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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왼쪽 어깨에는 큼직한 타투가 있습니다. 이 타투는 커다란 코뿔소가, 더 커다란 바위를 밀어 올리는 모습입니다. 그 당시 그런 그림을 몸에 새기기로 선택한 것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로 번역되곤 하는 불경 숫타니파타의 구절과 시시포스 신화의 의미를 함께 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함께 담는다는 말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저에게 이 두 이야기는 거의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알베르 카뮈는 시시포스 신화를 통해, 당시 철학계의 가장 뜨거운 유행어였던 '부조리'를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를 명료하게 정리했습니다. 끝없이 밀어 올려봤자 다시 떨어져 내리는 돌덩어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 돌덩어리를 밀어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의 운명. 수없이 반복하여 이 노력이 결국 무의미하게 다시 시작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매 순간 있는 힘을 다해 그 돌을 밀어 올리는 모습은 사람의 삶이 지니는 부조리함을 정확히 빗대고 있습니다. 삶의 부조리로부터 허무함·무의미함·부질없음에 집중하는 이들을 향하여 알베르 카뮈가 남긴 이 책을 읽고서 제가 이해한 바는 이렇습니다.

 

무의미한 그 돌덩어리를 또다시 밀어 올리는 모든 순간에 내 몸의 남아있는 모든 힘을 다하는 것, 그것이 살아있음의 증거이고, 살아있다면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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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치아노(1490-1576)의 시시포스 1549년경 작

출처 - <위키피디아>

 

2.

 

이번 대선은 지난 많은 대선들에 대한 데자뷔로 가득합니다. 너무나도 뛰어난 역량,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것 같은 수준의 자기반성적 태도, 끝없는 발전과 노력, 숭고해 보일 정도의 처절했던 성장 과정을 모두 지닌 후보가 마치 뭔가 부족한 것 마냥 자신을 낮춰가며 비합리에 맞서고 있습니다. 이 상황은 노무현 대통령의 극적이었던 선거운동 과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한편 기본적 수준의 상식과 합리성으로도 그 무식함과 위험함을 감지할 수 있을 만한 후보가 스스로 당연히 대통령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이 상황은 더는 전직 대통령 예우를 할 필요가 없는 박근혜 씨의 선거운동 당시를 떠올리게 합니다. 안철수의 재등장과 변신 과정은 일면 불사조 이인제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막판 단일화는 정몽준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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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재명 페이스북>

 

그 가운데 이런 느낌을 받습니다. 도대체 왜 너무나도 자명하고 상식적인 이 구도가 마치 대단히 새롭고 혁신적인 사상을 주장해야 하는 것처럼 매우 곤란하고 고되야만 하는가. 왜 지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끝없이 이러한 주장을 해야만 하는가. 왜 매번 마치 처음 시작하는 것처럼 밭을 갈아야만 하는가.

 

한편, 저는 ‘뱅뱅이론'을 처음 만든 사람으로서, 그 말이 시작된 계기였던 2011년 19대 총선 이후로 거의 모든 선거에서 뱅뱅이론을 언급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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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인용되던 뱅뱅이론.

조선일보로 수출된 뱅뱅이론의 예시.

(조선아. 대금은 딴지마켓으로...)

 

 

심지어 남의 나라인 미국 대선에서까지 언급했었죠. 그렇게 10년이 지나면서, 저는 뱅뱅이론을 이렇게 정리했었습니다. 

 

“뱅뱅이론이란 건 허구였다. 내 편의 쪽수가 적었을 뿐이다.”

 

그렇습니다. 뱅뱅이론이라는 말을 언급하는건 항상, 다수인 줄 알았으나 소수였음이 확인된 쪽의 몫입니다. 소수인 줄 알았으나 다수였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다수는, 다수라는 사실을 혼동할 수 없습니다. 그저, 서로가 다수라고 생각하다가, 어느 한쪽이 소수임을 깨닫는 거죠. 뱅뱅이론은 그럴 때 쓰이는 말인 셈입니다. 

 

우리는 지난 20여 년간, 상반된 상황을 모두 충분히 겪어왔습니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겨낸 경험과 이길 거로 생각했으나 진 경험. 각각이 한두 번이 아닌 수준으로 누적됐고, 그 결과 우리는 이제 자만하지 않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밭을 가는 사람들이 되었죠.

 

우리는 기꺼이 숙인 고개로 밭을 갈기를 자처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콧노래 흥얼거려지는 가벼운 무게가 되는 건 아닙니다. 매 순간 목과 어깨는 짓눌리고, 갈아야 할 밭에는 수많은 자갈과 잡초 덩굴이 가득해 굳은살과 물집이 새봄의 개나리처럼 가득히 피어오릅니다.

 

3.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재명을 지지하는 우리는 막상 부동산의 귀재들도 아니고, 코로나가 피해 가는 슈퍼 항체 보유자들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정책을 핑계 삼아 정권교체를 주장하는 사람들이나, 글로벌 원탑 수준인 코로나 방역 성과를 깎아내리는 사람들에게 밭을 갑니다.

 

이는 어찌 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쌀이 나오지도, 돈이 나오지도 않는, 그저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노력을 거쳐 세상을 조금이라도 좋게 만들어 가봤자 먼 훗날 우리가 노년이 되어 극심한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 많은 젊은이들이 우리의 무게에 짓눌려 신음하면서, 우리가 평생 기울인 모든 노력을 부정할지 모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당장 한 푼이라도 더 모아두는 게 살길이라는 극우들의 논리도 아예 이해 못 할 건 아닙니다. 그런 그들이 보기에 우리가 숙인 고개로 밭을 가는 과정은 아무런 의미도 없이 매번 반복하는 삽질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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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교수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선물한 우공이산(愚公移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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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에게 그들이 부여하는 의미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머나먼 은하에서 본다면 우리가 사는 지구는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하겠죠. 그들이 점으로 보든, 창백하게 보든, 푸르게 보든, 저는 개의치 않습니다. 바로 그 점에 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이 존재했고, 수천 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경제체제가, 수렵과 채집을 했던 모든 사람들이, 모든 영웅과 비겁자들,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과 그런 문명을 파괴한 사람들, 왕과 미천한 농부들이,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들, 엄마와 아빠들, 그리고 꿈 많던 아이들이, 발명가와 탐험가, 윤리 도덕을 가르친 선생님과 부패한 정치인들, "슈퍼스타"나 "위대한 영도자"로 불리던 사람들이, 성자나 죄인들이 모두 태양 빛에 걸려있는 저 먼지 같은 작은 점 위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이고 밭을 간 우리는, 모두 지난 20년간 겪었던 좌절과 희망, 암울과 환희가 남들이 보기엔 무의미할지 모르는 과정에서,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은 승리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총선과 지선에서 밭을 갈 것입니다. 만에 하나 이재명이 패배하더라도 다음 총선과 지선에서 밭을 갈 것입니다. 우리와 같은 의견의 사람들이 절대다수가 되어 더는 밭을 갈지 않아도 되는 시대라는 건 아마도 생전에 오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깨가 처지지 않습니다. 얼만큼이라도 계속할 수 있으니까요. 무소의 뿔처럼 그냥 가는 겁니다. 시시포스처럼 그냥 밀어 올리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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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회사진기자단>

 

그렇게 한 번 더 밭을 가는 것, 그렇게 더 나은 내일에 힘을 보태는 것, 그것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계속해서 그 일을 반복하는 것, 그것이 우리 자신으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 자신으로 살아있는 한, 앞으로 얼마든지 계속 그러할 것입니다.