지 뚫고 임명 또는 당선의 기쁨을 누릴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총리나 당 대표가 된다고 해도, 이를 뒷받침해 줄 제도적 장치가 없다면 집권 후 생길 이런저런 문제나 선거 패배의 책임만 뒤집어쓰기 십상이고, 당내외에 안철수를 쉴드쳐줄만한 세력은 터무니없이 적은 반면 이런저런 이유로 안철수와 등을 돌린 인사들은 너무 많다(심지어 그중에 태반은 한때 안철수계였던 인사들이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안철수야말로 '끝까지 간을 보다가 이길게 확실하니깐 뒤늦게 나타나서 숟가락을 얹는 기회주의자'에 불과하며, 무엇보다 자신들의 공을 극대화하기 위해 뒤늦게 합류한 안철수의 가치를 폄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선거 끝나기가 무섭게, 표 차이가 크다면 '단일화 안 했어도 이길 수 있었을 것'이고, 표 차이가 적다면 '뒤늦은 단일화로 효과가 반감되었다'고 주장하며 안철수를 깎아내릴 것이 불 보듯 뻔하며, 두 후보 지지자들 사이에서 주고받던 비난의 앙금 역시 쉽게 가실 것 같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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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뉴시스>

 

승부는 이제부터

 

어쨌든 이것도 윤석열이 당선되었을 때 얘기고, 그나마 낙선하면 안철수에게는 국물도 없을 터. 과연 많은 사람들의 예상처럼, 안철수와의 단일화가 윤석열에게 시너지 효과를 주며 보수진영 승리의 발판이 될 것인가?

 

내 생각은 좀 회의적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두 사람의 단일화는 '정권교체' 외에 어떤 가치도 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정권교체가 제1의 가치였던 유권자들은 진작 안철수를 버리고 윤석열에 합류한지 오래다. 도리어 어제까지만 해도 서로를 공격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안철수와 윤석열이 이렇다 할 명분이나 계기도 없이 손을 맞잡은 오월동주의 모습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특히 아직도 남아 있던 안철수 지지자들은 '정권교체는 하고 싶지만 차마 윤석열은 찍을 수 없던' 이들이었기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이 더 크다면 '차라리 이재명을 찍어서 윤석열을 떨어뜨리는' 전략적 선택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이는 안철수 지지자의 입장에서도 냉정하게 생각해 볼 부분인데, 윤석열이 압승할 경우 소위 '윤핵관'들이 안철수 또는 단일화의 가치를 후려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또한 안철수가 지향하던 가치는 오히려 이재명이 내세운 정치교체 공약에 더 잘 녹아있기 때문이다).

 

반면 이런저런 이유로 '샤이 이재명'으로 남아 있거나, 이재명 지지를 주저하던 일부 친문 인사들, 그리고 비 민주당 계열의 진보 세력들이 위기의식을 가지고 결속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결국 보수와 진보 양 진영에서 모두 이재명과 윤석열로의 쏠림이 가속화될 것이므로, 안철수 단일화로 인한 손익은 두 후보가 대체로 반씩 나눠갖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갈 곳 잃은 중도세력의 표심을 얻기 위해 상대 후보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네거티브 공세가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다. 

 

결국 남은 6일간의 선거 판세는 보수 VS 진보 내지 정권교체 찬반에서 反 윤석열 VS 反 이재명의 ANTI 대결 구도로 바뀔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 중도 부동층의 향배가 관건일텐데, 단일화나 정권교체 바람을 걷어내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이재명의 능력이 윤석열의 매력보다, 민주당의 비전이 국민의힘의 복수심보다, 우리의 정성이 저들의 자만보다 못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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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뉴시스>

 

이재명은 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